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9,781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2.17 21:30
조회
545
추천
5
글자
12쪽

79화

DUMMY

그로부터 일주일,


“일단, 소란은 잠재웠습니다. 시연 님께서 전적으로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아니에요. 오히려 군사님의 공이 컸지요. 제가 한 거라곤 언질 몇 번 정도뿐이었는데요.”

“그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걸로 당분간 시위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일단 한숨은 돌렸군요.”

“아, 혹시 그보다 설진이 어디 있는지 알아요? 분명 어제까지 있었는데···.”

“그분이라면···.”


시연의 질문에 왕국의 군사(軍師)는 자그마한 쪽지 하나를 건넸다.

종이를 접고 접어서 만든 것 같았다. 의구심을 가지며 고개를 들어 올린 시연에게, 군사는 설진이 한 말을 그대로 읊었다.


“설진 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시연 님이 자신의 행방을 묻거든 이 쪽지를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설진이가요? 흐으음···.”

“중요한 내용이 담긴 것 같더군요. -그럼, 저는 슬슬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해요. 그리고, 수고하셨어요.”


군사가 문을 열고 방을 나서자, 시연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쪽지를 펼쳤다.

시위가 확산되는 것은 어찌어찌 막았으니 상황이 아주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다음 계획을 생각하며 쪽지에 쓰인 글을 읽기 시작했다.


“···.”


종이를 손에 쥔 시연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갔다.

쪽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플라임의 숙부인 레임니스 폰 라반부르크를 호위하기 위해 왕실의 서쪽으로 이동했다는 내용이었다.


“···아. 이것도 있었지, 참.”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 진짜 시작인가···. 막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


레임니스를 설득하기 위해 떠난다고 쓰여 있었다.


* * *


잃어버린 왼팔 때문이었을까.

귀보의 사용으로 망가져가던 왕국 때문이었을까.


레임니스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마음은 절망스럽게 변해갔다.

책임감이 큰 인물이었던만큼 맞닥뜨린 낙망은 너무나도 거대했다.

일개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차고 넘칠 정도로.


“···플라임의 부탁으로 잠시 오기는 했지만, 쯧. 괜히 온 건 아닌가 싶군.”


레임니스의 발걸음이 서서히 움직였다.

팔을 잃었을지언정 발을 잃진 않았기에 움직임에 큰 무리는 없었다.

다만 손을 하나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이빨까지 써가며 작은 종이 주머니를 찢은 그의 손에 둥근 알약이 잡혔다.


“가족에게 시신을 보여 주고 싶지는 않았는데.”


겨우 약을 집은 그의 손이 차츰차츰 올라갔다.

배 정도 되는 위치에 있던 손바닥이 위로 향하기 시작했다. 명치, 가슴, 그리고 목을 넘어 입까지 다다를 즈음이었다.


끼익-.


돌연 문이 열렸다. 고풍스러운 문소리에 레임니스의 손이 멎었다.


“누구, 인가?”

“처음 뵙겠습니다. 레임니스 폰 라벤부르크.”


레임니스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문을 열고 들어온 자는 플라임도 왕국의 병사도 아니었다.

모험가 복장을 한 사내였다. 표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흡사 무(無)에 가까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음영이 머리맡에 드리운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모험가 설진이라고 합니다. 플라임에게 부탁받아 당신의 호위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는 정체를 밝히고서 방 안에 들어섰다.


“레임니스라고 하네··· 처음 보는 얼굴이로군.”

“반란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새로운 새대라 생각해주시면 편할 듯 합니다만.”

“그래, 그런가. 그렇다면 그러도록 하지.”


레임니스는 설진의 말을 긍정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죽을 생각이었던 몸, 어떤 말을 하던지간에 상관없을 것 같았다.


저벅.


설진은 레임니스의 영역을 조금 더 침범했다.

방 안에 들어선 걸로도 모자라 레임니스의 곁에 다가가더니만, 이내 그를 지나쳐 바깥과 연결된 창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개는 없었다.

시위를 하던 사람들 또한 더는 존재치 않았다.


마침내 보이게 된 청명한 하늘은 안개가 개였던 그때와 같았다.

끼이익-. 창문을 열었다. 만들어진 공간 사이로 바람이 파고들었다.


천천히,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권력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들었습니다. 유명한 말이지요?”

“···유명한 말이긴 하지. 어릴 때 들었던 기억이 나는구만.”


레임니스는 설진의 말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입가에 씁슬한 미소가 맺힌 게, 상황이 달갑지는 않아 보였다.


“플라임이 말동무를 하라고 보낸 건가.”

“그건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어서 하고 있는 거에요.”

“그런건가. 자네도 참 특이한 사람이구먼그래.”

“특이해요? 음, 그렇게 보이나요?”


