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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9,810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2.13 21:35
조회
554
추천
5
글자
12쪽

77화

DUMMY

[목표 : 협상안을 확인하십시오.]


늘 그랬듯 떠오른 것은 시스템 메시지였고.

그건 외부인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기보다는, 멀리서 지켜보고 있으라는 의도가 더 강한 듯했다.


이야기에 개입하는 것이 아닌 이야기를 관망하는 것.

아주 몇 개의 층을 제외하고선 그랬다. 탑이 내건 목표 대부분이 일어난 사건을 확인하는 것이었고, 또한 관찰하는 것이었다.


보통의 게임들과는 달랐다. 플레이어가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에 개입해, 그 흐름을 바꾸어나가는 것이 정상적인 게임이라면,

탑은 다르다. 강요하지 않고 강제하지 않는다.

그저 보게 한다. 중대사에 속하는 사건 몇 개만을 제외하고서는 마음대로 미래의 일을 떠벌리고 다닐 수도 있었다.


‘탑은 소극적이야.’


탑은 수동적이었다. 덧없을 정도로.

무슨 행동을 해야 하는지 이끌어주는 시스템 메시지는 한정적이었다.

그랬기에 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느끼는 감정과 감회들이.


‘모든 것을 맡기다 보니, 자신이 만든 결말이라고 생각하게 된단 말이야.’


탑이 무슨 행동을 하게끔 만들었으면 그나마 나았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어쩔 수 없었다고 자위할 수 있으니.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탑은 강제하지 않는다. 오직 외부인에게만 모든 결정을 맡긴 채 이야기의 흐름을 새기듯 보여 준다.


발단도, 전개도, 위기도, 절정도.


오직 자율 속에서 이루어진 결말만을 묵묵히 비출 뿐.

그리고 그 결말 중 대부분이 베드 엔딩이라는 것이 애처로울 따름이었다.


‘후.’


설진은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에서 고개를 돌렸다.

이제 슬슬 상념에서 깨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시연이 있긴 하지만 그것이 플라임과 외교관의 듣지 않아도 될 이유가 되진 않는다. 그는 막혀있던 귀를 다시금 열었다.


스윽-.


무망중 아티팩트를 꺼내 살펴보았다.

루이가 준 호박색 아티팩트였다.

누렇기만 했던 아티팩트가 서서히 샛노랗게 물들고 있었다.


* * *


“구체적인 지원 내용에 대해 듣기 전에, 다른 것을 먼저 들을 수 있겠나?”

“···음. 그렇다면 이야기가 조금 꼬일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둘의 대화는 이어지고 있었다.


플라임은 다른 것이라고 표현했지만, 가리키고 있는 것은 하나였다.

대가. 지원의 대가로 플레임 왕국이 내놓아야 할 것.

대가를 먼저 들어둔다면 여러모로 이점을 취할 구석이 많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생각할 시간이 늘어난다는 의미였다.


현재 플레임 왕국이 필요로 하는 것은 타국의 지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가를 경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가를 경시한다면 그건 역사를 되풀이하는 일밖에 되지 않았다. 반란을 귀보로 막아 유예를 얻었듯이, 이 또한 유예를 얻는 것에 그친다.

그것도 회생 불가능한 유예를.

어쩌면 왕국이 그대로 황국에게 넘어가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었다.


플라임은 그걸 알았기에 대가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나타벨 또한 플라임의 의중을 눈치챘기에 괜찮겠냐는 말로 견제한 것이고.


“괜찮다. 이야기가 조금 꼬인다 하여도 말이 엇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고작 실타리 하나 꼬인 것 가지고 대화에 애로사항이 생기진 않겠지.”

“굳이 편한 길을 두고 돌아가실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만.”

“밝은 이야기를 먼저 듣는 것보다는, 어두운 이야기를 먼저 듣는 게 훨씬 낫지 않겠나? 자고로 이야기의 끝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끝나는 편이 피차 좋은 법이다.”

