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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9,918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1.23 21:57
조회
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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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11쪽

62화

DUMMY

[21층에 진입했습니다.]


떠오른 것은 시스템 메시지 하나.

20층 스토리 모드가 끝나, 21층으로 진입했다는 메시지였다.


잠시 어지럼증을 겪던 시연은 본래의 정신으로 돌아왔음을 깨달았다.

그러고선 생각했다. 20층의 광경들을.


‘오갈 데 없는 분노가 위로 향하고···.’


되찾지 못할 처량함 또한 위로 향했다.

사람들이 포악하게 변해가는 과정이란, 결코 좋은 광경이 아니었다.


식량이 부족해지자 안면이 있든 없든 싸웠다. 날아가고 날아드는 주먹질과 발길질은 서로를 구타하며 상처를 남겼다.

이성을 잃은 듯한 모습이기도 했다. 그저 입에 풀 한 포기라도 더 쑤셔 넣기 위한 꿈틀거림. 오래 기억하고 싶은 장면은 아니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화면 속 스크린이 아닌, 실제로 참사를 접하는 것은 너무나도 달랐다.

한정된 시야 범위에서 변화를 보여주던 모니터와는 그 차이가 컸다.

고개를 돌려도 사람을 복날 개 패듯 때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담아 씹지도 않고 삼키는 모습이 들어왔다.


식사가 생존의 일부가 되어버린 광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거기까지만 해도 못 볼 정도인데, 그다음은 어땠는지.


분노와 처량함이 쌓이고 쌓여 권력자들에게 향한 원망이란.

도저히 볼 수 없을 정도로 통탄스러워서 눈을 감았을 정도였다.


‘이런 광경을··· 아니, 이것보다 심한 것도 있을 텐데···.’


돌연 탑을 생각하던 시연의 머릿속에서 떠오른 게 있었다.

아직 비극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시작이라도 해도 좋았다.


‘그걸 다시- 실제로 봐야 하는 거야···?’


플레임 왕국 에피소드도.

다른 나라들의 에피소드도.


전부 하나같이 비극투성이인 것들뿐이었다.

희망 따윈 존재하지 않는 참혹한 세계만이 기다리고 있을 터.


‘···.’


결국 사고하기를 포기한 시연이 손을 뻗어 컵을 잡았다.

목재로 만들어진 컵이었다. 컵 속에 들어있는 물을 입가로 들이붓더니, 이내 꿀꺽 삼켰다. 차가운 물이 정신을 일깨우는 듯했다.


‘일단.’


깬 정신이 지금 상황을 냉정하게 살폈다.

나중 생각은 나중에 하기로 했다.


‘지금에 집중하자.’


뜬 눈이 향한 곳은 나무로 만든 테이블.

그 나무 테이블에 컵을 내려놓은 채 생각했다.


눈앞에 펼쳐진 여관 내부의 모습을 보고선 입가를 닦았다. 입술에 묻은 물기가 소매를 타고 지워졌다. 물이 묻은 천이 축축해졌다.


“21층은 일단 여관에서 시작이네요.”


건너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결코 활기차지 않은, 외려 낮은 톤의 목소리.

세상을 포기한 듯 잠긴 목소리가 귓가를 맹맹하게 만들었다.


“그러게. 설마 쉬라는 건 아닐 테고, 뭔가 있나?”

“21층의 시간선도 사람들이 원망을 품기 시작할 즈음이니까요. 여관이긴 한데, 그리 깨끗하다고는 할 수 없는 걸로 봐선 외진 마을인 것 같아요.”

“외진 마을? 잠깐 그렇다는 건 설마···.”

“그 설마가 맞을 거에요. 정확하게 언제 시작된다고는 단정할 수 없지만-.”


설진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20층의 마을 사람들은 몬스터들에 의해 멸망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호받지 못한 마을 전부가 몬스터들에 의해 멸망한 것은 아니었다. 요인은 많았고, 몬스터는 그 중 하나일 뿐이었다.


시연은 플라임과의 만났을 때 그녀가 했던 말을 생각했다.

분명 자신이 만든 정책임에도 쓰레기라고 칭했던 플라임이 뇌리에 남았다.

