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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뇽하세용

앞점멸 소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윤코
그림/삽화
세씨
작품등록일 :
2020.05.11 12:39
최근연재일 :
2021.10.12 16:08
연재수 :
230 회
조회수 :
139,268
추천수 :
9,715
글자수 :
1,573,623

작성
20.05.25 22:00
조회
1,244
추천
96
글자
12쪽

의사의 집에서

DUMMY

깔끔한 목조 건물의 가장 구석진 곳에 위치한 문에서 누군가의 흥얼거림이 새어나왔다.


[좋아?]


증기가 자욱한 방 속에서 떠오른 하늘색 엘프의 형상이 말했다.


[너 진짜 더 없이 행복해 보인다.]


그러자 욕실에서의 흥얼거림이 잠시 멈추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물로 가득 찬 원형의 나무통 안에서, 론멕은 어이가 없다는 듯 위니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나가요.’


[엉?]


‘씻는 거 안 보여요? 당장 나가시라구요.’


그러자 위니는 몸을 배배 꼬며 말했다.


[같은 여자끼리인데 부끄러워하기는. 너 혹시 그런 취향이었니?]


축축한 빨간 머리의 모험가는 말 없이 위니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하늘색의 엘프는 입을 삐죽 내밀고는 이내 그녀를 향해 다가가며 말했다.


[···알겠어. 얌전히 있을게.]


하늘색의 구름은 한 데 엉겨붙어 론멕의 가슴치에 놓인 짙은 자주색 수정 목걸이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론멕은 물 속에서 떠오르는 자수정 목걸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위니.’


[알겠어 알겠어. 여기선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편하게 씻으렴.]


‘그게 아니라요. 묻고 싶은게 하나 있는데.’


나무통 안에 가득 찬 목욕물 속에서, 론멕은 고개를 젖혀 목욕통의 난간에 머리를 기대며 말을 이었다.


‘아까 레이븐의 정문에서요. 그건 왜 물어보신 거에요?’


자수정 목걸이는 흔들리는 물 위에 몸을 맡긴 채 말했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제게 물어보셨잖아요. ’용사 다리온의 모험‘ 의 작가 이름을요.’


[아아.]


목걸이는 말이 없었다. 자수정 목걸이 속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위니를 기다리던 론멕은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의 얼굴 위로 나무 천장에 가득 고인 물방울들이 한 방울씩 떨어져 내렸다. 빨간 머리의 모험가는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흥건한 물기를 닦아냈다. 그런 그녀의 귀에는 어느새 나긋나긋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별 일 아니니까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돼. 지금 와서 대답할 필요도 없고.]


통 속의 물이 출렁이며 바닥으로 넘쳐흘렀다. 목욕물에 온 몸이 흠뻑 젖은 론멕은 이내 고개를 일으키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위니.’


[응?]


‘난 당신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어요.’


그러자 목걸이가 물 속에서 출렁이며 말했다.


[···그게 무슨 헛소리야? 너 진짜 여자를···]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 아휴. 좀 진지하게 들어주실 수 없어요?’


빨간 머리의 모험가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위니. 분명 당신은 내 몸을 빼앗으려고 한 악당이에요. 그렇죠?’


[맞지.]


‘분명 나와의 여정이 끝나고,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간다 하더라도 당신은 다른 사람의 몸을 빼앗으려고 하겠죠.’


[그··· 것도 맞지.]


론멕은 다시금 목욕통의 난간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


‘그래도 제게는 당신과 함께한 이 사흘이 성당에서 지내온 20년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느껴져요. 그래서 심지어는 고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요.’


[···]


‘그러니까 이제 말해주세요. 당신의 목적이 뭔지. 그리고 다리온의 일화에 대해 이상한 반응을 하시는 이유가 뭔지를.’


그러자 물 속의 자수정 목걸이에서 하늘빛 구름이 피어올랐다,


[론멕. 너···]


위니가 모습을 드러내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론멕은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증기가 가득한 욕실 안에서 떠오른 위니와 목욕통 속의 론멕은 그저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론멕은 진심이었겠지만, 위니의 생각은 달랐다. 론멕은 그녀의 생각보다도 훨씬 현실 감각이 부족해 보였다. 티 없이 맑은 눈에 도사리는 듯한 섬뜩한 불길함을 느낀 위니가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정말 지랄맞게 오글거리는 상황을 만드는구나. 난 너같은 애랑 친구 안해.]


'아 좀!'


[우리 마법사들에겐 말이야. 헤레몬이라는 특별한 담배잎이 있어.]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잠자코 들어봐. 헤레몬이라는 담배를 피우면 집중력과 마나량이 급상승해. 그런데 말이야···]


하늘색의 엘프는 여전히 욕실의 바닥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헤레몬은 사용자의 몸에 치명적인 부담을 줘. 가슴 안을 헤집어놓고, 뿌리 끝까지 썩어들어 결국엔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지.]


