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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g5605_einsamke bi 님의 서재입니다.

Gions World(전의 세계)

웹소설 > 자유연재 > 일반소설, 추리

옥수동가장
작품등록일 :
2023.11.22 09:01
최근연재일 :
2024.03.02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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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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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49화 Spirit, Soul, Body

어린아이 눈에 비춘 어른의 세계




DUMMY

본 작품은 실제적 사실이나 사건과 다른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이 만든 소설입니다.


(구원의 의미)

“Gion,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 무슨 뜻인지 혹시 정확히 아니?”

“예수님께서 저희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인해 대신 죄를 용서 받은 대속으로 인해 하나님이 다 용서해 주시고 저희를 구원하신다는 의미 아닌가요?”

“그러면 구원은 지금이 아니고 죽어서 천당으로 데려간다는 의미인 거야?”

“네, 저는 그렇게 알고 있어요”

“대부분 교인이 전부 그렇게 알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구원은 지금 현재부터 시작되는 것을 말한다. 즉, 타락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아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어 본질적으로 주를 나타내는 존재가 된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이 나오도록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한다. 그것이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요청이다.”

“아, 그러한 내용은 처음 들어요”

“대부분의 교인이 이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 받는다고 착각하고 있다. 우리는 예수를 통해 구원 받았고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모습이 타인에게 보여야 하는 의무를 다해야 진정으로 구원 받는다. 그러지 못하면 막판에 심판에서 외면당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모른다’”

“그렇다면 구원받는 것은 현재 살아서 하나님나라로의 진입이고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은 하나님나라의 실제적인 삶, 그리고 구원을 완성시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한 미래적 하나님나라의 삶이 되는 거네요”

“바로 그거 다”

“구원의 완성은 예수님 재림 때에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성령 체험을 통해 거듭남을 이해할 때 비로소 본질적으로 재창조된 나(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자아)를 의식하게 되고, 현재적 하나님나라에서 왜 두 차원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왜 구원받기 전에 나와 동일시했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부인하고 거짓자아를 십자가를 못 박아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구원을 이루어가야 하며, 그것은 육신의 소욕에 묶여 있는 타락한 혼(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종 노릇하는)이 아니라 성령의 소욕에 이끌림을 받은 소생된 혼(그리스도 의식)이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아 몸의 행실을 죽이는 삶을 사는 것이다.”


(영, 혼, 몸)

“Reli,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영이 떠나도 우리 안에는 본래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영이 존재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러면 영은 2종류 인가요?”

“그렇다. 본래 우리 몸 안에 존재하는 기능을 하지 못하는 타락한 영이 있다.

여기에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오시면 그 죽은 영이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 영이 성령 체험 이후 하나님의 영처럼 완벽하게 실천하면 성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혼은 무엇인가요?”

“혼은 자아의 정체성을 의식하는 곳이며, 영의 본질을 나타내는 자아 의식체다.

따라서 혼은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영에 속한 혼이거나 인간의 영 또는

마귀의 영에 속한 혼으로 존재한다.

어떤 존재를 대표하고 현시하는 것은 자아의식체인 혼이다.

육적 존재이든 영적 존재이든 혼으로 자신을 의식하고 자신을 대표하며, 생명, 목숨, 나, 자(者) 등으로 번역된다.”

“육, 또는 몸은 그럼 무엇인가요?”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을 말할 때는 ‘육(헬, 프쉬키코스)에 속한 사람’이라고 부르고, 거듭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과거와 동일하게 자신의 혼이 마음에 묶여 살고 있는 사람을 지칭할 때는 ‘육신(헬, 사르크스)에 속한 또는 육체에 속한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육체, 육신 또는 육이라는 말은 영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되며, 몸에 종속된 혼을 가진 인간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따라서 인간은 영혼과 육이 아니라 영과 육으로 표현될 수 있다. 영과 육이라고 말할 때 육은 혼과 몸을 합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럼, 영과 혼 그리고 육의 관계는 어찌 되는 건가요?”

“예수님께서 이루신 새 언약의 핵심은 죄사함을 받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영, 즉 새 영을 주심으로 다시 생명을 얻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적 관점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은 법적으로 우리의 영혼, 몸을 온전하게 하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우리 영의 구원만이 이루어졌으며, 혼과 몸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과 성령으로 현재적 하나님나라에서 이루어가야 한다.

