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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뇽하세용

앞점멸 소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윤코
그림/삽화
세씨
작품등록일 :
2020.05.11 12:39
최근연재일 :
2021.10.12 16:08
연재수 :
230 회
조회수 :
139,248
추천수 :
9,715
글자수 :
1,573,623

작성
20.05.12 15:30
조회
2,624
추천
145
글자
9쪽

돌격 앞으로

DUMMY

론멕은 누군가가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듯 한 느낌에 몸서리쳤다.


그녀의 몸 속에 든 모든 것이 허공에 붕 뜬 것만 같았다. 정체 모를 알갱이들이 안면을 스쳤고, 론멕은 이내 까마득한 낭떨어지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어디론가 도착한 그녀는, 주저앉으며 연신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우웩... 우웨엑... 커허어...”

[오우 야. 너 아침을 안 먹었나 보다?]


론멕은 그녀를 중심으로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어지러움을 이겨내느라 애쓰며 눈을 질끈 감은 론멕은, 이내 입가를 소매로 닦아내며 말했다.


“...또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에요?”


목걸이는 빈정대며 말했다.


[널 감옥에서 빼냈지. 그렇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지금 그게 나한테 할 소리에요?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사형이라니, 이건 말도 안...”


이를 바득바득 갈며 목걸이를 질타하던 그녀는, 그만 말을 잃고 말았다.


낮선 풍경이 론멕의 눈으로 물밀듯 차올랐다. 어느 외딴 골목에서, 덕지덕지 이어붙인 나무판자로 이루어진 벽이 그녀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고, 축축한 흙바닥의 물웅덩이에선 물 비린내가 진동했다.


“여긴... 어디죠?”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론멕에게, 목걸이가 말했다.


[....그걸 왜 나한테 쳐 묻는 거지? 아무리 멀리 왔어도 성국을 벗어나진 못했을 텐데, 그건 성국 출신인 네가 알아야지.]


목걸이는 살짝 몸을 흔들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정말 놀랍지 않아? 마법을 쓰면 이런 것도 가능해. 이래도 마법이 사악하다고 느껴져?]


론멕은 어지러움을 마저 털어내듯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건 모르겠고, 정말 끔찍하게 어지럽단 건 알겠네요."


[마법 때문에 그런 게 아니거든? 내 장거리 순간이동 마법은 완벽하다고. 네가 어지러운 이유는 너의 그 좁디좁은 마나통을, 내가 한 번에 다 태워버려서야. 네가 연약해 빠진 걸 마법에게 뭐라 그러면 쓰나...]


질렸다는 듯 안경을 벗은 론멕이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마법이니 마나니,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고 알고싶지도 않아요. 빨리 당신을 내 몸에서 떼어놓고 싶을 뿐이에요."

[이하동문이야. 그러면 이제···]


론멕은 몸을 일으키며 목걸이의 말을 이었다.


“이제 여기가 정확히 어디인지를 알아본 다음에···”

[그래. 그런 다음에···]

“··· 빨리 성당으로 돌아가죠.”

[그렇지. 성당으로 돌아가···]


목걸이 속에 갇힌 엘프는 그녀의 귀를 의심했다.


[잠깐, 너 돌았냐?]

“네?”

[기껏 감옥에서 빼 놨더니 뭐?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겠다고? 너 지금 무슨 생각인 건데?]


론멕은 금이 간 안경을 고쳐쓰며 말했다.


“그곳은 내겐 집이나 다름 없단 말이에요. 저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사형 선고에 대한 오해도 풀어야 하고··· 또 원장 수녀님이라면 당신을 제 몸에서 떼어놓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몰라요.”


목걸이가 마치 답답하다는 듯,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너 애가 왜 이렇게 답답··· 기다려봐!]


자신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목걸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쳐다보던 론멕은 이내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자수정 목걸이에서는 어느새 하늘빛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론멕의 눈 앞에서 응어리지더니, 이내 무엇인가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긴 목과 양 옆으로 뾰족하게 늘어진 귀, 긴 머리칼과 오똑한 콧날을 가진 그것은 언젠가 론멕이 역사책의 삽화에서 보았던, 영락없는 엘프의 모습이었다.


텅 빈 하늘빛 눈동자를 가진 엘프의 형상은 잠시 헛기침을 하더니, 머지않아 손가락을 차례차례 펴보이며 론멕에게 말했다.


[우선 첫 번째, 다시 말하건데, 이건 내가 만든 마법이야. 우리 둘이 떨어지려면 누군가에게 찾아가야 할 게 아니라, 내가 그것을 위해 활용할 만한 것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당황한 듯 그녀를 쳐다보는 론멕이 못마땅하다는 듯, 입을 삐죽 내민 엘프가 말을 이었다.


[두 번째, 이 얼간아. 성국의 성직자들이 네 사정을 헤아려줄 정도로 관용이 넘쳤으면 애초에 마법을 이해하고 받아들였겠지. 근데 그러긴 커녕 겁을 내잖아? 아까 그 웃긴 콧수염 달고 있는 애 봤냐? 허우대는 멀쩡한 게 무서워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거, 봤어?]


