퀵바

안뇽하세용

앞점멸 소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윤코
그림/삽화
세씨
작품등록일 :
2020.05.11 12:39
최근연재일 :
2021.10.12 16:08
연재수 :
230 회
조회수 :
139,262
추천수 :
9,715
글자수 :
1,573,623

작성
20.05.16 14:27
조회
1,810
추천
119
글자
11쪽

등불과 불운의 도시

DUMMY

조그만한 수로를 가로지르는 아담한 돌 다리 위에서, 론멕은 위니를 옆에 둔 채 어디론가를 향해 열심히 걷고 있었다.


‘그래서, 아직 못 들은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데요?‘


오랫동안 걸은 탓인 지, 그녀는 다리가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론멕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옆으로 돌아 다리의 난간에 두 팔을 걸치며 말을 이었다.


‘한번 말해 봐요.’


론멕은 수로를 내려다보았다. 물에 비친 그녀의 주변에는 그녀 자신의 모습 이외엔 그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물가에 비친 론멕이 고개를 돌려 아무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 같은 강력한 마법사가 무엇을 위해서 그런 꼴이 되었는 지를.’


뜻밖의 질문을 들은 위니는 그녀의 뺨을 살살 긁으며 말했다.


[아, 그거? 그거야 뭐··· 어제 이야기했었잖아.]


하늘색의 엘프는 이내 론멕과 마찬가지로 물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를 위해서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고. 그 정도면 충분한 설명 아니겠어?]


그 말을 들은 론멕은 한 숨을 쉬고는, 몸을 돌려 다시 걷기 시작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전혀 충분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 ’일‘ 이란게 뭐냐고요.’


다리에서 내려온 론멕은 그녀를 향해 다가오는 마차를 이리저리 피해가며 마음 속으로 위니에게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제가 생각을 조금 해 봤는데, 만약에 당신을 제 몸에서 떼어내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당신은 곧 새로운 숙주를 찾아 떠날 거 아니에요?’

[맞지.]


말끔하게 포장된 돌 길을 걷던 론멕은, 이내 바닥을 쳐다보며 걷기 시작했다. 넓적하고 매끈한 회색의 돌덩어리들이 촘촘하게 서로 모여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걷던 그녀는 이내 위니에게 말했다.


‘그럼 그 사람은 무슨 죄인가요?’


하늘색의 엘프는 그 말을 듣고는,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드나의 시끌벅적한 번화가가 론멕과 위니를 맞이했다.


길가에 나열된 가판들을 앞에 둔 채, 수 없이 많은 상인들이 그들의 물건을 행인들에게 알리기 위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못지 않게, 가판에 멈추어선 행인들이 땀을 뻘뻘 흘려가며 흥정을 하는 소리가 도심에서 울려퍼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혼란스러운 도심 속에서 침묵하기를 고집하던 엘프가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이 하고싶은 건데?]


론멕은 흥미롭다는 듯 주변의 가판들을 향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위니에게 말했다.


‘그걸 알아야 안심할 수 있겠어서요. 모험을 떠나는 건 신나는 일이긴 하지만···’


시장 한 가운데에 몰린 인파와, 그 속에서 재롱을 부리는 도마뱀과 그 조련사를 발견한 그녀는 입을 살짝 벌린 채 그것을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요. 우리의 목표에 대해서. 그리고 당신의 목표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면, 마음이 불편해져요.’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어 사람들 사이에 선 채 도마뱀이 커다란 링을 폴짝 뛰어넘는 것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련사가 정중히 구경꾼들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모자를 벗자, 론멕은 주머니를 뒤져 금화 한 닢을 꺼내며 말했다.


‘그러니까 말해봐요. 당신이 무엇을 위해, 어쩌다가 그런 상태가 되었는 지. 그리고 그것이 이 불편한 마음을 잊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


조련사가 그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다가가 모자를 뻗으며 돈을 걷기 시작했다. 그런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던 위니는 이내 나지막이 론멕에게 말했다.


[···나는 빼앗긴 게 있어.]

‘그게 뭔데요?’

[아주 중요한 거. 일단은 그렇게만 알고 있으렴.]


조련사가 론멕의 앞으로 다가오자, 그녀는 꺼내두었던 금화를 모자 속으로 던졌다. 동전이 서로 부딫히며 모자 속에서 짤랑이는 소리를 내었다.


[그래··· 그정도로만 알 고 있··· 야! 야!]


위니는 갑자기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다급하게 론멕에게 소리쳤다.


[뭐야? 500년간 금이 흔해지기라도 한 거야? 이럴 땐 동화나 던져주면 될 것을, 미쳤다고 금화를 내?]

‘엇···’


론멕은 그 말을 듣고는 당황하며 모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녀의 손이 모자에 닿기도 전에, 조련사는 재빠르게 모자를 낚아채며 말했다.


“낙장불입! 아이고 감사합니다! 수녀님!”


