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안뇽하세용

앞점멸 소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윤코
그림/삽화
세씨
작품등록일 :
2020.05.11 12:39
최근연재일 :
2021.10.12 16:08
연재수 :
230 회
조회수 :
139,277
추천수 :
9,715
글자수 :
1,573,623

작성
20.05.17 14:23
조회
1,458
추천
103
글자
11쪽

세드나의 정오

DUMMY

“끄아아!”


빛바랜 하얀 침대 매트리스 위에 붉은 머리칼이 흩뿌려졌다. 침대 위에 엎어진 론멕은 만족스럽다는 듯 베개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이정도면 합격 아니겠어요?”


푹신한 침대 위를 구르던 론멕은 이내 돌아누워, 안경을 벗은 채 천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분명 정말 오래 잤던 것 같은데. 이대로 한 숨 더 잘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위니는 한 숨을 쉬고는, 기지개를 펴면서 론멕에게 말했다.


[으으... 흐아아암... 그래도 일어나야지. 그런 꼴로 편하게 잘 수나 있겠어?]

“아 맞다.”


엘프의 말을 들은 수녀는 벌떡 몸을 일으켜 안경을 찾기 위해 주머니를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옷 사기로 했죠?”

[그래. 더러운 건 둘째 치고, 지금의 네 옷은 너무 불편해. 좀 더 편한 걸 찾아보자.]


론멕은 깨진 안경을 고쳐쓰고는 이곳 저곳에 황토색 얼룩이 묻은 수녀복의 치마폭을 들어보이며 위니에게 말했다.


“저는 이게 편한걸요. 하나 새로 사기보다는 그냥 깨끗이 빨아서 다시 입죠 뭐.“


위니는 그녀의 넘실거리는 허리춤에 손을 올리며 론멕에게 말했다.


[나는 불편하단 말이야.]

“그걸 당신이 왜 신경쓰는 거에요? 어짜피 내 몸은 당신이 쓰기엔 많이 구리다면서요.”


그 말에 엘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농담하자는 게 아니야. 에르딘까지 가는 도중에 지평선호 위에서와 같은 상황이 또 나오지 않을 거란 보장이 있어?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내가 네 몸을 지켜야 할 텐데. 이건 꽤나 중요한 문제라구.]


론멕은 그 말을 듣고는, 흥미롭다는 듯 그녀의 턱을 쓰다듬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위니는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네 몸이 정말 구리긴 하지. 체력도 정말 허약한 것 같았고···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네 마나 그릇이야. 내가 아무리 효율적으로 마법을 사용한다 해도, 그 한계가 명확하단 거지.]


빨간 머리의 수녀는 입을 삐죽 내밀며 위니에게 말했다.


“제가 체력이 얼마나 좋은데요. 저는 성당에서 고아원 일을 맡았었는데, 그게 얼마나 힘든 건지 알기나 해요? 게다가 그 마나란 것에 대한 건···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단 말이에요.”


위니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콧대를 드높이고는 말했다.


[내가 가르쳐주면 되지 뭐. 마법이란 무엇인가, 마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이야. 나 정도 되는 마법사에게 가르침을 받는 단 걸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그렇게 대단한 마법사가 고작 목걸이 줄 하나를 못 끊어요?”

[··· 충분한 시간과 여건만 된다면 가뿐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야. 그러기 위해서 에르딘으로 가는 거고. 벌써 잊은 건 아니지?]


하늘색의 엘프는 침대 위에 앉아있는 론멕의 옆으로 날아들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간에··· 우리의 보다 더 안전한 여행을 위해 네가 조금 더 강해져야 하는 건 사실이야. 나와의 합도 맞춰 봐야겠고. 정해야 될 규칙 같은 것도 있지 않겠어? 예를 들면···]


위니는 론멕을 째려보며 말했다.


[···사탕 꼬치 같은 맛있는 걸 먹을 땐 어떻게 할 것인가··· 같은 거 말이야.]


론멕은 고개를 돌려 어이가 없다는 듯 그녀의 검은 눈동자를 치켜세우고는 말했다.


“내 몸에 멋대로 들어온 건 당신이잖아요.”

[날 주운 건 너잖아. 자꾸 똑같은 말 되풀이하게 할래?]


이를 갈며 으르렁대던 론멕을 뒤로 한 채, 위니는 숙소의 문을 향해 날아오르며 말을 이었다.


[뭐가 어찌 됐던, 오늘 밤에 한번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네가, 그리고 우리가 강해지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냐에 대해서 말이야.]


론멕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침대에서 튕겨져 오르듯 일어나 위니에게 말했다.


“좋아요. 그럼 이제 나가서 옷가게를 찾아보죠.”

