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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g5605_einsamke bi 님의 서재입니다.

Gions World(전의 세계)

웹소설 > 자유연재 > 일반소설, 추리

옥수동가장
작품등록일 :
2023.11.22 09:01
최근연재일 :
2024.03.02 06:37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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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49

작성
23.12.15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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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47화 영성지능으로 살아가기

어린아이 눈에 비춘 어른의 세계




DUMMY

본 작품은 실제 사건이나 사실과 다른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이 만든 소설입니다.


“Reli, 사람들이 지능이라고 하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과 신앙생활이 관련이 있나요?”

“보통 지능이라고 하면 크게 관련이 없지만 감성 지능 EQ라던가 영성지능을 이야기 할 때는 관련이 없지 않다.”

“아, 전혀 무관하지는 않군요”

“그러다. 예를 들어 감성 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이란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인지하는 것을 바탕으로 관계를 관리하고 조율하는 능력을 의미하는데 타인의 아픔을 이해 한다는 측면에서 신앙

생활에 매우 중요하다. 그러니 보통 EQ는 오늘날 기업과 브랜드에게 감성 지능은 고객과 신뢰를 구축하고 지속적인 고객 관리를 위해 필요한 능력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감성 지능의 중요성을 강조한 심리학자 다니엘 골먼은 감성 지능이 자기 인식, 자기 규제, 동기 부여, 공감 능력, 사회적 기술로 이뤄진다고 말한다.

이에 따르면 감성 지능이 높은 브랜드는 브랜드가 지향하는 목표 뿐만 아니라 고객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고객의 목소리를 통해 그들의 관심사나 선호도, 욕구를 파악하고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제공함으로써 고객과의 유대관계를 강화할 수 있다고 한다.


감성 지능, 고객의 마음을 얻는 방법

고객의 복잡한 감정을 이해하여 고객-브랜드 연결을 강화하는 감성 지능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감성 지능을 전략적으로 활용한다면 브랜드는 단순히 구매 유도를 넘어 브랜드에 대한 인식 전환은 물론 충성도까지 높일 수 있기 때문이며 고객의 감성을 자극하는 감성 지능 마케팅은 고객과 브랜드의 관계를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방법으로 활용된다.


고객 마음 속의 감성 버튼을 자극하여 브랜드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사례들을 통해 감성 지능 마케팅에 대한 팁을 얻는데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BTS의 성공 원동력: 소통과 공감이다.

강력한 팬덤을 가진 글로벌 스타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소통과 공감의 힘에 있습니다.

일상적인 모습이나 연습 영상 등의 꾸밈없는 콘텐츠를 꾸준히 제공함으로써 팬들은 아티스트에게 친근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고 BTS의 팬덤인 ‘아미’는 이러한 영상을 재가공해 2차 편집 영상을 만들어 이를 다른 아미들과 공유하고 소통했다.

이 과정에서 팬덤의 크기는 커졌고 팬들은 서로 유대감을 공유하고, 결속력을 강화하면서 BTS에 대한 충성도를 높였다. 트위터 계정과 유튜브 채널 구독자수를 바탕으로 추산한 방탄소년단의 팬덤의 규모는 약 6500만명으로 단순 집합체 수준을 넘어 한 국가의 규모에 맞먹는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BTS 음악은 진정성을 가지고 팬과 공감대를 형성해 아티스트와 팬의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첨단 기술이 모든 것을 융합하고 변화시키는 4차 산업 시대에서 역설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감성 지능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그 상호작용을 이해하여 고객과 감성적 연결을 추구하는 감성 지능 마케팅은 브랜드의 차별점이 되어줄 것이다.

두번째로 눈여겨볼 지능은 직감지능이다.

자신의 직감을 믿어라

자신의 직감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신체에서 전해주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직관은 우리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를 충분히 고려해라. 만약 직관의 말에 따른다면, 아마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본인에게 최선이라고 믿었던 것에 따라 선택했다. 그 말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적어도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들렸던 목소리를 따른 것이다. 일반적으로, 만약 어떤 사물이나 누군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면, 이것은 직관력이다.


