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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설란 님의 서재입니다.

족쇄를 벗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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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설란
작품등록일 :
2018.05.04 23:33
최근연재일 :
2018.08.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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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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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0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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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나탈리(2)

DUMMY


술은 많이 마셨어도 아침은 항상 개운했다. 아니면 간만에 마음이 개운해져서일지도?

그리고 어제 흥미로운 소리를 들었다. 한스가 대작에서 빠지기 전에 내게 대장이라고 부른 것이다.

대장, 이제 내가 대장이라고 불리네. 대단하지?

기지를 당연히 모를 한스를 위해 아침에 그를 데리러 갔다.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나탈리라는 소리가 왠지 싫어 내 입에서는 절로 이런 소리가 흘러나왔다.


“대장이라고 불러.”


그 말을 들은 한스가 내 눈을 쳐다보았다. 무심한 검은 눈이 나를 탐색하더니 결과를 도출해냈다.


“알았어, 대장.”


그렇게 자연스럽게 대장이라 불린 나와 한스는 기지에 도착했다. 약간의 헤프닝이 있고 난 후, 그와 대련을 하기로 했다.

그의 손에 목검 하나를 쥐여주고 대련을 시작했다.


“간다!”


대련이니까 오러는 쓰지 말고,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가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여 내 검을 피해냈다.

제법인걸?

그 제법은 대련이 지속되자 대단함으로 변했다. 전혀 훈련받지 않은 일반인이 이렇게 잘 피할 줄이야. 약간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

그 뒤는 그가 공격하게끔 했다. 하지만 뭐가 문제인지 그는 무기를 일체 사용하지 못했다. 안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못하고 있었다.

오랜만의 대련에 붙었던 재미가 약간 식었다. 잠깐만, 재미? 세상에, 내가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구나.


“그럼 맨손으로 덤벼봐. 싸울 줄은 알아야지.”

“알았어.......”


한스 본인도 무기를 못 쓰는 것이 약간 의아한 듯했다. 하지만 살짝 풀죽은 그가 주먹을 꽉 쥐자, 분위기가 변했다.

무심하던 검은 눈에 야성이 깃들었다. 흡사 마수라도 본 듯이, 전신에서 소름이 돋아났다.

긴장하고 있던 내게 어느새 그가 다가와 주먹을 내질렀다. 당연히 팔로 방어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센 일격이 내 균형을 무너뜨렸다.

그 틈을 노리고 그가 발로 내 다리를 걷어찬 뒤 하반신을 붙잡아 뒤로 넘어뜨렸다.

...지금 내가 진 거야? 훈련도 안 한 일반인한테?


“잘하네?”

“그러게, 대장.”


무덤덤한 그의 반응이 내게 더욱 불을 붙였다.

확실히 예상외였다. 하지만 아직 단련이 되지 않아 마음먹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아직은 생각보다 힘이 센 일반인이니까.


“다시 해.”

“대장? 미안해.”


그게 미안하다는 사람 태도야? 완전 건성이네?


“아니야. 다시 해. 연습해야지.”


* * *


아, 속 시원해.

하지만 그도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약점을 치고 들어오는 그에게 한 번이라도 잡히면 아까와 같은 패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에이, 그래도 여태 훈련한 게 있는데 말이야.

실컷 즐기다 문득 전혀 그들에 대한 생각을 안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런 적은 정말로 처음이었기에 얼떨떨함이 피어났다.

오랜만에 찾아온 약간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을 때, 카를로가 돌아왔다. 그에게 숲의 상태를 들어보니 슬슬 대대적인 토벌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 중인 내 귓가로 중저음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안녕, 에밀.”

“.......”


역시나 에밀은 철벽을 쳤다. 그것을 확인한 한스는 아무런 말 없이 그녀에게서 떨어져 점심을 먹었다. 에밀과 비슷한 무표정 속에서 그녀가 하는 일을 방해하지 않는 배려가 느껴졌다.

점심을 다 먹은 뒤 카를로와 에밀을 데리고 숲으로 나갔다. 조금 깊게 들어가자 금방 라트라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몸에 오러를 끌어내 미리 뽑아둔 검으로 라트라 하나를 베자 옆으로 화살이 날아와 달려드는 다른 라트라를 날려버렸다.

좌측으로 한번, 우측으로 한번 검을 휘두르자 라트라가 뭉텅이로 쓰러졌다. 내겐 도저히 승산을 느끼지 못했는지 라트라 무리가 나를 피해 에밀을 향해 달려갔다.

계속해서 라트라를 갉아먹는 에밀에게 라트라가 도착하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카를로가 매끄럽게 그의 목을 베었다.

마수보다는 사람에게 적합할 것 같은 검술, 검술보다는 암살이 아닐까 싶을 공격이 이어지자 에밀에게 접근하던 라트라가 차차 줄어들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라트라를 베어내자 에밀도 남은 마수를 단검으로 찔러 죽였다. 그 뒤로는 뒷정리가 이어졌다.

