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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9,786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2.03 21:30
조회
621
추천
7
글자
12쪽

69화

DUMMY

실종.

정확히는, 실종을 빙자한 죽음.


모험가들은 실종이라고만 알고 있는 듯했지만, 설진은 진실을 알았다.

린은 죽었다.

드래곤과 싸우다가 이렇다 할 성과도 내지 못하고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루이 로반델트로 빙의했을 때, 린의 성장 한계치를 봤었지.’


루이 로반델트의 몸으로 린을 보았을 때 알 수 있었다.

린은 재능이 없었다. 방패를 올릴 줄은 알지만 빠르게 상황 판단을 할 순 없었고, 전황을 살필 줄 알지만 전부를 살피진 못했다.

그저 일부만을 살필 수 있었다.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일 수 있으나 보다 높은 경지에 발을 들이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린은 미세한 부분에서,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감각이 부족했다.

어떠한 상황에서 어떠한 대처를 해야 하는지 판단이 늦었다. 이건 곧 개개인의 센스 부족으로 이어지는 오로지 본인의 문제였다.


‘기본기 자체는 나쁘지 않아. 오히려 좋다고 해도 될 정도야.’


물론, 이 모든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었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린의 실력은 평균 이상. 어딜 가도 대접받을 수 있는 위치까지 오르는 것이 가능했다.

S급 모험가가 된 것만 봐도 어느 정도 실력은 있다고 봐야 했다.

다만 그것이 드래곤을 일신의 무력으로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묻는다면 백에 백이 고개를 내저을 터.

훈련으로는 절대로 터득할 수 없는 전투 센스. 린에겐 그것이 부족했다.


그렇기에 드래곤을 죽일 가능성은 0에 수렴했다.

어쩌면 드래곤의 둥지까지 가지도 못하고서 죽었을 수도 있었다.

어찌어찌 드래곤과 마주했다고 해도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한 채 패배했을 터.


‘···.’


그만큼 린과 드래곤 사이에는 아득한 격차가 존재했다.

설진은 머릿속에서 린이 싸우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방패가 있고, 대검이 있었다.

린이 악에 받친 표정으로 달려든다. 두 발을 빠르게 놀리며, 오른손에는 대검을 든 채 앞으로 나서 공격을 가했다.

노리는 곳은 어깨. 드래곤에겐 날개가 있는 부분이었다.

크게 도약해 드래곤의 날개 근처까지는 다다랐지만-.


휘익-!


날개짓으로 만들어진 바람을 맞고서 고꾸라진다.

그 이상의 기회는 존재하지 않았다. 거대한 몸집을 가진 드래곤이 거체를 일으켜, 발을 올리고선 린을 짓밟아버렸다.


펑, 하고 피가 튄다.

드래곤의 발에는 피가 묻고 으스러진 뼛가루들이 묻었다.

죽음. 그렇게 린은 죽음을 맞이한다.


‘···.’


물론 이건 온전히 설진의 상상이었다.

다만 설진이 가지고 있는 전투 센스, 상황 판단력을 고려했을 때 작금의 상상은 사실에 가까울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죽어버린 린.

상처는 고사하고 검을 가져다 대지조차 못한 채 사망했다.


설진의 머릿속에는 이미 그런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비극.’


그 단어를 되뇌었다.


비극.

한 번 더 뇌까려 보았다.


확실히 비극이었다. 뭐 하나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채 사망했다.

그녀의 사연을 알고 있었기에 느껴지는 감정은 배가 되었다.

린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친 란의 존재가 비극을 한 층 더 감쌌다.


겹겹이, 그리고 빽빽하게.

설진은 떨어뜨린 마도구를 다시 주웠다. 손바닥 안에서 굴러가고 있는 둥그런 마도구들이 오늘따라 유약하게 느껴졌다.

조금만 힘을 주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안전장치가 있음에도 누르면 바로 터질 듯한, 마력이 새어나와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채 망가질 듯싶었다.


또다시 생각났다.

뇌리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애써 잊으려 해도 마찬가지. 아무리 고개를 흔들어도, 머릿속을 백지상태로 만들어도 비극은 기어나왔다. 없애도 없애도 끊임없이 튀어나왔다.


그제야 설진은 지금 자신이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은,


‘···짜증 나.’


적잖이 짜증을 느끼고 있었다.

속이 편치 않고 메스꺼웠다. 금방이라도 먹은 음식이 역류할 것 같았다.


설진의 머릿속에서 사람이 둘 떠올랐다.

한 명은 남자고, 한 명은 여자인.

남자가 동생이고 여자가 누나인.


남자가 생각났다.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드래곤을 죽인다고 말했다.