관찰하라

지각과 직관의 관계는 명확하다. 가장 직관적인 사람들은 관찰력이 뛰어나다. 관찰한다는 것은 호기심을 갖고 주변에 있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새롭고, 놀랍고, 흥미로운 것들에 대한 정보를 찾거나 지식을 얻을 수 있게 해준다.

관찰력을 기르면 개체와 사람 간의 유사성, 우연성 및 관계를 찾는 데 도움이 된다. 처음에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였을지도 모르는 것들 사이에 관계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명상은 직관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

아마도 본인이 직관적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할 때가 찾아올 것이다. 그것은 본인에게 충분한 자기 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명상 수행은 직관력을 깨우고 자신을 알 수 있도록 도와준다.

명상은 불안과 스트레스를 줄여 주고, 자신을 이해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고, 감정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도와 준다.

명상을 연습하는 것은 여러분이 이전에 알아채지 못 했던 환경의 자극에 집중하는 것을 가르친다. 따라서, 직관력을 개발하는 것 외에도, 명상은 창의력을 향상시키고 좀 더 깨어 있고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게 해준다. 그러니 한 번 시도해라!


장면을 시각화 하라

명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직관력을 발전시키는 또 다른 방법은 시각화이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 감정, 그리고 몸을 더 잘 통제할 수 있게 해 주는 매우 유용한 기술이다. 현실적으로 다른 상황을 상상함으로써 긴장을 푸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선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에게 좋은 느낌을 주는 장소를 시각화해 봐라. 예를 들어, 튤립으로 가득한 푸른 초원이나 전체 산맥을 바라보고 있는 눈 덮인 산의 꼭대기 등이 있다.

이 풍경에서도 디테일에 주목해라.

잔디의 푸른 색, 바람이 피부에 스치는 소리, 가장 작은 꽃잎···이제 심호흡을 하고 눈을 떠라.

실제로 그 쾌적한 장소에 있었던 것처럼, 자신이 더 차분하고 더 편안하게 느껴 짐을 발견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직관력은 향상되지만, 일상 속 스트레스도 해소되었을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라

고독은 우리를 무섭게 한다.

우리가 고독을 떠올릴 때, 공포로 몸이 마비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끔 고독이 무조건 해로운 것은 아니다.

사실 가끔 고독은 필요하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로 부터 우리 자신을 고립시켜 우리의 심장과 무의식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면 기분이 좋아질까, 안 좋을까?”··· “신입 사원을 믿을 수가 없어.

“내 아들이 저기보단 이 학교에서 더 잘 지낼 것 같아.”


긴장을 풀고, 산책을 하고 일상 생활의 피로를 풀어라.

일상에서 잠시 손을 떼고 가장 깊은 곳에 가서 느껴라.

인생은 중요한 결정의 순간의 연속이다.

따라서, 직관력을 개발하는 것은 그러한 시기가 올 때 큰 장점이 될 것이다.



세번째 지능은 영성지능이다.

명상하며 모른다 하고 참나 만나는 것만 해도 이게 다, 이게 하나의 지능이다.

그 미묘한 중에 "이 느낌이야!" 잡는 거, 이게 영적인 지능이다.

거기서 또 미묘한 중에 자명한 느낌, 찜찜한 느낌 갈라지고

내 삶의 어떤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부여해가지고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다.

이게 엄청난 영성지능이다.


영성지능 하면, 요즘 일반적으로 학계에서, 선악을 판단하는 지능,

이렇게 보면 맞는데 학계에서는 말을 어렵게 쓴다.

삶의 의미를 찾고 가치를 부여하는 무슨 지능

이런 식으로 하는데, 결국 뭐냐 하면,

"이게 옳은 거야." "이건 그른 거야."

