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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설란 님의 서재입니다.

족쇄를 벗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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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설란
작품등록일 :
2018.05.04 23:33
최근연재일 :
2018.08.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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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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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글자수 :
395,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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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02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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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부-반갑다, 짜식아

DUMMY

축제가 끝난 다음 날, 술에 쩔어있는 조제핀이 머리를 싸매며 인사를 건넸다.


-안, 안녕하세요. 으윽.

-네, 안녕하세요.


어디서 타왔는지 모를 꿀물을 원샷한 그녀가 눈을 몇 번 끔뻑이더니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요, 한스 씨.

-예.

-간만에 사람으로 있으시네요?

-어제의 습격으로 프렉스의 힘이 좀 약해져서 감시도 약해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있어도 될 것 같네요.

-그래요?


습격이란 단어에 뭔가가 뇌리에서 되새겨지기라도 했는지 조제핀의 안색이 조금 창백해졌다. 그를 머리를 털어 흩어버린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어제 보니까 그, 잘... 싸우시던데요.

-그랬습니까?

-어, 그러니까, 그 프렉스라는 용을 지금 바로 잡을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조제핀은 그렇게 말하며 내가 주었던 목걸이를 살짝 만졌다. 아무래도 적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고 했던 말이 그녀에게 압박을 줬던 것 같았다. 실제로 어제 갑자기 습격이 벌어지기도 했고.

여태까지 신경을 많이 써 처음 봤을 때만큼이나 피부가 거칠어진 그녀를 보며 대답을 해주었다.


-물론 지금 당장 죽이라고 한다면야 죽일 순 있을 겁니다.

-정말요?

-다만, 그 뒤에 벌어질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가요?

-프렉스는 이 세계의 관리를 맡고 있는 자입니다. 당연히 그만큼의 제약을 받고는 있습니다만, 소모값을 무시한다면 그는 대부분의 힘을 고스란히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죽일 수 있는 거죠?

-전 안 죽으니까요. 그의 힘이 다할 때까지 소모전을 펼치면 제가 이기긴 할 겁니다. 단, 그렇게 되면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죽게 되겠죠.

-어째서요?

-각 진영의 수뇌부를 조종해 서로를 갉아먹게 만들고, 그렇게 약화된 전력에게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마수를 보내니까요. 지난번에도 그렇게 끝이 났었고.

-하지만... 모든 게 끝나고 당신이 다시 살려주면 되는 일 아닌가요?


약간은 냉정하게 내뱉어진 말에 조제핀 본인이 놀라 손으로 입을 막았다. 한동안 미친 짓거리를 구경했더니 둔감해진 걸까.


-지금처럼 바로바로 살리면야 괜찮겠죠. 그런데 시간이 오래 지난 후의 시체를 되살릴 수 있는지는 모릅니다. 안 해봤으니까요.

-아.


곧 그녀는 살짝 쳐진 눈썹으로 내게 사과를 건넸다.


-미안해요. 너무 힘들어서 그만.

-아닙니다. 열심히 해주시는 거 잘 압니다. 앞으로도 부탁드립니다.

-...하지 말라고는 안 하네요.

-아, 그러고 보니 그동안의 정기 회의는 어떻게 됐습니까?


분위기도 바꿀 겸 능청스럽게 화제를 전환하자 조제핀이 책망 반, 웃음 반으로 날 째려보며 답변을 내었다.


-정신이 없어요. 리페르랑 펠레는 당신한테나 꼬리를 흔들지 남한테는 콧대가 아주 높고, 넬다는 갈수록 좀 무서워져서 말 붙이기도 힘들어요.

-괜찮은 안건은 나왔습니까?

-아뇨. 사냥 대회를 열자느니, 무투 대회를 열자느니 하는 것밖에 없어요. 가뜩이나 일거리도 많아 죽겠는데 말예요. 그나마 괜찮은 건 목욕 시설의 개선 요청쯤?

-그건 타토르로 옮기고 나서 합시다. 그전에는 데쿠스 왕국에게서 받았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임시 주거지를 그렇게 크게 키우기는 좀 힘들 것 같습니다.

