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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설란 님의 서재입니다.

족쇄를 벗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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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설란
작품등록일 :
2018.05.04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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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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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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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2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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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이야기의 시작(2)

DUMMY

한동안 어이없다는 듯 날 쳐다보던 가온은 결국 나와 함께 머리를 싸매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리더니까 이런 계획 같은 건 잘 세우겠네?”

“전장에서의 통솔은 괜찮아도 이런 지능적인 문제는 내 분야가 아니다.”

“...일단 우리의 전력을 확인해 볼까?”

“그게 무슨 말이냐.”

“너도 엘렌에게서 힘을 받았다니까 알지 않아? 엘렌의 힘, 그러니까 프렉스가 다루는 힘은 기본적으로 그 한계가 정해져 있어. 내가 부활의 힘을 받았듯이, 프렉스 또한 엘렌에게서 이 세상을 관리할 힘을 받았어.”

“그래서 이기지 못한 건가.”

“당연하지. 이 세상 안에서 프렉스는 무적에 가까운 존재니까.”

“그럼 어떻게 그놈을 잡을 거냐.”

“흐하하. 그가 가지고 있는 힘은 그의 것이 아니야. 엘렌은 몰라도 말이지.”

“알아듣게 말을 해라.”

“넌 네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 거야?”


이 힘을 사용하다 보면 본능적으로 할 수밖에 없을 텐데.


“그냥 이렇게 쓰지. --!”


가온이 또 한 번 검에서 빛을 뿜어냈다. 허공으로 향해가는 그것을 보다가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니까 무슨 느낌 없어?”

“뭔 소릴 하는 거냐? 그냥 쓰면 되는데.”

“아오. 자세히 좀 말해 보라고!”

“말했듯이 우린 시스템을 기반으로 능력을 사용한다. 게임처럼 명시된 수치를 보고 능력을 활용하고, 시스템에 기록된 스킬만을 활용할 수 있다.”

“어.. 자세히 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냥 엘렌이 준 능력대로 따라간다고?”

“...그런 느낌이지.”


으음. 이러면 내 예상과 달라지는걸.

상당히 심각해진 내 표정에 가온이 살짝 뻘줌해하며 조심히 물어보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냐?”

“넌 이 능력, 그러니까 권한에 대한 고찰을 좀 더 했어야 했어. 그저 따라가기만 하는 걸로는 절대로 상위 권한을 지닌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큼...”

“아, 미안해.”


그의 사정도 생각 못 하고 안타까움에 조금 심하게 말한 것을 사과했다. 약간 진정이 된 뒤에야 나는 가온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예를 들자면, 네가 어느 정도의 권한을 지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부활에 관련된 모든 권한을 다룰 수 있어.”

“그럼 다른 존재를 마음대로 살릴 수가 있단 소리냐?”

“그렇지. 지금 널 죽이고 다시 살릴 수도 있고.”

“대단하군.”


대단해 보이지만 그게 끝이지. 프렉스에 대항할 만한 힘은 아니었다. 애초에 프렉스에게서 양도받은 권한이었으니까.


“하지만 턱없이 부족해. 그래서 네가 중요하다는 거야. 새로운 권한을 지닌 네가 말이야.”

“으음. 그럼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여태까지 해오던 거지만, 권한에 대한 연구부터 하자.”


* * *


권한. 그것은 엘렌이 만든 이 세상을 꿰뚫는 힘이었다. 프렉스조차도 그녀에게서 모든 권한을 물려받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이 세상을 거머쥐기에 충분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서 일정 부분의 권한을 물려받았고, 그것에 대한 충분한 고찰을 끝냈다. 그러나 나의 한계는 명확했다.

남의 목숨을 살릴 수는 있지만 뺏을 수는 없고, 이러한 능력을 다른 형태로 변화시킬 수도 없다.

그러한 매너리즘에 빠진 상태에서 가온이 나타났다. 그는 엘렌에게서 직접 권한을 받은 자이며, 심지어 그들 중 최고 수준의 힘을 지닌 이였다. 물론 자칭이지만.


“자, 자칭 최고 헌터님. 고통은 익숙하시겠지?”

“무슨 소리냐.”

“무슨 소리긴. 권한을 끝까지 파헤쳐보자고.”


살짝 뒷걸음질 치는 그의 어깨를 붙잡고 손을 깊숙이 내장에 틀어넣었다.


“크헉.”

“끌어내 봐. 네 힘을 끝까지 끌어내 보라고!”


잔뜩 얼굴을 찌푸리는 그가 또 다시 입을 열며 능력을 시전할 기미를 보였다. 그것을 다른 손으로 틀어막으며 좀 더 다그쳤다.


“주어진 길로만 가면 발전할 수 없어. 너도 이 지겹고 역겨운 일을 끝내고 싶은 거 아냐? 자!”


집어넣은 손을 더욱 비틀며 안을 마구 망가뜨렸다. 그러자 가온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나며 살기를 띠었다. 자식, 성깔 있네.

하지만 그렇게 한참을 낑낑대던 그는 끝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그래, 한 방에 성공할 거란 기대는 진작에 접었지.

