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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뇽하세용

앞점멸 소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윤코
그림/삽화
세씨
작품등록일 :
2020.05.11 12:39
최근연재일 :
2021.10.12 16:08
연재수 :
230 회
조회수 :
139,283
추천수 :
9,715
글자수 :
1,573,623

작성
20.05.27 00:10
조회
1,140
추천
93
글자
11쪽

석궁 시범

DUMMY

"쉿. 저기 무엇인가 보이는군."


사냥꾼의 말을 들은 론멕은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어느새 화살에 꿰뚫린 새끼 노루 한 마리가 축 늘어진 채 울타리에 몸을 기대어 있었다.


검은 후드의 모험가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노루와 사냥꾼을 그저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의 뇌리에 스치는 생각은 오직 하나.



‘내가 석궁을 쏘는 소리를 들었던가?’


[아니.]


론멕과 마찬가지로 눈을 끔벅이며 사냥꾼을 바라보던 위니가 말했다.


[나는 장전하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말을 마친 모험가와 엘프는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이내 동시에 사냥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엄청난 속도로 사냥감을 쏘아 맞춘 덥수룩한 머리의 사냥꾼은 석궁을 그의 어깨에 얹어놓으며 말했다.


“새끼를 잡는 건 조금 거시기하지만, 그래도 울타리를 망가뜨리는 건 눈 뜨고 봐줄 수 없단 말이지.”


사냥꾼은 그의 수북한 머리털 사이로 푸른색의 안광을 번득이며 말을 이었다.


“론멕. 그대는 어느 쪽이오?”


“네?”


어물거리던 론멕이 에드에게 되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잘···”


그 말을 들은 사냥꾼은 론멕에게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러자 당황한 론멕은 천천히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귀에는 자갈이 이리저리 부딫히는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에드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울타리를 망가뜨리려다 화살을 맞은 저 새끼 노루의 신세가 조금 익숙해 보이지 않소?”


에드는 그의 어깨에서 석궁을 천천히 내리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묻고 있는 것이오. 아니, 이를 테면 통보를 하고 있는 셈이지. 만약 그대가 우리 레이븐 마을이라는 울타리를 망가뜨리려 한다면···”


바싹 긴장하여 몸을 움츠린 론멕의 앞에서, 사냥꾼은 어느새 화살이 장전된 석궁을 그녀에게 들이밀고는 말했다.


“···그 전에 이 늙은이의 솜씨가 얼마나 빠른지를 한번쯤은 돌이켜봤으면 좋겠군. 내 말을 알아듣겠소?”


다리가 풀린 론멕은 그만 자갈길 위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런 그녀의 옆에서 위니는 다급하게 론멕의 곁으로 날아들며 말했다.


[야. 쫄지 마. 이미 보호막 마법을 걸어뒀단 말이야.]


석궁을 손에 든 사냥꾼을 앞에 둔 채, 론멕은 위니를 향해 곁눈질을 하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그 보호막이란 거, 석궁은 못 막았잖아요.’


[그건··· 급하게 사용해서 그랬던 거고···]


시무룩해진 엘프를 본 척도 하지 않은 론멕은 에드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레이븐 마을에 해를 끼칠 생각은 없었어요. 맹세코.”


침을 꿀꺽 삼킨 그녀는 이내 말을 이었다.


“물론 샬롯에게도요. 그럼에도 제가 이곳에 있는 게 불편하시다면, 저는 지금 당장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요.”


그 말을 들은 사냥꾼은 론멕의 깨진 안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서늘한 바람이 깔끔하게 나열된 밭들의 사이를 지나 자갈길 위를 가득 메웠다. 부릅 뜬 눈으로 론멕을 바라보던 사냥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눈매를 누그러뜨리고는 말했다.


“미안하오. 이 늙은이가 장난이 조금 심했나 보군. 으하핫!”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린 에드는 자갈길 위에 쓰러진 론멕에게 손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안 잡아먹을테니 잡고 일어 나시구려.”


론멕은 그의 손을 붙잡아 몸을 일으켰다. 그런 그녀의 눈은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무엇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사냥꾼은 그녀의 손을 잡은 채 입을 열었다.


“흔히들 말하더군. 마법사란 건 불행을 몰고 다니는 악운의 사자와도 같다고. 나는 그것을 그저 선입견이라 생각하지 않소.”


에드는 한 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적어도 나의 옛 마법사 친구들은 전부 그러했으니까. 그러나 당신의 눈빛에는 한 톨의 악의도 보이지 않는군. 그러니 안심하시오. 그대를 쏠 일은 없을 듯 하니.”