자신은 그런 남자에게 검을 가르쳐 주웠다.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연신 고맙다고도 했다.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선 기뻐했다.


그러나 죽었다.

드래곤에게 죽었다. 짓밟혀 죽었다.


피가 터져 나왔고 두개골이 으깨졌다.

뻘겋게 물든 피륙이 드래곤의 발에 묻고선, 밟혀 으깨진 뼛가루만이 남았다.

시체조차 건질 수 없을 정도로 남자는 참혹하게 죽었다.

란. 남자의 이름이었다.


여자가 생각났다.

똑같이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드래곤을 죽인다고 했었다.

자신은 그런 여자에게 냉혹하고도 씁쓸한 현실을 가르쳐 주었다.


여자는 분개했다.

억울해하기도 했다. 슬프고 슬퍼서 한동안 자책감에 빠져있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나아지지 않았다.

드래곤에게 죽었다. 마찬가지로 짓밟혀 죽었다.


콜로세움에 우승해 받은 아티팩트를 사용했음에도 죽음을 면치 못했다.

애초 목적이었던 드래곤에게 상처를 낸다는 염원은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실종되었다는 말이 떠돌고 있을 정도로 여자의 결말은 비참했다.

린. 여자의 이름이었다.


‘왜.’


돌연 의문이 차올랐다.

왜 짜증이 나지.

왜 짜증이 나지?


대체 왜? 내가? 어째서?

내 일이 아닌데? 타인의 일인데?


접점이 좀 있었다 할 뿐이지 친분이 깊은 것도 아니었는데?

애시당초 친구 사이도 아니었는데? 그저 플라임에 의해 만난 관계였는데?


그런데, 왜?


차오른 의문은 되레 분노를 유발했다.

말 그대로 짜증이 났다. 사람이 죽은 것에 부아가 치밀었다.


분명 죽음은 문제가 아니라고, 머리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도.

오갈 데 없는 분노는 표류하듯 사방으로 퍼졌다. 생의 마감은 죽음이어서 슬피 울 이유가 없으리라 생각했던 사고가 완전히 뒤틀렸다.


부모의 병.

병을 낫게 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두 사람.


자신이 알고 있었던 사고의 방향과 너무나도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

어머니의 죽음을 막고자 미친 듯이 발버둥쳤던 누군가의 이야기.


설진의 손이 더욱 강하게 쥐어졌다.

동시에 또 다른 질문이 머릿속을 옥좼다.


‘나는 이런 결말을.’


이런 비극을.

이런 비참함을.


‘납득할 수 있나?’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나?


의문은 배가 되어 하염없이 맴돌았다.

죽음을 비극이라고 인식한 결과는 컸다. 이때까지 생각했던 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사고(思考)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란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싶지 않았다.

린이 실종되었다는 정보를 접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던 결말이었지만, 그래도 바뀌었으면 했었다.


‘아-.’


안다. 알고 있다. 바꿀 수 없다는 것쯤은.

드래곤에 비하면 자신의 힘은 너무나도 유약했다.

드래곤이 강철로 만들어진 검이라면, 자신은 검조차 아니었다.

낡아빠진 검집이었다. 날갯짓 한 번에 날아가 사라지는 엑스트라.


지금의 설진은 그런 존재와 다를 바 없었다.

그만큼 드래곤은 강했고, 설진은 약했다.

아무리 바꾸려 해도 바꿀 수 없는, 그야말로 닫힌 결말이라는 것이다.


벌레가 아무리 기어봐야 벌레라고.

지렁이가 꿈틀거려 봐야 결국 지렁이라고.


설진에겐 결말을 바꿀 힘이 없었다.

그래서 차선책을 선택했다. 막을 수 없는 비극이라면, 차라리 그 비극의 강도를 줄이자고 생각했다. 그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그렇게 생각했다.


다만 이곳은 게임이 아니었다.

엄연히 탑이라는 독자적인 장소이며, 이젠 현실이 되어버린 공간이다.

게임을 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을 할 수 있다.

보다 자율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었다. 떠올리지 못했을 뿐이지, 어쩌면 드래곤에게 맞이한 최후를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굳이 드래곤과 맞서 싸우지 않고도 드래곤의 숨결을 구할 방법은 있었다.

힘이 들 뿐이지 목숨을 내어줘야 할 정도로 허무하지는 않았다. 그저 기다리면 된다. 뒷골목에, 암시장에 드래곤의 숨결이 매물로 나올 때까지.


돈? 상관없었다. 자신이 내어주면 될 일인 것을.

부족하다면 란과 린이 벌어둔 돈을 합치면 될 일인 것을.

그럼에도 부족하다면 플라임의 손을 빌리면 될 일이었을 것을.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무조건 할 수 없다고 생각해 잣대를 들이밀었다.