손에서 번득이는 기운이 붉게 빛나며 가온의 몸으로 흘러갔다. 그러자 그의 몸이 요동치다가 곧 규칙적인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컥. 쿨럭. 쿨럭.”


리듬감 넘치게 피를 토해내던 가온이 멀쩡해진 자신의 몸을 더듬다가 이내 고개를 들어 날 노려보았다.

확실히 아직 젊은 피긴 하구만. 홀홀.


“걱정 마. 나도 몇천 번 정도 가서야 내가 가진 권한의 끄트머리를 겨우 잡았으니까.”

“...뭐라고?”

“못 들은 척하지 마. 인마. 선배로서 잘 이끌어 줄 테니까.”

“잠, 잠깐.. 커헉.”


* * *


가온은 확실히 감각이 뛰어난 자였다. 내가 무려 수천 번의 시도 끝에 얻은 실마리를 겨우 몇 백 번으로 잡았으니까.


“...이제 끝난 건가?”


나에게 물어보는 가온의 손에 쥐어진 검에는 눈부신 광채가 스며들어 있었다. 그가 많은 죽음 끝에서 얻어낸 권한의 사용 방법 중 하나였다.


“좋아. 이제 우린 첫 발걸음을 내디딘 거야.”

“...시발.”

“흐하하. 근데 문제가 있어.”

“무슨 문제?”

“이제 시간이 없어. 이미 마수의 밤은 찾아왔고, 각 나라는 거의 멸망 직전이야.”


아마 그는 몰랐을 것이다. 끔찍한 고통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와중에 시간을 파악하긴 힘들 테니까.

그런 내 말에 가온이 나에게 검을 거누려고 팔을 움직였다. 그를 가볍게 피해 주니 그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날 째려보며 다그쳤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지?”

“어허, 이 바보 같은 녀석아. 네가 그 힘으로 밖에 가서 날뛰면 프렉스에게 죽임을 당할 뿐이야.”

“어차피 네가 살릴 것 아닌가?”

“그리고 다음부터 프렉스는 너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집중 단속을 하겠지. 그리고 넌 매번 프렉스의 감시하에 있을 거고. 그러면 끝이야. 내가 왜 여태 그의 밑에서 고개만 숙이고 있다고 생각하냐? 응?”


잠시 울컥하던 가온이 내 말에 다시 침착함을 되찾았다. 그런 그의 굳건한 팔을 내려 검을 집어넣게 한 뒤 조용히 말했다.


“자, 생각해 보라고. 우리의 가진 장점이 뭘까?”

“...이 모든 일들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

“그래. 그 말은 곧 들키지만 않으면 우리에겐 무수한 기회가 있다는 것과 매한가지란 소리야. 알겠지?”

“그동안 죽어나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 거냐.”

“우리가 잡히면 평생 그 사람들은 죽어나가겠지. 그걸 막으려고 우리가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거 아니겠어?”

“...알았다.”

“그럼 다음번에도 이곳에서 보자.”


그렇게 말해주고 나는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뒤에서 가온이 뭐라고 말하며 나를 불렀지만 간단히 무시해주었다.

급하게 한참을 뛰다가, 중간에 피폐해진 거리 중 한 군데에 멈추어 섰다. 그러자 허공에서 균열이 일어나며 황금색의 눈동자가 보였다.


(안 그래도 찾아가려고 했습니다, 아버지.)

(...)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던 프렉스가 눈길을 돌리자 등 뒤로 땀이 솟아났다. 그를 억지로 떨쳐내며 균열 안쪽으로 몸을 던졌다.


* * *


다시 돌아온 세계. 아무것도 모르며 살아가는 사람들. 기만 속에 다시 나는, 우리는 약간의 평화를 얻었다.

약속대로 가온은 드코 산맥으로 돌아왔고, 우리는 다시 권한에 집중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우리는 서로의 권한을 합치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었다.

분명히 연구는 진전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속도는 끔찍이도 느렸다. 적어도 이 세계가 한번 멸망해야 약간의 진척이 있었으며, 심하면 몇 번이 멸망하더라도 변화가 없던 경우도 있었다.

그 수많은 시간 속에서 가온은 나와 같이 마모되어 갔다. 나는 그가 어떻게든 초반에 보여주었던 열정, 희망, 끈기를 놓지 않도록 노력했지만 결국 그는 점차 자극에 둔해져 갔다.

심지어 그는 시간이 돌아갈수록 그가 가졌던 권한을 조금씩 잃어갔다. 그리고 권한이 조금씩 약해질수록, 그는 기억을 잃었다.

그렇게 잃은 기억들은 그를 괴롭혔다. 가온은 복잡하게 얽혀 두서없이 튀어나오는 기억에 항상 찌푸린 얼굴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늘 그렇던 가온의 얼굴이 멍하게 바뀐 오늘, 난 우리가 도박을 해야 함을 직감했다.

아무렇게나 누워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던 가온은 한참이 지나도 조금의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조심히 말을 건넸다.


“가온.”

“...”

“가온.”

“...”

“가...”

“그건 날 부르는 건가?”


