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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9,775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2.14 21:40
조회
563
추천
6
글자
12쪽

78화

DUMMY

“방금 무슨 빛이 난 것 같···.”

“···라!”


무너진다.

그녀만의 왕국이.


“자국민을 굶기는 왕녀를 타도하라!”

“몬스터의 습격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왕녀는 물러나라!”

“지켜주지 않는 왕녀는, 더 이상 왕녀라 불릴 자격이 없다!”


불안전하게 유지되던 하나의 세계가 산산이 부서진다.

수도 너머 왕실의 앞까지 찾아온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른거렸다.


모든 것을 쥐지 못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왕녀에게 버림당한 이들이 분노(憤怒)했다.


하늘을 가리던 안개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러나 여전히 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빽빽이 가득 찬 사람들이 안개를 대신했다.


‘나는-.’


파도처럼 쏟아지는 행렬을 눈에 새기며, 플라임이 자문했다.


‘저들에게 있어, 무엇이었는가.’


처음에는 지켜주려고 했었다.

몬스터의 습격에 빠르게 반응해 마법사들을 보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흘러 마법 수준은 퇴보하고야 말았다.

가용할 수 있는 마법사는 채 몇백조차 되지 않았고, 대마법사라고 할 수 있는 마법사는 열 명도 넘기지 못했다.


‘저들에게 있어 나는 왕녀인가.’


하지만 플라임은 포기하지 않았다.


마법사 대신, 칼과 창을 사용하는 병사를 보냈다.

희생자가 생겼다.

당연했다. 멀리서 요격할 수 있는 마법과는 달리 그들은 근접전을 하는 병사들이었으니까. 싸울수록 사상자가 발생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사상자가 많아지자, 플라임은 입술을 짓씹으며 병력 이동을 줄였다.

줄어든 마법사. 발생하는 사상자. 수도와 다른 요충지 또한 몬스터의 습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외곽에까지 병력을 보낼 여력은 없었다.


손바닥에 모든 것을 담으려가다는, 되려 전부 빠져나갈 수도 있기에.

그렇기에 활동 영역을 좁혔다. 전멸보다는 소수라도 살리는 쪽을 택했다.

그 덕분에 수도를 비롯한 중요 요충지는 비교적 온전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수도를 비롯한 중요 요충지를 제외한 외곽 마을은 온전할 수 없었다.

습격당했다. 몬스터에게, 유목 민족들에게.

유린당했다. 약탈당하고 빼앗기고 짓밟혔다.


의(衣)가 벗겨지고 식(食)이 없어졌다. 주(住)가 불태워졌으며 마음마저 망가졌다.

왕녀의 비호가 없어진 세계에서 그들은 절망했다. 하루하루를 지옥으로 살았다. 버티지 못해 쓰러졌다. 죽음을 맞이했고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겪었다.


‘저들에게 있어 나는 왕녀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가.’


그럴 리가.

자격 따위는 무슨.


시위가 일어난 광경을 보자마자 플라임이 한 생각이었다.

돌연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무기는 변변치 못해 농기구를 들었고, 위협적인 것이라 해봐야 횃불 몇 개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반기를 들어 항의하고 있었다.


시위를 말려야 하는데.

귀족들에게 청구한 벌금으로 급한 불을 꺼야 하는데.


“···아.”


어째서인지 입이 열리지 않았다.

타국의 외교관에게는 유수처럼 흐르던 입이 굳센 바위처럼 닫혀 움직이지 않았다.


알고 있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리라는 건 알고 있지만.


알고 있는 것과 겪는 것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

단언컨대 후자가 백배 천배는 더 고통스러웠다.

그녀가 일군 세상이 짓이겨졌다. 종이가 찢기듯 세계가 조각난다.


“···타이밍이 좋지는 않았군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타벨이 입을 열었다.

그녀는 정말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이야기는 추후 계속해지요.”


슬프다는 듯 눈동자를 내린 그녀의 동공과는 달리,

입은 찢길 듯이 즐겁다는 듯 웃고 있었다.


“가지요. 아넬, 아메르 경. 왕국이 이렇게 되었으니, 하루빨리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물론, 왕국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말이죠.”


내린 눈동자가 설진과 시연을 향했다.

그러고서 고개를 한 번 숙인다. 드러난 정수리가 못내 얄미워 보였다.

나타벨은 팔라딘을 데리고서 접견실을 빠져나갔다. 또각거리는 소리. 복도로 향하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누나.”

