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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설란 님의 서재입니다.

족쇄를 벗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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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설란
작품등록일 :
2018.05.04 23:33
최근연재일 :
2018.08.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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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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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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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글자수 :
395,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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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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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외전-나탈리

DUMMY


“안녕, 아빠. 안녕, 대장.”


싱그럽게 지저귀는 새들에 화합에 눈을 깬 뒤에 바로 탁자에 놓인 사진에 인사를 한다. 그날 이후 매일 이어오는 습관이었다.


“으음~.”


가뿐하게 스트레칭으로 몸을 조금 푼 뒤 옷을 챙기고 목욕탕으로 향했다. 당연히 지나가면서 인심 좋게 인사를 건네는 주민들에게도 화답해주는 걸 잊지 않으면서 말이야.


“후우.”


따스한 물이 몸으로부터 나른한 한숨을 뽑아냈다. 물기를 머금은 붉은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휘휘 젓다가 옆으로 얼굴을 돌렸다.


“안녕, 에밀.”

“...”


또 저러네.

그녀를 만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입을 앙 다문 채 늘 그림책만 보고 있는 에밀은 마을 사람들과 별로 친해지지 않았다.

처음 그녀를 봤을 때는 정말로 처참한 모습이었지만, 그럼에도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이 굉장히 인상 깊었었다.


“먼저 갈게, 나중에 봐.”


대충 수건으로 몸을 훑고 준비해둔 옷으로 갈아입었다. 좀 수수한가? 에이, 보여줄 사람도 없으니 괜찮잖아?

이제는 익숙해진 동작으로 마을을 누볐다. 허리를 곧게, 발은 씩씩히, 얼굴에는 한 점의 미소를. 다년간의 연구 끝에 나온 활기찬 행동 규범이었다.

지나가는 길에 초록색 눈의 촌장님과 대화 중인 미남형의 금발 남자를 발견했다. 그를 보면 끓어오르는 감정이 허리춤에 있는 검으로 손을 가게 만들었기에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명색이 왕자니까 죽이면 안 되겠지? 미안해, 아빠. 그리고 대장. 복수하기엔 내 역량이 너무 작네. 응? 괜찮아? 헤헤. 대장은 항상 그렇게 말해주더라.

눈앞에 아른거리는 남자의 미소는 내 얼굴의 미소와 굉장히 유사했다. 하긴, 애초에 대장을 보고 따라 한 거였으니까 당연하려나?

촌장님이 세운 마을은 여러 특혜 속에 빠르게 발전을 이뤘고, 입소문이 퍼져 은근히 사람이 모이게 되었다. 그래도 작은 마을이었지만, 그렇기에 좋았다.

늘 보던 주민들에게 잡담을 조금 떨다 보니 어느새 경비 초소로 오게 되었다. 문을 열자 턱에 털이 가득 난 아저씨가 보였다.


“여, 꼬마 왔냐?”

“꼬마라고 하지 마요!”


억지로 끌어낸 분노를 웃으며 넘긴 마르코는 나와 교대하듯이 밖으로 나갔다. 그런 그에게 다시 웃으며 물어보았다.


“보초 서러 가나요?”

“그래, 내 일이잖냐.”

“열심히 하세요.”


마중을 해주고 안으로 들어서자 뱀과 같은 인상의 남자가 보였다. 서로 가식적인 웃음을 보내고는 안부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그러던 와중에 목욕을 끝낸 에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렇게 총 넷, 이 세투스 마을을 지키는 경비대의 총원이었다.

초라하네. 나름 기사직까지 했었는데 말야.

세 사람이 모였지만 내부는 더욱 조용해졌다. 그건 조용히 책을 읽는 에밀, 각종 암기를 점검하는 카를로, 그리고 홀로 수련을 하는 나 때문이었다.

대화소리 대신 목검을 휘두르는 소리와 책장을 넘기는 소리, 무기를 가는 소리가 허전한 공간을 채웠다.

그래도 나는 서로 친해졌다고 생각했다. 침묵을 지키는 에밀, 그리고 억지로 유쾌한 척하는 카를로, 마지막으로 능청스럽게 활기찬 사람으로 둔갑해 티가 나지 않는 내가 모였으니 이 정도면 무난하지.

사실 처음 모였던 날에는 굉장히 어색했었다.


“그럼 가볼게. 가자, 에밀.”


카를로의 말에 에밀이 그림책을 덮고 자신의 활을 등에 메며 일어났다. 그렇게 그들이 떠나자 다시 검에 집중했다.

이게 아닌데. 여기선 좀 더 묵직하게, 여기선 빠르게, 이때는 한 박자 쉬고. 좋아, 한 번 더 하자.

의무적으로 반복할 뿐인 수련이었지만 대장과의 약속을 깰 순 없었다. 괜히 대장의 검격을 따라 해 보며 그와의 추억을 그려보려는 의도도 있었고.

힘드네. 아직도 따라잡지를 못하겠어. 뭐? 난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 헤. 말이라도 고마워.

그렇게 열심히 몸을 움직이다 보니 겨우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어났다. 좋아, 오늘의 수련은 이걸로 끝!