휘파람을 부르며 그녀에게 등을 돌린 조련사를 멍하니 쳐다보고는, 론멕은 힘 없이 말했다.


‘좀 더 빨리 말해주시지. 저는 몰랐어요.’

[도마뱀 부리는 걸로 금화를 받으면 나는 대체 마법을 왜 배운 거야? 그 시간에 도마뱀이나 잡아다 기를 걸.]


론멕은 그 말을 듣고는, 퍼뜩 무엇인가를 알아차린 듯 금화로 가득 찬 깃털같이 가벼운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어라. 그러고 보니 나 지금 상당하게 부자인 셈이네요?’


허둥지둥 주머니를 펼쳐 금화를 세던 론멕을 바라보던 위니는, 이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복잡한 생각 말고, 돈이나 펑펑 쓰러 가자.]



= = = = =



빨간 머리의 수녀는 여전히 세드나의 도심 속을 걷고 있었다.


그녀는 형형색깔의 사탕이 꽂힌 꼬치를 손에 든 채, 행복한 표정으로 우물거리며 위니에게 말했다.


‘이야... 이거 진짜 맛있네.’


위니는 애가 타는 표정으로 두 손을 꽉 쥔 채 론멕에게 말했다.


[그래 보여. 얼마나 맛있어? 얼마나?]


론멕은 꼬치에 꽂힌 사탕을 한 입 더 베어물며 말했다.


‘와, 진짜 너무 맛있다.’

[나도··· 나도 한 입만···]


빨간 머리의 수녀는 그 말을 듣고는, 사탕이 꽂힌 꼬치를 위니의 입가 주변에서 빙빙 돌리며 말했다.


‘어짜피 못 먹잖아요. 부럽지? 부럽지이~’


그녀의 입가에서 방정맞게 흔들리는 꼬치와, 그것을 흔드는 론멕을 번갈아가며 쳐다보던 위니는 이를 바득바득 갈더니, 이내 못 참겠다는 듯 론멕의 어깻죽지로 돌진하며 소리쳤다.


[이익, 못 참겠다!]


순간 론멕은 그녀가 위니의 도움을 받아 마법을 쓸 때 느낀, 형용할 수 없는 불쾌한 느낌이 그녀의 상반신을 뒤덮는 것을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론멕의 오른 쪽 눈 속에서 텅 빈 하늘색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취가 된. 듯 아무 느낌이 느껴져오지 않는 그녀의 오른 쪽 상반신을 더듬거리며 당황한 채 입밖으로 말했다.


“세상에, 이게···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위니는 킬킬 웃으며 론멕의 오른 손을 움직여 그녀의 왼 손을 떼어내고는 말했다.


[뭐 하는 짓이긴, 네 몸 좀 잠시 빌리자는 거지. 이거 놓지 못해?]


론멕은 살아생전 느껴본 적 없는 불쾌한 감각에 기겁을 하고는, 그녀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오른 손을 다시 부여잡으며 말했다.


‘아이 씨, 하지 마요 진짜!’

[얌전히 입과 식도의 주도권을 넘겨!]


위니는 론멕의 오른 손을 뿌리치고는, 그녀의 손에 들고 있던 사탕 꼬치로 왼 손을 콕콕 찌르기 시작했다.


“아야! 아얏! 이게 진짜!”


꽤나 한적해진 도심의 외곽 지역에서, 몸을 반으로 가른 채 혼신의 사투를 벌이던 그녀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얼어붙은 듯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누군가가 론멕의 등 뒤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수녀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그 말을 들은 위니는 부리나케 론멕의 몸에서 빠져나오며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확인했다.


챙이 나간 모자를 쓴 채 어깨 위에 도마뱀을 올려놓은 조련사가 머리를 긁적이며 론멕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아, 하하, 아무것도 아니에요.”


론멕은 급하게 뒤돌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실례지만 무슨 일이신지···”


조련사는 챙이 나간 모자를 벗고는 그녀에게 공손하게 인사하며 말했다. 그의 팔 다리가 얼마나 길쭉한 지, 론멕은 그녀가 기린을 보고 있는 건 아닌지를 의심했다.


“수녀님, 혹시 세드나에 처음 와보신 건가요?”


론멕은 그의 어깨 위에서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도마뱀을 흘긋 쳐다보며 대답했다.


“네. 그걸 어떻게 아셨죠?”

“주변을 둘러보시는 모습이 영락없는 초행자 같아서 말입니다.”


그는 과장스러운 몸짓으로 그녀에게 팔을 뻗으며 말을 이었다.


“금화를 받은 게 영 마음에 걸리적거려서 그런데,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가 길 안내를 해 드려도 될까요?”


론멕은 그 말에 화색이 되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주시면 정말 감사하죠!”


조련사는 그의 길쭉길쭉한 팔을 휘저으며, 공손하게 허리를 굽히고는 말했다.


“인사드립니다.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길거리 예술가이자 수녀님의 일일 가이드를 맡은 제르니모라고 합니다. 수녀님의 성함은···?”