“어.”


플라임 측 병사들은 시위를 진압하러 나섰다.

이제 접견실에 남은 건 설진과 시연, 그리고 비탄에 빠진 왕녀 하나.

고개를 푹 숙인 플라임의 얼굴을 마주 보고서, 설진이 입을 열었다.


“플라임. 귀족들에게 청구한 벌금은 어디에 있어요.”

“···.”

“당신이 할 수 없으면 저희가 할 겁니다. 그러니까 위치를···.”

“그, 그것이.”

“플라임!”


왕국은 망한다.

망가진다. 부서진다. 찢어진다.


설진은 그 과정을 겪었고,

플라임은 그 과정을 겪지 않았다.


“돈 어디다 뒀어.”

“저번에, 그대들에게 주었던 검과 아티팩트가 있는 곳에···.”

“누나, 들었죠. 누나에게 맡길게요.”

“알았어! 지금 갈게!”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절망은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안 된다. 지금, 그렇게나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정신 차려요.”


설진이 말했다.


“···저, 정신. 그래. 정신을 차려야.”


플라임이 답했다. 발음이 꼬이고 성대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걸음걸이가 비틀거렸다.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이 불안전한 모습이었다.


스윽-.


설진은 플라임의 손을 잡아 어깨로 옮겼다.

비틀거렸던 걸음이 조금은 안정을 되찾았다. 그녀는 설진의 어깨에 기댄 채 접견실의 문으로 향했다.


설진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갈래갈래 뻗어나갔다.


“누가 뭐래도 플라임은 왕녀입니다. 플레임 왕국에 자랑스러운 왕녀.”

“···.”

“그러니까 당신의 판단이 옳습니다. 정녕 그게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련들, 그건 왕국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이고, 전력이었을 겁니다.”

“서, 설진 경.”

“그러니까 당신이 옳아요. 잘못되지 않았어요. 당신이 잘못되었으면 플레임 왕국 전체가 잘못된 겁니다. 당신이 만든 세계를 부정하려 들지 마시길.”

“알, 알고 있다. 하지만···.”

“오른의 반란을 기억하십니까.”


뭐라 말을 이으려는 플라임의 말을 끊었다.

대신 물었다. 반란 당시의 일을 기억하느냐고.


“···기억한다.”

“그때 플라임은 귀보를 사용했었습니다.”

“기억한다.”

“만약 귀보를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반란이 성공했겠지.”


파이어 퍼니쉬먼트(Fire Punishment).

목숨을 걸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을, 오른은 펑펑 사용할 수 있었다.

어린아이들을 제물로 바쳐서.


귀보를 사용하지 않았으면 유예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플라임을 비난한다면, 아니. 애초 성립조차 될 수 없는 명제이다.

만약 플라임이 귀보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 ‘누군가’는 이미 죽었을 터이니.


“당신이 행한 정치는 기억하십니까.”

“···무엇을 묻는 것이냐.”

“전부를 쥘 수 없어 일부분을 버린, 그런 정치를 기억하십니까.”


시위와 관련된 말이었다.

지금 왕실 앞에 나온 이들은 전부 버려진 일부분이었다.


“감정적으로는 옳지 않은 판단이나, 이성적으로는 옳은 판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외곽의 사람들이 앙심을 품었다.”

“감정적으로 판단했으면 앙심을 품은 건 외곽의 사람뿐만이 아니었겠죠.”


감정적으로 판단했다면 버려진 일부분은, 버려진 대부분이 되어버린다.

무리해서 전부를 지키려 하다가는 전부를 잃기 마련이었다.

두 마리 토기를 쫓으려다 모두 놓치기 십상이듯이.

무리해서 병력을 운용하다간 병력도 잃고 국민마저 잃는다.


“내가 만약 감정적으로 판단했다면 어떻게 말할 생각이었느냐.”

“반대로 말했겠지요. 이성적으로는 옳지 않는 판단이나, 감정적으로는 옳은 판단이었다고.”

“···그렇다면 그대는, 내가 어떻게 행동하든 나를 위해 말해줄 생각이었나?”

“그러지 않을 거였으면 저는 이 자리에 없었습니다.”

“···.”


어깨를 기대고 있던 손이 스르륵 풀렸다.

발걸음에 힘이 실렸다. 이제야 정신을 되찾은 플라임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설진 경.”

“네.”

“고맙다.”

