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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설란 님의 서재입니다.

족쇄를 벗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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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설란
작품등록일 :
2018.05.04 23:33
최근연재일 :
2018.08.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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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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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글자수 :
395,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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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2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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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부-딱 맞는 인재(2)

DUMMY

회의에서 넬다가 보여준 시원스러운 모습에 반하지 않을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 자신감과 포부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으니까. 그런데...


“부탁드립니다. 도와주십시오...”


그 넬다가 지금 내 앞에서 넙죽 엎드리고 있었다. 그에 그녀에 대한 기대감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러니까, 기선제압을 위해 막 질렀던 말이라고요?”

“아니, 그, 옆에서 워낙 야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럼 한 달이란 구체적인 시간은 뭡니까?”

“어차피 노예였던 사람들이니 시간을 얼마나 주던 의미가 없다고 여겼지. 그래서 정신이라도 다잡으려고 한 달을 불렀다.”

“으흠.”


일리 있는 말이었다. 미관상의 이유로 살아남은 노예들이 다수였으니,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잘 싸우지도 못하지 싶었다.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싸우는 방법을 가르쳐다오.”


안타깝게도 내 싸움 방식은 목숨을 도외시한 것인데, 그걸 가르쳐줘도 되려나? 당연히 안 될 것 같은데. 일단 실력이라도 봐야겠다.


“그럼 적당히 한번 덤벼보십쇼.”


인간으로 변한 뒤 넬다가 들기에 괜찮을 만한 칼을 손에 쥐여주었다. 그를 굳게 잡는 넬다를 보며 어깨를 몇 번 쳐주고 그녀와 거리를 벌렸다.

넬다는 심호흡을 몇 번 하더니 나를 또렷하게 직시했다. 그렇게 발을 한 발자국 옮긴 그녀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마법은 당연히 안 쓰겠지?”

“전 원래 박투를 선호합니다.”


그 말에 안심한 넬다가 드디어 내게 달려들었다. 생각보다 깔끔하게 휘둘러지는 검격을 손으로 쳐내자 넬다가 입술을 가득 짓씹었다.


“크읍.”


너무 세게 친 건지 아니면 그녀의 근력이 약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힘을 조금 더 줄이기로 마음먹었다.

자세히 보니 넬다의 손이 덜덜 떨려 약간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군소리 없이 다시 한번 검을 치켜들어 엉성히 자세를 취했다.

찌르기로 들어오는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발을 걸어 한 번, 우에서 좌로 베어오는 것을 몸을 굽혀 피한 뒤 옆구리를 강타해 두 번, 머리를 노리고 내리치는 검을 피하며 등을 쳐 세 번.

짧은 시간 동안 세 번이나 쓰러진 넬다는 아픈 부위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때 다시 일어서려는 그녀를 손을 들어 제지하며 입을 열었다.


“이만하면 된 것 같습니다.”

“어떻지?”


솔직히 말하면 별로, 좋게 쳐줘도 병사 수준도 되지 않았다. 이래서야 가망성이 안 보이는데.

일단 다시 독수리의 몸으로 돌아온 뒤, 날갯짓으로 그녀의 몸을 치유시켜주며 답변을 내었다.


“힘들 것 같습니다. 영 그렇네요.”

“역시 그런가.”

“예전엔 뭘 했었습니까?”

“노예가 되기 전에?”

“네.”

“농사나 품앗이나 하고 있었지. 그러다 영주 한 놈 잘못 만나서 이렇게 됐고.”

“그렇습니까?”

“내가 좀 예뻐야지. 더럽게 밝히는 놈이었어.”

“그 영주는 아직 살아있습니까?”

“왜, 죽여주려고?”

“아뇨, 죽일 수 있게 해드리려고요.”


그 차이를 깨달은 넬다가 은은하게 웃었다. 대화에 담기지 않은 얘기가 그 미소에 담겨져 있는 듯해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사실 그녀의 손가락에는 선명한 반지의 흔적이 남아있어, 굳이 그 얘기를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약간의 휴식이 끝난 뒤 넬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한스. 아무리 생각해도 내겐 전투의 소질이 없는 것 같다.”

“걱정 마세요. 소질이 없어도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떻게?”

“제가 있으면 당신은 안 죽잖아요?”

“그건...그렇지.”

“결국 안 죽는 놈이 이기는 겁니다.”

“그건 한스 너라서 그런 거 아닌가?”

“저라고 뭐 잘 싸우는 줄 압니까?”

“...그럼 네가 싸우기 버거운 상대라서 네 공격이 들어가지 않을 경우엔 어떻게 할 거지?”

“우선 먹음직스럽게 머리를 내밉니다.”

“머리를?”

“그럼 상대방은 넙죽 제 머리를 잘라내겠죠. 그럼 다시 살아나서 아무 부위나 타격을 가합니다. 얕아도 괜찮아요. 그렇게 누적시키다 보면, 난 살고 적은 죽게 될 겁니다.”

“혹시 말인데, 미쳤다는 소리 자주 듣지 않나?”

“잘 아시네요.”


