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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9,782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1.28 21:30
조회
647
추천
9
글자
12쪽

65화

DUMMY

죽일 각오로 상대한 것이 아니다.

딱 그 말이 어울릴 것이다.


실제로 설진과 시연은 생포의 목적을 가지고서 사내를 상대했었으니.

간간이 검을 들이민 궤적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목이나 심장 같은 급소 부위를 최대한 피하면서 옆구리, 팔 같은 부분만을 노렸다.


“···아.”


그제야 진실을 깨달은 사내, 레겐느의 목에서 허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두 팔은 이미 베여 떨어져 나간 지 오래. 어깨 사이로 뿜어지는 피가 쉴 새 없이 바닥을 적셨다.

그저 절단의 고통만이 연신 몸을 옥죄는 중이다. 눈동자는 이미 흐릿해질 대로 흐릿해져 이지를 잃은 듯 보였다.


“자. 너도 알겠지?”


시연이 레겐느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왜 살려놨는지.”


목숨은 소중하다느니, 생명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느니.

그런 쓰잘데기 없는 이유가 아니다. 그런 이유였다면 이제껏 둘이 죽여온 사람들의 존재 전부가 모순이 되어버릴 것이다.

목숨을 붙여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아는 거 뱉어봐. 왜 여기 와서 이러고 있냐.”


정보 확보.

플라임이 그랬던 것처럼, 시연 또한 정보를 얻기 위해 신문하고 있었다.


물론 22층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건 아니었다.

되레 잘 알고 있었다. 워낙 큰 사건이다 보니 뇌리에서 잊혀지질 않았다.


다만 22층에서 발생하는 사건.

그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가 무작위라는 것이 문제였다.


비단 22층만이 아니다.

얼핏 들어본 설진의 말로는, 무작위라는 개념이 탑 곳곳에 퍼져 있다고 한다.

무분별한 에피소드 클리어를 막기 위해서인 듯했다.

무슨 사건이 일어나고 해결하는 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데, 하물며 장소까지 알고 있으면 그건 공략이 아니라 치트나 다름없었으니까.


‘뭐, 어쨌든 사건이 발생하는 장소가 어딘지 알아야 하는 건 맞는데···.’


그렇다면 장소를 찾아다니느라 고생할 바에야, 차라리 심문하는 쪽이 더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레겐느는 적합한 신문 상대였다.

실력이 있는 것을 보니 무리 중에서도 꽤 높은 자리에 있으리라 생각했다.


“왜 습격했어?”

“···.”

“목적이 뭐야? 너희 본거지는? 배후가 누구지?”

“···.”

“아-. 그것참. 아는 사람들끼리 왜 이러는지. 혹시 모르잖아, 이렇게 순순히 대답해준다면···.”

“···죽여라.”

“고통 없이 편하게 보내줄지. 응?”


결연한 표정을 한 레겐느의 얼굴이 보였다.

살 수 없음을 각오한 듯했다. 마지못해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듯했다.


그런 레겐느의 모습에 시연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마치 광소하는 것처럼 보였다. 얼마나 웃었는지 눈에서는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리는 중이다.


“아. 진짜. 레겐느 씨. 우리 이러지 말자.”


눈물을 닦은 시연이 입을 열었다.


“뭘···?”

“죽는 건 당연한 거고. 지금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야. 정보를 뱉고 고통 없이 죽을 건지, 아니면 고통으로 미쳐가다가 정보를 뱉고 죽을 건지.”

“···.”

“저기 저 친구 봐봐. 네 팔 베어낸 친구. 한때 왕실 고문관이었거든. 믿을지 말지는 네 의사긴 한데, 그게 어떻게 작용할지도 네 의사인 거, 알지?”

“···아.”


거짓말이었다.

시연은 탑에 들어온 지 삼 개월도 되지 않았으며, 설진은 왕실 고문관이 아니었다. 그저 베테랑인 척 입을 놀려 상대를 속이고 있었다.


하지만,


어깨의 출혈 때문인지 레겐느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정상적인 판단이 힘든 듯 보였다. 시연이 노린 부분은 그곳이었다. 판단이 흐려진 상태에서, 공포를 유발하는 말을 던져 굴복하게 만들었다.


결과는 곧장 나왔다.

아침이 된 하늘 아래에서, 피분수가 된 광경 너머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말, 말할 게.”


고개를 푹 숙인 채 떨고 있는 레겐느가 보였다.

덜덜. 다리가 하염없이 떨리고 있었다.

