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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9,835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1.24 21:48
조회
712
추천
9
글자
12쪽

63화

DUMMY

밤이 깊었다.

떠오른 달이 선을 그리듯 방향을 잡고 떠밀려갔다.


‘웁. 우- 우웁.’


다만 시연의 속은 깊지 못했다.

설진의 이야기가 이어질 동안, 그녀는 자신의 비위가 강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절로 구역질이 나왔다. 실제로 입 밖으로까지 튀어나올 뻔했다.

소매를 입에 갖다 대 겨우 막았지만, 이번에는 눈 쪽이 말썽이었다.

눈물샘에서 저절로 눈물을 토해냈다. 맺힌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우웁. 다시, 토가 쏠릴 것 같았다.


콜록-.


헛기침을 내뱉었다.

기침이 튀어나올 때마다 명치가 아렸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사람이 이리도 비참한 인생을 살 수 있는지.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이 되뇌어졌다.


타인과는 다른 설진의 가치관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떻게 유지되어 왔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아니, 오히려 형성되지 않으면 그게 더 문제였다.

겨우 유년기에 불과한 이야기였을진대, 시연은 감히 형언할 수도 없는 밑바닥을 느꼈다.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다. 떠올리기조차 싫었다. 그만큼 설진이 살아온 과거는 침울하다 못해 비극적이었고, 비극적이다 못해 처량할 정도였다.


사람이 과연 이러한 삶을 살고도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지.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조금 과장해 자신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미안할 정도였다.

비극(悲劇), 불행(不幸), 역운(逆運). 온갖 부정적인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당분간은 꿈자리가 사나울 것 같았다. 악몽을 꿔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더 이야기··· 아니. 여기까지 할게요.”

“어, 어. 그, 그래.”


그런 시연의 기색을 느꼈는지 설진은 말하던 도중 입을 멈추었다.

겉으로 봐도 시연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시체가 된 건 아닌지 얼굴이 푸르락해졌다. 기겁한 것 같기도 했다.


이 이상의 이야기는 좋지 않을 것이라 판단.

설진은 말을 멈추고 일어섰다.

유년기 시절의 일을 끄집어낸 것은 그에게도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인상을 살짝 찌푸리던 그는 연신 동공이 흔들리고 있는 시연을 보고서 입을 열었다.


“누나. 일단 오늘은 쉬어요. 습격까지는 아직 시간이 조금 남은 것 같으니까.”

“···.”

“그리고, 이번 마을 습격에 대한 대처는··· 나중에 얘기해요. 서로 피곤한 것 같은데, 지금 얘기해도 의미 없어요. 일단 피로부터 풀고 이야기해요.”

“어? 어. 그럴게.”


넋이 나간 듯 보이는 시연과 함께 방 내부로 이동했다.

숙박 예정이 된 방은 두 개였다. 시연이 오른쪽, 설진이 왼쪽 방을 하나씩 잡으며 들어갔다. 끼익-. 이내 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렸다.


적당히 자리를 잡고서 이불을 깔았다. 검집을 떼 옆으로 내려놓고 허리를 숙여 몸을 뉘었다. 편안한 감각이 온몸을 타고 퍼졌다.


‘습격에 나선다, 라.’


시연이 한 말을 생각했다.

습격하는 이들로부터 마을 사람들을 구하자는 말.


솔직히 말해 내키지는 않았다. 마을 하나 구한다고 베드 엔딩이 해피 엔딩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고, 전체적으로 보면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플라임이 절망하고.

사람들은 죽어나간다.


그것이 만고불변의 법칙이요, 이번 에피소드의 결말이었다.

비극이라는 거대한 틀 속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결말. 막을 수도, 저항할 수도 없어서 그저 비극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것이 할 수 있는 것의 전부.


오히려 사람들을 구하는 것 자체가 플라임을 더 고통스럽게 할지도 몰랐다.

시위가 일어나기 전에도, 시위가 일어난 후에도 그녀는 절망하고 있었으니.


‘아마 지금도···.’


지금도 그러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해결할 방법도 아는데, 정작 해결에 필요한 자원이 없어서 나서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으니까.


설진은 플라임이 한 말을 생각했다.

왕실 병영에서 들었던 말이었다.


그녀는 플레임 왕국의 마법 수준을 지적했었다.

마법 사용을 어릴 때부터 억제해 버리니까 발전이 느리다고. 정체되었다고, 어쩌면 퇴화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었다.