구원받은 우리가 구원을 이루어 간다는 것은 구원받을 때 우리 안에 오신 성령님의 통치를 받는 혼이 몸의 행실을 죽여감으로써 법적으로 이미 선취한 구원을 현실적으로 실현시켜 나가는 것이다.

몸은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보이는 세계로 현시하시는 통로이며, 인간이 현실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나타내는 성전이다.”


(마음)

“인간의 존재를 크게 나누면 의식 부분, 인식 부분, 행동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며, 그것을 계층적 단계로 보면 영, 혼, 믿음체계, 사고방식, 조건화 된 프로그램, 행동의 순으로 기술할 수 있다.

오늘날 과학적 결과에 따르면, 몸은 신체뿐만 아니라 뇌의 활동인 생각과 그 생각에 따른 신체의 반응 모두를 포함하는 용어이다. 따라서 성경에서 몸이라는 단어를 볼 때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신체뿐만 아니라 뇌, 마음(생각과 감정)을 포함하는 단어로 이해해야 한다.

흔히 마음은 지정의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은 생각과 감정을 나타낼 뿐 의지가 없다. 의지는 혼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거듭난 자에게 말씀, 생명, 평강, 성령은 심중에 임하게 되고, 우리의 심중에 하나님의 생명과 말씀이 임할 때 비로소 우리의 혼(자아의식)은 육신의 소욕에서 벗어나게 된다. 즉 혼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자신과 동일시하던 것에서 벗어나 성령의 소욕에 이끌리게 되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음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분별할 수 있게 된다.

양심(consciousness)은 혹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영에 속한 것이 아닌 혼에 속한 것이며 인간이 타락한 후에도 하나님의 흔적을 나타내는 기능을 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서 악한 양심, 약한 양심이 있고, 심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둠으로써 선한 양심이 살아날 수 있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변화를 위해 그토록 애쓰고 노력하지만 실제적인 변화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기초한 생각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씀이 우리의 심중에 임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 마음에 변화가 오게 된다.

현재의 심리학과 정신의학은 타락 후의 인간을 인간의 본질로 보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 의식과 인식체계(혼에서부터 행동과 태도까지)의 관계와 현재의식과 잠재의식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에 초점을 두고 있다.

새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새 언약을 맺음으로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계심으로 본질적으로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나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육신(타락한 혼과 몸)에 속한 상태로 살 수 있다(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구원받은 사람은 구원받을 때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옛 본성,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기 때문에 그의 옛 본성(자아), 옛사람은 죽은 것이다. 따라서 설령 죄를 짓는다 해도 옛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다.

따라서 구원받은 자는 날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녀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타락한 혼이 소생케 되어 하나님의 영을 나타내는 본래적 기능을 하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들은 날마다 자기의 생각과 감정이 진리가 아님을 알고 부인하며(자기를 부인하고), 거짓자아를 유지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자기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현존하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의식으로 마음의 생각과 감정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게 되고, 성령 안에 주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을 상상하고 느끼고 말함으로써 자신과 현실을 변화시키는 삶을 살게 된다.


(새사람)

인간의 존재를 영의 상태에 따라 비교할 때는 옛사람과 새사람으로, 혼이 어떤 실체에 영향을 받는지 비교할 때는 속사람과 겉사람으로 나눈다.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자는 영적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고, 여전히 육(혼과 몸)을 따라 살아가는 자는 육적 그리스도인(육신에 속한 자,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이라고 부른다.

하나님과의 관계 면에서, 그리고 신앙의 성숙도에 따라 세 부류의 그리스도인으로 나눌 수 있다. 즉, 명목상 그리스도인,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 영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다. 그런데 영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현재적 하나님나라에서는 혼이 항상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아 마음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항상 속사람과 겉사람이 다투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혼의 구원을 이루어가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끝까지 경주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에덴동산에 있는 두 나무는 죄를 짓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고 반역할 수도 있는 자유의지라는 최고의 선물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랑과 은혜의 상징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대적하고자 하는 마귀의 거짓말에 속은 것은 바로 자유의지를 가진 혼(자아의식)이다. 그 결과로 인간은 하나님과 분리되어(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의 관계 없이) 세상 신(마귀)의 통치하에 세상에 묶인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인간은 더 이상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가 아닌 인간이 살아남아야 할 세계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광의식’이 아닌 타락한 인간으로서 ‘생존의식’으로 세상에서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인자로서 이 땅에 오셔서 세례를 받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나아가 시험을 받으신 이유는 혼이 몸의 종 노릇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아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마귀의 일을 무력화시키는 것)을 인간에게 보여주신 것이다. 살려주는 영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타락한 우리에게 다시 그렇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고전 15:45).