고통을 완전히 제외시켜버린 나만의 방식에 넬다가 경악스러워했다. 그것을 보며 소소한 즐거움을 수확한 뒤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자, 그럼 다음 단계로 가볼까요?”

“다음 단계?”

“좀 더 괜찮은 선생님을 모셔올 겁니다.”


* * *


-귀찮아.


감정이 다 사라졌다면서, 그놈의 귀찮음은 왜 사라지질 않냐. 에밀아.

대타로 뽑은 이번 교관은 굉장히 넬다에게 적합했다. ...실은 그녀 말고는 할 만할 사람이 없었다. 나탈리의 유능함을 이런 곳에서 깨달으며, 넬다에게 설명을 해줬다.


“저는 잘 가르쳐주질 못하고, 또 제 방식은 당신이 따라 할 수 없을 겁니다. 대신 여기 훌륭한 교관님을 모셔왔으니, 그녀에게 배워주세요.”

“훌륭한?”


아니, 에밀이 어때서? 무표정한 얼굴로 심리에서부터 이기고 들어가며, 나른한 듯하지만 언제든지 싸울 준비가 된 자세, 그리고 노련함까지. 마음가짐만 빼면 최고의 선생이었다.


-한스, 단검 줘.


그녀의 요청대로 단검을 쥐여주자 에밀이 그것을 몇 번 휘둘러보며 사용감을 확인했다. 이윽고 준비가 끝난 에밀이 넬다에게 시선을 돌렸다.

한동안 마주 보던 둘은 동시에 땅을 박차고 나아갔다. 선공은 넬다, 보다 긴 리치를 이용하여 에밀을 내쫓아버리듯이 검이 휘둘러졌다.

그것을 굳이 단검으로 흘려버린 에밀이 다른 손으로 매끄럽게 넬다의 손목을 잡아 비틀었다. 그러자 약해진 손아귀 힘에 검이 바닥에 떨어졌고, 그 틈을 타 에밀이 단검을 넬다의 목에 가져다 댔다.

에밀은 예상보다 더 근접전을 잘했다. 다만 내 뇌리에 남아있는 그녀의 활 솜씨가 어쩐지 에밀의 근접 전투를 약간 어색하게 보이게 했다.

아마 에밀은 거리를 벌리며 활로 견제를 하는 타입이 아닐까?


-너무 성급하게 휘둘러. 한번 베이면 끝이야. 신중하게 결정해.

“괜찮다. 한번이 끝이 아니니까.”

-...뭐?

“내겐 한스가 있으니까.


설마 내가 말한 대로 할 생각이냐? 나도 농으로 던진 말이었는데.


그 뒤로 한 번의 대련 후 피드백 시간인 이어졌다. 대련이라기엔 그저 맷집을 키우는 것 같았다. 게다가 마구잡이로 덤벼드는 넬다 때문에 주변이 피로 흠뻑 젖어버려 주기적으로 그녀를 치료해야만 했다.

그렇게 상당한 시간을 훈련에 할애하여 에밀은 땀방울이, 넬다는 핏방울이 가득해질 무렵, 드디어 에밀이 종료를 알렸다.

힘이 없어져 털썩 주저앉는 넬다와 멀쩡해 보이는 에밀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며 부리를 재잘댔다.


“수고하셨습니다.”

“고맙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 나만 훈련받아도 되는 건가?”


...댁처럼 훈련하면 다들 나가떨어질 텐데. 일단은 모범적인 답안을 내놓았다.


“넬다. 말했다시피 당신은 앞으로 인간 종족을 대표하게 될 겁니다.”

“다시 들어도 정말 얼떨떨한 소리다. 왜 하필 나지?”

“그야...”


딱 봐도 그럴만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좀 그래서 돌려 표현하기로 했다.


“자신감,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끈기, 손에 피를 묻혀도 괜찮을 만한 냉철함까지 지녔으니까요.”

“내가?”


금칠이 너무 심했나? 못 미더운 얼굴로 날 쳐다보는 넬다에게 고개를 한번 끄덕여준 뒤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


“어쨌든 앞으로 당신은 여기 있는 인간을 책임지게 될 겁니다. 그것을 위한 연습이라고 생각해 주시고, 다른 사람들을 이끌어 보세요.”

“그게 될까? 삶에 대한 갈망도 의욕도 없는, 정말로 인형에 불과한 자들이던데.”

“그건 당신에게 달렸죠.”

“...알았다. 한번 해보도록 하지.”


내가 보내는 간절한 눈빛을 본 넬다가 믿음직스런 얼굴로 수긍을 했다. 곧 엉덩이를 털며 일어선 그녀가 바로 이곳을 나가버렸다.

혹시 지금 바로 시작하려는 거냐? 말려야 하는 거 아냐?


-한스.

-응?

-왜 넬다를 대표로 세운 거야?

-같이 일해 줄 사람이 늘어야 우리가 편해지지 않겠어?

-그거 말고, 진심으로.