실제로 그녀의 말이 맞았다. 마법사들이 훈련하는 병영. 그곳에서 마법사들은 작은 마법 몇 번을 쓰고서 탈진했었다.

어릴 때부터 마력을 키워오지 못한 탓에 생기는 문제였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왕실이 가용할 수 있는 마법사 전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외곽 마을이 습격당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병력을 차출할 곳은 많은데 정작 병력이 부족하니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외곽을 내버려두기로 결정한 것이다.

시민들을 사랑하는 군주라고는 볼 수 없지만, 정치적으로 보았을 때 그녀의 판단은 정확했다.

괜한 억지를 부리고선 병력을 함부로 차출하다가는 더한 꼴을 볼 수 있으니.

나름대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이었다.


다만 그 최선이 최악 속에서 이행되었을 뿐.

단지 그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여기서 괜히 마을을 구했다가는···.’


시위가 늦어진다.

원한을 품는 속도가 느려진다.


시위가 시작되기 전에도 고통받고 있는데.

여기서 시위 속도를 늦춘다면 그녀가 느낄 고통만이 길어질 뿐이다.

어차피 겪어야 할 고통이라면, 차라리 빨리 끝나는 게 나으니까.


‘···슬슬 누울까.’


플라임에 대해 생각하던 설진은 서서히 눈이 감겨오는 감각을 느껴야만 했다.

졸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동안 꽤 많은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다.


눈꺼풀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눈썹이 스스륵 감기더니만 이내 동공을 덮었다. 말아쥐고 있던 주먹은 펴지기 시작하더니 손바닥을 내보였다.


감긴 눈이 보는 광경은 어두웠다.

마치 깊게 잠긴 밤하늘을 보는 것 같았다.


밤하늘 속에 달이 떠올랐다. 아까 본 달과는 달리 묵빛의 달이었다.

짙은 남색으로 이루어진 배경에 검은 달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별은 보이지 않았다. 원래부터 떠오르지 않는 것인지, 하늘이 어두워 묻힌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었기에 꿈이었다.

손에서는 거친 감각이 느껴졌다. 슬쩍 눈을 돌리니 까칠까칠한 넝쿨이 손에 휘감겨 있었다.

넝쿨은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얽히듯 잡힌 손은 쉬이 넝쿨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마치 줄로 묶인 모양새였다.


스르륵-.


그러던 중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넝쿨이 힘을 잃었다.

명을 다한 것 같기도 했다. 약간 힘을 주자 넝쿨은 저항하지 못한 채 끊어졌다. 풀린 손을 몇 번 문질렀다. 볼록 튀어나온 듯한 피부의 감각이 만져졌다.


더 이상 넝쿨은 보이지 않았다. 달 또한 마찬가지였다.

밤하늘 자체가 사라지고 세상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이내, 다시 눈을 떴을 때-.


‘···.’


창문 너머 옅은 햇살이 퍼지고 있었다.

눈을 부스스하게 가리는 햇살에 설진은 정신을 차렸다.


‘벌써 아침인가···?’


햇살은 날이 밝았다는 것을 증거하듯 옅은 빛만을 내보였다.

세지 않고 적당한 빛. 날이 밝았되 점심은 아닌 모양이었다.


설진은 눈을 비비고선 몸을 일으켰다.

찌뿌둥한 몸이 뚜두둑거리는 소리를 냈다.


‘···누나는 일어났을까?’


돌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연은 지금 일어났을지. 일어났으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그리고 정말 마을이 습격당하는 것을 막을 것이라면,


‘그렇다면···.’


‘자신’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직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난제는 머릿속을 헤집고만 있었다.

하려면 할 수 있는 일이었으나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끼이익-.


와중 오른쪽에 있던 문이 열렸다.

시선을 옮기니 시연이 무기를 챙긴 채 다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낭패했다는 듯한 기색이 얼굴에 역역했다.


“누나?”

“설진아!”


무슨 일이냐고 물으려던 설진은 돌연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했다.

이건 적의였다. 드문드문 살기도 조금 섞여 있었다.

시연의 기운이 아니었다. 이건···.


“네가 말한 습격! 놈들이 새벽에 들어온 것 같아! 나도 방금 정신 차렸고! 지금 이 마을은 완전히 포위당했어!”

“···!”


말과 동시에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소리가 향한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검을 든 포악한 인상의 사내가 다가오고 있었다. 점차 좁혀지는 거리 속에서 발걸음 소리가 점차 과격해졌다.


“원망하지 마라. 네놈 왕실이 자초한 일이니.”