"이게 더 추구해야 할 거야."

"이건 추구하면 안 되는 거야."

이걸 판단하는 미묘한 지능이다.



그걸 우리가 알아내려고 지금 이걸 계속 설명하는 거예요.

에고에게 판단하라고 하면 탐진치(貪瞋癡)로만 판단해요.

그런데 우리 참나 자리를 거쳐서 판단이 나가면 다른 게 들어가요.

그래서 자찜에 새로, 에고의 자찜이 아닌

참나의 자찜의 신호가 있습니다.


이거 받아서 판단하면 탐진치 중에

"아, 어떤 거는 이런 탐욕, 이런 분노, 이런 어리석음은

어떻게 내가 잘 살려 써야겠다."


참나가 볼 때 자명하게 이걸 살려 쓰려면

여기다 이제 뭘 투입하냐?

6바라밀만 투입하면 이게 분명해진다.


탐욕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탐욕이 있어도 그 탐욕이 선을 넘지 않게,

분노가 선을 넘지 않게.

어리석음이, 우리가 어리석음이

완전히 없어질 수가 없습니다.

어리석어야 우리는 배우려고 해요.

계속 배우는 힘은 어리석음에서 와요.

그러니까 그 어리석음을

적절하게 지혜로 돌려주는 그게 필요한 거죠.

그게 6바라밀이에요.

적절하게 돌려주기만 하면 돼요.

어리석음이 다 없어진 뒤에

우리가 올바른 판단하는 게 아니라고요.

지금 이 상황에 직면했을 때 내 안에서

탐진치에 끌려가게 만드는 게 어리석음이죠.

그러니까 탐욕을 다스리고 분노를 다스리고 나면

이미 지혜로워진 거예요.

그만큼 그 지혜가 늘어서

이 어리석음을 또 다스리면서 계속 상황을 바꿔 갑니다.

지금도, 매 순간, 이게 발견한 진리였죠.


"이게 진리면 그동안 내가 공부를 잘 모르고 했구나!"

할 정도로 완전히 다시 이제 저도 반성하게 된 계기가

"공부가 뭐다." 하는 데서,

"공부는 언제 하느냐?" "지금."

"어디서?" "여기서 내 마음에서."

"뭘?" "탐진치를."

"어떻게?" "6바라밀로."

돌리기만 하면 된다.


이 안에 다 들어있어요, 모든 공부가.

영성지능이 진짜 머리인데, 모든 지능 중에

제일 중요한 지능인데, 영성지능이 좋은 게

머리 제일 좋은 겁니다.

아까 "성인은 '총명예지(聰明睿智)' 하다."라는 것은

'영성지능'이 끝내준다는 얘기를 한 거예요.


흔히 우리가 총명하다는 것은 수학을 잘하는 사람들에게 총명하다고 그래요.

"아! 총명한데?" 이러면 대개 수학 잘하는 사람들이죠.

수학을 잘하는 사람들이 IQ도 보통 잘 나오죠.

전 수학을 못 하니까 숫자를 보면 안 좋아요.

기분도 안 좋고, 소통도 잘 안 일어나고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숫자만 보면 그렇게 소통이 잘 일어나고,

무슨 말을 하는지 너무 잘 알고 그래요.

이런 분들이 IQ도 좋아요.

머리 중에 그 IQ가 좋다고요.

모든 머리가 다 좋다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영성지능'은, 이렇게 사람을 대할 때

선악이 잘 보이는 지능이에요. 다 보여요.

이렇게 하면 누가 피해를 입고 누가 어떨지.

선악이 뭡니까? 막연한 게 아니에요.

"이렇게 하면 모두가 행복해질 거다." '선(善)',

"이렇게 하면 누군가는 가슴 아파진다." 이게 '악(惡)'이에요.

선악을 잘 읽어 내는 지능이 있어요.

이게 '영성지능'인데, 제일 본질적인 지능입니다.