“···그렇게 하지요. 그럼 왕녀 전하께서 말씀하신 다른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요구사항이 있어 이루어지는 것이 협상 아니겠나. 다른 이야기라 함은 그중 하나일 테고.”


먼저 백기를 든 쪽은 나타벨이었다.

플라임이 워낙 강경하게 나온 탓에 거절할 명분이 생기지 않았던 탓이다.

썩어도 왕녀는 왕녀라고,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왜 그쪽을 어둡다고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어찌 되었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이야기하지요.”


나타벨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짜지 않았다고 말했건만, 그것은 거짓이었다.

그녀는 왕녀과의 협상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시뮬레이션했다.

A가 발생했을 시에는 A로, B가 발생했을 시에는 B로 해결할 생각이었다. 웬만한 변수 정도는 발 빠르게 대처할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협상안 또한 마찬가지.

이곳에 와서가 아닌, 전부터 생각해두고 있는 것들이었다.

황국의 군사들과 회의한 내용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리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당장 무언가를 달라고 우길 생각도 없고요. 저희는 능력을 지닌 자에게만 능력을 요구합니다.”

“···그 말은 꼭 현 왕국에게는 능력이 없다는 말로 들리는군.”

“설마요. 그럴 리가요. 왕국은 ‘아직’ 살아있습니다. 능력 또한 차고 넘치도록 있고요. 하지만 현 상황을 고려했을 때, 저희가 원하는 건 현재가 아닌 미래를 가정으로 둔 채 진행되는 협상입니다.”


계속 말해 보라는 듯, 플라임은 고개를 까닥였다.

나타벨은 좋다는 둥 목에 힘을 주며 말을 이어나갔다.


“향후 왕국의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정세가 다시 안정을 되찾아 경제 능력이 양호한 수준까지 회복되었을 때, 그때 저희가 요구를 할 생각입니다.”

“요구 내용은?”

“송구하지만 아직 그것까지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에 말했듯이 어찌 저희가 왕국을 빼놓고서 왕국에 관한 것을 결정할 수 있겠습니까.”


나타벨은 최소한의 정보만을 내준 채 말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플라임은 황국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대략 무역 통로의 개방 정도인가··· 다시 무역하게 되었을 때 이걸 빌미로 여러 어티밴티지를 요구할 터.’


타국에게마저 이번 협상만이 퍼져 나갈 것을 고려했을 때, 황국의 요구 사항은 딱 그 정도.

너무 적게 받거나 많이 받는다면 황국의 입지 또한 줄어들었을 테니 여러모로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수출, 수입 중 하나만 하거나. 혹은 물건의 가격을 심하게 깎거나···.“


겉으로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조약을 체결하자는 것과 다름없었다.

불평등 조약. 어느 한 쪽에게만 압도적으로 유리한 조약을.


‘아니, 다 떠나서 이것마저 블러핑일 수도 있다. 현재 황국의 상황을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쪽 또한 여유로는 상황은 아니라고 들었으니.’


돌연 플라임은 나타벨의 말을 모두 지워버렸다.

떠오르는 건 풍문으로 들은 황국의 상황.

플레임 왕국만큼은 아닐 테지만, 그쪽 또한 썩 좋지는 않다고 들었다.


‘아예 이 협상 자체가 거짓된 것일 수도 있다. 그저 왕국을 둘러보기 위한 명문을 만들어, 간을 보려는 것일 수도···.’


뇌리에서 여러 생각이 맴돌았다. 그러나 그 생각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플라임에게 필요한 시간보다 나타벨의 말이 더 빨리 끝났기 때문이다.


“자, 그럼 이번에는 왕녀 전하께서 말씀하신 밝은 이야기를 한 번 해보도록 할까요? 나쁜 조건은 아닐 테니 부디 들어주시기를.”

“그래, 듣지.”


나타벨이 제안한 것은 플라임이 생각한 대로였다.