개중에서도 추후 일어날 일을 걱정하듯 한 말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경들도 알고 있지 않느냐. 마력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그 총량이 늘어난다. 그런데 마법 사용 자체를 아예 막아버렸으니 성장이 뒤처질 테지.”


플레임 왕국에는 마법사가 꽤 있었다.

흔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외진 마을이라도 두어 명 정도의 마법사가 있기 마련이었다.

물론 강력한 마법을 사용하기란 불가능했다. 기껏해야 파이어볼을 사용해 몬스터들의 침입을 막는 데 기여하는 것이 전부였다.


다만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기에.

어느 정도는 자급자족이 가능했다. 어린아이들이라도 마법을 사용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어서, 멀리서 마법을 쏘면 몬스터들을 견제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마법 금지령은 이 자급자족을 차단했다.

마법을 사용할 수 없으니 몬스터들을 막아내기 힘들어졌다. 이런 마을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그런 마을이 물감처럼 번져나가다가 결국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부서져버린 마을들이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었다.


시연은 플라임의 말을 생각했다.

마법 억제로 인한 마력 성장을 걱정하기는 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곳곳에 퍼져 있는, 왕실 외 세력들이 움직이기 시작할 거다.”

-“유목 민족, 혹은 부락.”


플레임 왕국 외곽에는 공식으로 인정받은 세 나라와 중립국인 노르담 외의 나라가 여럿 존재했다.

아니, 나라라고 할 만큼 커다란 세력은 아니지만.

유목 민족, 혹은 부락이라 불릴 정도는 되어서 수준 이상의 힘을 갖추고 있었다. 왕녀의 우려는 그런 세력들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왕국이 약화하여 외곽 마을들이 약탈당하고.

그렇게 줄어드는 국력 속에서 다른 나라가 움직여 마무리한다.


그것이 플라임이 생각하는 시나리오였다.

아예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일시적인 안전이 끝나고 찾아온 것은 평안이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혼란에 가깝지.


때마침 설진의 입이 열렸다.


“아마 이 마을은 습격받을 거에요. 몬스터가 아니라 인간에게.”


시연은 설진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부정할 수 없었다. 맞는 말이었고,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


“그래도 아직 평화로운 걸 보면 시간은 좀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할래요? 방에 올라가서 조금 쉬어도 되고, 아니면 돌아다녀도 되고. 뭘 하든 괜찮은데.”

“설진아.”

“네?”


이어 말하려던 설진의 말을 끊었다.

드물게도 시연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목소리가 침침하게 내리깔린 것이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였다.


‘···.’


잠시 말을 고르다가, 천천히 입술을 땠다.


“너는 어떻게 할 꺼야?”

“뭘 말하는 거에요?”

“이번에도 20층처럼 그냥- 방치할 거야?”


시연의 눈이 진중해졌다.

그러고선 되뇌었다. 설진이 한 말을.


그는 그런 말을 했었다. 전부 책임질 자신이 없으면 시도조차 하지 말라고.

다만 시연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책임질 자신이 없음에도 해야 하는 일이라면 하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설령 용기가 아닌 만용이라는 말을 듣는다 할지라도 말이다.


“설진아. 이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은데, 나는 도울까 싶어.”


자신이 한 행위가 용기인지 만용인지.

그것을 판단하는 주체는 누구인지 생각해 봤다. 그럴싸한 정답조차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판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보통의 경우에는 되려 고맙다고 이야기할 터.

아무리 그 힘이 미치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는 게 얼마나 힘들지 알거든. 그래서 그래, 괜히 과거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과거, 요?”

“아, 너는 잘 모르겠구나. 하긴, 내가 말해준 적이 없었으니까.”


옅은 선웃음을 지은 채 시연이 말했다.

그녀는 짧게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해 주었다.


잘 나가는 기업 사장의 딸로 태어난 일.

술에 취해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딸로 태어난 일.


금전적으로 부족한 것은 없어서 나름 풍족한 삶을 보냈던 일.

혈통으로 꼬집혀 도움 하나 받지 못한 채 외로운 삶을 보냈던 일.


그리고.


“망했거든. 우리 기업.”

“···.”

“뭐, 물론 한 번에 쾅하고 망해버린 건 아니야. 천천히, 뱀이 숨통을 조이듯 천천히 망했어. 나이가 워낙 어렸던 탓인지, 아무것도 못 한 채 기업이 망해가는 걸 지켜만 봐야 했고.”

