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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9,991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1.22 22:43
조회
672
추천
9
글자
11쪽

61화

DUMMY

“아···.”

“그렇게 겪고도 모르겠소? 석 달이오. 무려 석 달. 왕실이 병력을 파병하지 않아 겪은 몬스터들의 습격만 해도 열 번이 넘어가오.”

“그, 그런.”

“버림당한 거지. 몬스터들의 습격이 잦아진 이 마을을 도와준다면, 쓸데없는 병력만 소모될 것으로 판단하고서는 말이야.”


여인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충격에 빠진 것 같기도 하고 인정할 수 없다며 부정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기야 그 누구라도 버림당했다는 말을 들으면 혼란에 휩싸일 것이다.

그것이 친구나 지인 관계도 아닌 국가에서인데 오죽하겠는가.


“아, 아니야. 설마 그럴 리 없어. 왕, 왕녀 전하가- 우리를?”


여인은 고개를 돌리며 부정했다.

플라임이 그럴 리 없다고, 있을 리 없는 일이라고.

그만큼 여인이 가지고 있는 믿음은 컸다. 그녀는 위선자도 악도 아닌 선인이었으니까. 실제로 플라임은 왕국에게, 사람들에게 헌신하고 있었다.


단지 성격이 차갑기에 쉬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

알 사람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얼마나 왕국을 사랑하는지.


“그 사랑한다던 왕국에 우리는 없소. 이제 좀 깨달을 때가 되었지 않소? 플라임은 선인이 아니오. 오히려 쓰임새를 다한 우리를 버리려는 악마에 가깝지.”


다만 설진은 그와 반대되는 말을 내뱉었다.


선인이 아닌 악인으로.

선인이 아닌 위선자로.


설진이 아닌 아만드라는 빙의 대상이었기에 말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원래부터 말이 많은 성격이었던 건지, 생각하는 족족 입 밖으로 터져나왔다.

청산유수처럼 튀어나온 말이 다시금 재도약할 준비를 마쳤다.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들이 하나둘 밖으로 방출되기 시작했다.


“잘 생각해 보시오. 왕녀가 마법 금지령을 실행하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 그거야 반란이 재발할 것을 우려하심이···.”

“애초 반란이 왜 일어났겠소? 원래부터 왕녀 전하가 왕국을 사랑했다면, 반란이 일어날 일도 없었소. 지금 생각해보니까 오히려 수상하기만 하군그래.”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죠···?”

“이제 좀 알아차릴 때도 되었지 않소.”


시선을 들어 올렸다.

오직 여인 하나만을 한정한 것이 아닌, 작금의 대화를 귀 기울여 듣고 있을 여인들 전부를 눈에 담으며 연설하듯 말을 이었다.


“오른은 반란자가 아닌, 오히려 구원자였단 것이오.”

“···!”

“왕녀는 반란이 종결되자마자 예상했다는 듯 정책을 만들었소. 이것이 억압이 아니면 무엇이라 생각하시오? 설마, 진짜로 우리 같은 서민들을 위한 법일 리가 없지 않소?”


서민들을 위한 법이 맞았다.

오른의 죽음으로 반란은 종결되었지만, 반란 조직 레지스탕스가 아예 와해된 것은 아니었다.

패배 후 살아남은 패잔병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는 어린 나이의 마법사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고.


플라임은 그런 마법사들의 테러를 억제하기 위해 귀보를 사용했다.

애꿎은 복수심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다치는 것을 우려해서.


“정치에 선은 없소. 모두가 사익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정치고 왕실이요. 왕녀 플라임이라고 해봤자 예외는 아니겠지.”


그러나 생각과는 다르게 입은 반대의 말을 내뱉었다.

말은 거짓말일지라도 사람을 설득하는 힘이 있다고.

여인들의 표정이 하나둘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친놈 보듯 설진을 바라봤더라면, 지금은 신빙성이 생겼는지 충격받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완벽하게 설득시키려면 지금이 적기였다.

설진은 쐐기를 박듯 마지막 말을 이었다.


“가면은 이미 녹아내렸소. 권력을 다 잡은 마당에 더 이상 선인인 척할 필요는 없겠지. 악인임을 들켜도 그녀는 이미 최상위 권력자니까 말이오.”