그런데 사물의 결만 잘 읽어 내는 지능이 논리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그런 수학지능, 논리지능이 있어요.

그 지능 좋은 사람들은 그 재능을 발휘하는 것은 좋은데,

그게 머리의 전부라고 아시면 큰일 나요.

그 머리 좋은 사람들은, '영성지능'은 떨어지고,

그 머리가 좋으면, 누군가를 딱 만나면

"저 사람을 어떻게 벗겨 먹으면 잘 벗겨 먹을 수 있다."가 딱 나와요.

미치겠어요. 보여요.

여러분이 막 돈을 흘리고 다니는 게 보여요, 그 사람들 눈에는.

그거 내가 싹 가져다 쓰면 되겠다는 게 보여요.

그분도 아마 안타까울 거예요. 안 보였으면 좋겠는데.


여러분 보세요. 어떤 분이 은행에 갔어요. 안 보여요.

은행을 털 길이 안 보여요. 그래서 못 텁니다.

마음은 내보지만, 머리가 안 좋아서 못 털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딱 갔는데 보여요. 미치게 보여요.

CCTV를 피할 길이 보이고, 어떻게 하면 저게 내 것같이 보여요.

진짜 보여요, 길이. 이런 분 있어요.

이 재능이 사실은 무서운 겁니다. 지능이나 재능.

보이면 그걸 이겨낼 정도의 양심이 계발되어 있어야 하는데

영성은 계발이 안 돼 있죠.


그러므로 인해 누군가 피해 입고,

상처받고, 그런 건 계산이 안 돼요.

그런데 그걸 얻으면 내가 좋을 거라는 것은 알아요.

그리고 그 길이 보여요.

이게 사람을 더 미치게 만드는 상태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단순히 "머리 좋다!" 이것을 중시하지 마세요.

진짜 머리가 좋은 것은, 성인들이 "총명하다." 하는 것은

'영성지능' 좋은 걸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잘 살지 못하는 사람이

"내가 6바라밀을 해야겠다."라는 마음을 먹게 되는 그런 과정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결국 영성지능이 계발돼서 그래요.

그전에는 안 봐요. 고생한다고 보지 않아요.

고생하면 자살을 하지, 6바라밀을 할 생각을 못 해요.

즉, 그 사람의. 이게 불교적으로 말하면 선근善根이라고 합니다.

선근이 있어야 돼요. 선한 근기죠.

그러면 태어날 때부터 선근이 다른 거죠?

다르죠. 그건. 불교식으로 말하면 전생 공덕의 차이죠.

그러니까 이 선근이 깊으면 뭐라고 할까요?

더 적게 경험하고도 6바라밀의 공식이나 진리를

더 선명히 빨리 포착하고요.

선근이 두텁지 못하면 체험을 아무리 해도,

고생을 아무리 해도 포착을 잘못 해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가 안 보여요.


그러니까 예수님 같은 분은 31세에 도를 펴는데.

"우주가 이렇게 굴러가는 구나.

우주는 나에게 6바라밀을 하라고 얘기하는 구나." 이것을 포착 해내요.


이 영성지능이 떨어진다. 즉, 선근이 부족하다 하면 포착이 잘 안 돼요.

주변 환경도 잘 안 도와주겠지만, 사실은 본인의 지능도 떨어져요.

모차르트가 몇 살 때, 5살 때쯤 악보를 그렸다.

그러면 이건 못 따라가잖아요.

그러면 전에 해 놓은 그 분야의 근기가 다른 거죠.


똑같아요. 이건 본인이 지금부터 투자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이건 뭐.음악은 투자 안 하셔도 되는데,

모차르트처럼 될 필요가 없는데.

사람인 이상 이것은 닦아야 되거든요.

왜냐하면, 사람인 이상 죽을 때까지 우리는 선택을 해야 돼요.

그 끝없는 선택이 우리 선근의 바탕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선택을 안 할 수 없어요.

