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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설란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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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설란
작품등록일 :
2018.05.04 23:33
최근연재일 :
2018.08.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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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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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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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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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부-티타임(2)

DUMMY

-후루룩.


잘 꾸며진 정원에 차 마시는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아까의 소동이 지난 뒤, 지금은 넷 모두 의자에 앉아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지금 차가 넘어가느냐?”

“차 맛이 아주 좋습니다, 왕녀님.”

“...”


슬쩍 한 모금을 더 목으로 넘기며 탁자 위의 인원들을 살펴보았다. 어색한 듯 눈길을 피하는 나탈리, 무슨 표정을 지을지 몰라 무표정이 된 왕녀, 그리고 간간히 내 입술을 노려보며 빙긋 웃는 줄리엣까지.

셋 모두 내 생각을 뛰어넘는 반응이라 누구에게 선뜻 말을 걸기 힘들었다. 그것은 저들도 매한가지인지 결국 모두 찻잔으로 손을 향했다.

풀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정적을 감상하다, 마침내 찻잔이 비어버렸다. 이만큼 기다려줬으니 이제 내가 말해도 되겠지?


“오랜만이네, 나탈리.”

“으, 응.”

“나는 안 반가워, 한스? 아니, 아저씨라고 불러줄까?”

“잠시만 기다려주겠어요, 줄리엣 양?”

“예~. 예~.”


중간에 끼어드는 방해를 적당히 넘기자 드디어 나탈리가 나와 눈을 마주쳤다. 다만 곧 피해버려 그 속에 담긴 뜻을 파악할 순 없었다.


“머리는 좀 괜찮아?”

“으, 응.”

“혼란스럽겠지만, 그래도 다행이지 않아? 디에고가 그렇게 후회하던 일을 바로잡을 기회가 찾아온 거니까. 아, 혹시 벌써 벌어진 건 아니지?”

“...기회.”


기회란 말이 나탈리의 마음을 크게 사로잡았는지 그녀가 계속 그 말을 되뇌었다. 그 후 고개를 든 나탈리의 눈에는 강렬한 불이 들어있었다.

그녀는 날 보며 한동안 망설이더니 이 말만을 남겼다.


“고마워.”


왕녀와 줄리엣에게 급히 인사를 한 나탈리가 떠나는 뒷모습을 보다가, 줄리엣에게로 눈을 돌렸다.


“몸은 좀 어때, 줄리엣?”

“늘 그렇듯이 지금도 그래.”

“그럼 손 좀 줘볼래?”

“손?”


의문스러워하면서도 오른손을 내민 줄리엣에게 한번 웃어주었다. 그 뒤 특별한 가공을 한 반지를 꺼내어 손에 끼워주었다.


“어때, 좀 살만하지?”

“...”


몸 상태 완치는 물론이고 위급상황에 도움도 주는 멋진 반지에 스스로 감탄하고 있을 무렵, 줄리엣이 반지를 빼버렸다.


“문제 있어?”


내 말에 대답 없이 자신의 왼손, 그중에서도 약지를 강조하듯 내미는 줄리엣. 아니, 이건 그런 선물이 아닌데요.

그렇다고 준 선물을 안 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장단 한번 맞춰주는 걸로 하기로 했다. 옆에 있는 왕녀는 보이지도 않니?

원하는 대로 반지를 끼워주니 그제야 줄리엣이 방긋 미소를 지었다. 한참 반지를 매만지던 그녀가 살며시 입을 열었다.


“고마워, 한스.”

“그러라고 준 건 아닌데...”

“습. 항상 말했지? 사람은 눈치가 있어야 해.”

“네, 그렇습니까.”


그때 잠자코 앉아있던 왕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관자놀이를 만지며 말을 꺼낸 왕녀의 목소리엔 혼란이 가득 담겨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뭐가 말입니까?”

“이 세계에, 그리고 그대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이냐.”

“많은 일이 있었지요.”

“그대는...”