궁금하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인 설진을 보고서 레임니스가 말했다.

특이한 것은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동류였으니까.


“그래, 그렇게 보이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묻지는 않겠다마는··· 우린 참 힘든 삶, 그리고 아픈 과거를 지고 살아온 것 같군.”

“얼굴에 나타나나요? 그런 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보이지. 경험이 모든 것을 증거해 주니까 말일세.”


설진은 그 말을 듣다가, 창문을 닫아버렸다.

조금 더 차가워진 바람을 막기 위해서였다.

청명한 하늘 아래서 부는 바람에, 어두운 이야기를 흘릴 필요는 없었다.


“그런가요. 뭐, 듣고 나니 그런 것 같군요. 저도 보이기 시작하네요.”

“좋은 정보지 않나?”

“좋은 정보긴 한데, 아쉽지만 필요한 정보는 아니에요.”


닫힌 창문. 닫힌 문.

이야기가 빠져나갈 틈 따위는 없는, 작은 공간 속에서.

그들의 대화가 이어나갔다. 여전히 하늘은 맑았다.


“뭐. 다시 돌아가서··· 권력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 들어 보셨다고 했지요?”


설진은 생각했다.


책임은 죽음으로 갚은 것이 아니라고.

오판의 만회는 세상을 뜸으로서 청산되는 게 아니라고.


그렇게 느꼈고, 그렇게 배웠다.

모두 두 여인에게서 알게 된 것들이었다.


“말씀대로 유명한 말이죠.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 뭐, 이런 말도 있고요. 전부 권력에서 나온 책임을 경시하지 말라는 의미지요.”


둘의 차이점은 단지 그것이었다.

설진은 알게 되었고 레임니스는 알지 못했다.

설진이 책임을 짊어지고 살기 위해 노력할 때, 레임니스는 책임을 죽음으로서 해결하려고 하고 있었다. 독약은 그 과정이자 수단이었다.


“저는 생각합니다.”


읊조리듯 입을 열었다.

시를 외듯 나오는 말들이 선율을 이루듯 합쳐졌다.


“책임은 죽음으로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고요. 죽음은 도피에 불과하다고요.”

“···자네, 알고 있었나?”

“글쎄요. 제가 아니라 플라임이 알아챘을 수도 있고, 혹은 다른 누군가가 저에게 전해줬을지도 모르지요. 아님 모두가 알고 있을 수도 있고요.”

“···.”

“어쨌거나 당신이 지금 죽으면, 왕국은 옅은 빛 하나 보지 못하고 망가질 겁니다. 왕국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슬피 울 것 같거든요.”


창문 너머 아침의 빛살은 작은 방을 밝게 비췄다.

옅은 빛이 아닌 커다란 빛이 들어온 지금의 방은 밝았다.

불을 켜지 않음에도 밝았다.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밝았다.


빛이 들어온 선반에 상이 맺히고, 설진이 가져온 음식이 따뜻해졌다.

하늘은 맑았고 햇볕은 따뜻했다.

이런 날에 누군가의 죽음을 보는 것은 너무나도 슬플 것 같아서, 설진은 단 하나의 결말을 위해 입을 열었다.


죽지 말라고, 죽어버리지 말라고 말이다.


“이걸 받아주시겠어요?”

“이건··· 왕실의 비고에 있는 아티팩트가 아닌가?”

“전호(全護)라는 명칭의 아티팩트입니다. 플라임이 당신을 지키기 위해 반출한 아티팩트지요. 마력 또한 상당히 들어있는 상태라 열흘은 버틸 겁니다.”


설진은 아티팩트를 활성화했다.

그 순간 레임니스의 주변에 푸른 보호막이 만들어졌다.

톡톡. 몇 번 두드리던 설진은 보호막의 강도가 꽤 살벌하다는 것을 깨닫고 안심했다. 이것이라면 최소한 암살을 당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암살에 대한 건 이걸로 됐고.’


속으로 떠올렸다.


레임니스가 죽는 경우는 총 두 가지였다.

암살당하거나, 자살하거나.

전자는 흔히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플라임이 보호에 보호를 기울인 만큼 레임니스는 쉽게 죽지 않았다.


‘남은 건 자살인데···.’


다만 문제는 후자. 보호를 포기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었다.


독약을 삼켜 죽는다.

이것이 레임니스에게 가장 많이 일어난 사건이자 쓸쓸한 죽음이었다.


귀보, ‘만물을 통제하는 억압의 눈’ 사용에 찬동했다. 그것에 자기 자신에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환멸감을 느껴 결국에는 자살한다.

안타깝지만 아예 이해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 또한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환멸투성이의 삶을 보냈으니까.


다만,


이해와 죽음은 다르다.