은연중에 자신을 가뒀다.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일을 불가능이라 치부한 채로.


“하.”


무의식 중에 웃음이 새어나왔다.

허탈한 웃음이었다.

이런 간단한 사실을 이제야 떠올리다니.


너무나도 멍청하고, 너무나도 바보 같아서.

오히려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나 자신에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을 그저 할 수 없다고 치부하기만 한 나 자신을 향해서.


설진은 손을 들어 올려 얼굴을 감쌌다.

내리그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지금 자책하고 있었다.

자책은 곧 후회였고 그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그래서 생소했다. 왜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몰랐다.


왜 이렇게 아픈지 몰랐다.


이백이 넘는 몬스터들을 상대했을 때보다,

오백의 군사를 상대했을 때보다 아팠다.

단지 자신의 행위로 비롯된 감정은 천칭처럼 무거웠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아서 한없이 한스러웠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이제 뭘 해야 하는지.

뭘 어떻게 해야 이 감정을 없앨 수 있는지.


이미 알고 있는 답이었다. 지금까지 한 일과 반대로 하면 되었다.

비극을 비극이라 받아들이지 말고, 절망을 절망이라 받아들이지 말아야 했다.

바꿔야 했다. 이 빌어먹을 정도로 피폐한 결말을 뜯어고쳐야 했다.


비극이 비극으로 치닫지 않도록.

절망이 절망으로 윤회하지 않도록.


설진은 얼굴을 감싸 쥔 손을 치워버렸다. 트인 시야 속에서 빛이 들어왔다.

보이는 빛은 마치 이곳으로 오기 전 보았던 햇살과 비슷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빛이었을진대 이상했다. 이상하게도 빛을 보면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앞서 걷다가, 고개를 돌린 채 손을 내뻗은 시연이 생각났다.

그런 모습을 떠올리자니 마음이 나아지는 기분이다. 생전 처음 느껴봤던 후회와 자책의 무거움이 조금은 덜어져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폭발 관련 마도구를 챙길 수 있을 만큼 챙긴 설진은 계단을 내려왔다.

얼핏 살펴본 바 계산대는 1층에만 있었다.


“어이구. 이걸 이렇게 많이 사요? 어디 불꽃놀이라도 계획하시나?”


조금은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주인장이 말했다.

이윽고 셈을 하듯 손을 움직여 마도구의 개수를 세더니만, 이내 계산을 마쳤는지 종이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자, 폭발 마도구 ‘소형탄(小型彈)’ 총 쉰여섯 개. 맞죠? 봉투에 담아 드릴 테니 가지고 가세요. 이러면 가져가기 쉬울 거에요.”


계산대 뒤편에서 큼지막한 봉투를 꺼낸 주인장은 소형탄이라 불린 마도구를 담기 시작했다. 한 번 쥘 때마다 대여섯 개가 잡혀 봉투 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몇 초.

봉투에 전부 담은 주인장이 이어 말했다.


아니, 말하기 전에 설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얼마죠?”

“개당 은화 1000닢 정도니까··· 금화 5닢에, 은화 6000닢이긴 한데··· 하하. 너무 정 없어 보이나요? 이렇게 많이 사간 것도 인연인데, 조금 깎아 드릴게요.”


주인장이 다시 종이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윤을 비교하듯 글자를 몇 개 남겼다.

이윽고 가격 계산을 마친 주인장의 입이 다시금 열렸다.


“금화 5닢에, 은화 5000닢 어때요?”

“저야 이득이죠. 깎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유, 아니에요. 그럼 시간 날 때 재방문 해주시는 건 어떤지?”


주인장의 말에,

설진이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 미소를 지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하, 자주 올게요.”


꾹 닫혀서 열리지 않던 입이, 처음으로 열린 순간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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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87화(주시연) 22.02.27 543 6 12쪽
86 86화 22.02.26 545 6 12쪽
85 85화 22.02.26 538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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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83화 - end, Spreading yew(2) 22.02.21 532 5 12쪽
82 82화 - end, Spreading yew(1) 22.02.20 551 5 12쪽
81 81화 22.02.19 556 5 12쪽
80 80화 22.02.18 549 6 13쪽
79 79화 22.02.17 546 5 12쪽
78 78화 22.02.14 564 6 12쪽
77 77화 22.02.13 554 5 12쪽
76 76화 22.02.12 568 5 11쪽
75 75화 22.02.11 591 5 12쪽
74 74화 22.02.10 600 6 14쪽
73 73화 22.02.07 583 5 12쪽
72 72화 22.02.06 596 5 12쪽
71 71화 22.02.05 600 5 12쪽
70 70화 22.02.04 636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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