왕녀는 주전자에서 차를 더 따라 목을 축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그대는 왜 이렇게 변한 것이냐?”

“제가 어떻게 변했습니까?”

“마치... 마치...!”

“왕녀님, 그만 하시는 게 어떻겠어요?”


우리의 대화를 줄리엣이 끊었다. 어차피 왕녀가 무얼 말하고 싶었는지 대략 알 것 같았기에 상관은 없었다.


“한스, 그대는... 또 내 오라비를 죽일 생각인 것이냐?”

“그건 그 자에게 달려있습니다. 또 내 친구들을, 동료들을 죽이려고 한다면 가차 없이 죽일 겁니다. 하지만.”


쪼이는 건 이쯤으로 끝내고, 부드럽게 왕녀를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이전 세계에서의 원한은 모두 잊겠습니다. 그건 그때 계산이 끝났으니까요. 그러니 아마 그를, 그리고 그들을 죽일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렇느냐...?”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에 잠기던 왕녀는 이럴 때가 아니라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어쩌면 내 말에 담긴 속뜻을 파악했을 수도 있고.

열심히 움직여주길 빌며 나도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찰나, 줄리엣이 재빨리 내 손을 붙잡았다.


“어디 가려고?”

“나도 꽤 바빠서 말이지. 디에고를 만난 후에 타토르로 가봐야 해.”

“그럼 같이 가자.”

“미카엘에게 잡혀있을 애들은 어쩌고?”

“다들 데리고 가자. 부탁할게, 한스.”


막무가내였으나 그걸 책망할 순 없었다. 그날 미카엘의 유적에서 쓸쓸하게 시체를 만지던 그 표정이 다시 지어지는 꼴을 보기는 힘들었으니까.


“그럼 나중에 만나자. 그 반지에 대고 말하면 내가 찾아갈게.”

“알았어. 만약에 안 오면...”

“안 오면?”

“사지를 갈갈히 찢을 거야.”


오호. 그것 참 살벌하십니다그려.

다시 고양이로 변한 후 정원을 나섰다. 제법 넓긴 했지만, 뭐 어때. 돌아다니면 금방 찾아낼 텐데.


* * *


다행히 길을 잃지는 않았다. 다만 차라리 길을 잃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대장, 사실대로 말해줘.”

“뭐를 말이니, 나탈리?”

“이번 실험에 참가하기로 했던 게 사실이야?”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나름 기밀이었을 텐데.”

“사실이야?”

“그래, 사실이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기사들도 함께 참가하게 되었어.”

“왜...?”

“왜라니. 왕국을 위한 일에 앞장서는 것이 우리 데쿠스 기사단의 임무잖냐.”

“하지만...”

“하하. 너무 걱정하지 마. 나탈리. 별로 위험하지 않으니까.”


그러면서 나탈리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속칭 대장. 그를 보자 상당히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나탈리가 늘 짓던 미소를 빼다 박은 웃음. 호탕하면서도 자신감이 넘치는 그에게선 밝은 빛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탈리가 듣기 좋아했던 대장이란 소리를 듣는 사내.

내가 보았던 나탈리의 모습이 저 사내의 모습과 굉장히 유사함을 깨달았을 때, 그녀가 왜 어색한 분위기를 풍겼는지도 알았다.

울 듯한, 하지만 그 이상으로 기쁜 나탈리의 표정을 잠시 지켜보다가 발을 돌렸다. 아마 여기가 아니었나 봐? 길을 잘못 들었네.

그렇게 괜히 빙빙 돌아 다시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러자 누가 봐도 바빠 보이는, 심지어 머리카락까지 남아있는 디에고의 모습이 보였다.

곧은 허리와 냉철한 눈빛에서 뿜어지는 카리스마에 휘파람을 불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그가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누구인가?”

“...”

“그렇게 숨지 말고 나오지 그러나. 암살자는 아닐 터이고, 내게 볼일이 있을 것 같은데.”

“이야. 역시 대단하십니다. 재상님.”