“그럼!”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여인이 소리쳤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낸들 알겠소. 당신들 자유지. 왕녀에게 최소한의 저항이라도 해 권리를 되찾는 시도라도 해보거나, 여기서 굶어 죽거나. 둘 중 하나겠지 뭐.”


그걸로 끝이었다.

설진은 그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는 듯 입을 닫았다.


대신 시연을 불러 이쪽으로 오게 했다. 목적은 이뤘으니 이곳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한 번 불붙은 불씨를 다시 확인할 이유는 어디에도 존재치 않았다.


이미 바람은 불었다. 자신의 입으로 불었다.

센 바람 앞에 불은 꺼지지만 약한 바람은 되레 불을 번지게 만든다.

설진은 지금 약한 바람이었다. 빼앗긴 자들에게 원망을 심었고, 그 원망이 왕녀에게 향하도록 바람을 넣었다. 이것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끝냈다.


미안한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단지 비극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일이었기에.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면, 최소한 빨리 끝나기라도 하는 편이 나았기에.


몇십 번이 넘는 끝에 설진이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게임할 당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활용했음에도 바꾸지 못한 결말이었으니까.

그 결말을 조금이라도 짧게 만들고자 한 짓이었다.


무심코 고개를 젖혀 하늘을 바라보았다.

목에서 느껴지는 흉터는 여전했다.

서서히 기울어가는 달이 스러지기 시작했다. 구름에 한 번 가릴 때면 달의 형상은 옅어졌고, 구름이 개일 즈음에는 눈에 띌 정도로 짙어졌다.


“가요.”


다가온 시연에게만 들릴 정도로 짧게 중얼거렸다.

시연은 고개를 한 번 까딱이더니, 이게 걸음을 옮겼다.

설진은 이미 시연보다 한 걸음 앞서나가 있었다. 이젠 여인들과 아이들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먼 거리에서, 시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왜 그런 건지, 물어봐도 될까?”

“···.”

“아, 아. 탓하려는 게 아니야. 너도 전부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겠지. 근데, 좀 갑작스러워서 그래. 최소한 설명이라도 해줬으면 좋았을 것 같아서···.”


하하,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연다.

설진은 곰곰이 생각하더니만 대답했다.


결말은 바뀌지 않으니, 차라리 비극을 조금이나마 줄이겠다고.

그렇게 생각해서 한 일이었다고.


“그렇구나.”


시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화내지 않았다. 탓하지도 않았다.

이상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화를 내는 게 일반적이었던 것 같은데.

경험상 그랬다.

자신과 타인의 사고 가치관은 매우 달라서 충돌이 자주 일어난다. 그것이 작은 다툼이었으면 다행이겠지만, 크게 번지면 손을 틈도 없이 다투게 된다.


이번에는 싸워도 사이가 그렇게 틀어지지는 않을 것 같아 한 일이었는데.

설마, 아예 아무런 논쟁이 없을 줄은 몰랐다.


“근데 설진아, 누나가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그런 설진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연은 그저 질문을 하나 건넸다. 성대를 타고 목울대를 오르며 내뱉어지는 목소리가 사뭇 서글퍼 보였다.


“···뭔데요?”

“만약 결말이 정해지지 않으면. 베드 엔딩으로 정해진 이야기가 아니라 바꿀 수 있는 이야기였다면, 너는 바꿀 거야?”

“···.”


바꾸고 싶어도 아니고 바꿀 거라니.

하려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뉘앙스였다.


설진은 시연의 질문에 고민하기 시작했다.

기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주제였다.

게임을 하고 또 했음에도 행복한 결말을 만들어낸 적은 없었기에, 이미 깊숙이 틀어박힌 생각은 ‘바꾼다’는 단어 자체를 떠올리지 못했다.

단지 바꾼다가 아니라, 줄인다로 가결내렸을 뿐.

피할 수 없는 공격은 막아야 한다고, 막연히 그런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고민은 꽤 한참 동안 이어졌다.

오래 생각할 필요는 없었지만, 질문을 건넨 대상이 시연이었기에 고민은 길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고심하다 그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누나.”


밤은 차가웠고 입에서는 김이 서렸다.

어두운 밤하늘을 향해 서린 김이 뻗어져 나갔다.


“저는···.”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 * *


하루가 흘렀다.

몬스터들의 습격을 받아 불타버린 마을과 가까운 또 다른 마을.

인근 마을에 도착한 설진이 고개를 돌렸다.


