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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뇽하세용

앞점멸 소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윤코
그림/삽화
세씨
작품등록일 :
2020.05.11 12:39
최근연재일 :
2021.10.12 16:08
연재수 :
230 회
조회수 :
139,265
추천수 :
9,715
글자수 :
1,573,623

작성
20.05.11 14:07
조회
2,610
추천
150
글자
8쪽

탈출

DUMMY

[너, 웃고 있다고.]


목걸이의 말을 들은 론멕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저는 웃지 않았어요.”

[아닌데? 입고리가 귀에 걸려 있더만.]

“전혀요. 웃을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


목걸이는 한 숨을 쉬고는 말했다.


[쩝,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뭐. 아니면 네가 스스로 웃고 있다는 것도 자각을 못할 정도로 미쳐 있다던가.]

“그럴 리가 없어요.”


목걸이는 이때다 싶어 쉴 새 없이 조잘대기 시작했다.


[‘그럴 리가 없어요’ 라니? 확신에 찬 태도가 아닌데? 너 웃고 있었던거 맞다니까? 뭐라 해야하나··· 마치···]


말을 흐린 목걸이는, 머지않아 재차 말을 이었다.


[···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처럼. 그래. 그런 웃음을 전에도 본 적이 있지.]


론멕은 자신을 꿰뚫어 보는 듯 한 목걸이의 말에 머리를 벅벅 긁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그러나, 그녀의 손목에는 여전히 차가운 강철 수갑이 자리잡아 있었다.


“그래요. 당신 말마따나 제가 미친 년 처럼 웃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이런 새로운 상황을 기대했던 건 맞아요."

[와. 이거 진짜 또라이네.]

"...그런데 그건 그거고, 일단 당신은 저를 해치려는 사람··· 아니, 엘프잖아요?”


그녀는 목걸이를 쏘아보며 말했다.


“나는 당신 손에 죽는 건 싫어요. 그런 걸 원한 적은 더더욱 없고 말이에요.”

[내가 너를 죽인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너는 죽는게 아니라···]


목걸이는 약간의 뜸을 들이며 말했다.


[···잊혀지는 거지.]


론멕은 희미한 기억의 파편을 더듬었다. 끔찍하게 조용한 공허와 거친 소용돌이를 생각하던 그녀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말했다.


“그게 나쁘지 않았단 뜻이 아니잖아요. 당신 정말 최악이에요.”

[나는 그렇게 560년을 지내왔는데 뭘.]


목걸이의 말을 들은 론멕은 그것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당신이 제게 말한 ‘해야만 하는 것’ 이 뭐길래 그렇게까지 하는 거에요? 정리해보면 당신은 그 끔찍한··· 뭐라 해야하나··· 끔찍한 상태로 긴 시간을 버텨왔을 뿐만 아니라, 저같이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의 몸을 빼앗기까지 하려는 거 아니에요?”

[맞지.]

“그러니까 그 이유가 뭐냐고요. 한번 들어나 보게.”


목걸이는 말했다.


[너 지금 큰 착각을 하고 있나 본데, 지금 일어나는 상황이 네가 원하던 그런 모험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

"..."

[이건 환상적인 헤프닝이 아니야. 이 모질아. 우리 둘은, 아니, 나는 해야만 하는 일이 있고, 그게 무지막지하게 꼬여버린 거라고.]


론멕은 무어라 대답을 하려고 어물거리다가, 이내 한껏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내가 모험을 하고 싶다는 건 어떻게 아신 거죠?”


목걸이는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다 들렸으니까. 멍청아. 네 자의식이 잊혀지는 것을 거부하며 몸부림칠 때, 이곳이 지루하다니 보고싶은게 많냐느니 귀청이 떨어져라 고래고래 소리지르는게 다 들렸다고.]


나긋나긋한 여성의 목소리는, 이내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그리고 인정하기 싫지만, 그건 강렬했지. 아주 절박했고 말이야.]


론멕의 얼굴이 잘 익은 토마토처럼 붉어졌다. 그녀는 어쩔 줄을 몰라하며 입을 열었다.


“아··· 아니··· 그럼 그건 됐고, 이제 대답해 봐요. 당신이 하려는 게 뭔데요?”


목걸이는 귀찮다는 듯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말하기 싫어. 나도 네가 지긋지긋하다고. 쓰기 좋은 몸인지 골라도 모자랄 판에, 대체 왜 너같은게 이걸 주워서··· 말을 말자.]

“...억울하게 피해본 건 나인데 그게 무슨 소리에요?”


론멕은 점점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가 언제 이런 걸 원했어요? 뭐? 환상적인 헤프닝? 나는 모험을 꿈꿔왔던 거지, 당신같이 거지 같은 인간··· 아니, 엘프에게 걸려서 이런 꼴이 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요!”