구원의 본래적 의미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성자 하나님을 통하여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영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처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놀라운 사랑과 공의를 다시 누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삶이다. 그 삶은 자유의지를 가진 혼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묶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통치함으로써 더 이상 선악과를 택하지 않고 다시 생명나무 열매를 택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거짓자아의 의구심에서 나온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가?”라는 질문은 구원에 대한 부분적인 이해에서 파생한 잘못된 질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따른 우리의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우리의 믿음과 조건충족에 대한 하나님의 허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약의 이사야는 예언을 통해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에 있을 구원의 여정에 대해 선포했다(사 61:2). 한편, 예수님께서는 초림 때는 은혜의 해와 구원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하셨고(눅 4:19), 재림에 관해서는 하나님의 보복의 날에 대해 말씀하셨다(마 22:13, 24:51). 따라서 구원의 여정은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과 마지막 때 하나님의 심판을 통한 구원의 완성으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구원 이후에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회복된 사람은 끝까지 새 언약 안에 거해야 한다. 이것은 성경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말씀이다. 비유적으로 우리가 천국으로 향하는 구원의 열차에 한 번 탄 이상 절대 내릴 수 없다면, 왜 그 열차에 굳건하게 탑승하고 있어야 한다고 성경이 지속적으로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구원 이후에도 우리 혼의 자유의지로 마귀의 유혹과 더불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등으로 우리가 열차에서 내릴 수 있기 때문에 성경이 그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공적 생애 동안에 예수님은 이 땅에서 난 포도주를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으로 비유하셨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정혼(약혼)한 다음에는 예수님께서 참 포도나무가 되고 우리는 가지가 된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재림 후 우리와 함께 천국 혼인잔치를 벌일 때는 이 땅의 포도주가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포도나무)에 의해 우리(가지)를 통해 나타난 선한 행실(열매)를 먹겠다고 말씀하신다. 선한 열매를 맺는 핵심은 혼의 구원을 통해 하나님과 생명적 관계를 지속적으로 갖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 아버지와 맺게 된 새 언약의 마지막은 예수 그리스도와 온전히 하나가 되어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심판은 새 언약의 최종적 결산이다. 만약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었지만 끝까지 그 새 언약 안에 거하지 않음으로 예복을 입지 못한다면 새 언약은 파기되고 그에 따른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는 구약의 언약처럼 주인이 그를 둘로 쪼개고, 그 사람의 부분을 지옥에 던져 넣게 될 것이다(마 24:51). 이것이 성경의 말씀이다.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판단하시는 기준은 인간 스스로 하나님을 위해 어떤 일을 얼마나 했는가를 나타내는 열매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적으로 가치 없거나 하찮은 일이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의 생명적 관계를 통해 나타난 열매(선한 행실)에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 안에서 소생된 혼의 자유의지로 주의 뜻(윤리와 도덕적 성품, 지혜와 능력)을 이루어가는 삶의 나타남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두 차원을 포함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은 우리 영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그 성령의 감동으로 우리의 혼이 반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의지적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자유의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믿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대립적 주장은 다른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을 동일한 선상의 대척점에서 대립관계로 본 잘못된 결과이다.

