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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뇽하세용

앞점멸 소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윤코
그림/삽화
세씨
작품등록일 :
2020.05.11 12:39
최근연재일 :
2021.10.12 16:08
연재수 :
230 회
조회수 :
139,267
추천수 :
9,715
글자수 :
1,573,623

작성
20.05.25 00:07
조회
1,236
추천
102
글자
11쪽

낮의 그림자

DUMMY

론멕은 촉촉하다 못해 끈끈하게 엉겨붙은 눈꺼풀을 힘겹게 떠올렸다. 그러자 군데군데 금이 간 낯선 목조 천장이 그녀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론멕은 침을 삼켰다. 무척이나 건조해진 입에 그녀는 목에서부터 올라오는 따끔함을 느끼며 이내 두어 번 기침을 하였다.


“아··· 아침 예배 가야 하는데···”


중천에 떠오른 해의 따사로운 햇살이 어두운 방 안에 누운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중얼거리던 론멕은 이내 몇 번이고 눈을 끔벅이고 나서야 지금의 그녀가 누구인지를 깨달았다.


“...이젠 그럴 필요가 없구나.”


빛바랜 흰색의 붕대를 어깨에 동여맨 모험가는 서서히 눈을 감았다. 그런 그녀의 귀에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일어나셨어요?”


“으허억! 아윽!”


낯선 풍경과 목소리에 놀란 론멕은 순식간에 몸을 일으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끔찍한 고통을 느낀 론멕은 이내 그녀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이곳저곳에 보푸라기가 붙은 붕대의 거친 촉감이 그녀의 손을 통해 전해졌다. 붕대로 감싸진 그녀의 어깨를 바라보던 론멕은 이내 고개를 돌려 낯선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한 갈래로 깔끔하게 묶인 검은 머리의 젊은 여성이 론멕을 등진 채 그녀를 돌아보고 있었다. 커다란 국자를 손에 쥔 채 시커먼 솥을 휘젓던 샬롯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상처는 많이 아물었지만 아직은 꽤나 아플 거에요. 그래서, 우리 마을을 없애버릴지 말지는 결정 하셨어요?”


“예?”


검은 후드의 모험가는 여전히 어깨를 부여잡은 채 말을 이었다.


“죄송한데 여기가 어디에요? 마을을 없애버린다는 이야긴 또 뭐고?”

“기억 안 나세요? 잘 돌봐주지 않는다면 우리 마을을 없애버린다고 하셨었는데 분명.”


시커먼 솥 앞에 무릎꿇은 샬롯은 그녀의 옆에 쌓인 작은 나무그릇 하나를 손에 들며 말을 이었다.


“그러고보니 이제는 또 존댓말을 쓰시네요? 당신 뭐 이중인격이거나 그런 거 아니에요?”


말을 마치고 론멕에게서 고개를 돌린 샬롯은 이내 접시에 묽은 스튜를 담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등 뒤에서, 카펫 위에 앉은 론멕은 마음 속으로 말했다.


‘위니. 당신 뭐 한 거에요?’


그러자 위니가 론멕의 눈앞으로 날아오르며 말했다.


[뭐긴. 크게 다친 너를 내가 구했지. 정말 험난한 여정이었지 뭐야. 그러니 너는 내게 고마워할 필요가 있어.]


깐죽거리는 위니를 질렸다는 듯 노려보던 론멕은 이내 입을 열어 샬롯에게 말했다.


“죄송한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도통 기억이 안 나서요.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죠?”

“그건 저도 잘 몰라요. 어제라 할 것도 없고, 아까 새벽녘에 에드 아저씨가 당신을 제 집으로 짊어지고 오셨어요. 마을 정문에서 만났다는데. 혹시 기억나세요?”


론멕은 레이븐의 정문에서 있었던 일을 곰곰이 떠올렸다. 삽을 든 더벅머리 남자를 기억해낸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기억나요. 그분이 저를 구해주신 건가요?”

“구해주기 보단 오히려 당신을 위험에 빠뜨렸죠. 아침으로 양배추 스튜 괜찮으시죠? 아침이라 하기엔 뭣 한 시간이긴 하지만요.”


말을 마친 샬롯은 멍하니 앉아있는 론멕에게 스튜 그릇과 숟가락을 들이밀었다. 그것을 채 받아들지 못한 론멕이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 이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전 정말 괜찮아요.”