왠지 기분이 이상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시선을 돌리자마자 따갑게 옆을 강타하는 에밀의 시선에 결국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잘 모르겠네. 많은 일을 당했음에도 단단한 의지를 지니고 있는 게 눈에 띄어서? 아니면 이를 악문 그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

-어쩌면, 과거의 우리와 비슷한 일을 당해서 도와주고 싶었을 수도 있고.

-일을 시키는 게?

-복수를 도와주는 거지.


약간 서늘하게도 들리는 그 말에 에밀이 슬프게 날 쳐다보았다. 왜 그래? 난 멀쩡하구만.


-한스, 어쩌다 그렇게 변한 거야?

-글쎄. 좀 망가지긴 했지?


그 말에 에밀이 말없이 나를 포근하게 안았다. 왠지 진짜로 에밀에게 길러지는 것 같아 이상한 기분이 들어 아무 말이나 던져버렸다.


-넬다가 어떻게 하고 있나 보러 갈까?


그런 내 말에 에밀이 슬며시 자신의 어깨 위로 나를 편안하게 올렸다. 늘 있던 자리였지만, 지금은 조금 더 따스해진 착각이 들었다.


* * *


에밀과 함께 넬다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때아닌 눈물바다가 펼쳐지고 있었다. 눈치 좋게 에밀이 몸을 숨겨주어 그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언니. 저, 저도 그 새끼한테...”

“안다. 나 또한 당했으니까.”

“누나. 전...”


자애롭게 모두를 쓰다듬던 넬다는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자 굳건한 표정으로 서두를 뗐다.


“이곳에 있는 모두는 차마 입에도 담기 힘든 일들을 당해왔다. 그 과정에서 정신이 나가버린 사람도, 자살해버린 사람도 있었지.”

“하지만 생각해 봐라. 우리가 그토록 괴로워할 때, 과연 그들이 어떠한 양심의 가책이라도 가지고 있었던가? 아니지, 오히려 낄낄대며 조롱을 날릴 뿐이었지.”

“억울하지도 않나? 눈에서 피가 흐를 정도로 증오가 맺히는 데도, 그것을 해소하지도 못하는 것이.”

“그전까지라면 힘이 없어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 우리는 한스를 만났다.”


...저요?


“고질병마저 가벼운 날갯짓으로 털어버리고, 내상이 심해 죽었던 이에게 생명을 되찾아준 그가 있다면, 죽음은 우리의 방해물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왜 맞서 싸우려 하지 않는가? 고작 몸이 베이는 그 고통이 두려워서?”


그 말과 함께 옆에 차고 있던 칼로 자신의 복부를 세게 찌른 넬다는 힘이 풀린 무릎을 억지로 끌어올리며 다음 대사를 던졌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복부이니만큼 당장에 죽지야 않겠다만, 식은땀을 흘리는 그녀를 서둘러 치료해주었다. 놀란 표정으로 봐선 내가 있는 줄도 몰랐던 거 같은데. 진짜로 한번 죽으려고 한 거야? 정말로?

의도치 않은 연출을 뽐낸 나를 더욱 치켜세우며 넬다가 말끔한 자신의 복부를 그들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보아라. 그가 함께라면 우린 죽지 않는다. 그러니 함께 싸우자. 우리의 부모, 친구, 자식을 유린한 그 새끼들의 목에 칼을 박아넣자.”

“넬다 씨..,”

“알겠어요. 언니의 말씀이 맞아요. 우린 앉아서 울기만 할 게 아니라, 일어서서 그들과 맞서야 했어요.”

“넬다 씨, 부디 우리를 이끌어 주세요.”

“알겠다. 난 항상 너희들의 앞에서 싸울 것이며, 너희들보다 먼저 칼에 찔리고, 너희들보다 먼저 죽을 것이다.”


미친 것 같은 그녀의 대사에 사람들이 마찬가지로 미친 반응을 터트렸다. 끝끝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이들이 넬다의 이름을 크게 부르기 시작했다.


“와아아!”

“넬다! 넬다! 넬다!”


좀 무서운데? 당신들 괜찮아요? 혹시 세뇌되거나 그런 건 아니죠?


* * *


광란의 밤이 지나가고, 넬다의 주도하에 정말로 그녀의 미친 훈련을 사람들이 따라 하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우는 소리를 내는 이들에게 넬다가 솔선수범으로 칼침 한 대를 더 맞으며 말했다.


“고작 이 정도냐! 우리에겐 기술도, 능력도 부족하다! 그나마 내세울 거라곤 악밖에 없으면서 벌써 쓰러지면 어떡하나! 일어서!”

“언, 어니. 살려주세여...”

“이 주 안으로 고통에 익숙해지고, 남은 시간동안 맞으면서 적을 베어내는 걸 연습한다. 준비해!”


그런 광경을 지켜보던 에밀이 내 부리를 꽉 쥐었다. 아니, 내 잘못이 아니라... 다 본인 선택인데요...


-한스, 조만간 상담 좀 해. 반드시 예전의 너로 돌려놓을 거야.

-으으읍.

“따라 해! 우린 죽지 않는다!”

“우..우린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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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세상의 끝(2) 18.06.30 72 1 13쪽
52 세상의 끝 18.06.29 75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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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이야기의 시작 18.06.24 87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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