[그래. 그리고 이건 그냥 말해두는 건데···]


위니는 방정맞게 몸을 배배 꼬며 말을 이었다.


[···나는 이왕이면 좀 화끈한 옷을 입었으면 해. 네 몸은 가슴이 빈약하니, 아래를 좀 들춰내 보자고.]

“신이시여... 제게 왜 이런 시련을...”



= = = = =



중천에 떠오른 해는 세드나의 시장에 즐비한 수 많은 가판대들의 그림자를 줄여나가고 있었다.


체스판처럼 촘촘히 자리를 잡은 건물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말끔하게 포장된 돌 길 위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어디론가 분주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들은 길가에 놓인 가판대들을 두리번거리며 구경하다가, 마차를 끄는 말의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그들에게 들려오기 시작하면 모두 일제히 길가에 몸을 바싹 붙여 그것의 길을 터 주고는 했다.


세드나에 난생 처음 발을 딛은 빨간 머리의 수녀도, 물론 예외는 아니었다.


“비켜요! 비켜!”


알 수 없는 연유로 화가 잔뜩 난 듯한 마부의 외침을 들은 론멕은, 이내 이곳 저곳에 금이 간 건물의 외벽에 붙어 마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마차가 그녀의 옆을 삐그덕거리며 스쳐 지나가자, 론멕은 고개를 돌려 위니에게 말했다.


‘이곳엔 마차가 정말 많이 다니네요. 다들 어딜 저렇게 바쁘게 가는 걸까요?’


위니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은 채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마차를 바라보며 말했다.


[글쎄, 그것보다 다들 왜 저렇게 화가 나 있는 거냐? 우리가 저들에게 뭘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제게 물어봤자··· 낸들 알겠어요?’


론멕은 다시 길가로 나와 사람들 사이를 이리저리 피해 발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제르니모 씨가 길안내를 해주셨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 아까 분명 광장에서 자기를 찾으라 그러지 않았어요?’

[그런 한량이 약속을 지킨다면 그거야말로 신의 기적이겠지.]


수녀를 따라 길가로 나온 위니는 그녀의 몸을 통과해 지나치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눈썹 위에 손을 붙인 채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런 놈 도움 없이도 우린 잘 해나갈 수 있을 거야. 봐!]


위니는 말을 마치고는 하늘 위로 날아올라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런 그녀를 올려다보던 론멕은 그녀가 가리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기 양복점 보이지? 내가 뭐랬어. 그놈 없이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했잖아.]

‘···무려 한시간을 돌아다닌 끝에 말이죠.’


론멕은 한 숨을 쉬고는 양복점을 향해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뒤를 향해 미끄러지듯 하늘에서 내려온 위니는 지친 기색이 역력한 론멕을 바라보며 말했다.


[최대한 움직이기 편한 옷을 찾아보자. 가방도 하나 사 두면 도움이 될 지도 몰라.]


빨간 머리의 수녀는 퍼뜩 무엇인가 떠올랐다는 듯 주머니를 뒤지고는, 이내 깃털처럼 가벼운 동전 주머니를 꺼내며 말했다.


‘그럼 그 가방도 이렇게 가벼워지게 할 수 있나요?’

[꽤나 괜찮은 아이디어인데, 안타깝게도 그럴 순 없을거야. 이 <디크리즈 웨이트> 란 마법은 사용한 지 반나절이 지나면 풀려 버리거든.]


위니는 양복점의 유리창을 기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한 번 사용한 대상에겐 다시 사용할 수 없어.]


론멕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고는, 양복점의 초록색 문 앞에 선 채 말했다.


‘별 대단한 것도 아니었네요 뭐.’

[마법엔 공짜도 없고, 영원한 것도 없단다. 그런 걸 원하는 건 도둑놈 심보라고.]


재잘대는 위니를 뒤로 한 채, 론멕은 양복점의 문고리를 잡고는 이내 그것을 밀었다. 그러자, 무엇인가 둔탁한 충격이 그녀의 팔에 전해졌다.


“아얏!”


누군가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를 들은 론멕은 황급히 문고리를 당겨 문을 열었다. 그러자, 말끔한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바닥에 쓰러진 채 머리를 문지르는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당기시오 라고 써둔 거, 못 봤어요? 문 정 중앙에 큼지막하게 써 둔 것 같은데. 왜 그걸 아무도 못 보는 거야?”


정장을 입은 남자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이마를 부여잡고는 이내 그의 주변에 널브러진 형형색깔의 옷가지를 그의 품에 주워 담기 시작했다.


론멕은 그런 그를 보고는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두 손을 모아 그녀의 입을 가린 채 정장을 입은 남자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괜찮으신가요?”