론멕은 텅 빈 엘프의 눈동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엘프는 그런 그녀를 보고는 한 숨을 쉬며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가 원하던게 이런 거 아니었냐?]

“제가 원하던 거라니요?”


하늘색 엘프의 형상은 미끄러지듯 론멕의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모험이잖아? 아무 것도 모르는 곳에서, 아무도 너를 모르는 곳에서 떠나는 모험!]


그 말을 들은 론멕이 슬며시 고개를 들어올렸다.


골목의 입구에서는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어디론가를 향해 분주히 걷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도심의 풍경에, 순간 입꼬리를 씰룩인 수녀가 엘프에게 말했다.


“그··· 렇긴 하죠. 그래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원장 수녀님도 그렇고 아이들에게 작별 인사도 남기지 못 했어요.”


하늘색의 엘프가 론멕의 눈 앞으로 날아들며 말했다.


[너 스무 살이랬지? 그정도면 인간들 사회에선 갓 성인이 된 거 아니야?]


엘프는 과장스럽게 팔을 펼치며 말했다.


[이제 시작인 거야. 뒤는 덮어두고, ‘에라 모르겠다‘ 하며 내지를 때가 온 거라고.]


그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론멕은, 이내 배시시 웃으며 엘프에게 말했다.


“··· 그러고 보니 우리 통성명도 하지 않았네요. 당신을 뭐라고 불러야 하죠?”


하늘색 엘프는 텅 빈 눈동자로 론멕의 금 간 안경을 응시하며 말했다.


[위니라고 불러. 위니 터미너스. 그게 내 이름이야.]

“위니··· 아, 제 이름은···”

[론멕이지? 론멕 데이드림. 아까 그 성기사가 말하는 걸 들었어.]

“맞아요. 론멕이에요. 그럼 우리 한번 잘 해봐요. 당신과 내가···”


[떨어져서 영영 볼 일 없이 헤어지는 것을 위해.]


말을 마친 위니가 론멕의 등 뒤로 날아올라 골목의 입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순진한 눈망울을 끔벅이던 수녀의 곁에서, 음흉한 미소를 지어보인 엘프가 속삭였다.


[자 그럼, 돌격 앞으로!]



= = = = =



원장 수녀의 미간에는 그 어느 때보다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다.


“그녀가 도망쳤습니다.”


노란 수염의 성기사단장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원장 수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것도 흔적도 없이, 증발하듯 사라졌죠.”


기사단장은 흐느끼는 원장 수녀를 뒤로 한 채, 그의 앞에 오와 열을 맞추어 서 있는 한 무리의 성기사들에게 말했다.


“마법이다. 가증스러운 마법이, 감히 신의 나라 안에서 활개치고 있다.”


기사단장은 칼집에서 칼을 꺼내어 성기사 한명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미! 지금 당장 수도로 떠나 론멕 데이드림의 인상착의를 보고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지목받은 성기사에게, 기사단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수배령을 내리겠다. 수배자의 이름은 론멕 데이드림이다. 그녀는 빨간 단발의 머리와 안경을 썼으며, 목에 마름모꼴 자수정 목걸이를 걸고 있다.”


론멕의 이름이 불리어지자 성기사단은 일제히 술렁이기 시작했다.


"예? 누구요?"

“아니, 론멕 수녀를?”

“단장님.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소란스러워진 성기사들을 향해 노란 수염의 기사단장이 외쳤다.


“조용!”


쥐 죽은 듯 조용해진 성당의 공터에서 기사단장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래. 우리는 그녀를 오랫동안 봐 왔으니, 당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러나 그녀는 이제 사악한 마법에 오염된, 하나의 이단일 뿐이다.”


기사단장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 즉, 행여나 친분이 있단 이유로 그녀를 눈 감아 주거나 하는 자는 지체없이 파문을 당할 것임을 명심하도록. 그대들은 이제부터 몇 개의 조로 나뉘어, 주변의 도시들을 샅샅이 조사한다.”


원장 수녀의 흐느낌이, 이젠 통곡이 되어 성당의 공터에 울려퍼졌다. 기사단장은 그것을 들은 채도 하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그녀를 발견할 시에는, 결박하여 수도로 이송하라. 행여나 생포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 즉결 처형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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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바다 위에서 +28 20.05.15 1,960 129 12쪽
8 지평선호 +12 20.05.14 2,123 126 11쪽
7 항구와 시작의 도시 +10 20.05.13 2,556 122 7쪽
» 돌격 앞으로 +18 20.05.12 2,625 145 9쪽
5 탈출 +16 20.05.11 2,610 150 8쪽
4 심연 속에서 +18 20.05.11 2,857 161 9쪽
3 그녀와의 첫만남 +15 20.05.11 3,019 159 9쪽
2 목걸이의 목소리 +19 20.05.11 4,010 182 9쪽
1 이야기책. 그리고 론멕 +29 20.05.11 8,121 29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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