“저도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제야 플라임의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가 새겨졌다.

조금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몸을 이끌며 왕실의 비고로 향했다. 천천히 상황을 되짚었다.


‘···이제 황녀의 귀에 들어갔을 테지. 지금 왕국은 혼란한 상태라고, 시위가 일어나 왕녀인 내가 휘청거리고 있다고.’


치려면, 지금이 적기라고.


물론 설진과 시연 덕분에 바로 공격을 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공격한다면 노르담과 다른 한 나라의 눈초리를 받게 될 터이니.


다만, 아무도 모르게 친다면?

누구도 쉬이 알 수 없을 정도로 조금씩 살을 갉아 먹는다면?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왕녀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발버둥치는 것처럼, 황녀 또한 왕국을 잡아먹을 계획을 세우고 있을 터였다.

개중에서도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하나.


“그렇다면 일어날 일은 암살이겠군. 내 무력이 무력이다보니 노리는 건 내가 아닐 것이다. 아마 나를 제외한 왕족일 가능성이 크지.”

“···.”

“노리기 제일 쉽고, 처리해도 큰 탈이 없는 사람. 첫 목표는 아마 그런 왕족일 것이다. 그래, 예를 들자면···.”


불현듯 플라임의 머릿속에 한 인물이 스쳐 지나갔다.

자신의 숙부. 반란 당시 한쪽 팔을 잃고 권력에서 물러난 왕족.

지금은 작은 집을 하나 구해 여생을 보내고 있을 터였다.


“숙부죠.”

“그래, 내 숙부님이지.”


설진의 확답까지 받은 플라임은 주변 병사에게 입을 열었다.


“레임니스 숙부님에게 말을 좀 전해다오.”

“···어떻게 말입니까?”

“왕실로 거처를 옮기라고. 할 말이 있다고 해 줬으면 하는군.”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둘은 계속 걸었다.

향한 곳은 비고(祕庫). 시연이 가져갔던 조력의 반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아티팩트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비단 아티팩트뿐만이 아니었다.

왕실 대장장이가 만든 장비 중 역작이라고 불릴 만한 것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하나하나가 재해급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으며, 이중 하나만 가지고 있더라도 수준급의 힘을 갖출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물건들.


덜컥-.


비고의 문이 열렸다.

몇 안 되는 아티팩트를 살펴보던 플라임은 이윽고 원하던 것을 찾았는지 손을 가져다댔다.


우웅-.


그러자 아티팩트에서 푸른 마력이 흘렀다.

번개가 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력은 곧 푸른 빛이 되어 사방을 잠식했다.

빛은 곧 플라임을 감싸더니 일종의 보호막을 형성했다. 사람 하나에서 둘 정도는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크기의 보호막이었다.


“···마력 소모가 조금 있긴 하지만, 어쩔 수 없겠지.”


플라임의 마력이 감응했다.

아티팩트를 손에 쥐고선 가진 마력이란 마력은 전부 때려 박았다. 공격을 받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열흘 정도는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받아라. 부탁할 것이 있다.”


아티팩트의 이름은 전호(全護).

온전하게 지킨다는 의미의 아티팩트였다.

플라임은 푸른 보석같이 생긴 전호를 던져며 말했다.


“이걸로 내 숙부님을 보호해 줄 수 있겠나. 오래는 하지 않아도 된다. 암살이란 자고로 빨리 이뤄지면 이뤄질수록 곤란해지는 법이니까. 사흘 정도만 부탁하지. 빠르게 상황을 마무리짓고 합류하겠다.”

“···.”

“설진 경.”

“사, 흘. ···알겠습니다. 보호하지요.”

“고맙다.”


플라임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더 쓸만한 아티팩트나 장비가 없는지 찾아보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보지 못했다.


“···.”


오묘하게 점철되어 있었던 설진의 표정을.

복잡하다 못해 착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던 그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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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86화 22.02.26 545 6 12쪽
85 85화 22.02.26 538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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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83화 - end, Spreading yew(2) 22.02.21 532 5 12쪽
82 82화 - end, Spreading yew(1) 22.02.20 551 5 12쪽
81 81화 22.02.19 556 5 12쪽
80 80화 22.02.18 549 6 13쪽
79 79화 22.02.17 545 5 12쪽
» 78화 22.02.14 564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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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74화 22.02.10 600 6 14쪽
73 73화 22.02.07 583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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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71화 22.02.05 600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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