딱딱하고 메마른 목소리. 변화 없이 일정한 어조가 귀를 툭툭 쳤다.


“설마 네 이름도 까먹은 거야?”

“날 아는 거냐?”


그럴 리가. 설마 여태 기억하지 못해야 할 것들을 기억한 반동으로 권한을 잃어버린 지금 자신의 기억까지 잃어버린 건가?

무심코 꼬리를 말았다가 다시 풀었다. 내가 말을 멈추자 다시 멍하니 하늘을 보는 가온. 그런 그를 잠시 내버려 두었다. 그가 제정신을 되찾을 때까지.


* * *


“기억은 난다. 다만 곳곳이 어둡게 칠해져 명확하지 않을 뿐이다.”

“그렇단 말이지...”

“우리가 도대체 얼마나 이 시도를 하고 있는 거지?”

“천년? 이천년? 글쎄.”


그가 심각하게 무너지는 만큼, 나 또한 정상은 아니었다. 그저 점점 희망을 잃어가는 가온 때문에 티를 내지 못했을 뿐.


“가온. 이제 승부수를 띄워야겠다.”

“무슨 승부수 말이냐.”

“네가 기억을 잃는 원인을 생각해봤어. 너는 엘렌 때문에 강제로 이곳에 들어왔지. 즉, 넌 원래 이 세상에 존재해선 안 돼. 애초에 이 세상에 거주할 권한이 없다고.”

“그 말은..?”

“넌 네가 가진 힘을 네가 존재하는 데 소모하고 있는 거야. 그 힘이 많았을 때는 괜찮았겠지만, 우리의 목적을 위해 둘 다 힘을 많이 쓴 상태잖아? 그러니...”

“그래서 이렇단 말이지. 흠.”


그와 동시에 가온이 주위의 검을 들고 휘둘렀다. 본래 깔끔한 궤적과 함께 앞의 모든 것을 집어삼켜야 할 검은 중간에 툭 떨어져 버렸다.


“아마 검을 휘두를 권한마저 사라진 것 같다.”

“뭐? 그럼 계획이 틀어지잖아?”


가온은 내게 한번 으쓱이더니 우리의 곁에 있는 알에 시선을 주었다.

우리가 지금껏 쌓아온 노력의 결실. 백지인 상태에서 하나씩 서로의 권한을 섞어 만든 새로운 생명.

다만 많이 부족했다.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의 생명을 보호하면서 권한을 나누는 것이 매우 더뎠기 때문이었다.


“후. 별수 없지. 이제 우리의 생명을 도외시하고 퍼부을 수밖에.”

“...진심이냐?”

“넌 기억을 잃어서 백치가 되고, 프렉스는 점점 내가 수상한 짓을 한다고 눈치를 채고.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지쳤어.”

“...”

“지쳤다고. 네가 반병신 되는 동안 난 뭐 멀쩡한 줄 아냐? 그동안 억지로 버텨봤는데, 안 되겠다. 이 새끼야.”

“...미안하다.”

“너도 동의하는 거지?”


가온의 굳게 감긴 눈이 떠지고, 그 안에 담긴 오랜만에 보는 열의에 나는 비로소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좋아, 시작하자.”


내 말에 가온이 손을 알에게 뻗어 능숙하게 그의 권한을 알에게 심어냈다. 말 그대로 생명을 연료삼아 타오르는 그 힘을 보며 나도 알에게 나의 권한을 보냈다.

내 근간이 부서지는 느낌. 상당한 고통이 내게 엄습해서 간만에 눈썹이 찌푸려졌다.

바탕은 가온의 권한, 그 위를 마수인 내 권한으로 감싼다. 게임 시스템이란 것으로 보정을 받아 목표를 수월하게 이룰 수 있도록 만들고, 도중에 죽는 것을 방지해준다.

작업이 거의 다 끝나갈 때쯤 비교적 몸이 약한 가온이 먼저 쓰러졌다. 기울어지는 그의 몸을 받아 우리의 권한으로 약간의 조정을 가했다.

외지인이던 그가 이 세상에 머물 수 있는 권한. 그리고 약간 남아있는 가온의 권한을 그에게 심어주었다.

그리고 그만큼 모자라진 권한을 내게서 뽑아냈다. 권한뿐만이 아니라, 내 목숨, 내 자아, 내 기억까지도.

이게 내 마지막 도박이었다. 원래라면 권한을 잃어도 다음 세상에서 살아날 수야 있겠다만, 그건 의미가 없었으니까.

흐.

기울어지는 시야로 어둡게 빛나는 알의 모습이 보였다. 반질반질한 알을 더 보고 싶었지만, 눈꺼풀이 알아서 시야를 가려버렸다.

예상대로라면 남의 권한을 뺏을 수 있는 최초의 존재가 탄생하겠지만, 결과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그래도 프렉스 니 새끼 뒤통수는 세게 후려칠 수 있겠지. 흐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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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세상의 끝(2) 18.06.30 71 1 13쪽
52 세상의 끝 18.06.29 75 0 13쪽
51 준비 18.06.28 71 0 13쪽
» 이야기의 시작(2) 18.06.27 8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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