그러나 론멕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흔들리는 론멕의 눈동자를 본 사냥꾼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어쩔 줄을 몰라하며 입을 열었다.


“아니, 이것 참. 내가 한참 어린 처자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르겠군. 미안하오. 그렇게 무서워할 줄은 내 몰랐소.”


론멕의 맞잡은 두 손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어깨를 웅크린 채 자갈길을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들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게 아니에요. 아저씨. 진짜 멋졌어요!”


“···으응?”


“석궁 말이에요. 혹시 한번만 더 보여주실 수 있나요?”


예상하지 못한 그녀의 반응에 당황한 사냥꾼은 그의 석궁을 천천히 들어올리며 말했다.


“거···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정말 괜찮은 거요? 단단히 겁먹은 것 같아 보였소만···”


사냥꾼과 모험가는 이내 나란히 자갈길 위를 걷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냥감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던 그들의 뒤에서, 위니는 께름찍한 미소를 지으며 이내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어. 뭐? 눈빛에서 한 톨의 악의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늘색의 엘프는 한 숨을 쉬고는 론멕의 뒤를 따라 날아오르며 나지막히 말했다.


[저 애의 눈 속에는 그보다 더한 게 도사리고 있는걸.]




= = = = =




아담한 나무의 옹이에 그려진 빨간 과녁에는 작은 화살이 수북히 꽂혀 있었다.


무엇인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레이븐의 자갈길 위에 계속해서 울려퍼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화살 하나가 과녁의 정 중앙에 날아들었다.


화살의 깃이 파르르 떨리며 몸부림쳤다. 과녁으로부터 아득하게 멀리 떨어진 울타리에서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저 작은 걸 맞추시는 거람?”


이마에 손을 얹은 론멕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말했다. 그러자 에드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다 방법이 있다오. 이거 참··· 부끄럽구만.”


덥수룩한 머리의 사냥꾼은 그의 어깨에 석궁을 얹으며 머쓱한 듯 머리를 긁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옆에 선 론멕은 울타리에서 손을 떼며 에드에게 말했다.


“제 차례. 이번엔 뭔가 맞출 수 있을 것 같아요.”


허리춤에서 화살을 꺼낸 에드는 이내 그것을 석궁의 시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니까. 어디 한번 보기나 합시다.”


말을 마친 에드는 론멕에게 팽팽하게 장전된 석궁을 건넸다. 그러자 론멕은 한 손으로는 석궁의 몸통을,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석궁의 손잡이를 잡은 채 과녁을 조준하기 시작했다.


한 쪽 눈을 지긋이 감은 론멕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그녀는 이내 침을 꼴깍 삼키며 석궁의 방아쇠를 당겼다.


팽팽하게 매어진 석궁의 시위가 순식간에 제 자리를 찾아 돌아갔다. 경쾌한 석궁의 발사음과 연달아 에드의 굵은 목소리가 론멕의 귀를 가득 메웠다.


“오오. 거의 맞출 뻔 했구만.”


론멕이 쏜 화살은 과녁과 멀리 떨어진 풀밭에 힘없이 몸을 뉘였다. 그 모습을 본 론멕은 한 숨을 쉬며 석궁을 에드에게 건넸다.


“···거의 맞출 뻔 하기는요. 지금 저를 놀리시는 거죠?”


“초보자에게 저 정도면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지 뭘. 너무 다급해하지 마시오.”


껄껄 웃기 시작한 에드는 이내 새로운 화살을 꺼내 그것을 석궁에 장전하며 말을 이었다.


“저렇게 힘이 없어 보여도 위력 자체는 엄청나다오.”


론멕은 여전히 욱신거리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말했다.


“···그거야 저도 잘 알죠. 정말 무시무시하던데요.”


“이 정도 크기의 석궁은 무시무시하다는 축에도 못 들지. 좀 더 큰 석궁이라면 아예 저 나무를 부숴버릴 수도 있을 거요. 정말 대단하지 않소?”


덥수룩한 머리의 사냥꾼은 석궁의 시위를 당기며 그것에 대해 연신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뒤에서, 위니는 팔짱을 낀 채 하품을 하고는 말했다.


[대단하긴. 겨우 그 정도 가지고··· 론멕. 그거 한 발 더 쏴볼래?]


‘네?’


위니의 말을 들은 론멕은 사냥꾼을 향해 두 손을 펼치며 말했다.