레임니스가 아무리 자살을 바라보고 있다고 해도, 자신은 그에게 죽음을 허락하고 싶지 않았다. 막고 싶었다.


그래서 입을 열었다.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보기로 했다.

약속했으니까. 적어도 이번 에피소드만큼은 긍정적으로 변하기로 했으니까.


“저는 잠시 나갔다가 오겠습니다. 너무 오래는 걸리지 않을 테니 너무 괘념치 말아 주셨으면 하군요.”

“···그래, 다녀오게.”


이걸로 설진이 할 수 있는 설득은 전부 끝냈다.

남은 건 본인의 결정뿐.


전호를 믿고서 밖으로 나섰다.

이왕 할 거, 위협은 전부 차단해두고 싶었다.


‘지금 암살자는 왕실 잠입에 성공했을 거야.’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지금 설진의 머리에는 암살자들의 침입 경로와 예상 시간이 전부 계산되어 있었다.


‘헤임 제국의 사정도··· 알긴 알지만, 지금은 왕국에 조금 더 신중을 기울여야 해.’


물의 나라 헤임.

설진은 그곳 또한 알고 있었다.

모를 리가 없었다. 플레임 왕국 에피소드가 끝나고 난 후, 이어지게 되는 다음 에피소드가 바로 헤임 제국이었으니까.


그곳의 사정과 사연도 왕국에 못지않았지만, 설진은 헤임 제국에 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건 그때의 이야기였다.

적어도 지금은 플레임 왕국에 집중하고 싶었다.


왕실 밖 훈련장으로 향한 설진의 몸에 마력이 감돌았다.

기민한 발걸음.

자신의 주력기나 다름없는 스킬을 활성화하고서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암살자는 하나. 레임니스를 죽일 때 사용했던 건 짧은 단도와 독.’


되뇌이듯 중얼거렸다. 떠오른 정보를 되뇌이고선 목표물을 향해 접근했다.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한 청년이었다. 언뜻 보면 넉살 좋은 병사처럼 보이지만, 그렇기에 설진은 저 청년이 암살자임을 알았다.


암살자라고 해서 전부 설진이나 루이 로반델트 같지는 않았다.

순박한 외모를 이용해 남을 속이며 접근하기도 했고, 미색을 섞어 암살에 활용하기도 하는 경우도 존재했다.

꽤 다분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플레임 왕국에서 암살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 없는 일이라고도 할 수 없으니.


‘암살자를 여럿 보내면 여러모로 곤란하게 될 테니 적게 보내는 건 좋은 선택이지만···. 그래도, 내가 있으니까 성공은 못 할 거야.’


생각하며 암살자의 뒤로 접근했다.

기척은 여전히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마치 독사처럼,


“지금 쥐고 있는 무기 버려.”


빠르게 뒤를 잡은 설진이 청년의 목에 칼을 올렸다.

그러고선 말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장검을 버리라고.


쨍-.


철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설진은 한 손을 청년에게 가져다댔다.

품을 뒤져 나온 단도와 독약을 확인하고서,


“누가 보냈지?”


입을 열었다.


오늘의 낮은 유난히 길 것 같았다.

설진에게도, 레임니스에게도.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2 92화 22.03.06 535 6 12쪽
91 91화 22.03.05 521 6 11쪽
90 90화 22.03.04 541 5 12쪽
89 89화 22.03.03 543 6 11쪽
88 88화 22.02.28 535 6 12쪽
87 87화(주시연) 22.02.27 543 6 12쪽
86 86화 22.02.26 545 6 12쪽
85 85화 22.02.26 538 7 11쪽
84 84화 - end, Spreading yew(3) 22.02.22 552 9 11쪽
83 83화 - end, Spreading yew(2) 22.02.21 532 5 12쪽
82 82화 - end, Spreading yew(1) 22.02.20 551 5 12쪽
81 81화 22.02.19 556 5 12쪽
80 80화 22.02.18 549 6 13쪽
» 79화 22.02.17 546 5 12쪽
78 78화 22.02.14 564 6 12쪽
77 77화 22.02.13 554 5 12쪽
76 76화 22.02.12 568 5 11쪽
75 75화 22.02.11 591 5 12쪽
74 74화 22.02.10 600 6 14쪽
73 73화 22.02.07 583 5 12쪽
72 72화 22.02.06 596 5 12쪽
71 71화 22.02.05 600 5 12쪽
70 70화 22.02.04 636 6 14쪽
69 69화 22.02.03 621 7 12쪽
68 68화 22.01.31 634 8 12쪽
67 67화 22.01.30 641 9 12쪽
66 66화 22.01.29 635 10 12쪽
65 65화 22.01.28 647 9 12쪽
64 64화 22.01.27 643 11 12쪽
63 63화 22.01.24 712 9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