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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설란 님의 서재입니다.

족쇄를 벗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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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설란
작품등록일 :
2018.05.04 23:33
최근연재일 :
2018.08.08 19:00
연재수 :
70 회
조회수 :
10,408
추천수 :
74
글자수 :
395,495

작성
18.07.1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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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외전-형님

DUMMY

-자, 확실하게 묻혀.

-으. 싫은데.

-그래도 해. 빨리.


앤은 혹여나 누가 바로 올까 봐 주위를 둘러보며 내게 오물 덩어리를 가득 묻혀놓았다. 그것 때문에 안 그래도 더러웠던 흰색 털들이 더욱 시꺼멓게 변해버려 내게서 자신감을 앗아갔다.

으으. 기분 나빠.

나뿐만이 아니라, 주위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모두 자신의 귀, 꼬리, 아니면 전신에 오물을 묻혀 본연의 색을 감췄다.

모두가 제대로 더럽혀진 것을 확인한 앤은 심호흡을 몇 번 하더니 가지런히 무릎을 모으고 앉았다. 곧 골목 저편에서 다양한 보폭 소리가 들려왔다.

또 왔어.

그 거친 보폭에 모두의 털이 살짝 곤두서고, 꼬리가 축 처져갔다. 이 생활 중 제일 끔찍한 시간, 하지만 이곳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필요한 시간이 찾아오고 있었다.

잠시 후 험상궂은 사내 몇몇이 얼굴을 비췄다. 그들의 신체 곳곳에 있는 무기가 우리의 기를 좀 더 억눌렀다.


“---”


그들 중 두목이 항상 그렇듯이 앤에게 말을 건넸다. 그의 걸걸한 목소리가 내 귀를 긁어 토악질이 날 것 같았다.


“---”


우리 중 유일하게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는 앤이 그에게 대답하는 동안, 두목 뒤의 인간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 ---. --.”


아무리 말을 이해할 수 없어도 그들이 우리를 비웃고 있음은 알 수 있었다. 낄낄대는 그들이 우악스럽게 귀를 끌어당겨 사람들을 괴롭혀댔지만 누구 하나 나설 수 있는 이는 없었다.

물론 귀만이 아니라 신체의 각종 부위도 희롱당했지만, 그저 꾹 눈을 감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보다 적들의 무기가 더 날카롭기 때문에. 누가 이를 드러내면 내 주위의 사람이 죽기 때문에.

그러는 동안에 앤에게서 우리가 열심히 모은 돈을 빼앗은 두목은 안의 든 양을 확인해보더니 험상궂은 얼굴을 더욱 구겨버렸다.


“---!”

-짝. 짝. 짝.


우리를 대표해서 적에게 얻어맞은 앤의 한쪽 볼이 잔뜩 부어올랐다. 그것을 보면 손에 힘이 들어갔지만, 옆에서 이를 악물며 제지하는 친구의 눈빛이 나를 주저앉게 만들었다.

빨리 지나가 줘. 제발.

하지만 내 바람과는 반대로, 항상 이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다.


* * *


-괜찮아, 앤?

-응, 괜찮아.


그녀의 날카로운 동공이 억지로 지어내는 부드러움에 마음이 따가워졌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이란 고작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무도 안 죽었잖아, 다행이네.

-...응.


그건 정말로 다행이라고 부를만한 일이었다. 간혹 지나친 폭행에 허약한 사람들이 죽는 경우도 발생했었기 때문이었다.


-앤, 우린 이대로 지내야 하는 거야?


내 딴엔 푸념으로 뱉은 말이었지만, 곧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두 눈썹을 찡그린 앤의 무서운 목소리가 날 가격했다.


-알티.

-으, 응.

-말했지. 예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응...

-무턱대고 감정을 보이지 마. 섣불리 이를 드러내지 마. 아무리 승산이 있어 보여도 목을 물어뜯지 마. 만약 그렇게 한다면, 예전처럼 많은 사람이 죽게 될 테니까.

-미안해.

-...명심해.


앤의 말로는 우리도 과거에는 그들에게 반기를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많은 사상자만을 내게 되었고, 삶은 더욱 각박해졌다고 했다.

앤의 무서운 경고도 내 꼬리를 쭈뼛거리게 만들었지만, 그것보단 그 뒤에 찾아오는 앤의 서글픈 얼굴이 내 마음을 쑤셨다.

그리고 아마 이 대화를 들은 나머지 사람들의 마음 또한 쑤셨을 것이다. 그들에게 느끼는 미안함이 귀를 처지게 만들었다.


-터벅. 터벅.


순간 다시 들리는 발소리에 모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지만, 곧 익숙한 보폭이 다시 긴장을 풀어주었다.


