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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뇽하세용

앞점멸 소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윤코
그림/삽화
세씨
작품등록일 :
2020.05.11 12:39
최근연재일 :
2021.10.12 16:08
연재수 :
230 회
조회수 :
139,258
추천수 :
9,715
글자수 :
1,573,623

작성
20.05.11 13:19
조회
2,857
추천
161
글자
9쪽

심연 속에서

DUMMY

론멕은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진한 자줏빛 수정 목걸이에서 나온 빛이 온 세상을 뒤덮었다.


마치 그녀에게 보이는 모든 것을 부정하기라도 하는 듯, 눈이 멀 정도로 강렬한 빛은 이곳 저곳을 활개치며 론멕의 시야를 지워 나갔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암흑에 휩싸인 론멕은 겁에 질려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 무엇도 볼 수 없었다.


수녀는 한동안 어둠 속에서 홀로 서 있었다. 텅 빈 공간에 선 론멕은 이것이 어찌 된 영문인지를 생각해내려 애썼지만, 끝을 알 수 없는 고독 속에서 머릿속에 멤도는 생각들은, 자신이 원하던 것과는 많이 다른 것들이었다.


‘아무도 없다.’


론멕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아무도 나를 봐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휘몰아치는 생각들이 수녀의 온 몸을 할퀴었다. 참을 수 없는 혼란스러움에 몸부림치던 론멕은, 이 모든 생각들의 종착지에 도착했다.


‘그렇기에··· 나는 잊혀진다.’


론멕은 의식이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서 있던 암흑은, 이윽고 소용돌이가 되어 그녀를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심연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렇게 점점 가라앉던 수녀는 눈을 감았다.


론멕은 더 없이 공허함을 느꼈다.


마치 좋아하는 이야기책의 마지막 장을 마주한 것 처럼.



‘싫어···’


휘둥그레 눈을 뜬 론멕이 소리쳤다.


“싫어!”


그녀의 눈이, 끝 없는 공허함을 장작 삼아 불타올랐다.


“성당은 나의 집... 소중한 고향..."


론멕은 필사적으로 소용돌이를 거슬러 팔을 뻗기 시작했다.


“그런데··· 제기랄! 나는 이 곳에 20년 동안이나 있었단 말이야. 20년! 내가 보고 경험한 건 그 성당이 전부라고!”


수녀는 울부짖으며 닥치는 대로 손을 내질렀다. 그녀는 흐름을 거슬러 ,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 위를 향해 헤엄쳤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직 해보지 못한 게 얼마나 많은데!”


론멕은 보이지 않는 천장에 부딪혔다. 그녀가 그것에 손을 가져다대자, 이내 그것은 벽으로 변했다.


수녀는 이제 벽이 된 막을 미친 듯이 두드리며 말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라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야! 나였으면 이런 이야기, 절대 펼쳐보지 않았을 거야!”


진이 빠진 론멕은 이마를 벽에 붙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녀의 귀에는 희미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고기가··· ···을 움직이는데··· 얼마나 중요한···”

“내일 저녁이··· 헛 소리 말고··· 근무에 복귀···”

“고기를 안 주면··· 이 성당도··· 지키지 못해 위험해 질 것···”

“그게 무슨 개···”


익숙한 목소리들이었다. 원장 수녀와 성기사단장의 목소리를 들은 론멕은 다시 고개를 들어 필사적으로 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수녀님! 수녀님! 원장 수녀님!!”


그러나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직감한 그녀는 젖먹던 힘을 짜내어 비명을 질렀다.


“엄마!!!”


탈진한 그녀는 결국 암흑 속에서 쓰러졌다. 정신이 멀어져 가는 것을 느끼던 론멕의 귀에는, 어느새 이곳에서의 마지막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아니, 론멕 수녀? 론멕! 론멕!"



= = = = =



“허어억!”


마치 익사 직전에 물맡으로 올라온 사람처럼, 론멕은 큰 숨을 들이쉬었다.


“허억··· 허억···”


기분나쁜 꿈을 꾸었다고 생각한 론멕은 얼굴에 흥건한 식은 땀을 닦아내기 위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론멕은 팔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이질적인 힘이 손목에 가해지는 것을 느낀 수녀는 고개를 숙여 두 손을 바라보았다.


두터운 강철 구속구가 그녀의 손목에 채워져 있었다. 검은색 수갑에는 사슬이 연결되어 있었고, 그 사슬은 그녀가 등을 대고 있는 벽에 연결되어 있었다.


“어라?”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던 론멕이 다급히 주변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끼가 낀 좁은 돌 방의 입구를 쇠창살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녀는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어렸을 때, 새벽에 몰래 침실에서 나와 성당 구석구석을 탐험하는 이른바 ‘모험 놀이’ 를 할때 분명 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이 곳은...


“감옥?”


사태를 파악한 론멕이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잠깐만, 내가 감옥에 왜··· 저기요? 여기 아무도 없나요?”


황량한 지하감옥에서는 그 누구의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저기요? 저기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원장 수녀님!”