“···.”

“무력하더라고. 정말로···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망해가는 걸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한다는 게. 정말로 무력해서 짜증 났어. 아니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짜증 낼 일은 아니려나. 어찌어찌 독립해서 살고는 있었으니까.”


어쨌든, 하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알고 있거든.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망가져 가는 사람들이 어떤 기분인지.”

“누나, 그럼-.”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해. 누군가, 아주 조금만이라도 도와줬으면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고.”


시연의 이야기를 들은 설진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럼 20층을 클리어할 당시, 자신이 이야기를 들었던 시연의 기분은 대체···?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어두웠을 것 같아서.

설진은 말을 삼켰다. 삼킨 말이 계속해 떠내려갔다.


여전히 여관은 북적이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있진 않았지만 소란스러울 정도는 되어서, 둘의 이야기가 그 소란스러움에 묻혔다. 창문 너머 광경을 바라보니 아스라한 달이 보였다.


달이 한 번 기울었다.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워. 집중해주는 게 느껴져서 기쁘더라.”


시연의 입이 열렸다.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나름의 사연이었는데, 속이 좀 후련한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나쁜 기분은 아니네.”


밤이 잦아들고 있었다.

하늘은 여실히 묵빛만을 내보이고 있었고, 가끔 반짝이는 별은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아 탁하다고 말해도 될 정도였다.


“누나.”


한 명의 인생사가 짧게 일축되어 이야기에 오르고.

다시,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누나도 알다시피. 저는 다른 사람들이랑 조금 달라요.”


설진이 입을 열었다.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다.


“가치관 같은 게 조금 많이 달라요. 경험해 보셨듯, 저는- 그, 죽는 것과 사는 것에 혼란을 조금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타인이랑 충돌이 잦아요.”

“···.”

“죽음을 축복이라 여기고 삶을 지옥이라 여겨요. 이런 말 하긴 조금 뭐하지만, 자살 시도를 한 적도 있고요.”

“···!”


놀란듯한 시연의 모습을 보고서 설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알고 있었다. 이런 반응이 나올 줄은.

그래도 기왕 꺼낸 말.


“아, 물론 실패했어요. 줄이 약해서 그런지 끊어졌었거든요. 아마 그때부터인 것 같아요. 죽고 싶은데 죽지 못했던 이유가 그때 생긴 것 같아요.”


조금 더 입을 열어도 괜찮겠지.


“일종의 억제 장치인 거죠. 삶, 자살, 죽음. 이렇게 인생을 세 개의 단계로 나누면, 죽음으로 향하는 ‘자살’ 단계에서 걸려요. 이미 한 번 해보고 실패해서 트라우마로 남았거든요. 거기서 걸려서 지금까지 못 하고 있고요.”


죽는 게 무서워서 살고 있다.

말은 장황하게 했지만, 결국 결론은 이것이었다.

자살을 시도했을 때 느낀 고통 때문에 더 이상 죽기를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죽음을 바라는 마음은 여전한데, 몸은 살아 있었다. 사람인 이상 정상일래야 정상으로 여생을 보내기란 불가능했다.


“누나. 제가 몇 살인지 알죠?”

“스물 넷··· 아니야?”

“맞아요. 게임에서 그렇게 얘기했으니까.”


설진의 입이 열렸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진중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곧이어-.


“저는 24년 동안···.”


또 다른, 한 명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작가의말

작중 설진의 과거사는 예정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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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86화 22.02.26 545 6 12쪽
85 85화 22.02.26 539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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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83화 - end, Spreading yew(2) 22.02.21 532 5 12쪽
82 82화 - end, Spreading yew(1) 22.02.20 553 5 12쪽
81 81화 22.02.19 558 5 12쪽
80 80화 22.02.18 549 6 13쪽
79 79화 22.02.17 546 5 12쪽
78 78화 22.02.14 565 6 12쪽
77 77화 22.02.13 555 5 12쪽
76 76화 22.02.12 570 5 11쪽
75 75화 22.02.11 592 5 12쪽
74 74화 22.02.10 600 6 14쪽
73 73화 22.02.07 585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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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70화 22.02.04 637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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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67화 22.01.30 643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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