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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9,788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2.11 21:00
조회
591
추천
5
글자
12쪽

75화

DUMMY

“그, 두 사람 전부 스- 스탑!”


플라임의 질문까지 이어졌던 둘의 대화는.

시연의 말에 의해 중단되었다. 분위기에 눌려 말을 못하고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린 그녀가 처음으로 내뱉은 한마디였다.


“일단 진정 좀 하고. 응? 설진아.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으니까, 일단 잠시 진정 먼저···.”

“···그러네요.”

“어, 응? 그, 그래야지? 이러다가 싸우겠다. 일단 심호흡 한 번 하고···.”

“아니에요 누나. 진정했어요.”


불현듯 내버린 짜증이니만큼.

진정되는 것 또한 빨랐다. 연달아지는 플라임의 말을 듣고서 겨우 이성을 되찾은 설진이 어색하게 웃으며 음료를 손에 쥐었다.


호록-.


카카오를 우려낸 맛이었다.

쉽게 말해 코코아였다. 김이 무럭무럭 솟아나고 있는 코코아를 입에 갖다 댄 설진은, 이내 플라임을 보며 고개를 한 번 숙였다.


“왕녀님.”

“···플라임이라고 불러도 된다.”

“플라임. 미안했습니다. 제가 큰 결례를 저질렀더군요.”


설진은 빠르게 인정했다.

자신이 실언했음을.

괜한 발진을 해 타인에게 못난 꼴을 보였다는 사실을.


“괜찮다. 만약 그대와 나의 입장이 바뀌었다면, 나 또한 그대처럼 행동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인간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다.”

“···감사합니다. 제가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네요. 애초부터 저는 엇나가고 있었던 거군요.”

“엇나갔다기보다는 다른 것이지. 다른 왕녀였다면, 오히려 그대가 하려고 하는 걸 바랐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단지 왕녀가 나였기에 그런 것뿐이다.”


그리고, 플라임이 말을 이었다.


“나는 기쁘다.”

“뭐가 말입니까?”

“그대의 정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플라임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로이다스를 죽인 일. 마트리아인의 습격을 막은 일.

그리고, 이번 투기장에서의 일.


“그동안 나는 거의 도움만 받지 않았나. 로이다스 때의 비밀 통로도, 마트리아인의 건도, 이번 투기장에서의 일도 그대들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야.”

“···아닙니다. 저는 도와준 만큼 보수를 받았어요. 그리고 하나하나 따져 보면, 그건 도움이라기보다는-.”

“결과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그게 도움인 것이지. 오히려 이쪽에서 더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네. 활약에 걸맞은 보수를 내주지 못했으니.”

“저에게는 충분했어요. 보수를 더 받을 생각도 없고요.”


더 받을 자격도···.

조용히 중얼거리는 설진의 말을 들었는지, 플라임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래, 그대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

“정 미안하다 싶으면 비긴 걸로 하자구나. 그대는 나에게 행동으로서 도움을 주었고, 나는 그대에게 말로서 도움을 주었으니. 이 정도면 보수에 걸맞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음. 역시 그대는 좋은 사람이다.”


하하, 그리 말하며 플라임이 웃었다.


설진은 그녀의 신분을 떠올렸다.

왕녀.

한 나라를 다스리는 권력자이자 사람을 품는 사람.


그녀는 지금껏, 설진을 품어주고 있었다.


실례를 저지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버리지 않으며 단지 받아주는 사람.

그릇이 크다고 생각했다. 왕녀에 머지않아 어울리는 그릇이라고, 한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 부족함 없는 사람이라고.


얼핏 쳐다본 창문 너머 하늘은 회색 하나 없이 맑았다.

안개가 걷힌 것이다. 푸르러진 하늘을 바라본 설진의 위에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22층이 클리어되었습니다.]

[10000G를 획득하셨습니다.]


[23층에 진입했습니다.]


23층의 진입. 결말까지 남은 층은 이제 세 개였다.

23, 24, 그리고 25.

돌연 눈앞에 있는 플라임의 얼굴이 보였다.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리며 웃고 있는 그녀였지만, 층이 클리어되었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보일 때마다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아니야.’


애써 고개를 저었다.

더는 부정적인 생각을 할 필요는 없었다.

적어도 이번 에피소드만큼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행동하고자 결정했다.


그렇다면 결정한 바, 최대한 실전으로 옮기리라.


“플라임 씨. 그래서 계획은 있어요?”