겁나다 못해 어이가 없다는 듯, 론멕은 계속해서 쇠창살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순간, 누군가의 대답이 그녀의 마음속에 울려퍼졌다.


[아무도 없을 거야. 성직자란 놈들은 마법을 엄청 무서워하거든. 머저리들 같으니라고.]


론멕은 순간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짜증스러울 정도로 활기찬 엘프의 목소리와 함께, 그녀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하나하나 기억해냈다.


“당신! 꿈이 아니라, 당신이 한 짓이죠? 내가 대체 뭘 보고 겪었는지 알아요?”


[헤헤, 미안.]


론멕은 목걸이를 움켜쥐려고 했지만, 그녀의 손목을 감싼 강철 수갑이 그것을 필사적으로 저지했다.


요란스러운 쇠사슬 소리 사이로, 흔들리는 목걸이의 능글맞은 목소리가 계속해서 울려퍼졌다.


[어이쿠, 진정해. 진정하라고.]

“지금 그런 말이 나와요? 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에요?”

[내가 아까 예의 바르게 설명해주지 않았냐? 네 몸을 내가 쓰려고 했다니까? 그런데···]


목걸이는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슬프게도, 실패했지.]

“슬프긴? 당장 내 몸에서 떨어져요.”

[안 돼.]

“이 악마 같으니! 내 몸에서 떨어지라고!


목걸이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네가 많이 화가 나서 이해를 잘 못하나 보다. 다시 말하자면, ‘안’ 되는 게 아니라, ‘못’ 해. 그리고 나는 악마가 아니라 엘프거든?]


마음을 가다듬은 론멕이 정중한 말투로 목걸이에게 말했다.


“제발 부탁이에요. 전 이런 걸 원한 적이 없어요. 목걸이 안에 들어가 살면서 제게 이렇게 끔찍한 짓을 할 정도면 목걸이 줄 끊는 것 정도는 쉽지 않겠어요?"


수녀의 애원에, 목걸이는 한 숨을 쉬었다.


[목걸이가 문제가 아니야. 쓰인 마법이 문제지. 단순하게 말하면 우린 아주 단단히 결속되어 있어.]


그리고는 목걸이는 덧붙이며 말했다.


[이거 내가 개발한 마법이다? 진짜 대단하지 않냐?]


신경질적인 쇠사슬 소리가 다시 한번 감옥에 울려퍼졌다. 목걸이는 그것을 깔끔히 무시한 채 쉬지 않고 나불댔다.


[근데도 더 대단한건 있지, 이 마법이 실패했다는 거야. 이게 무슨 뜻인지 네가 느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 내가 고안해낸 마법이? 실패를? 너도 정말 보통내기가 아니구나?]

“아가리 닥쳐요.”

[워··· 복장을 보니 수녀 같은데. 그런 말 함부로 해도 되는거야?]


목걸이는 더욱 거세게 울려퍼지는 쇠사슬 소리를 무시하고는 말을 이었다.


[생각을 해보자··· 생각··· 여러 이유가 있을수 있겠지. 아까 네가 한 말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시간이 아주 많이 흘렀단 거니까, 오랫동안 이곳저곳 뒹굴면서 주문이 약해졌을수도 있겠고··· 성당의 주변에 무언가 장난질을 쳐 놔서 마법이 먹통이 된 걸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것들을 전부 제치고 생각이 드는 게···]


목걸이는 쉴 새 없이 말했다.


[저항력이야. 그래. 그거다. 내가 직접 느꼈거든. 본래는 네 자아를 꾹꾹 눌러서 아주 쥐포를 만들어 버렸어야 하는 건데, 정말 거세게 저항하더라 너.]


“그게 무슨 소리에요?”


[너 말이야. 대단하다고. 정확한 이유야 어찌됐던 너는 나를 이겨낸 거니까. 기적에 가까운 일이 일어난 거란 말이지. 대체 왜? 넌 특별히 강해 보이지도 않고, 네게선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


목걸이는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잠시동안 침묵하던 목걸이는, 이내 작게 몸을 떨며 론멕에게 말했다.


[아니다. 알 것 같다. 너는 정신병자구나.]

“제가요? 왜요?”


[너 지금 웃고 있어. 이 상황이 재밌기라도 하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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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항해의 끝 +19 20.05.16 1,875 12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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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바다 위에서 +28 20.05.15 1,961 129 12쪽
8 지평선호 +12 20.05.14 2,123 126 11쪽
7 항구와 시작의 도시 +10 20.05.13 2,556 122 7쪽
6 돌격 앞으로 +18 20.05.12 2,625 145 9쪽
5 탈출 +16 20.05.11 2,610 150 8쪽
» 심연 속에서 +18 20.05.11 2,858 161 9쪽
3 그녀와의 첫만남 +15 20.05.11 3,019 159 9쪽
2 목걸이의 목소리 +19 20.05.11 4,011 182 9쪽
1 이야기책. 그리고 론멕 +29 20.05.11 8,122 29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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