신구약 성경이 일관적으로 제시하는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은 ‘개인주의적’(individualistic)이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Christocentric)이며 ‘공동체적’(corporate)이다.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은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한 은혜의 역사이다. 각 개인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공동체(구약 : 이스라엘 민족, 신약 :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속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예정과 선택의 수혜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자유의지를 차원적으로 균형 있게 보기 위해서는, 구원 전후의 혼의 자유의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타락 후 혼의 자유의지는 세상 신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고자 하는) 자유의지이다(엡 2:2-3). 즉 그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 싫어하는 타락한 자유의지이다(롬 1:21). 그러나 구원을 받은 후 혼의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성령의 소욕에 이끌림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는 자유의지이자 동시에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묶여 과거의 습관대로 살고자 하는 자유의지가 함께하며 늘 충돌한다. 이것이 혼의 상태에 따른 속사람과 겉사람의 싸움이며, 우리가 그리스도 의식으로 살기 위해서 늘 성령과 말씀으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구원받은 자의 현실적인 삶에 기초하여, 과거에 믿음으로 예수를 주로 고백하여 칭의 또는 구원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종말의 칭의 또는 구원의 완성에 이르지 못하고 탈락할 수 있다는 유보적 칭의론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볼 때 그 주장은 칭의에 대해서는 그리스도 의식으로, 성화에 대해서 거짓자아 의식으로 해석하는 오류에서 나타난 것일 뿐이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받은 자가 그리스도를 믿지만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고 그리스도 밖에서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한 번 구원을 받은 자도 구원에 이르지 못할 수 있는가? 물론이다. 그러나 거짓자아의 관점에서 본 의로운 행위와 윤리 도덕적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에 구원의 탈락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의로운 행위와 윤리 도적적 삶을 살지 말라거나 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혼의 자유의지로 주를 나타내는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에 탈락되는 것이다.

복음은 인식의 변화가 아니라 새로운 의식을 가지고 누리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자가 되었다는 믿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성령님을 통하여 그리스도 의식을 가지고 이 칭의를 누려야 한다. 그럴 때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성화의 삶을 살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귀의 시험과 인생의 환난을 허용하시는 것은 거짓자아로부터 벗어나(우리의 혼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짊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참자아를 체험하고)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것은 문제로부터의 해방과 자유가 아니라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는 거짓자아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하나님나라의 상태이다(롬 14:17).

인간의 관점에서 구원의 여정을 볼 때 구원의 시작점인, 즉 구원받을 때 주어지는 영혼의 구원에 초점을 맞추지만,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본 구원의 여정은 영,혼,몸의 구원 모두에 초점을 맞춘다. 구원받을 때 주어지는 영의 구원이 구원 이후에 이루어가야 하는 혼의 구원으로, 혼의 구원을 이루어감으로써 종국에는 몸의 구원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몸의 구원은 역설적이지만 몸의 죽음을 통해서 완성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의 몸의 죽음은 몸의 부활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구원의 완성은 몸의 죽음을 통하여 시작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몸의 부활을 통해서 영,혼,몸 전부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자녀의 죽음은 마지막이 아니라 영원한 구원의 여정의 클라이맥스이다. 천국 혼인잔치의 택함을 입는 것이다.”


“구원의 완성까지 한 눈 팔면 안되겠어요”

“그렇다. 한번 구원 받은 자도 거짓자아로 살아가면 결국 예수님 재림 때에 구원 받지 못한다”

“무섭네요”

“그러니까 하려면 확실히 해야 한다”




유태인 이스라엘은 싸우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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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50화. 내 몸 안에 살아있는 영적 존재의 활동 +1 24.03.02 3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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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41화 카르마의 사슬 23.12.10 7 0 13쪽
40 40화 환생과 윤회 23.12.10 6 0 17쪽
39 39화 무의식을 넘어 사랑과 평화로 23.12.09 6 0 21쪽
38 38화 황금률(Golden Rule) 23.12.05 7 0 17쪽
37 37화 올바른 신앙생활 23.12.05 9 0 9쪽
36 36화 우주의 뜻이 지구에서도 이루지기를 23.12.04 7 0 11쪽
35 35화 죽음에 대한 각 종교의 해석 23.12.04 7 0 16쪽
34 34화 주천화후 23.12.04 7 0 10쪽
33 33화 현재 존재(바로 여기 지금)로 깨어 있어야 직시할 수 있다 23.12.03 9 0 12쪽
32 32화 호접지몽 23.12.03 7 0 6쪽
31 31화 인간 고민의 원인과 해결 방법 23.12.03 8 0 11쪽
30 30화 샤크라 에너지 순환과 쿤탈리니 23.12.02 10 0 10쪽
29 29화 내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 넘친다 23.12.02 9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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