“어허. 플라임 씨라니. 다시 불러보는 건 어떠한가 시연 경.”

“···플라임. 그래서 생각해둔 계획은 있나요?”

“음. 그래, 그렇지. 다음 계획이라···.”


시연의 손가락이 밑을 가리켰다.

지하. 불법 투기장을 연상하게 하는 손가락이었다.


“일단 죽인 귀족 중 몇몇은 얼굴을 남겨 놓았다. 그들에게 죄를 묻고 금전을 얻어낼 생각이야. 그걸로 시간은 조금 더 벌 수 있겠지.”

“그다음은요?”

“그다음이라 함은··· 헤임 제국의 서신을 묻는 것인가. 확실히 그게 골칫덩어리긴 하지. 적어도 육 개월은 들키지 않을 줄 알았건만.”


플라임은 받은 서신의 내용을 생각했다.

머지않아 찾아오겠다는 헤임 제국.

지휘관 서른, 제국 정예 성기사 백을 이끌고 오겠다는 글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다. 분한 건 자신에게 거부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고민하던 플라임의 눈에 두 사람이 들어왔다.

설진과 시연.

명목상으로는 노르담의 국민인 그들이.


“···이건 방금 떠오른 것인데. 그대들의 도움이 간곡히 필요하겠군.”

“도울 수 있는 것이라면 도와드릴게요.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설진의 물음에 플라임의 입이 열렸다.


“그리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다. 헤임 제국의 외교관이 오면 그때 나와 함께 가줄 수 있겠는가.”

“거기서 뭘 하면 되는데요?”

“가만히 있으면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그저 노르담 출신인 그대들이 외교관과의 협상안을 듣고, 증거해 주면 될 뿐이다.”


그 말을 듣고서야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플라임은 중립국인 노르담 출신의 그들로 협상을 더욱 결속시키려는 것이다.

대외적으로 지원의 명목을 가지고 방문한 헤임 제국의 외교관에게서 얻을 수 있는 건 얻고, 내줄 수 있는 건 최소한으로 할 생각이었다.


설진과 시연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협상이 깨지지 않기 위함.

둘이 없다면 모를까, 노르담의 모험가가 있으니 헤임 제국에서도 함부로 나서지 못할 것이다.

혹은 그에 준하는 행위를 하더라도 생각한 만큼 많은 것을 할 순 없을 테고.


그만큼 노르담이 가지고 있는 힘은 컸다.

정확히 말하면 세 나라의 외교에 일절 손을 대지 않고, 기본적으로 평화를 고수한다는 점이 노르담을 강하게 만들었다.


“수상한 짓을 한다면, 아니. 오히려 해주었으면 좋겠군. 그건 곧 저들이 가지고 있는 명분 중 일부는 이쪽으로 옮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줄 테니.”

“그걸로 시간을 벌 생각이에요?”

“그래. 일단 그걸로 시간을 번 다음, 귀보의 작동을 멈추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해결책을 찾아봐야겠지.”

“만물을 통제하는 억압의 눈을 멈출 방법···.”

“혹여 그대들은 귀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있는가?”

“십만 명의-.”

“그것 말고도 다른 것이 있지는 않은가?”


그 말에 설진의 생각이 깊어졌다.

사람의 생명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귀보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이라.


“···.”


애석하게도,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으로선 떠오르는 건 없네요. 그래도 있긴 할 거에요.”

“설진 경이 그렇게 말해준다면 되었다.”


설진의 말에 플라임은 선웃음을 내보이며 컵을 들어 올렸다.

호록-. 시킨 음료를 한 모금 넘기고서 다음 대책에 대해 생각했다.


정확히는 생각하려고 할 찰나였다.


“왕녀 전하!”


끼이익-.


낡은 나무가 맞물리는 소리.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본 그곳엔 꽤 익숙한 얼굴의 사내가 플라임을 부르고 있었다.


검은 망토. 그리고 냉담한 듯한 얼굴.

도적이면서 장검을 사용하는 설진과 비슷한 타입인.


“도착했습니다.”

“뭐가 말이냐.”


루이 로반델트.

그가 다급한 표정을 짓고서 플라임에게 말했다.


“헤임 제국의 외교관이 도착했습니다.”

“···꽤 빠르군.”

“지금은 왕실의 숙소에 묵고 있습니다만, 어찌하시겠습니다. 경우에 따라 이틀 정도는 시간을 끌 수 있을 것···.”

“아니다. 루이.”


서신이 도착한 뒤 일주일.