“---.”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며 다가온 갈색 머리, 그리고 겁먹은 짐승 같은 느낌의 로버트는 손에 든 음식을 앤에게 건네고는 바로 달아나버렸다.

우리를 도와주는 거의 유일한 인간의 행색에 약간 쓸쓸한 마음을 달래며 그가 준 음식으로 굶주린 배를 채웠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기에 우리는 다시 식량, 그리고 상납할 돈을 찾으러 일어서야 했다.

힘내자, 알티.


* * *


어린아이 체격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구걸, 소매치기, 장사. 때에 따라 일을 바꿔가며 열심히 돈을 벌었다.

문제는 소매치기를 할 때였는데, 피해야 할 대상은 귀족, 기사, 용병, 로브 착용자였다. 모두 우리의 목숨을 병뚜껑 따듯이 빼버릴 수가 있으니까.


-알티, 저 사람 봐.

-팜? 누구 말하는 거야?

-저쪽에 허름한 옷 입은 사람.


팜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로 허름한 옷을 입고 배낭을 멘 검은색 머리의 남자가 길을 걷고 있었다.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그는 살짝 멍한 눈으로 거리 곳곳을 구경이라도 하듯 살펴보고 있었다.

그리고 팜이 왜 그를 털자고 하는지도 깨달았다. 그의 한쪽 주머니는 볼록하게 부풀어있고, 그가 발을 뗄 때마다 짤랑거리는 소리가 그것이 돈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용병...은 아니지?

-설마? 못해도 가죽 갑옷이랑 무기는 갖춰야 용병이잖아.

-그렇겠지?


근데 왜 이렇게 불안할까. 내 꼬리가 돌돌 말리며 내게 경고를 주고 있었다.


-그만두자, 팜.

-왜 그러는데? 빨리 안 하면 다른 사람이 채갈 거야.


팜의 말대로 맛좋은 먹잇감을 발견한 소매치기범들이 그를 노려보며 적절한 순간을 가늠하고 있었다.

으. 어쩌지.


-정 그러면 알티 네가 시선을 끌어. 그동안 내가 훔칠게.

-...알았어.


결국 은신처의 사람들을 생각한 나는 팜의 지시에 따라 그 남자의 앞에 섰다. 자연스럽게 넘어지면서 눈에 물기를 머금고, 만국 공통인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이목을 끈다.

목적대로 나에게 관심이 끌린 남자의 뒤로 팜이 접근했다. 그쪽을 보지 않도록 의식하며 더욱 크게 울음을 터트리자 그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미안해. 하지만 우리도 살려면 어쩔 수 없어.

그런 그의 손을 잡는 순간 팜이 그의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됐어. 성공이야.


-퍽.

-아악!


성공을 확신하며 눈을 한번 감았다 떴을 뿐인데, 어느새 남자가 팜의 목을 발로 밟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으로 구부러진 팜의 다리가 그사이에 일어난 일을 보여주고 있었다.


-팜!


다급해진 목소리로 그를 불러봤지만 팜은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해 꺽꺽거리기만 했다. 그를 도와줄 목적으로 남자의 손에 손톱을 박았지만, 마치 철덩이를 쑤시는 듯한 감각에 통증이 몰려왔다.

곧 내 목까지 억세게 붙잡은 그와 눈이 마주쳤다. 아, 왜 멍하다고 생각했을까. 그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이 가득한 눈에 몸이 살짝 떨렸다.

이대로 죽는 걸까? 응. 뭐. 사실 죽어도 상관없긴 해. 죽지 못해 살고 있었으니까.


-콜록. 콜록.


약간의 아련함과 함께 드는 후련함은 곧 내 속에 들어온 공기와 함께 빠져나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남자가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웃는 거지? 자세히 보니 약간 삐뚤어져 어긋난 것 같기도 하고.

잠시 팜의 부러진 다리를 보고 고민을 하던 남자는 팜을 업고 내게 시선을 보냈다. 어. 그러니까, 살려주는 거야?

당최 영문을 알 수 없는 남자의 행동에 내가 얼떨떨해하는 사이에 그가 내 손을 잡았다. 혹시 납치해서 팔아넘기나 싶었지만, 전과 달리 부드럽게 잡은 손은 언제든지 뿌리칠 수 있을 정도였다.

...도대체 뭐하는 인간이야?


* * *


처음에 버둥거리며 저항하던 팜도, 어물쩍거리던 나도 남자가 입에 물려준 꼬치에 얌전히 그를 안내했다.

애초에 이럴 거면 왜 팜의 다리를 부러뜨렸나 싶었지만, 잘못한 건 우리니까 할 말이 없었다. 대신 오랜만의 음식에 정신을 집중하기로 했다.

으음~ 맛있어.