음악은 안 할 수 있지만, 안 살 수가 없잖아요.

산다는 건 끝없는 선택이고, 선택은 결국 선악의 결과를 낳습니다.

즉, 이왕이면 선의 과보를 지으려면 우리는 6바라밀 공부를 해야 되고,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연구를 해야 되고,

선은 하고 악은 안 하는 그런 연구도 해야 돼요. 그러니까,

저는 항상 이것은 우리가 무조건 해야 되는 것이에요.

사는 중에 자기도 모르게 6바라밀을 닦아요.


영원은 사물, 생명, 마음의 세계에 본질적인 '신성한 실재'가 있음을 인정하는 형이상학이자, 인간의 영혼에서 '신성한 실재와 유사하거나 동일한 무언가'를 발견하는 심리학이며, '모든 존재의 내재적이면서 초월적인 바탕에 대한 앎'을 인간의 최종 목표로 두는 윤리학으로,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져 온 보편적인 개념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아주 오래전부터 전달되어 온 모든 것을 통합할 수 있는 진리, 거기에는 그 어떠한 분별이 없이 자명할 수밖에 없는 이치.

거창하지만, 모든 철학을 통합할 수 있을 만큼의 보편성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왜 이 삶을 살고 있는지 까지 생각하게 해 줄 수 있는 철학들을 모아둔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대가 그것이다

"모든 인간의 최종 목표는 그 사실 (모든 존재의 절대 원리와 하나다)을 발견하고

자신이 실제 누구인가를 발견하는 일이다."

모든 것과 하나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껴진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그 삶은 엄청나게 자유롭지 않을까요? 새가 하늘을 날 듯이, 아무런 제약이 없어진다면 시공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 무한한 존재로서 그저 삶을 유유히 지나다니지 않을까 라는 개인적인 생각이 듭니다.



고행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무언가를 배우기 위한 고행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고 '암시'합니다. 다만, 그 고행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금욕적인 삶이 아니라고 '제시'하죠.

"자기 의지, 사리사욕, 자기중심적 생각, 소망과 상상을 제거하는 것이 최고의 고행이다."


심리분석적 용어를 아시는 분이라면, 에고를 없앤다 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신을 만드는 모든 것을 파괴함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성취하는 과정이 녹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말도 필요 없이 고통스럽다는 것은 저희 또한 경험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이해

"우리 대부분이 스스로에 대한 무지한 이유는 자기 이해가 고통스러울 뿐 아니라 환상의 즐거움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며 자기 이해가 없을 경우 생길 수 있는 부정적 결과를 나열합니다.

진정한 겸손이 없으면, 자기를 부정할 수 없으며, 자기를 부정할 수 없다면 고행에서 말했듯이 자유를 얻을 수 있는 힘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행복과는 거리가 먼 듯 보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우월성, 성공을 증명하기 위한 삶을 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 제시하는 삶의 방식은 그런 것들과 멀어질수록 본연의 자신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말입니다.



시간과 영원

"우리의 조상이나 우리 자신, 현생이나 전생의 존재로부터 형성된 의식적, 무의식적, 생리학적으로 기억된 모든 습관 때문에 세상은 (우리 눈에 보이는 바 대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기억된 이 나쁜 습관들이 우리로 하여금 다양성이 유일한 실재이며, '나', '나를', '나의 것'이라는 생각이 궁극적 진리를 표현하고 있다고 믿게끔 만들었다.

니르바나는 우리에게 그렇게 보이는 것처럼 '우리에 관한' 실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실재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에 있다. (중략)

그러므로 영원을 신봉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아의 죽음과 고행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고행은 식욕, 느낌, 의지의 고행이 되어야 할 뿐 아니라, 추론하는 힘, 의식 자체, 우리의 의식을 의식으로

만드는 것, 즉 개인적인 기억과 유전된 습관- 에너지의 고행이 되어야 한다."