“흠. 유명한 마법사가 여긴 어쩐 일인가?”


말하는 고양이에도 놀라지 않는 디에고의 모습에 감탄하며 바로 사람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정중히 손을 건네자 그가 그것을 맞잡아 주었다.


“반갑습니다, 한스입니다.”

“한스...?”


그 또한 내게서 친밀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디에고는 그 앞 소파로 나를 안내해주고는 그 맞은편에 자신이 착석했다.


“내쫓지 않습니까?”

“자네라면 괜찮을 것 같군. 그래서, 옆 나라에서 이곳으로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가?”

“제가 선물을 하나 주고 싶습니다.”

“선물이라니?”

“당신이 후회했던 것을 바로잡을 기회, 덤으로 건강도 조금 챙겨드리죠.”

“마치 악마의 속삭임 같군.”

“악마라뇨, 섭섭한 말씀을.”


다시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자 그가 선뜻 내 손을 잡았다. 아무래도 나이 드신 분인데 거칠게 대할 수는 없잖아?

몇 번의 조절 끝에 통증 한번 없이 시술이 끝났다.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하던 그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괜찮습니까, 촌장님?”

“촌장님이라... 오랜만에 듣는 말이로군.”


조용히 자신의 머리를 쓸어넘긴 그가 그 풍성함에 미소를 짓더니,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한스, 자네에게도, 그리고 내게도 참 많은 일이 있었네.”

“그렇죠.”

“자네의 그 힘이 어디서 왔는지 묻지 않겠네. 하지만 다른 건 묻고 싶군. 자네는, 내가 기억하던 그 시절의 한스가 맞는가?”

“살아가며 약간 변하긴 했지만, 그때의 한스가 맞습니다.”

“그렇다면 되었네. 이제 서로 바쁜 일상을 보내게 될 텐데, 할 말은 없나?”

“건강 잘 챙기시죠.”

“알겠네. 아, 내 손녀는 만났는가?”

“예, 기억도 되돌려 주었습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자네에겐 미안하지만...”

“압니다. 오는 길에 봤으니까요. 그래도 행복하면 그만이죠. 안 그렇습니까?”

“...그렇지.”

“그러니 그 미소가 사라지지 않게끔, 그리고 후회하시지 않게끔 해주십시오.”

“알았네.”


그 후로도 그와 얘기를 나누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에 대해서도 얘기했으며, 그 후로 이어진 줄리엣이 키메라들을 데리고 달아나고 싶다는 말에 그는 흔쾌히 긍정의 뜻을 보였다.


“정말 괜찮습니까? 왕국이 제대로 못 돌아가는 거 아닙니까?”

“내가 건강해졌는데 무슨 상관인가. 그리고 애초에 그런 희생은 잘못된 것일세.”

“알겠습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알겠네.”

“아, 다음에 술 한잔 같이하시죠. 모두가 모였을 때요.”

“모두라. 좋은 울림이군.”

“그렇죠?”


마지막으로 그에게도 조제핀에게 준 것과 같은 목걸이를 주었다. 이제 대략적인 볼일은 끝났으니 가볼까?


* * *


“여기란 말이지?”

“그래, 이전하기 전 연구실이야.”


옛날에 갔던 유적처럼 깔끔한 외형을 보여주는 연구실 안으로 줄리엣이 들어갔다. 그녀에게 안겨있는 나도 편안히 내부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런 우리에게로 달려오는 인간이 한 명. 시몬인 줄 알았으나 그보다 더 늙어 보이는 외모로 유추할 때 아마 그가 미카엘이지 싶었다.


“왜 이제 온 거냐, 줄리엣!”


외형과 다른 칼칼한 목소리, 그리고 손톱 밑이 시꺼멓게 물든 그는 줄리엣을 다그치다가, 그녀가 안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를 보고는 목에 더욱 핏줄을 세웠다.


“빌어먹을! 이곳에 개새끼는 데려오지 말라고 몇 번이고 말했을 텐데!”