만약 팔이 잘리지 않고 남아있었더라면 다리만큼 흔들렸을 터. 공포에 빠진 레겐느를 보고서 시연은 질문을 시작했다.


“그래, 잘 생각했어. 얼마 걸리지 않을 거야.”

“···.”

“누가 이런 일을 꾸몄지? 배후가 누구야?”

“···마트리아.”


마트리아는 왕국의 세력이 아니었다.

플라임이 지나가듯이 언급했던 왕국 외 세력.

말인즉 유목 민족이나 부락 중 하나였다.

그중에서도 마트리아는 유목 민족에 속했다. 정착 생활을 하지 않고 주기적으로 이동해 생활하는 사람들.


당연하게도 왕국과 호의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아니, 애초 접점이 잘 없었던 터라 누가 누구인지도 잘 모를 것이다.

식량이 떨어지면 새로운 식량을 구하기 위해 이동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가난한 것은 아니어서 굳이 왕국을 건드릴 필요가 없기도 했고.


“마트리아라··· 그렇다면 넌 마트리아 사람인가?”

“나는 그저 고용된 용병일 뿐이야. 마트리아 사람이 아니야.”

“호오. 용병까지 고용해서 왕국을 공격할 이유가 있었나 봐?”

“···그, 그건.”


시연의 말에 레겐느의 목소리가 떨렸다.

망설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지금 나올 정보가 굉장히 중요하리라 판단, 레겐느를 더욱 노려보기 시작했다.


툭. 툭.


땅에 찧기고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방패를 바라보던 레겐드는 이내 눈을 감고서 말했다.

마지못해 입을 여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사람들을, 납치하기 위해···.”

“납치라···. 납치해서 뭐 하려고?”

“···.”


다시금 레겐느의 말이 멎었다.

잠시 침묵을 유지한 그의 눈동자가 용오름쳤다. 이후 고개를 몇 번 내젖고선 말문을 열었다.

이젠 될 대로 되라는 식인 것 같기도 했다. 이미 레겐느에게 삶을 바라는 듯한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투기장에 쓰기 위해서. 왕녀가 주체하는 콜로세움이 중단된 지금, 다시 투기장을 재건해 불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다.”

“아니, 잠깐만. 뭔가 안 맞는 게 있는데.”

“또 뭘···?”


시연은 레겐느를 한 번 쳐다보고서, 다음으로 시체를 바라보았다.

아까 레겐느가 이곳에 왔을 때 처음으로 죽인 남자였다.

이야기가 맞물리지 않았다. 모순적이었다.

납치가 목적이라면 대체 왜 사람을 죽인단 말인가. 아니, 애시당초 납치에 이리도 많은 사람들이 동원될 이유는 없었다.


스윽-.


잠시 창문 밖으로 눈을 돌렸다.

외곽 쪽에 위치한 마을은 불타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칼부림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고 있었으며, 몇 초 간격으로 사람이 죽어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납치의 광경도 드문드문 보였다.


이건 소규모로 움직이는 일이 아니었다.

대규모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용병 고용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건, 그래. 그런가.”

“뭘?”

“심심풀이지? 이거. 나도 가끔 그러는데, 칼질 몇 번 하다가 운 좋으면 식량도 얻을 수 있고, 일석이조잖아?”


옆에 놓아둔 대검을 뽑아들며 입을 열었다.

레겐느는 부정하지 않았다. 완전히 자신과 동류라고 착각한 듯했다.


“나도 그걸로 잘잘못 따질 생각은 없어.”


피식-.


시연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손을 뻗어 대검을 들어 올렸다. 작은 방패와는 달리 대검은 꽤 무거운 편이었다.


“아, 끝내기 전에 묻고 싶은 게 하나 더 있는데.”

“···뭐지?”

“투기장은 어디서 열리는 거냐.”

“···.”


레겐느의 입이 열렸다.


“부르크. 지하.”

“···? 와, 이거 참.”


미친놈들이네.

시연이 말했다.


“어쨌든 잘 가라. 다음 생에는 나 같은 놈 만나지 말고.”


거대한 대검이 레겐느의 목을 향했다.

촤악! 비명은 없었다. 바라본 곳엔 이미 곤죽이 되어버린 시체가 존재할 뿐.


목이 뭉개진 채 죽은 레겐느를 잠시 바라보다가, 시연은 고개를 돌렸다.


“부르크래. 그중에서도 지하고.”

“왕국 수도 지하에서 투기장을 연다고요? 아니, 이건 경우는 처음인데···.”

“나도 모르지. 시위를 가속시켜서 상황이 악화된 걸 수도 있고, 뭐. 그것 말고도 변수는 많으니까. 일단 그렇게만 알아두고 있어.”