시간 때문에 빛이 우리에게 도달하지 못한다.

신께로 나아가는 데 있어 시간보다 더 큰 장애물은 없다.

시간 뿐 아니라 일시적인 것도, 일시적인 대상 뿐만 아니라 일시적인 감정도, 일시적인 감정 뿐만 아니라 시간의 흔적과 냄새까지도.



침묵

여기서 침묵은 자기가 만들어내는 소음에 대한 침묵도 해당 되지만, 외부의 소음으로부터의 침묵도 포함됩니다.

대부분의 나라들처럼 방송국이 광고주들에게 시간을 판매함으로써 스스로를 유지하는 곳에서는, 귀에서부터 환상, 지식, 느낌의 영역을 거쳐 소원과 욕망이라는 에고의 중심핵으로 그 소음이 전달된다.

(중략)

무욕은 해방과 깨달음을 위한 조건이다.

(중략)

욕망의 작용을 확장하고 강화 시키는 것은 고통과 악행의 주된 원인이자 인간의 영혼과 그것의 신성한 근본바탕 사이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묵상, 행위, 사회적 유용성

"행위란 실재를 인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정화하기 위한 것이다. 진리에 대한 깨달음은 수천만의 행위 속에서가 아니라 미묘한 차이를 분간하는 힘에 의해 얻어진다"

인간 삶의 궁극은 묵상 (Contemplation) 혹은 신을 직접적으로 직관적으로 자각하는 것이고, 행위는 그 목적을 도와주는 수단 중 일부, 그리고 사회는 그런 행위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선하다는 것이 영원에서 나타나는 묵상, 행위, 사회적 유용성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신이라고 일컫는 존재는 어느 특정 종교의 신이 아니라 자신을 해체하였을 때 지각할 수 있는 그 자유로움 그 자체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행위를 통하여 자신의 습관이 생겨나는 것을 인지할 것이고, 그것을 해체하여 자유로워졌을 때 인간의 궁극적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애초에 습관이 생겨나지 않으면 된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러한 습관은 위에 저자가 얼핏 언급한 것처럼 태어나서 생겨난 습관 뿐 아니라 조상들의 혹은 무의식의 습관들까지 일컫는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즉, 태어난 순간부터 결국 자신을 해체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하는 숙명에 처한 것 아닐까요?

영원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어떤 특정한 종교나 철학관에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라, 보편적 진리처럼 어떤 종교던 가지고 있는 징수들을 포함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여기서 모든 변형이 일어나여 지금의 종교 및 신학이 존재하는 것이겠지요.”


“결국 Reli, 명상을 통해 성령을 만나면 영원성을 느낄 수 있고 비록 내 육체가

사라져도 내 참나인 영은 영원히 살아간다는 아주 희망적인 결론이네요”


“결국 지능에 대해 알아보았지만 영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영과 소통하여 얻은 영성 지능이 우리 삶의 빛이요 희망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것 같아 기쁘다”


“네, 저도 기쁩니다. 결론은 늘 영과 만나는 정진만이 살아있는 진리 같습니다”




유태인 이스라엘은 싸우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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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9화 내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 넘친다 23.12.02 9 0 15쪽
28 28화 모든 종교의 공통점 23.12.02 8 0 14쪽
27 27화 우리는 왜 태어났으며, 왜 종교가 필요한가? 23.12.01 15 0 5쪽
26 26화 인자 (the Son of Man) 23.11.30 12 0 6쪽
25 25화 범부중생을 넘어 보살로 우뚝서다 23.11.29 13 0 7쪽
24 24화 강재이뇌(降在爾腦) 23.11.29 12 0 6쪽
23 23화 이기적 유전자를 넘어서 23.11.28 17 0 13쪽
22 22화 잡생각의 소음으로 부터 자유를 얻는 방법 23.11.28 13 0 5쪽
21 21화 지구 별의 문제아는 유일하게 인간이다 23.11.27 23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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