외교관이 왕국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일주일이었다.


빠르면 빠르다고 할 수 있는 시간.

왜 이렇게 급한지는 모르겠으나,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노르담의 모험가와 연이 없었다면 모를까 협상을 들어주기로 한 지금은 오히려 좋다고 할 수 있었다.


‘이른 시간에 도착한 외교관이나, 플라임 왕녀 전하는 환대해 주었다-. 이런 식으로의 인상을 남기면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겠군.’


자국의 통치와 타국과의 외교는 확연히 다른 개념이었다.

물론 둘 전부 무력과 지략이 중요시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자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력이었다. 왕위를 이어 나라를 다스릴 수 있을 만큼의 힘이 있어야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인정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러나 타국까지 그 범위를 넓힌다면?

단언컨대 플라임은 제일 중요한 것이 지략이라고 말할 것이다.


‘다만 지금 바로 만나는 것 또한 곤란하군. 너무 일찍 만나려 들면 외려 이쪽이 급하다는 걸 드러내는 셈이니···.’


말에도 힘이 있다. 어떨 때는 주먹보다 강하다.

조금 과장하자면 말 한마디에 나라가 멸망 위기까지 간 적도 있을 정도다.

외교. 그 과정에서 필요시되는 지략. 그리하여 발휘되는 힘은 컸다.

협상을 맺는 것도 조약을 체결하는 것도 전부 지략이 필요한 일이었다. 예컨대 타국과 커뮤니케이션을 원한다면 일정 이상의 지능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외교관의 이름이 뭐지?”

“나타벨입니다.”

“그인가, 그녀인가.”

“그녀입니다.”

“그래, 나타벨에게 전하도록.”


플라임의 머리는 상당히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왕녀 전하가 그대를 환영한다고 말이지.”


이미 그들의 싸움은 시작된 후였다.


* * *


일주일 동안이나 개지 않았던 안개가 개었다.

남자는 오묘한 눈빛으로 창문 밖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런, 하늘께서는 희망고문을 좋아하시나 보군.”


안개가 개긴 했지만 나아진 건 없었다.

여전히 나라는 위태로웠고, 위험했으며, 위기에 봉착했다.

진전된 것 하나 없이 시간을 흘러가는 중이다.


“아니, 이건 또한 벌인가?”


남자는 생각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대가라고.

자신이 한 일에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라고.


플라임이 반란 진압에 대한 지략을 내놓았을 때, 남자는 찬성했다.

다시 말해 귀보를 사용하는 것에 가장 적극적으로 찬동한 것이다.

반역자 오른이 모종의 야료를 부릴 것을 막기 위해.


“아무리 유예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아니, 이젠 유예라고도 부를 수 없겠군.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이야. 되돌릴 수 없는 세월이기도 하고.”


씁쓸하게 중얼거린 남자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반란 진압 당시 크게 당한 상처는 아직도 낫지 않았다.

없어져버린 왼쪽 팔을 생각하며 하염없이 창문 너머를 응시했다.


“남은 건 하나인가.”


레임니스 폰 라벤부르크.


귀보를 사용하는 것에 찬동안 왕족.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플라임의 숙부.


그가 중얼거렸다. 오늘따라 왼쪽 어깨가 아팠다.

꼭 왼팔을 잃고 난 후가 떠올라 복잡한 심경이 차올랐다.


“···왕국의 몰락. 이걸 입으로 말하게 된 것이 한스럽군.”


쇠락한 권력자.

창문 너머를 응시한 레임니스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단지 거짓되다 못해 얼마 못 가 다시 드리울 안개였다.

그것도 저번보다 훨씬 더 짙고 어두운, 그런 안개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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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85화 22.02.26 538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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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83화 - end, Spreading yew(2) 22.02.21 532 5 12쪽
82 82화 - end, Spreading yew(1) 22.02.20 551 5 12쪽
81 81화 22.02.19 556 5 12쪽
80 80화 22.02.18 549 6 13쪽
79 79화 22.02.17 546 5 12쪽
78 78화 22.02.14 564 6 12쪽
77 77화 22.02.13 554 5 12쪽
76 76화 22.02.12 568 5 11쪽
» 75화 22.02.11 592 5 12쪽
74 74화 22.02.10 600 6 14쪽
73 73화 22.02.07 583 5 12쪽
72 72화 22.02.06 596 5 12쪽
71 71화 22.02.05 600 5 12쪽
70 70화 22.02.04 636 6 14쪽
69 69화 22.02.03 622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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