“우리 마을은 괜찮지 않겠죠 마법사님. 부디 이 스튜를 드시고 노여움을 푸시길.”

“···그건 본심이 아니었을 거에요.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화살을 뽑아버린 건 에드 아저씨 잘못이 맞죠. 지금은 참외밭을 순찰하러 잠시 나가셨는데, 제가 말을 해뒀으니 곧 이곳에 돌아오실 거에요.”


샬롯이 시커먼 솥에서 재차 스튜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 아저씨가 조금 단순무식해서 그렇지.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아마 당신의 어깨에서 화살을 뽑아낸 것도 당신을 돕자는 마음에 그랬을 테니까. 사과를 하면 잘 받아주세요.”


어느새 입 안에 스튜를 가득 머금은 론멕이 그것을 힘겹게 삼키며 말했다.


“아니에요. 사과를 받긴 커녕 오히려 하고 싶은데요 뭘. 절 보살펴주신 당신에게도요. 당신을 뭐라고 불러야···”

“샬롯이라 불러주세요. 샬롯 레메디. 이곳 레이븐 마을에서 의사 일을 맡고 있어요.”

“샬롯···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꼭 잊지 않을게요.”

“뭘요. 당연한 일을 한 것 뿐이에요. 당신의 이름은 뭐죠?”

“저는 론멕 데이드림이라고 해요. 편하게 론멕이라고 불러주세요.”

“론멕이라. 흔하지 않은 이름인데, 혹시 성국 출신이신가요?”

“네. 성국에서 어제, 아니, 오늘부로 테플로에 넘어왔어요.”


샬롯이 어느새 깔끔하게 비워진 그녀의 그릇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론멕. 혹시 무슨 연유로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말해주실 수 있나요? 그··· 누군가에게 화살을 맞는단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잖아요?”


스튜를 채 반도 먹지 못한 론멕이 샬롯의 빈 그릇을 멍하니 바라보며 말했다.


“그냥 별 일 아니에요.”


샬롯은 한 숨을 쉬며 말했다.


“아까 새벽에 보셨던 에드 아저씨 말이에요. 사냥을 정말 좋아하세요. 석궁과 활을 정말 잘 다루시는데, 아까 아저씨가 말씀하시길 당신의 어깨에 박힌 화살촉은 성국의 성기사들의 것이라고 하시더라고요.”

"..."

“저는 의사이고, 그렇기에 생명이 위급한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지 그 사람을 도울 거에요. 그렇긴 해도 여긴 우리 집이고, 이곳은 우리 마을인데 당신의 정체 정도는 밝혀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말씀드리는 거에요. 론멕. 성기사들에게 왜 쫓기고 있는 거죠?”

“···성국에서 마법을 써서 단두대형을 받았어요.”


그 말에, 눈이 휘둥그레진 샬롯이 입을 쩍 벌리며 말했다.


“아니, 단지 그것 때문에요?”

“네. 물론 그것 이외에도 여러 일이 있었긴 했는데··· 샬롯님과 레이븐 마을에 해를 끼칠 생각은 없었어요. 심려를 끼쳐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말도 안 돼!”


샬롯은 두 손을 움켜쥐며 말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사람을 그렇게 몰아세우다니. 그것도 소중한 사람의 생명을! 성국은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샬롯은 론멕의 곁으로 다가가 수프 그릇을 들고 있던 그녀의 손을 빼앗아 움켜쥐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물론 사람들이 당신같은 마법사를 무서워하는 건 맞지만, 우리 테플로 왕국은 마법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처형하고 그러진 않으니까요. 부디 이곳에서 언제까지나 편하게 머무셨으면 해요. 진심이에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론멕의 눈시위가 점차 붉어지기 시작했다.


“으으··· 으우우···”

“그래요. 많이 힘들었죠? 부디 우리 레이븐 마을에서 푹 쉬길 바래요.”

“그게 아니라··· 다친 팔을 그렇게 세게 들어 올리시면··· 으우욱···”




= = = = =




같은 시각. 가장 높은 곳에 머무른 태양은 성 제이드 성당의 전신을 비추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스테인글라스에 비친 형형색깔의 빛이 어두운 공간 안을 비추었다. 빽빽하게 나열된 책장에는 수 많은 책들이 그 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정적이 흐르는 성 데네브 성당의 문헌실에서, 누군가가 책을 넘기는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책장과 책장 사이에 오도카니 서 있는 원장 수녀의 손에는 색이 바랜 붉은 가죽으로 덮인 책 한권이 들려 있었다.