-알았어요. 그렇게 전해둘게요.


대략 끝난 느낌이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시 독수리로 변하는 나를 본 조제핀이 가볍게 질문했다.


-어디 또 가시려고요?

-잠시 혼자 행동할 겁니다. 에밀한텐 그렇게 전해주세요.


그렇게 말하고는 하늘로 날아올라 방향을 틀었다. 이제 위협도 조금 사그라들었으니 진행하는 일을 좀 더 늘릴 차례였다.


* * *


아늑한 스벤의 집, 그곳에서 한스라는 이름의 개는 잔뜩 괴롭힘당하고 있었다.


“너 되게 복슬복슬하네?”


소피 씨, 그러면서 콧물 좀 묻히지 말아 주세요. 하아.

한 달이란 시간 동안 꽤나 친해진 우리는 이제 서로 침과 콧물을 교환하는 사이가 되었다. 더러움과 정이 이대일 비율쯤 되는 것 같은데.


“저기, 슬슬 스벤한테 가봐야 하는데.”

“으응. 괜찮아. 아빠한텐 내가 말해놓을게.”


그렇게 말하며 은근슬쩍 목을 조르는 소피. 제법 손이 맵다? 그래도 이건 양반이었다. 처음 말했을 땐 신기하다며 입을 쩍 벌리고 구경했었지.

혹시 한스도 이랬던 거 아냐?

머릿속으로 강하게 스벤을 부르기를 두 시간. 드디어 업무를 마친 스벤이 날 해방시켜 주었다.


“괜찮나?”

“아니요.”

“하긴, 친구와 노는 거니 괜찮겠지.”


몸이 작아진 친구랑요? 어떻냐고 물어보면 더러움이 반, 나머지 중 반이 괴로움이라고 확답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사분지 일은 즐거움이 차지하고 있었으니 나쁘지야 않다만.


“리제는 좀 어떻습니까?”

“아주 건강하지. 덕분에 요새 괴로울 지경이네.”

“좋은 일이군요.”

“좋기는.”


슬쩍 허리를 매만지던 스벤은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본론을 꺼내 들었다.


“이번 식량은 전해줬으니 됐고, 조만간 한스 자네가 원하던 왕실과의 거래를 하게 될 것 같네.”

“오오.”

“리제의 도움이 컸네. 귀중품, 장신구를 비롯한 미술품 등은 리제의 분야니까 말이지.”

“스벤은요?”

“나는 거의 대부분의 물품을 취급하지만, 장인 수준의 식견은 없네.”

“그래요?”

“어쨌든 며칠 후에 데쿠스 왕국으로 향하게 될 테니 같이 가지. 자네가 있다면 안전 문제는 확실하겠군.”

“편안하게 모셔드리죠.”

“그럼 그동안 여기서 머물도록 하게.”


전해줄 얘기는 그걸로 끝이었는지 스벤이 손을 들어주고는 문으로 걸어갔다. 그러다 스벤이 나가다 말고 내게 고개를 돌렸다.


“아, 한스. 부탁이 하나 있네만.”

“뭔가요?”

“오늘 밤새 일을 하게 될 것 같으니 소피 좀 봐주게.”

“일인가요, 그 일인가요.”

“둘 다지, 당연한 걸 뭘 묻고 그러나.”

“알겠습니다.”


저 아저씨 저렇게 웃는 건 또 처음 보네. 그렇게 좋으신가.

문을 나와 스벤과는 반대 방으로 향했다. 푹신한 카펫을 따라 이어진 방 끝으로 소피의 방이 있었다.

지루한지 책을 휘리릭 넘기고 있던 그녀가 나를 보곤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아빠가 뭐래?”

“오늘 밤새 일할 것 같데.”

“또? 그럼 엄마도 같이 일하겠네.”


희미하게 쳇 소리가 울리고, 소피가 카펫을 발로 짓밟았다. 그래봤자 금세 털이 돌아와 품질만을 검증해줬지만.


“그럼 한스 너는?”

“묵...고 가라던데?”

“아싸!”


살살 해다오. 하지 말라고는 안 할게.