“아저씨. 저 한번만 더 쏴볼래요.”


그러자 에드는 피식 웃으며 장전된 석궁을 론멕에게 건넸다.


“왜. 이번엔 정말 맞출 수 있을 것 같소?”


“···그냥 한번 해 보는 거죠 뭐.”


석궁을 받아든 론멕은 눈동자를 굴리며 과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의 오른쪽 팔에서 무엇인가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검은 후드의 모험가는 그녀의 오른 팔을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론멕의 몸에 깃든 위니는 그녀의 오른 손을 움직여 석궁을 고쳐잡으며 말했다.


[잘 받치고 있어. 왼손아.]


론멕은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알을 굴리며 그녀의 왼 손으로 석궁의 몸통을 받쳤다. 한 숨과 함께 과녁을 조준한 그녀의 귀에는 위니의 마법 주문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인챈트 애로우>]


그러자 팽팽하게 장전된 석궁의 화살에서 하늘빛의 빛무리가 일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론멕이 채 입을 열기도 전에, 엘프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계속해서 그녀의 귓속에 울려퍼졌다.


[<익스플로전 매시브>]


주문을 외운 위니는 이내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투확


“···!!”


“크헉!”


하늘을 찢는 소리가 레이븐의 자갈길 위를 가득 메웠다.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론멕은 뒤로 밀려나 그만 울타리에 머리를 박고 말았다.


온 세상이 그녀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정신을 채 가누지 못한 론멕의 귀에는 곧이어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이마에 손을 얹은 채 어지러움에 시달리던 론멕은 이내 고개를 들어 과녁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도무지 과녁을 찾아낼 수 없었다.


나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느새 커다란 구덩이가 패여 있었고, 이곳 저곳이 패인 풀밭의 잔해에서는 검은색의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론멕은 그 광경을 그저 넋을 놓고 쳐다보았다. 그런 그녀의 옆에서, 에드는 입을 쩍 벌린 채 그녀와 마찬가지로 폭발의 잔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덥수룩한 머리의 사냥꾼은 이내 론멕을 바라보며 말했다.


“완전하게 미쳤군. 이건··· 아니, 잠깐만."


어이가 없다는 듯, 자갈길 위에 쓰러진 론멕을 바라보던 에드는 순간 표정을 굳히며 론멕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쓰러진 론멕의 곁에는 그녀의 가방이 내용물을 토해낸 채 힘없이 자갈길 위에 쓰러져 있었다. 에드는 마치 유령을 본 듯한 표정으로 가방을 허겁지겁 뒤적이며 말했다.


“이건 대체 어디서 구한거요?”


말을 마친 사냥꾼의 손에는 마부가 건넸던 붉은 용이 그려진 나무패가 들려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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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석궁과 사냥꾼 +16 20.05.26 1,332 102 10쪽
24 의사의 집에서 +12 20.05.25 1,245 96 12쪽
23 낮의 그림자 +19 20.05.25 1,237 102 11쪽
22 페트나 베리미온 +17 20.05.24 1,266 107 11쪽
21 환자의 협박 +8 20.05.24 1,213 90 10쪽
20 모험의 왕국 +15 20.05.23 1,536 105 11쪽
19 떠나다 +27 20.05.22 1,803 98 14쪽
18 무역상인 +18 20.05.21 1,322 102 11쪽
17 성국의 흉악범 +15 20.05.20 1,377 101 12쪽
16 두 번의 살인 +26 20.05.19 1,450 101 14쪽
15 13일의 금요일 +14 20.05.18 1,466 10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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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광대와 여관 +13 20.05.17 1,556 111 14쪽
12 등불과 불운의 도시 +16 20.05.16 1,811 119 11쪽
11 항해의 끝 +19 20.05.16 1,875 122 11쪽
10 미소짓다 +22 20.05.15 1,877 137 11쪽
9 바다 위에서 +28 20.05.15 1,961 129 12쪽
8 지평선호 +12 20.05.14 2,124 126 11쪽
7 항구와 시작의 도시 +10 20.05.13 2,557 122 7쪽
6 돌격 앞으로 +18 20.05.12 2,625 145 9쪽
5 탈출 +16 20.05.11 2,611 150 8쪽
4 심연 속에서 +18 20.05.11 2,858 161 9쪽
3 그녀와의 첫만남 +15 20.05.11 3,019 159 9쪽
2 목걸이의 목소리 +19 20.05.11 4,012 182 9쪽
1 이야기책. 그리고 론멕 +29 20.05.11 8,123 29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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