어느새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긴 원장 수녀는 이내 그것을 덮어 책의 표지를 확인했다.


(용사 다리온의 모험)


(페트나 베리미온 씀)


(론멕꺼)


원장 수녀는 한참동안이나 책의 표지를 바라보았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힌 론멕의 이름을 바라보던 원장 수녀는 피식 웃고는, 이내 그것을 책장 속에 끼워넣었다.


그런 그녀의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수녀님. 그것은 범죄자의 물건입니다.”


노란 수염의 성기사단장, 퍼밋 호프송이 굳은 표정으로 원장 수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사악한 마법사의 것입니다. 무엇인가 더러운 마법식이 적혀 있을지도 모르는···”

“론멕입니다.”


원장 수녀는 퍼밋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범죄자도, 사악한 마법사도 아닌 론멕이란 말입니다.”


노란 머리의 성기사단장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원장 수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수녀님. 저라고 마음이 안 아픈 줄 아십니까?”


퍼밋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저를 포함한 우리 성 제이드 성당의 모두가 같은 마음일 겁니다. 우리 또한 그녀와 오랜 시간을 보냈지 않았습니까? 그녀가 이곳에 버려질 때 부터 저를 포함한 성기사단원 모두가 그녀와 함께 해왔습니다.”

“그런가요?”


원장 수녀는 그녀의 날카로운 눈매를 치켜세워 퍼밋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퍼밋은 일말의 미동조차 하지 않고 말했다.


“오늘 새벽에, 세드나에서 론멕을 보았습니다. 성기사단에게 그녀를 석궁으로 쏘라고 지시했지만 다들 머뭇거리기에 지금 벌을 주고 오는 참이지요.”


그 말에 원장 수녀의 눈길이 흔들렸다. 손을 벌벌 떨기 시작한 그녀가 말했다.


“그 아이를··· 그래서 어떻게 했지요?”

“놓쳤습니다.”


원장 수녀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가슴 위에 주먹을 얹은 채 눈을 지그시 감은 그녀는 이내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제가 쏜 석궁에 맞았지만, 시체는 찾지 못했습니다. 아마 산짐승이 물어갔거나, 테플로로 도망쳤거나 둘 중 하나겠지요.”

“당신··· 당신은 대체 어떻게···”


덜덜 떨리는 손가락을 퍼밋에게 겨누며, 원장 수녀는 말을 이었다.


“신의 벌을 받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게 지금 무슨 망언이오!”


노란 수염의 성기사단장은 눈을 부릅 뜨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본분을 직시하시오 수녀님! 론멕 데이드림은 사악한 마법사입니다! 마법은 불행을 먹이삼아 커집니다. 이곳 저곳의 불행을 빨아들임과 동시에 모두를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뜨린다는 것을, 당신은 정녕 모른단 말입니까!

"..."

"신의 벌을 받을 것은 내가 아닌 마법사 론멕 데이드림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그녀가 내 화살에 죽었다면 그것은 신의 벌이오, 설령 그녀가 테플로 왕국으로 도망쳤다 한 들···”


퍼밋은 이내 원장 수녀에게서 등돌리며 말했다.


“그녀는 곧 죽음을 맞이할 것이오. 이미 세드나의 그림자 기사단에 론멕의 인상착의를 보고해 두었으니 말이오."

"아아... 아아아..."


그 말을 들은 원장 수녀는 차가운 돌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기사단장 퍼밋은 그저 묵묵히 문헌실을 나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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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등불과 불운의 도시 +16 20.05.16 1,811 119 11쪽
11 항해의 끝 +19 20.05.16 1,875 122 11쪽
10 미소짓다 +22 20.05.15 1,877 13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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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지평선호 +12 20.05.14 2,124 126 11쪽
7 항구와 시작의 도시 +10 20.05.13 2,557 122 7쪽
6 돌격 앞으로 +18 20.05.12 2,625 145 9쪽
5 탈출 +16 20.05.11 2,611 150 8쪽
4 심연 속에서 +18 20.05.11 2,858 161 9쪽
3 그녀와의 첫만남 +15 20.05.11 3,019 159 9쪽
2 목걸이의 목소리 +19 20.05.11 4,012 182 9쪽
1 이야기책. 그리고 론멕 +29 20.05.11 8,123 29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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