내가 라트라를 중간으로 모으고, 카를로가 손질을 하고 에밀은 화살을 빼서 다시 쓸 만한 것들을 점검한다. 익숙하다 못해 이제는 지겨운 작업이었다.


“다 끝났어?”

“응, 끝난 거 같은데?”

“그럼 다음으로 가자.”


* * *


마수를 정리하고 난 뒤로는 다시 일상이 펼쳐졌다. 대신 그런 일상 곳곳에 한스라는 신입이 추가되었다.

그와 함께 순찰을 하다 보니 과거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다. 그렇게 떠벌리는 걸 좋아하진 않았었는데, 어쩐지 내가 마르코가 된 느낌이야.

하지만 흘리듯, 진지하게 내 얘기를 들어주는 한스에겐 대부분의 얘기는 해도 될 것 같았다. 그가 가진 특유의 거리감이 서로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에 한스가 폴을 데려왔다. 문제를 해결해준다는데, 당연히 폴의 문제는 헬레나겠지.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까 말이야.


“대장은 경험 있어?”


굉장히 자연스럽게 넘어온 질문이 내 머리를 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어쩐지 예전만큼 복잡한 기분은 아니었다.


“난 없는데, 넌?”


질문을 넘기면서 한구석에서 생각이 들었다.

아빠, 내가 동경했던 사람. 대장, 내가 사랑했던 사람. 누구보다 듬직하고 믿음이 가던 사람. 그리고 누구보다 빛나던 눈부신 사람.

그리고 왕국을 위한 마음을 배신당해 찬란했던 미래를 빼앗긴 사람들.

한때 무지하게 아팠던 마음은 이제 잔잔함만을 머금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드물게 적극적으로 남에게 관여하는 한스의 모습이 보였다.

한스.

그와 만나고 난 뒤로 매일 같이 생각나던 그들이 조금씩 내게서 멀어졌다. 장난을 원할 땐 익살스럽게, 진지함을 원할 땐 진중히 다가오고, 조용함을 원할 땐 거리를 벌려주는 그 덕분에.

그를 만난 덕에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 추억으로 변모했다. 그와 있을 때 나는 거짓된 연기가 아니라 진짜 나를 보여줄 수 있었다.

대장, 왠지 이제는 대장이 아니라 진짜 나로서 빛날 수 있을 것 같아. 축하한다고? 고마워.

폴과의 대화가 마무리되어가는 한스의 모습을 보며 문득 술 생각이 났다. 웃음도 지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흐흐.


* * *


“에밀, 이건 뭐야?”

“...마수.”


쉬이 볼 수 없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 에밀이 그림책을 남한테 보여줄 뿐만 아니라 대답까지 해주다니.

나도 모르게 카를로와 눈을 마주쳤다가 다시 그들을 쳐다보았다. 한동안 책을 보던 그들은 이내 그것을 덮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가끔 에밀의 기분이 좋을 때에만 부르는 노래가 기지 내로 퍼지자 모두의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졌다.

하지만 청량하고 곱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몇 소절이 지나자 끊겨버려 카를로와 나를 아쉽게 만들었다.


“여기서 하라고?”


에밀의 잠잠한 시선을 받은 한스가 잠시 주저하더니 방금 에밀이 부른 멜로디를 따라서 불렀다. 못 부르진 않고,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에밀이 너무 잘 불렀다 보니 상대적으로 좀 그랬다.


“푸흡.”


방금 웃은 거야? 에밀이? 진짜로?

굉장히 작았지만 오러 유저의 세심한 청각이 분명히 에밀의 웃음을 간파해냈다. 그에 그녀와 가까이 있어 그 소리를 함께 들었을 한스가 중간에 노래를 멈췄다.


“계속.”


그러자 에밀이 무서울 정도로 단호히 한스에게 눈치를 주었다. 잠시 그녀와 눈을 맞추던 한스는 결국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조금씩 올라가는 에밀의 입술이 그녀를 점점 예쁘게 만들고 있었다.

놀랍네. 그녀가 이렇게 즐거워하던 적이 있었나? 그녀를 보고나서 거의 최초인 거 같지 않아?

한동안 서로 노래를 주고받으며 둘만의 공간에 빠진 그들을 보다 괜히 한스에게 말을 건넸다.


“한스, 이제 순찰 갈 시간이야.”

“벌써?”


방해를 받은 에밀의 눈썹이 잠깐 찌푸려졌지만, 그녀는 다시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왠지 모르게 불만을 표시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기분 탓일 거야. 응.


* * *


시간은 흘러, 또 상단이 오는 시기가 되었다. 말이 상단이지 사실상 촌장님을 회유하거나 국정의 도움을 받기 위한 사심이 가득했다.

상당히 눈에 익은 리타와 상단주를 보다 한스의 소매를 끌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와 함께 단골집을 돌아다니며 괜찮은 음식을 먹으며 돌아다녔는데, 또 리타와 마주쳤다.