“고양이 새끼잖아, 안 보여? 이제 눈도 좀 나빠졌나 봐?”

“이런 시발. 네년이 성공작만 아니었어도 진작에 갈아버렸을 거다.”

“갈아보지 그러셔?”

“시발, 시발!”


정신적으로 아주 불안해 보이는 미카엘은 욕을 잔뜩 입안에 담았다. 이러니 줄리엣이 그렇게 성장했지.


“빨리 따라 와! 점검할 시간이다.”

“아, 나 갈 데가 있어서 이제 가볼게.”

“무슨 개소리를... 컥. 커헉. 크헉. 끅...”


말끔하게 한손만으로, 아니 한 촉수만으로 미카엘의 목을 졸라 기절시킨 그녀는 더욱 안쪽으로 나아갔다.


“죽은 건 아니지?”

“죽이고 싶었는데, 참았어.”

“잘했어.”


곧 줄리엣의 발이 멈추고, 그때 보았던 다양한 생물이 보였다. 저 구석에서 달달 거리는 익숙한 네모상자도 있었고.


“근데 이대로 꺼내도 되는 거야?”

“괜찮아, 어차피 이것도 실험하던 거였으니까.”

“이대로 데려가면 눈에 너무 띌 것 같은데?”

“음, 그러게.”


좋은 발상을 생각하던 줄리엣이 손가락을 튕기며 내게 말을 걸었다.


“아, 한스 네가 변하는 것처럼 얘들도 변하게 할 수 없어?”

“가능은 한데, 몸이 달라지는 데 좋아할까?”

“걱정 마. 원래 모태는 나였으니까.”


네...?

일단 줄리엣의 눈짓에 근처의 한 명에게 다가갔다. 꾸물거리는 촉수를 보니 줄리엣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우선 상처가 나지 않게 주의하며 비커에서 꺼낸 뒤, 접촉을 통해 기억을 읽어냈다. 영 좋아하지는 않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니까.

수많은 학대와 비명 속에서 그의 원래 모습, 그러니까 실험이 성공했을 때의 형태를 복원하고 마지막으로 활기를 넣어주자 멀쩡한 인간 한 명이 탄생했다.


“엄마...”


엄마...?


“아이구, 폴로. 몸은 좀 어때?”

“좋아. 근데 이 사람은 누구..?”

“인사하렴. 아빠란다.”

“아빠?”


아니, 저기요? 저 결혼도 안 했는데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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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2부-반갑다, 짜식아 18.08.02 44 0 13쪽
67 2부-습격 18.08.01 47 0 13쪽
66 2부-딱 맞는 인재(2) 18.07.29 48 0 13쪽
65 2부-딱 맞는 인재 18.07.28 53 0 12쪽
64 2부-수도 산타스에서 18.07.27 44 0 13쪽
63 2부-재회(2) 18.07.26 45 0 16쪽
62 2부-재회 18.07.25 47 0 15쪽
61 외전-형님(3) 18.07.15 51 0 14쪽
60 외전-형님(2) 18.07.14 88 0 15쪽
59 외전-형님 18.07.13 58 0 12쪽
58 외전-나탈리(3) 18.07.12 115 0 16쪽
57 외전-나탈리(2) 18.07.09 56 0 13쪽
56 외전-나탈리 18.07.08 57 0 13쪽
55 세상의 끝(4) 18.07.03 80 0 17쪽
54 세상의 끝(3) 18.07.01 57 0 14쪽
53 세상의 끝(2) 18.06.30 72 1 13쪽
52 세상의 끝 18.06.29 76 0 13쪽
51 준비 18.06.28 72 0 13쪽
50 이야기의 시작(2) 18.06.27 84 0 13쪽
49 이야기의 시작 18.06.24 88 0 14쪽
48 '나' 18.06.23 115 0 15쪽
47 전쟁(3) 18.06.22 80 0 12쪽
46 전쟁(2) 18.06.21 86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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