* * *


예쁘게 털도 땋고, 예쁜 드레스도 입어보고, 낙서도 당해보고, 이것저것 다 하다 보니 밤은 금방 찾아왔다. 그래도 에너지가 철철 넘치는 소피는 아직도 눈을 감지 않고 있었다.


“이번엔 뭐 할래?”

“잘래...”

“그래... 네가 자겠다면 어쩔 수 없지 뭐...”


저 짓거리에 당해준 게 벌써 한 시간 전이다. 매정히 눈을 돌리자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저것도 이미 삼십 분 전 레퍼토리. 꿈쩍도 않는 고개를 확인한 소피가 작게 혀를 찼다.

이상하다. 소피는 분명 소극적인 아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니, 원래 저렇게 짓궂기는 했지. 나한테만 말이야.

곧 색다른 패턴을 꺼낸 소피가 내 엉덩이를 두들기며 크게 소리 질렀다.


“한스, 탐험하자, 탐험!”

“탐험?”

“저택 밖으로 가보는 거야!”


스벤이 들으면 경기를 일으킬 말을 태연히 내뱉은 소피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제멋대로 배낭을 꺼내 짐을 주섬주섬 싸기 시작했다.

과자가 대부분을 차지한 기묘한 배낭을 둘러맨 소피가 나를 타며 말했다.


“출발!”

“스벤한테 혼날걸?”

“괜찮아, 괜찮아. 내가 책임질게.”


최대한 빙글빙글 돌아 사용인과 마주하기를 바랐으나, 소피가 자꾸 귀를 잡아당기는 통에 결국 그녀가 원하는 길로 갈 수밖에 없었다.

저택 구조를 빠삭히 익힌 그녀는 최단거리로 집을 빠져나갔다. 자신의 집과는 다른 더러운 거리에도 소피는 눈살을 찌푸리기보단 반짝이기를 택했다.


“저거 봐!”


소피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이동하자 주점이 눈에 들어왔다. 고풍스러운 간판에 한산한 내부를 보니 고급스러워보였다.


“가자.”

“진짜로?”

“안 될 건 뭐야.”


이 나라 법으론 미성년자도 술을 마실 수가 있던가? 애초에 성년의 기준이 뭐지? 15세?

온갖 복잡한 생각을 끌어내 주는 소피 덕에 편하게 주점 안으로 발을 옮겼다. 문을 열어 딸랑이는 방울 소리에 바에 서 있던 남성이 무심히 눈길을 주었다.


“뭐가 필요하십니까?”

“주, 주스... 주세요.”


남성의 질문에 소피가 아주 미약하게 답을 해주었다. 아까까지의 자신감은 어디 가고 내 털만 만지작거리는 소피를 보니 신기했다.

이상한 일행에게서 나온 이상한 답변에도 남성은 차분하게 말을 돌려주었다.


“그런 물품은 취급하지 않습니다. 돌아가 주십시오.”

“그, 그럼... 술...이라도...”

“그것 또한 저희가 판매하는 품목이 아닙니다.”


옆에 잔뜩 늘어놓은 술병들이 있으면서도 그런 대답이 나온 걸 보니 대강 이곳이 어떤 곳인지 짐작이 갔다. 곤란해 하는 소피에게 멋진 경험도 안겨줄 겸, 내가 대신 입을 열었다.


“그럼 여기선 뭘 팔지?”

“...허.”


말하는 개와 위에 올라타 있는 소녀를 번갈아 보던 남성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곧 그가 계속 손질하던 유리병을 내려놓더니 입을 열었다.


“성숙한 소녀와 독수리라더니, 소문이랑은 완전 딴판이시군요.”

“소, 소문...?”

“연기가 수준급이십니다. 그래도 모르는 척은 하지 마십시오. 말하는 동물과 소녀는 요새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주제니까 말입니다.”

“으응?”

“굳이 이곳을 찾아오신 것은 목적이 있으시기 때문이겠죠? 따라오십시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이쪽의 말은 듣지도 않고 멋대로 대화를 진행한 그는 바에서 나와 뒷문을 열었다. 인자한 미소로 우리를 재촉하는 그를 보며 소피가 내게 속삭였다.