다음은 마을 순찰이던가? 으.


* * *


마을의 안전을 지켜달라는 촌장님의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하기로 한 일 중 하나는 순찰이었다. 별로 좋아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 촌장님이 머리를 숙이기까지 했기에 거부할 수도 없었다.

일 자체도 별로 없었다. 그냥 울타리 좀 바꿔주고, 마을 돌아다니면서 주민들 문제도 해결해주고, 가끔 마수가 늘어나면 잡아주고. 그게 끝이니까.

근데 심심했다. 그야 혼자 다니니까 심심하기는 하겠지.

사실 심심함이 문제는 아니었다. 단지 혼자 있으면 자동적으로 생각이 많아지고, 그 생각의 대부분이 그들에게 쏟아져서 문제였다.

에휴.

애꿎은 땅을 박차며 앞으로 나아가자 중후한 중년이 보였다. 스벤, 그는 유명했다. 스트라스 왕국의 대상단에 사위로 들어간 남자, 그리고 상단주로서 데쿠스 왕국에 가끔 찾아왔던 남자였으니.


“안녕하세요, 스벤?”

“음? 아, 나탈리 양.”

“에이. 그냥 편하게 불러달라니까요?”

“음.”


어색한 듯 헛기침을 하는 스벤에게 화제를 돌려주었다.


“소피는 어디에 있나요?”

“집으로 가면 되네.”

“네, 감사합니다.”

“근데 소피에겐 무슨 볼일인가?”

“아, 약 좀 사려고요.”


대답을 해주며 스벤에게서 벗어나 그의 집으로 향했다. 소피, 주근깨가 있는 갈색 머리의 소녀이자 마을에 있는 유이했지만 이제는 유일해진 약사.

문을 노크해봤지만 당연히 반응은 돌아오지 않았다. 익숙한 일이었으니 그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열자마자 훅 풍겨오는 각종 약초 냄새를 맡으며 밑에서 꼬리를 흔들며 짖는 한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 나탈리!”

“안녕, 소피.”


약간 피곤해 보이는 얼굴의 소피는 나를 탁자로 안내하더니 금방 차를 타왔다. 향기로운 차를 마시며 서두를 꺼냈다.


“소피, 약은 잘 만들어가?”

“네, 다 만들었어요.”

“그래? 그럼 지난번이랑 같은 가격으로 살게.”

“괜찮나요? 좀 비싸지 않아요?”

“상단 가격을 기준으로 한 거야. 괜찮아.”


주머니에서 준비해둔 돈을 꺼내서 그녀에게 건넸다. 마을에서 제일 중요한 약을 제작해주는 소피는 소중하니까 약간 더 얹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마워요.”

“후후.”

“응? 무슨 재밌는 일이라도 있어요?”

“아니, 그냥 처음 소피를 봤을 때가 생각나서. 그땐 스벤 뒤에 숨고 난리도 아니었잖아.”

“으아. 언제적 얘기를 하는 거예요, 나탈리. 이제 좀 잊어주세요...”


창피함에 귀를 발갛게 물들인 소피를 보며 차를 한 모금 떠넘겼다. 그녀를 보면 괜히 더 챙겨주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었다.

그건 아마 대장의 동생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차마 지켜주지 못했던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덧씌워 대신 챙겨주려는 나 자신에게 약간이나마 경멸감이 생겼다.

괜찮으니 걱정마라고? 정말, 대장은 항상 너무 긍정적이라서 문제야.


“나탈리?”

“왜?”

“어, 잠깐 멍해진 것 같아서요.”

“아무것도 아니야. 근데 요새 숲은 어때? 마수는 나와?”

“아뇨, 카를로랑 에밀이 열심히 잡아주고 있어서 그런지 안 나와요.”

“그래도 조심해. 가끔 튀어나오니까 말이야. 그럴 땐 알려준 장소로 바로 도망가, 알았지?”

“네. 그리고 한스도 있어서 괜찮아요. 그치, 한스?”


-멍!


“듬직한걸?”

“그쵸?”

“그럼 이제 가볼게.”

“네, 조심히 가세요.”


소피가 준비해준 약을 챙겨 들고 그녀의 집에서 나왔다. 어느새 내려온 석양이 마을을 비춰 붉게 물들였다.

경비 초소로 돌아가자 마르코와 카를로가 한창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언제나 하던 아내 자랑을 계속하던 마르코가 날 보자 또 입가를 올렸다.


“잘 다녀왔어, 꼬마야?”

“꼬마라고 하지 말라니까요!”

“흐흐. 미안, 미안. 근데 오늘 저녁은 어쩔 거야? 한잔할까?”


그의 말에 내 마음을 점검했다. 웃음으로 가득 찬 바깥쪽을 드러내자 물기로 가득한 안쪽이 보였다. 음, 오늘도 글렀네.


“아뇨, 오늘은 쉴게요.”


술은 즐거울 때 마셔야 하는 거니까. 그렇지, 대장?


“뭐? 그럼 카를로, 너는?”

“저도 할 일이 있어서요.”

“으으. 이러기냐, 카를로?”

“다음에 마십시다~.”