적당히 빙빙 돌며 은신처 근처까지 접근한 나는 그에게 이제 충분하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아무리 그래도 타인을 데려갈 수는 없으니까. 사실 모르는 사람이 없어서 의미 없긴 하지만.

그러자 남자는 조심스럽게 팜을 내게 안겨주더니 바로 등을 돌려 떠나버렸다. 그런 그를 쳐다보다가 손에 느껴지는 묵직함을 이끌고 은신처로 돌아갔다.


-팜, 괜찮아?

-어. 이제 괜찮아.

-그러니까 내가 건들지 말자고 했지?

-아니, 그, 그렇게 셀 줄 누가 알았냐.


약간의 수다를 떠는 사이 저 멀리서 앤이 다급하게 뛰어와 우리의 상태를 살폈다.


-어떻게 된 거야, 알티?

-그게...


내게서 자초지종을 들은 앤의 얼굴에 분노, 자괴감, 슬픔, 씁쓸함, 안도감이 차례로 돌다가 사라졌다.


-다행이다.

-미안해.

-일단 팜 좀 줄래? 치료부터 제대로 해야겠어.


팜을 데려가 치료를 하면서 앤이 내게 남자의 인상착의를 자세히 물어보았다. 앤은 항상 그랬다. 갑작스레 나타나는 새로운 인물 중 위험한 대상이 있을 경우엔 그를 자세히 파악하고, 항상 사람들에게 주의를 줬었다.


-알티, 네가 느끼기로는 어때?

-그 남자?

-그래.

-약간 무섭고, 엄청 세고, 은근히 상냥하고, 먹을 거도 사주고, 또...

-그 정도면 됐어.


앤이 내 말을 끊으며 혼자 ‘요주의 인물’이라고 중얼거렸다. 응, 나도 이상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긴 해.


* * *


다리를 다쳐 움직이지 못하는 팜을 대신해 내가 더욱 열심히 뛰기로 결심하며 거리로 다시 나섰다.


-아.

“-.”


하필 구걸할 때 마주칠 건 뭐야.

혹여나 그가 기분이 상할까 고개를 가득 숙였다. 한참을 숙인 뒤에 살며시 고개를 들자, 남자는 전과 다름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남자가 등을 돌려 어딘가로 향했다. 그렇게 가버리는가 싶더니, 이번엔 다른 종류의 고기 꼬치를 들고 와 내게 내밀었다.

잔뜩 육즙을 머금은 꼬치가 풍기는 향기에 벌름거려지는 코를 막으며 조심히 그것을 받았다. 하지만 등 뒤에서 요란하게 움직이는 꼬리는 막지 못했다.


“---.”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함께 건넨 남자는 통 안에 약간의 돈을 넣은 뒤 이번에야말로 저 멀리 가버렸다. 도대체 뭘까.

그다음 날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하루 중 한 번은 꼭 남자를 마주쳤고, 그는 내게 먹을거리를 안겨주었다.

혹시 내가 마음에 든 걸까? 하지만 그런 생각은 은신처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로 금세 사그라들었다.


-오늘도 그 인간이 왔더라고.

-너도? 나는 얻어맞으려고 할 때 도와주던데.

-으음. 특이하네.


대부분의 사람이 그에게 한 번씩 도움을 받았으며, 그중에는 목숨을 구원받은 자도 있었다. 덕분에 최근 들어 줄어들던 사람들의 수가 더 이상 줄지 않게 되었다.

정말로 특이한 인간. 소매치기를 당해도 뼈 하나로 넘어가고, 그 뒤에는 음식을 나눠주기도 하며,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등에 칼을 꽂으려는 인간의 심장을 망설임 없이 터트리거나, 자신을 끝까지 속여먹으려는 인간 또한 용서하지 않는 매정함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그가 완전히 적으로 상정한 인간에게 하는 행동은 참으로 무서웠다. 야성적인 부분을 지닌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심할 정도로.

그렇게 우리와 그는 미묘한 거리감을 유지했다. 대게 남자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는 편이었지만, 가끔은 우리도 그에게 무언가를 주기도 했다. 아무래도 받기만 하면 미안하잖아.

그러던 어느 날, 끝내 다시 그날 돌아왔다.

남자의 출현 이후로 조금씩 웃음을 짓게 되던 우리의 얼굴은 또 딱딱히 굳어버렸고, 앤은 두목의 악취미인 오물 묻히기를 다시 준비했다.

그때 골목 너머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벌써?!

-너무 빠르잖아!


사람들이 서둘러 오물을 묻히기 시작하기 전에 발소리는 코앞까지 다가와 버렸다.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지만, 곧 오물의 역겨운 냄새 사이로 익숙한 향기가 맡아졌다.


-그 남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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