론멕은 여전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멀뚱멀뚱 위니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위니는 말했다.


[그래서 처음엔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우리가. 아니, 내가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건 네 몸의 마나 그릇이 너무 작아서 그런 거니까. 널 잘 구슬려서 헤레몬을 피우게 한다면 에르딘까지 가는 여정이 조금 더 쉬워지지 않을까···]


하늘색의 엘프는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아··· 물론 그럴 계획이었다는 건 아니고. 생각만 해 봤다고 생각만. 그런데 그 뒤로 든 생각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게 뭔지 아니?]


론멕은 손등으로 그녀의 콧등에 서린 물기를 닦아내며 말했다.


‘그게 뭔데요?’


[친구에게 그럴 순 없다는 거.]


축축한 빨간 머리의 모험가는 그 말을 듣고는 그녀의 양 손으로 어깨를 감싸쥐며 말했다.


‘으으. 갑자기 왜 그러시는 거에요? 낯부끄럽게.’


[억울해 죽겠네 진짜. 네가 먼저 시작한 거잖아.]


하늘색의 앨프는 눈을 살며시 감은 채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네 말마따나 내가 네 몸을 뺏으려고 한 것도 맞고. 객관적으로 악당인 것도 맞지만, 론멕 네가 내게 느끼는 그 유대감을 나도 어느정도는 느끼고 있거든?]


‘참내. 더 강조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래서 그게 당신이 해야할 일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에요.?’


위니는 목욕통에 걸터앉아 그녀의 텅 빈 하늘빛 눈동자로 욕실의 바닥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지하게 들어. 나의 이야기를 네게 해 주는 건 네게는 너무 위험한 일이야. 마치 친구에게 헤레몬을 피우도록 권하는 것 처럼. 그리고 나는 네게 절대 그럴 수 없을 거고.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니?]


론멕은 그 말을 듣고는 두어 번 눈을 끔벅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목욕통에 걸터앉은 위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어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더욱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언젠가 우리가 에르딘에 도착해서 서로를 떼어놓는 데 성공한다면. 그때는 꼭 네게 말해줄게. 내가 무슨 이유로 목걸이에 갇혀 오랜 시간을 버티고 있었던 건지. 왜 사람의 몸을 빼앗으려 하는 건지···]


하늘색의 엘프는 고개를 돌려 론멕과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말이야.]


론멕은 멍하니 그녀의 텅 빈 하늘빛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한참동안이나 위니를 바라보던 젖은 빨간 머리의 모험가는 고개를 흔들어 물기를 털어내고는 말했다.


‘페트나 베리미온이에요.’


[엉?]


‘용사 다리온의 작가 이름이요. 페트나 베리미온이라는 음유시인이에요.’


론멕의 말을 들은 위니는 이내 흔들리는 눈동자로 말했다.


[그런··· 그럴 수가...!]


‘무,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혹시 아시는 분이신가요?’


하늘색의 엘프는 이내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는, 새끼손가락으로 그녀의 귓바퀴를 긁으며 말했다.


[아니. 생전 생후로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 = = = =




욕실의 문이 열리자 새하얀 김이 뿜어져 나와 복도를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욱한 김이 걷히고,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흰색의 가운을 걸친 론멕이었다. 감탄스럽다는 듯 눈을 살짝 감은 그녀는 이내 입을 살짝 벌리며 말했다.


“아··· 좋다···”


그런 그녀의 앞에서, 샬롯이 론멕에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어때? 우리 레이븐의 전매특허인 아로마 샤워가.”


론멕은 샬롯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최고에요. 돈을 내야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 말에 샬롯은 깔깔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쉬다 가렴.”


축축한 빨간 머리의 모험가와 한 갈래로 땋은 검은 머리의 의사는 이내 복도를 가로질러 벽난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벽난로의 앞에 놓인 카펫에는 검은 후드와 갈색 모험가복을 비롯한 론멕의 옷가지들이 바르게 개어져 놓여 있었다. 그것들을 바라보며 안락 의자에 앉은 론멕은 이내 샬롯을 쳐다보며 말했다.


“맙소사. 치료에 식사에 목욕에 세탁에. 제가 이런 대우를 정말 받아도 되는 지 모르겠어요. 저는 레이븐에 온 불청객일 뿐인데···”


그 말에 샬롯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새삼스럽게 뭘. 내가 사람 돕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그런 게 아니더라도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게 우리 레이븐의 문화니까 너무 그렇게 신경쓰지 않아도 돼.”


“고마워요. 이 은혜는 꼭 잊지 않겠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니깐 그러네.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야?”


론멕은 벽난로 안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서쪽으로요. 에르딘으로 갈 생각이에요.”


“에르딘? 마법의 도시?”


황토색 탁자의 서랍을 열어 차 주머니를 꺼내던 샬롯은 말했다.


“정말이야? 거긴 지금 전쟁 중이라고 들었는데.”