“무, 무슨 소리야! 그보다 당장 꺼져!”

“네놈의 윗대가리들이 우리에게 기회를 줬거든. 그것도 아주 귀한 기회를.”


촤아악-!


당황에 차 연신 고함을 질러대던 남자의 목이 베였다.

튄 피가 검에 묻었다. 단칼에 절명한 사내의 목이 나뒹굴었다.


“···저런, 손님이 더 있었군.”

“뭐하는 놈이야.”

“알 거 없어. 그냥, 지나가던 산적이라고 생각해라. 너희는 운이 나빴던 거고.”


포악한 인상의 사내가 검을 든 채 다리를 놀렸다.

설진이 보기에도 꽤 빠른 속도라 할 만했다. 사내는 망설임 없이 빠르게 돌격하더니만, 시연의 가슴을 노렸다. 난무하듯 검이 움직였다.


그러나,


“···!?”

“···다시 한 번 물을게. 뭐하는 놈이야.”

“방금, 어떻게-?”


타이밍 맞게 올려든 방패에 막혔다.

난무한 검은 총 여덟. 그 여덟의 공격을 전부 막아낸 시연이 다시금 물었다.


“아니 잠시만, 모험가인가? 모험가가 있다는 정보는 없었는데, 쯧. 대장한테 잔금 좀 더 얹어달라고 해야겠군. 이래서야 수지가 맞질 않잖아.”


포악한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중얼거리고만 있었다.


투덜하던 남자가 다시금 검을 들어 올렸다.

이내 두 번째 공격을 가하려던 순간.


“···!”


느닷없이 날아온 검격에 재빨리 손을 올렸다.


촤악-!


그러나 뚫렸다.

검을 올렸지만 늦었고, 그 때문에 사내의 옆구리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주륵-. 흐드러진 피가 낙하했다.

아까 벤 남자의 시신에 피가 떨어졌다. 뚝뚝 거리며 떨어진 피가 시체를 적셨다. 굳기 시작한 피가 다시금 선혈로 절여졌다.


“썅! 둘이나? 이런 건 예정에 없었는데!?”

“···.”

“넌 또 뭐하는 놈이냐. 암살자인가? 하, 진짜 골 아픈 놈들만!”


아까의 침착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가면이 무너진 듯 남자의 목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당황에 찬 목소리가 귓가에 틀어박혔다. 옆구리를 벤 검을 잡고서 설진이 뒤를 돌아보았다.


“···.”


여전히 입은 열지 않았다.

다만 무표정과 가까운 얼굴만이 드러날 뿐이었다.


그 모습에 남자의 인상이 한 번 더 구겨졌다.

무망중 느낀 공포를 분노로 묻으려는 것 같기도 했다. 남자는 검을 들어 올리더니만, 이내 설진과 시연 두 사람을 상대하듯 손을 올렸다.


“뭐, 솔직히. 뭐하는 놈인지 궁금하지는 않은데.”


하아. 시연은 한숨을 한 번 쉬었다.


“이래서야 제대로 된 이야기도 못 하잖아.”



설진과 이야기를 제대로 못 했다.

습격이 생각보다 일렀던 탓에 꼼짝없이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미안하게시리.”


자기 자신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중얼거리고선 방패를 들어올렸다.

오른손에는 대검을 올렸다. 언제라도 휘두를 수 있게 준비를 마쳤다.


[목표 :


설진 또한 자세를 정비한 채 재차 공격할 준비를 끝냈다.

언제든지 남자의 몸에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만전의 상태였다.


습격에서 살아남으십시오.]


떠오른 목표를 본 둘의 자세가 진중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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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86화 22.02.26 545 6 12쪽
85 85화 22.02.26 538 7 11쪽
84 84화 - end, Spreading yew(3) 22.02.22 552 9 11쪽
83 83화 - end, Spreading yew(2) 22.02.21 532 5 12쪽
82 82화 - end, Spreading yew(1) 22.02.20 552 5 12쪽
81 81화 22.02.19 557 5 12쪽
80 80화 22.02.18 549 6 13쪽
79 79화 22.02.17 546 5 12쪽
78 78화 22.02.14 564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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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75화 22.02.11 592 5 12쪽
74 74화 22.02.10 600 6 14쪽
73 73화 22.02.07 583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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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71화 22.02.05 600 5 12쪽
70 70화 22.02.04 637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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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68화 22.01.31 635 8 12쪽
67 67화 22.01.30 642 9 12쪽
66 66화 22.01.29 635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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