두툼한 옷가지들을 품에 끌어안은 그는 몸을 일으키며 론멕에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경첩을 밖으로만 열리게끔 고치거나 해야겠어요. ‘당기시오’ 라는 문구엔 무엇인가 저주가 걸린 게 틀림없다니까요.”


옷가지들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던 그는 이내 고개를 들어 론멕을 바라보며 말했다.


“옷을 보러 오신 거죠? 이리 들어오시죠. 저기 앉아계시면 제가··· 으허억!”


순간, 론멕을 흝어보던 그는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쳤다. 그의 심상치 않은 반응을 본 위니는 굳은 표정으로 론멕에게 말했다.


[역시 다 죽여 버렸어야 했나··· 입 단속을 그렇게 시켰는데, 벌써 소문이···]


정장을 입은 남자와 마찬가지로 깜짝 놀란 론멕은 그를 빤히 바라보며 위니에게 말했다.


‘소문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지평선호의 선원들 기억 나? 그놈들은 네가 마법을 쓰는 걸 봤잖아. 무슨 말인지 알겠지?]


론멕은 그 말을 듣고는 침을 꼴깍 삼키며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흔들리는 눈동자로 쳐다보던 정장을 입은 남자는,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이건 재앙이야···”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입가를 손으로 틀어막은 그를 보던 위니는 그녀의 텅 빈 눈동자를 날카롭게 치켜세우며 말했다.


[잘 들어, 만약에 너에 대한 소문이 퍼진 거라면, 우린 더더욱 새로운 옷이 필요해. 그렇게 수녀복을 입고 다니다간 성기사놈들이 너를 찾아내는 건 시간문제라고. 우선 저 녀석을 제압하고, 옷을 챙겨 떠난다. 준비됐지?]


론멕은 대답 대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식은 땀을 흘리는 그녀를 보던 위니는 정장을 입은 남자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천천히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자··· 하나···]


정장을 입은 남자는 그 사실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론멕에게 손가락을 겨누며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말도 안 돼··· 당신은···”

[둘···.]

“···대체 어쩌자고 그런 걸 입고 다니는 겁니까!”

[ㅅ···?!]


긴장한 채 숫자를 세던 위니는 이내 어깨를 축 내리고는 정장을 입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정말··· 정말 눈 뜨고 봐 줄수가 없어요!”


말을 마친 그는 론멕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그녀의 팔을 붙잡으며 말을 이었다.


“자, 들어갑시다! 당신에게 꼭 필요한 것을, 제가 찾아드리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앞점멸 소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7 조련사는 무엇을 조련하는가 +15 20.05.27 1,244 88 11쪽
26 석궁 시범 +17 20.05.27 1,140 93 11쪽
25 석궁과 사냥꾼 +16 20.05.26 1,331 102 10쪽
24 의사의 집에서 +12 20.05.25 1,245 96 12쪽
23 낮의 그림자 +19 20.05.25 1,237 102 11쪽
22 페트나 베리미온 +17 20.05.24 1,266 107 11쪽
21 환자의 협박 +8 20.05.24 1,213 90 10쪽
20 모험의 왕국 +15 20.05.23 1,536 105 11쪽
19 떠나다 +27 20.05.22 1,803 98 14쪽
18 무역상인 +18 20.05.21 1,321 102 11쪽
17 성국의 흉악범 +15 20.05.20 1,377 101 12쪽
16 두 번의 살인 +26 20.05.19 1,450 101 14쪽
15 13일의 금요일 +14 20.05.18 1,466 102 14쪽
» 세드나의 정오 +11 20.05.17 1,459 103 11쪽
13 광대와 여관 +13 20.05.17 1,556 111 14쪽
12 등불과 불운의 도시 +16 20.05.16 1,811 119 11쪽
11 항해의 끝 +19 20.05.16 1,875 122 11쪽
10 미소짓다 +22 20.05.15 1,877 137 11쪽
9 바다 위에서 +28 20.05.15 1,961 129 12쪽
8 지평선호 +12 20.05.14 2,124 126 11쪽
7 항구와 시작의 도시 +10 20.05.13 2,557 122 7쪽
6 돌격 앞으로 +18 20.05.12 2,625 145 9쪽
5 탈출 +16 20.05.11 2,611 150 8쪽
4 심연 속에서 +18 20.05.11 2,858 161 9쪽
3 그녀와의 첫만남 +15 20.05.11 3,019 159 9쪽
2 목걸이의 목소리 +19 20.05.11 4,012 182 9쪽
1 이야기책. 그리고 론멕 +29 20.05.11 8,123 291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