빨간 머리의 수녀는 양 손을 깍지낀 채 마찬가지로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론멕 데이드림이라고 합니다. 예술가의 피어나는 상상력에 세드나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그 모습을 본 위니는 아니꼽다는 듯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지랄 하네. 예술가는 무슨. 그냥 광대 노릇 하는 한량이란 거잖아.]

‘말이 심하세요.’

[왜? 사실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그녀들의 대화를 아는 지 모르는 지, 제르니모는 그의 어깨 위에 올라탄 도마뱀의 등을 쓰다듬으며 론멕에게 말했다.


“수녀님. 세드나에 얼마동안 머무르실 생각이시죠?”


론멕은 그 말을 듣고는 검지 손가락을 펼쳐보이며 대답했다.


“하루요. 여기서 하룻밤 자고, 서쪽으로 갈 생각이에요.”


조련사는 흥미롭다는 듯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기서 더 서쪽으로 가면··· 성국 밖으로 나가실 생각이십니까?”

“네. 테플로 지부에 교단 관련 일로 출장이 있어서요. 잠시 쉬어갈 겸 이곳으로 먼저 와 봤어요.”


위니는 론멕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너, 생각보다 거짓말을 뻔뻔하게 잘 하는구나.]


‘정신 사나워서 그런데, 잠깐 조용히 해 주실래요?’


그 말을 들은 엘프는 입을 있는 대로 삐죽이고는, 이내 그녀가 못마땅하다는 듯 팔짱을 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무시한 채, 론멕은 말을 이었다.


“··· 아무튼, 그래서 지금은 잘 곳을 찾던 중이었어요. 혹시 잘 아시는 여관이 있으신가요?”


제르니모는 고개를 살살 저으며 손가락을 내두르고는 말했다.


“여관을 찾으시는 거라면 방향을 잘못 잡아도 한참 잘못 잡으셨습니다. 반대 방향으로 가셨어야죠. 마침 제가 요리를 기가 막히게 하는 곳을 알고 있는데, 괜찮으시다면 그곳으로 가시는 게 어떨지...”


“고마워요. 그럼 안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제르니모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어디론가로 발걸음을 향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보던 론멕은 그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거짓말을 잘 하는 것 치고는 너무 순진한 거 아니야 너?]


위니는 론멕의 옆에서 둥둥 떠오르며 말을 이었다.


[세상이 다 너같이 마음씨 좋은 애로 가득 차 있는줄 알아? 쟤를 뭘 믿고 따라가겠다는 건데? 저 광대가 돌변해서 너를 해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순간, 위니는 무엇인가를 느끼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옆에서, 론멕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위니에게 말했다.


‘재미있잖아요.’


그녀의 사랑스러운 미소에서 무엇인가 이질적인 것을 느낀 위니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론멕에게 말했다.


[알아? 너, 진짜 이상한 년이라는 거.]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앞점멸 소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7 조련사는 무엇을 조련하는가 +15 20.05.27 1,244 88 11쪽
26 석궁 시범 +17 20.05.27 1,140 93 11쪽
25 석궁과 사냥꾼 +16 20.05.26 1,331 102 10쪽
24 의사의 집에서 +12 20.05.25 1,244 96 12쪽
23 낮의 그림자 +19 20.05.25 1,236 102 11쪽
22 페트나 베리미온 +17 20.05.24 1,266 107 11쪽
21 환자의 협박 +8 20.05.24 1,212 90 10쪽
20 모험의 왕국 +15 20.05.23 1,535 105 11쪽
19 떠나다 +27 20.05.22 1,802 98 14쪽
18 무역상인 +18 20.05.21 1,321 102 11쪽
17 성국의 흉악범 +15 20.05.20 1,376 101 12쪽
16 두 번의 살인 +26 20.05.19 1,449 101 14쪽
15 13일의 금요일 +14 20.05.18 1,465 102 14쪽
14 세드나의 정오 +11 20.05.17 1,458 103 11쪽
13 광대와 여관 +13 20.05.17 1,555 111 14쪽
» 등불과 불운의 도시 +16 20.05.16 1,811 119 11쪽
11 항해의 끝 +19 20.05.16 1,875 122 11쪽
10 미소짓다 +22 20.05.15 1,877 137 11쪽
9 바다 위에서 +28 20.05.15 1,961 129 12쪽
8 지평선호 +12 20.05.14 2,123 126 11쪽
7 항구와 시작의 도시 +10 20.05.13 2,557 122 7쪽
6 돌격 앞으로 +18 20.05.12 2,625 145 9쪽
5 탈출 +16 20.05.11 2,610 150 8쪽
4 심연 속에서 +18 20.05.11 2,858 161 9쪽
3 그녀와의 첫만남 +15 20.05.11 3,019 159 9쪽
2 목걸이의 목소리 +19 20.05.11 4,011 182 9쪽
1 이야기책. 그리고 론멕 +29 20.05.11 8,122 291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