[미안···]

“닥쳐! 닥치라고! 적반하장도 유분수··· 지금 뭐라고 하셨죠?”

[미안해. 진심이야.]


예상치 못한 목걸이의 반응에 당황한 론멕은 무슨 말을 꺼내야 할 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머리를 긁기 위해 팔을 치켜올린 수녀는, 이내 조금씩 들려오는 쇠사슬 소리에 손을 내리며 말했다.


“··· 그렇게 미안하면 빨리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갈 방도나 생각해봐요.”


목걸이는 허둥지둥 대답했다.


[그게···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게 아니라··· 정말 방법이 없어. 내 자랑 하는 것 같아서 좀 그런데, 난 네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하거든? 그래서··· 이런 경우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단 말이야.]


나긋나긋한 여성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누군가를 완전히 지배하고 나서 대상을 바꿀 생각만 했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태가 될 줄은 몰랐어. 그러니까···]


횡설수설하던 목걸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감옥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론멕 데이드림? 론멕 수녀는 대답하라.”


창살 틈으로, 론멕의 눈에는 어느새 노란 수염의 기사가 비치고 있었다. 반가운 얼굴에 화색이 된 수녀가 구속구를 들어보이며 말했다.


“아저씨! 아니, 기사단장님! 마침 잘 오셨어요.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론멕의 목덜미에 놓인 자수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기사가 허리춤에서 돌돌 말린 양피지를 펼쳐들며 입을 열었다.


“죄인은 들어라. 성 데네브 성당 소속 수녀 론멕 데이드림은 성국력 731년 4월 14일 아침 강력한 마법을 지닌 아티팩트를 착용, 사용함에 모자라 성 데네브 성당의 중앙 집무실에 무단 침입을 한 바, 고로···”


지금껏 들어보지 못했던 엄숙한 성기사단장의 목소리에, 넋이 나간 론멕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론멕 데이드림을 단두대형에 처한다.”

“...예?”


양피지를 말아든 기사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감옥을 떠났다.


“잠시만요, 지금 뭐라고··· 잠시만요! 아저씨! 지금 그게 무슨 소리에요?! 아저씨!”


요란한 쇠사슬 소리가 감옥을 가득 메웠다.


“아저씨! 잠깐만요! 가지 말아요! 아아··· 아··· 말도 안 돼··· 이건··· 이건···”


론멕의 손은 주체할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반 쯤 혼이 나간 그녀에게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목걸이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진정해. 넌 안 죽어.]

“당신··· 당신 때문이야··· 날··· 마법에 오염···”

[정신 차리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데, 소용이 없을 것 같네. 그럼···]


공황 상태에 빠진 론멕의 오른 쪽 팔에, 차가운 강철 구속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무엇인가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졌다.


[이번엔 저항하지 마.]


론멕의 오른 손이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친 돌 바닥에 무엇인가를 분주히 그리던 손가락을 바라보던 수녀가 말했다.


“제발··· 제발 하지 마세요··· 나를.. 나를 놔 줘···”

[그래. 나도 제발 부탁인데, 정신을 잃진 말아라. 잘 들어. 성국의 성직자들은 모두 머저리들이라고. 걔내는 그저 마법을 이해하려 들지 않고··· 아휴··· 됐다···]


돌 바닥에는 어느새 원 안에 갇힌 하늘색 오망성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 네 말대로 해줄게. 너를 놔 줄거야. 나도 그러고 싶고. 그런데 지금 당장 여기서는 절대로 그렇게 못 해.]


쉴 새 없이 울려퍼지는 목소리와 함께, 마법진이 회전하며 기묘한 소리를 냈다.


[나중에 다시 자세히 설명해 줄게. 지금은 일단 여기서 나가자고. 그럼···]


목걸이가 살짝 흔들리며 소리쳤다.


[<메스 텔레포트!>]


순간, 감옥이 눈부신 빛무리에 휩싸였다. 빛이 걷히자, 철창 사이로는 그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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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항해의 끝 +19 20.05.16 1,875 122 11쪽
10 미소짓다 +22 20.05.15 1,877 137 11쪽
9 바다 위에서 +28 20.05.15 1,961 129 12쪽
8 지평선호 +12 20.05.14 2,123 126 11쪽
7 항구와 시작의 도시 +10 20.05.13 2,557 122 7쪽
6 돌격 앞으로 +18 20.05.12 2,625 145 9쪽
» 탈출 +16 20.05.11 2,611 150 8쪽
4 심연 속에서 +18 20.05.11 2,858 161 9쪽
3 그녀와의 첫만남 +15 20.05.11 3,019 159 9쪽
2 목걸이의 목소리 +19 20.05.11 4,012 182 9쪽
1 이야기책. 그리고 론멕 +29 20.05.11 8,123 29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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