그녀가 키메라라는 사실 만으로 나쁘다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내 가족과 대장을 앗아간 키메라에게 좋은 감정이 들지도 않았다.

그야 그렇잖아. 머리로는 알아도, 감정은 어쩔 수 없이 튀어나오니까.

억지로 겨우 그곳을 벗어나니 촌장님이 멀리서 찾아왔다. 항상 들어왔던 발자국 소리는 지금도 변치 않았다.


“나탈리, 할 얘기가 있으니 잠시 따라오겠나?”


조용히 그를 따라갔다. 어딘가로 들어간 촌장님이 가만히 의자에 앉고, 그 옆에 준비된 의자에 함께 앉자 곧 에르피가 들어왔다.


“스승님, 생각은 해보셨습니까?”

“스승이라 부르지 말게. 그리고 나한테는 없다고 분명히 말했지 않은가?”

“흠, 그렇습니까?”


잠시 내 눈치를 살피던 에르피는 품에서 문서 여러 장을 꺼내서 촌장님에게 주며 말했다.


“이번 안건들입니다. 이건 스승님이 이 마을로 오시면서 한 약속 중에 하나니까요. 아, 혹시 누설하시면 아시죠?”

“이 마을을 싹 뒤엎어 버리겠지. 잘 알고 있네.”

“하하. 설마요.”


냉혈한인 그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웃으며 자리에 앉은 에르피와 촌장님은 안건을 하나씩 짚어나갔다. 중간에 그의 쓸데없는 감탄사가 들어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역시 스승님이십니다.”

“큼.”


일이 마무리될 때쯤에 리타가 무언가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것을 본 에르피가 환히 웃으며 설명을 해주었다.


“이번에 리타 경이 체르스 가문의 물건을 또 찾았다고 해서 들고 오라고 했습니다. 물건은 제 주인한테 가야 옳지 않겠습니까?”


리타가 들고 온 상자를 열자 한때 우리 가문에서 썼던 물품들이 보였다. 각종 옷가지, 갑옷, 무기들이.

환하던 에르피의 미소가 비릿하게 변했다. 혹은 내가 그렇게 느끼거나. 아무튼.

딱딱하게 굳어지는 촌장님의 얼굴과 공기에 에르피가 자리를 파하고 밖으로 나갔다. 이건 촌장님과 에르피 사이의 신경전이었다. 정확히 무슨 이유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버려야겠군.”


촌장님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치부나 다름없는 끔찍한 일을 여실히 보여주는 유산이 바로 눈앞에 있었으므로.

당연히 그가 직접 지시한 일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내가 이렇게 그와 함께 마을을 설립하러 오지도 않았을 테니.

하지만 그가 틀어졌다고는 해도 그는 그 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고, 그 스스로가 그것을 용서하지 못했다. 물론 나도 완전히 마음을 떨치진 못했다.


“아, 잠시만요, 촌장님. 제가 버려도 될까요?”


익숙한 듯이 허락하는 그를 보고 상자를 들어 밖으로 나왔다. 그것을 집에 가져가 대충 집에 숨겨놓았다. 이런 식으로 버리려는 물건을 가져온 것도 몇 번째인지.

그것들을 한번 쭉 둘러보니 옛 기억이 새록새록 스며들었다. 아, 그렇지.

예전에 보관하고 있던 아빠의 건틀렛을 꺼내어 전체적으로 훑어보자 손질이 잘 되어 반질반질한 표면이 보였다. 그것을 들고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당연히 이건 굉장한 속도로 발전하는 우리의 무투가 씨에게 주는 상이었다. 어쩌면, 아니 반드시 나를 뛰어넘을 실력자인 그에게 주는 상.

그리고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표현이기도 했다. 내 과거, 내 추억이 담긴 물건을 줌으로서 언젠가는 속사정을 털어놓겠다는 그런 표현.

괜찮죠, 아빠?

어느 정도 걸어가니 저 멀리서 무언가를 구경하고 있는 한스가 보였다. 건틀렛을 감추고 그의 이름을 부르며 천천히 걸어갔다.


“짠! 선물!”


건틀렛을 받은 한스는 예술품을 감정하는 것처럼 그것을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이내 그의 얼굴에 스며든 만족감에 기분이 좋아졌다.


“자, 받아.”

“어?”


한스는 내가 준 선물과는 반대로 예쁜 장신구를 준비했다. 설마 챙겨줄 줄은 몰랐기에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왔다.


“어때, 어울려?”

“응, 무척.”


사실 나보다는 에밀에게 더욱 어울릴 것 같은 머리핀인데. 헤헤.


“한스! 술 마시러 가자!”

“예, 그러시죠.”

“좋아.”


최근 들어 술을 자주 마시는 것 같은데, 그만큼 내가 나아졌다는 증거겠지?

더 이상 연기가 아닌 웃음, 그걸 맞받아 웃어주는 한스. 절로 흥얼거림이 튀어나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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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세상의 끝 18.06.29 75 0 13쪽
51 준비 18.06.28 71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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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이야기의 시작 18.06.24 87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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