기실 이곳도 다를 건 없었다.

집이 불타지는 않았지만 시체가 나뒹굴었다.

식량을 전부 약탈당하지는 않았지만 얼마 없는 식량을 두고 싸우고 있었다.


사람들끼리 싸운다는 점에서는 아까의 마을이 훨씬 나을 것이다.

그곳은 최소한 싸우지는 않았으니까. 집단 조직에서 내부 분열만큼 무서운 것은 없었다. 강한 적보다 멍청한 아군이 원래 더 무서운 법이었다.


‘지금 상황에 어울리는 비유는 아니지만···.’


최소한 같은 마을 사람끼리 싸우는 모습은 절대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돌린 고개가 옆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남자 둘이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별로 커 보이지도 않는 빵 조각 하나를 가지고선 다투는 모습.

말로 해결되지 않자 결국에는 무력 싸움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한 남성이 주먹을 휘두르면, 그보다 나이가 더 많아 보이는 남자 또한 주먹을 들었다.


몬스터와 싸우는 것보다 더 치열해 보일 지경이었다.

절박함과 배고픔이 한데 섞인 결과는 참혹했다. 동아줄 하나 없이 방치된 마을 사람들은 그야말로 미쳐가고 있었다.


“누나, 오늘은 여기에 있죠.”

“저 마을에 들어가려고? 좋은 꼴은 못 볼 것 같은데···.”

“아니요. 지켜보기만 할 거에요. 20층의 클리어 조건은 변화를 확인하는 거니까. 저 사람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 아마 클리어 될 거에요.”


둘은 마을 사람들과는 달랐다.

그들이 음식을 먹고 물을 마셔야 살 수 있다면, 설진과 시연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탑에 들어오고 난 뒤로는 영양 공급이 필요치 않았으니까.

음식을 섭취하지 않아도 힘을 발휘하는 데에는 문제없었다.


이따금 밀려오는 추위나 졸음 정도만 해결하면 괜찮았다.

둘은 들키지 않을 만한 수풀에 자리를 잡았다. 마을의 전체적인 모습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인지하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계속해 흘러갔다. 보이는 반응이 점차 과격해졌다.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남자가 서서히 균형을 잃었다.

배를 부여잡던 남자는 이내 쓰러졌다. 털썩- 힘이 쭉 빠지며 생명이 점차 스러져갔다. 몬스터에게서 약탈당한 마을 아래서, 그는 결국 아사(餓死)했다.


하루가 지나면 지날수록 사람이 죽었으며,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이 일어났다.


싸우지 않은 사람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마을을 망가졌다.

사흘. 식량이 전부 떨어졌는지 사람들의 안색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나흘. 누군가 말했다.


“왕녀, 때문이-.”


왕녀 때문이라고.

그저 굶주림에 정신을 놓아 한 소리였다.

지금 처한 상황이 너무나도 암울했기에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었다.


단지 그 이유였다.


원망할 대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자신이 당한 일은 전부 자신 때문이 아니라고 합리화하기 위해서.

인간은 자신이 범한 잘못을 합리화함으로써 살아간다.

또한 집단생활을 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기도 했다.


한 명이 내뱉은 말이 파도처럼 번졌다.

무리 생활을 하는 그들은 맹목적으로 그 말을 믿었다.


닷새. 그리하여-.


[20층이 클리어되었습니다.]

[10000G를 획득하셨습니다.]


[21층으로 이동하기까지 남은 시간]

[5 : 00]


그들은 원망하기 시작했다.

오갈 데 없는 분노와 처량한 단말마는, 자신보다 휠씬 높은 이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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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86화 22.02.26 545 6 12쪽
85 85화 22.02.26 539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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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83화 - end, Spreading yew(2) 22.02.21 532 5 12쪽
82 82화 - end, Spreading yew(1) 22.02.20 553 5 12쪽
81 81화 22.02.19 558 5 12쪽
80 80화 22.02.18 549 6 13쪽
79 79화 22.02.17 547 5 12쪽
78 78화 22.02.14 565 6 12쪽
77 77화 22.02.13 556 5 12쪽
76 76화 22.02.12 571 5 11쪽
75 75화 22.02.11 593 5 12쪽
74 74화 22.02.10 600 6 14쪽
73 73화 22.02.07 585 5 12쪽
72 72화 22.02.06 597 5 12쪽
71 71화 22.02.05 600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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