능청스런 카를로의 대답에 마르코가 눈을 희번득 뜨며 다음 타겟을 물색했다.


“그럼 에밀 너는!”


마르코의 간절함이 들어간 목소리에도 아량곳하지 않고 에밀은 고개를 저었다. 곧 마르코에게서 우렁찬 절규가 터져 나왔다.


“그렇게 좋아하시는 플로라랑 같이 먹으면 되잖아요?”

“아니, 좋아하지. 사랑하고 있지. 물론. 근데 말이다? 술을, 술을 못 먹게 한다고! 너희랑 회식한다는 핑계가 없으면 몇 모금 못 마신다니까?”

“아하.”

“그러니까 좀 도와주라.”

“내일 봐요, 마르코.”

“내일 봐요.”

“...”

“얘들아? 얘들아!”


등 뒤에서 들리는 배경음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수수한 가구가 놓여 혼자 살기에 좋은 집은 쓸쓸하게 나를 반겨주었다.


“돌아왔어. 아빠, 대장.”


아침에 나눈 인사를 끝맺고 침대에 누웠다. 굳이 사진을 자세히 보진 않았다. 어차피 보지 않아도 눈에 훤하니까.

오늘도 좀 긴 밤이 될 것 같네.


* * *


중요한 것이 빠져버린 내 삶이었지만, 숨을 쉬니 움직였고, 배고프니 밥을 먹었다. 가끔은 리노에게서 간식을 얻어내 그런 기분을 달래기도 했고.

하지만 쳇바퀴 도는 생활은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사실 규칙적인 걸로 따지면 기사일적 생활이 제일 심했겠지만, 그때는 버팀목이 있었고, 지금은 없었다.

억지로 대장을 따라 하며 웃고, 아빠의 든든함을 가장해 보기도 하고, 대장이 휘두르던 검을 따라 휘둘렀다.

제일 힘든 시간은 사람들과 마주칠 때. 그나마 나은 시간은 에밀과 카를로 그 둘과 함께 있을 때. 유쾌한 척이 서투른 카를로와, 애초에 유쾌하지조차 않은 에밀이었지만 조용했기에 다른 이들보다 나았다.

그런 내 삶은, 그리고 우리들의 삶은 어느 날 한순간에 바뀌게 되었다.


“반갑습니다. 오늘부터 마을에서 같이 살게 된 한스라고 합니다.”


리타를 연상시키는 검은색의 눈과 머리. 그리고 절대로 잘생겼다고는 할 수 없는 외모. 그럼에도 그의 눈동자를 보고 있자면 어째서인지 끌려갈 것만 같았다.

자연스럽게 리노 다음으로 서 있던 내가 인사를 하자 그가 적당히 내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야말로 적당히.


“예. 반갑습니다.”


소피처럼 내성적인 것도 아닌, 그렇다고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닌 중간쯤에 위치한 그의 기묘한 응대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거리가 벌어진 느낌이랄까?

마을의 관습대로 한스를 위한 성대한 축제가 열렸다. 사실 한스는 핑계고 다른 사람들도 쉬자는 의도가 조금 더 컸지만.

소피에게서 그의 행동을 들으면서도 한스와 마르코가 나누는 대화에 절로 귀가 기울여졌다. 마르코는 지독한 아내 자랑으로 다들 기가 질리는 편인데 어떨까?


“오~. 그렇습니까?”

“이야, 좋은데요?”

“그건 다음에 한번 맛보고 싶습니다.”


그의 눈을 보면 영 관심이 없어 보이는데, 대화 소리만 들으면 굉장히 집중하는 듯해 위화감을 불러일으켰다. 신기하네.

그리고 소피가 알려주는 라트라를 잡은 솜씨도 예사롭지 않았다. 어디, 한번 말을 붙여볼까?


......


눈을 몇 번 깜빡이고 한스에게 다가가 라트라를 잡은 경위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냥 잡았습니다.”

“진짜?”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그게 끝이죠.”


무슨...

라트라는 비록 마수 중에서 약한 편에 속한다고 해도 엄연히 마수였다. 그들이 내뿜는 마기에 직면한 사람은 절로 몸이 약간 경직되고, 심지어 라트라 스스로의 힘도 제법 세서 첫 조우에서 돌로 쳐서 잡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단련돼있는 사람인가 싶었지만, 몸은 근육이 없어 그야말로 전형적인 일반인의 것이었다. 으음, 으음.


“한스, 경비대 일 해보지 않을래?”


그 말이 튀어나온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혼자 있는 게 심심해서? 아니면 경비대의 일손이 모자라서?

제안을 받은 한스는 흘끔 스벤을 보며 의견을 묻더니 나에게 긍정적인 대답을 주었다.


“그럼 술이나 하자! 신입 축하주야.”


아직도 마음이 울적했지만, 그렇다고 이럴 때까지 빼고 싶진 않아 입가를 끌어올리며 유쾌하게 다가갔다.


“좋습니다.”


좋아. 달려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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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세상의 끝 18.06.29 75 0 13쪽
51 준비 18.06.28 71 0 13쪽
50 이야기의 시작(2) 18.06.27 84 0 13쪽
49 이야기의 시작 18.06.24 87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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