“그럴게요. 그럼 우리는 지금부터···.”


향후 할 일을 말하려던 설진의 입이 멎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멈출 수밖에 없었다. 원래는 이곳을 뜨자고 말할 작정이었건만, 이미 마을은 포위될 대로 포위되어 버렸다.


쉽게 빠져나갈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건 전투. 싸워서 돌파구를 만들어내야 했다.


“···싸워야겠네요.”

“그래, 그러게.”


시연이 긍정했다.

이런 상황이 되어버린 마당에 쉽게 도망칠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 않았다.


“누나.”

“어, 응?”

“지금 여기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얼마나 될 것 같아요?”

“···대부분이 죽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살아 있지 않을까.”

“구하고 싶어요?”

“···.”

“아뇨. 걸고 넘어지려는 게 아니라. 저도 구하려고 할 참이었어요. 20층과는 달리 지금은 저희 모습 그대로니까. 아마 소수지만 이들은 구한다면···.”


단순 억측일 뿐이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곳의 외곽 마을 또한 왕실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을 터, 그런 와중에 외부인인 자신이 이들을 구해준다면?


‘···.’


더 생각하려던 설진은 이내 생각을 멈췄다.


‘아니··· 괜히 이유를 붙이고 있었네···.’


지금은 어떤 미사여구를 붙여도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없었다.

그저 상황을 접목시키기 위한 줏대없는 생각이 될 뿐이었다.


대신, 인정했다.

자신은 지금 시연의 말을 들어주고 싶었다.

이미 많이 죽어버렸겠지만,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이라도 구하자는 그녀의 말을.


“후. 어디부터 갈래요? 이번 스테이지는 누나 말대로 움직일게요.”

“···고마워. 그렇다면 일단-.”


마을회관으로 가자고 말하려던 시연의 입이 멎은 건 그때였다.

쿠궁. 쿠구궁! 불현듯 소리가 울렸다. 그건 천둥이 치는 소리 같기도 했으며, 무언가 폭발하는 듯한 소리 같기도 했다. 뭐가 되었든 좋은 소리는 아니었다.


“누나, 이건···.”


뒤늦게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퍼엉하는, 무언가 터지는 듯한 소리를 듣고서 깨달았다.

이건 폭탄이었다.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위한 무기였다.


“빠르게 마을회관으로 가자!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 없지는 않을 거야!”


시연의 말과 함께 설진은 달리기 시작했다.

마을회관의 정확한 위치는 몰랐지만 높게 솟아있는 왕국 깃발을 보고서 알 수 있었다. 타다다다.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직 숨어있는 놈이 있었어! 잡아!”

“비켜!”


설진과 시연의 존재를 눈치챈 놈들이 크게 소리쳤다.

시연은 먼지를 떼어내듯 그들을 떨어쳐며 전진했다.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밖에 있는 마트리아인들은 레겐느만큼 강하지 않았다.

외려 약했다. 체감상 마트리아인 열을 모아야지만 겨우 레겐느에게 대항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승리가 전제인 것이 아닌, 대항이 전제였다.


휘익-!


대검을 휘둘렀다.

견제용으로 휘두른 대검이기에 맞진 않았지만, 경계심을 심어주기엔 충분했다.

주춤거리며 발걸음이 뒷 방향을 향했다. 그 모습을 보던 시연은 계속해 앞으로 달려나갔다. 마을회관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스윽-.


경계하고선 뒤로 물러나려는 그들에게 향한 건 설진이었다.

기민한 발걸음을 적극적으로 사용 및 활용. 시연에게 집중된 틈을 노려 마트리아인들의 목을 베었다. 촤악-. 한번에 셋이 목이 베인 채 쓰러졌다.


피가 흐드러졌다.

낙하한 선혈들을 본 저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당혹을 넘어선 공포. 그들은 설진에게서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못해도 오십은 넘어 보이는 마트리아인들을 제쳐두고, 둘은 마을회관으로 향했다.


쾅!


대검으로 문을 박살 낸 채 내부로 들어왔다.


“···!”


한참 주변을 살피던 시연의 얼굴이 흔들린 것은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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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86화 22.02.26 545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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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83화 - end, Spreading yew(2) 22.02.21 532 5 12쪽
82 82화 - end, Spreading yew(1) 22.02.20 551 5 12쪽
81 81화 22.02.19 556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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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79화 22.02.17 546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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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74화 22.02.10 600 6 14쪽
73 73화 22.02.07 583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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