그 말을 들은 위니의 귀가 쫑긋였다. 안락 의자에 앉은 론멕의 옆에서, 위니는 샬롯을 바라보며 론멕에게 말했다.


[저게 대체 무슨 말이야? 무슨 전쟁이냐고 한번 물어볼래?]


론멕은 위니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샬롯을 향해 말했다.


“전쟁이요? 무슨 전쟁?”


찻주전자에 찻잎을 털어넣던 샬롯이 말했다.


“몰랐어? 물론 나도 소문으로 들은 거라 확실하진 않지만··· 에르딘은 지금 내전 중이라고 들었어. 누가 반역을 일으켰대나 어쨌대나···”


그 말을 들은 론멕은 다시 고개를 돌려 위니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인지 알아요?’


위니는 텅 빈 하늘빛 눈동자를 끔벅이며 말했다.


[아니. 잘 모르겠는데. 에르딘이 내전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하늘색의 엘프가 멍하니 넋을 놓은 채 론멕을 바라보는 동안, 샬롯은 어느새 물이 담긴 찻주전자를 벽난로에 걸어놓으며 말했다.


“하여간··· 에르딘이 정말 폐쇄적인 곳이라 그런지 소식을 알아도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를 모르겠네. 입국도 까다롭다고 들었고. 그래서 마법사들의 인식이 그렇게 나쁜 건가?”


샬롯은 벽난로의 옆에 엎어진 작은 의자를 꺼내들고는, 이내 그것 위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나도 너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만나보진 못했지만. 다들 뭔가 비밀이 많고 괴팍한 양반들이라 들었는데. 너를 보니까 그저 편견일 뿐이다··· 싶기도 하네.”


그 말을 들은 론멕은 위니를 흘긋 쳐다보며 말했다.


“아마 대부분 맞을거에요. 비밀도 많고. 괴팍하기도 하고. 사람이 정말 짜증이 난다니까요.”


하늘색의 엘프는 론멕을 째려보며 이를 갈았다. 론멕은 그런 그녀를 보며 의기양양하다는 듯 미소지으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맞잖아요?’


[···긍지높은 마법사를 욕보이다간 큰 코 다칠 줄 알아. 그리고 지금이 나를 놀릴 때냐? 에르딘이 정말 전쟁 중이라면 그 험한 곳에 어떻게 가고, 또 어떻게 목걸이를 떼어낼 건데?]


론멕을 바라보며 이를 갈던 위니는 이내 그녀의 길쭉한 귀를 쫑긋이다가,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잠깐. 누가 온 것 같다?]


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천둥과도 같은 쾅 소리가 샬롯의 집에 울려퍼졌다. 그러자 안락 의자에 앉은 론멕과 작은 의자에 앉은 샬롯은 이내 동시에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보았다.


부서지기라도 하려는 듯 사정없이 흔들리던 문의 틈새에서,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이 문 열어! 당장!”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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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조련사는 무엇을 조련하는가 +15 20.05.27 1,244 8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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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석궁과 사냥꾼 +16 20.05.26 1,331 102 10쪽
» 의사의 집에서 +12 20.05.25 1,245 96 12쪽
23 낮의 그림자 +19 20.05.25 1,237 102 11쪽
22 페트나 베리미온 +17 20.05.24 1,266 107 11쪽
21 환자의 협박 +8 20.05.24 1,212 90 10쪽
20 모험의 왕국 +15 20.05.23 1,535 105 11쪽
19 떠나다 +27 20.05.22 1,802 98 14쪽
18 무역상인 +18 20.05.21 1,321 102 11쪽
17 성국의 흉악범 +15 20.05.20 1,376 101 12쪽
16 두 번의 살인 +26 20.05.19 1,449 101 14쪽
15 13일의 금요일 +14 20.05.18 1,465 102 14쪽
14 세드나의 정오 +11 20.05.17 1,458 103 11쪽
13 광대와 여관 +13 20.05.17 1,555 111 14쪽
12 등불과 불운의 도시 +16 20.05.16 1,811 119 11쪽
11 항해의 끝 +19 20.05.16 1,875 122 11쪽
10 미소짓다 +22 20.05.15 1,877 137 11쪽
9 바다 위에서 +28 20.05.15 1,961 129 12쪽
8 지평선호 +12 20.05.14 2,124 126 11쪽
7 항구와 시작의 도시 +10 20.05.13 2,557 122 7쪽
6 돌격 앞으로 +18 20.05.12 2,625 145 9쪽
5 탈출 +16 20.05.11 2,611 150 8쪽
4 심연 속에서 +18 20.05.11 2,858 161 9쪽
3 그녀와의 첫만남 +15 20.05.11 3,019 159 9쪽
2 목걸이의 목소리 +19 20.05.11 4,012 182 9쪽
1 이야기책. 그리고 론멕 +29 20.05.11 8,123 29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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