“한스, 무슨 소리야?”

“글쎄?”


긴장인지 흥분인지 모를 소피의 힘찬 심장박동 소리를 들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평범한 통로를 지나, 평범한 방으로 우릴 안내한 그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잠시 기다리시면 길드장님이 오실 겁니다.”


그의 말대로 5분간 기다리자 누군가가 문을 열었다. 그는 전혀 여기서 볼 거라고 예상조차 못 한 존재였다.


“카를로?”

“이름까지 캐내고, 완전히 대비를 해오셨군.”


카를로는 기다림의 시간 동안 까먹은 소피의 간식을 훑어보고는 그녀가 아닌 나를 쳐다봤다. 내 기억과는 다른, 어쩌면 닮았을지도 모를 차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그 유명한 마법사 씨께서 누굴 죽이시려고 여길 찾아오셨지?”

“죽여?”

“피차 피곤할 텐데 솔직하게 나오지 그래. 난 마법사가 왜 다른 곳도 아닌, 암살자 길드에 찾아왔는지가 궁금하거든.”


암살자 길드? 게다가 거기 길드장이 카를로라고?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에 소피를 슬쩍 잠재우고는 마기로 편안히 감쌌다. 규칙적인 잠소리를 들으며, 다시 카를로를 쳐다보았다.


“네가 암살자란 말이지.”

“알고 찾아온 것이 아니었나?”

“난 그냥 술이나 마시려고 했지.”

“저 꼬맹이를 데리고?”


그러고 보니 소피는 아직 어린데 카를로는 어른이네. 아니면 몸만 컸거나. 아니지, 소피가 안 큰 거 아냐? 보니까 은근히 음식 가리던데.

아, 일단은 할 일을 해야지.


“카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좀 친근하게 대하시는군.”

“먼저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짜식아.”


말과 함께 그의 머리에 촉수를 쏘아 보냈다. 그에 카를로가 반사적으로 단검을 뽑아내 촉수를 잘랐지만, 안타깝게도 촉수는 겨우 몇 가닥이 아니었다.

그 특유의 매끄러운 움직임을 예상해 촉수를 미리 보내놓자 그가 꼼짝없이 구속되었다. 매섭게 노려보는 그의 머리에 촉수를 대며 한 번 더 말했다.


“고맙다. 좀 도와줘라.”

“무슨 개소릴...으그그그극!”


번개 맞은 듯 움찔거리는 그를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적당량의 기억만을 보내어 부작용을 줄이자 그가 한결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으으윽! 크으윽!”


아닌가? 뭐, 어쨌건 일손이 하나 늘었구나. 스벤에게 차차 기억을 주입한 연습 덕에, 이렇게 그가 우리의 친구가 될 수 있게 되었다.

흐흐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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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2부-티타임 18.08.04 37 0 13쪽
» 2부-반갑다, 짜식아 18.08.02 44 0 13쪽
67 2부-습격 18.08.01 46 0 13쪽
66 2부-딱 맞는 인재(2) 18.07.29 47 0 13쪽
65 2부-딱 맞는 인재 18.07.28 52 0 12쪽
64 2부-수도 산타스에서 18.07.27 44 0 13쪽
63 2부-재회(2) 18.07.26 44 0 16쪽
62 2부-재회 18.07.25 47 0 15쪽
61 외전-형님(3) 18.07.15 50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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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외전-나탈리(3) 18.07.12 114 0 16쪽
57 외전-나탈리(2) 18.07.09 55 0 13쪽
56 외전-나탈리 18.07.08 56 0 13쪽
55 세상의 끝(4) 18.07.03 80 0 17쪽
54 세상의 끝(3) 18.07.01 56 0 14쪽
53 세상의 끝(2) 18.06.30 71 1 13쪽
52 세상의 끝 18.06.29 75 0 13쪽
51 준비 18.06.28 71 0 13쪽
50 이야기의 시작(2) 18.06.27 84 0 13쪽
49 이야기의 시작 18.06.24 87 0 14쪽
48 '나' 18.06.23 114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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