회복은커녕 딱 연명만이 가능할 정도로의 지원. 하기사 많은 지원을 해 줬다가는 되려 제국 자신들이 위험할 수 있으니 이 또한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이하. 저희가 생각한 건 이 정도입니다. 혹여 궁금하신 점이라도?”

“먼저 그대들의 지원에 감사를 표하지.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무엇인가요?”

“지원해준 물자가 바닥을 보인다면, 혹여 추가적인 물자를 보내줄 수 있는가.”

“···?”


플라임의 말에 나타벨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일순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이해한 나타벨의 얼굴이 가느래졌다.

탁자 위 올려둔 서류에 무언가를 끄적거린 채 말을 이어나갔다.


“그건 왕국의 태도를···.”

“조금 늦었군. 협상이 완만하게 체결되었으니 소개하도록 하지.”


플라임은 나타벨의 말을 끊으며 뒤를 가리켰다.

설진과 시연.

그 둘을 소개하듯 입을 열었다.


“노르담에서 온 손님일세. 작금의 협상 내용은 이들이 증거해 줄 거다.”

“···뭐-.”

“협상이란 본래 신뢰를 기반으로 체결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 신뢰를 만들어줄 전문가들을 어렵게 모셨지.”


플라임은 가볍게 웃으며 나타벨을 바라보았다.

입가가 비틀어지며 초승달을 그렸다. 비웃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왕녀인 그녀는, 고개를 한 번 숙이며 말을 이었다.


“왕국을 대표해 감사하지. 도울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돕겠다는 그대의 말, 왕국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은혜는 꼭 갚도록 하지.”

“잠, 잠시, 설명이 조금 필요한 것 같군요 왕녀님.”

“음? 무엇이 문제라는 것이냐. 협상을 결속시켜줄 분들을 어렵게 모셨거늘.”


플라임의 말이 끝나자마자 시연이 나섰다.

그녀는 악수를 청하듯 손을 뻗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제국의 외교관이시여.”

“···.”

“노르담의 모험가, 시연이라고 합니다. 왕녀 전하의 부탁으로 작금의 대화를 증거하고자 찾아왔습니다.”


객관적으로, 시연의 모험가 랭크는 별로 높지 않았다.

본래라면 이 자리에 있는 것조차 힘들거니와 고작에야 D등급에 불과한 모험가가 나라 간의 협상을 증거해주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시연은 이미 이름을 날렸다.

모험가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리자드맨이 있는 지하 미궁을 공략함으로서 조금이지만 유명세라는 것을 갖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플라임의 입김 또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본격적인 반란이 일어나기 전 플라임이 맡겼던 의뢰를 수행함으로써.

그곳에서 루이다스라는 반란자를 잡아 목을 침으로써.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시연은 반갑다는 듯이 웃었다.

이걸로 어느 정도 시간은 벌었다. 황국은 왕국의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영락없이 지원을 보내게 되어야 할 형국이 되었다.


말인즉 조약 자체를 부정하고서 함부로 침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

급한 상황은 막았다고 생각했다.


“저도 인사가 늦었네요.”


시연에 이어 설진 또한 입을 열었다.

허리를 한 번 숙이며 예를 갖췄다.


“시연과 같은 노르담의 모험가, 설진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아, 시연 님과 설진 님이로군요. 노르담의 모험가를 뵙게 되어 저야말로 영, 광입니다.”


발음이 샌 것을 감지한 플라임은 안심했다.

방금의 행동으로 알 수 있었다. 나타벨은 흔들리고 있었다.


‘대가에 관한 이야기는 추후 다시 이어나가면 된다. 일단 일단락지어야겠군.’


이는 곧 더 이상의 야로를 부릴 수 없음을 의미했다. 일단 일어난 일의 범위가 타국까지 번지는 것은 막았다고 생각한 찰나-.


우웅-.


돌연 진동 소리가 울렸다.

소리가 난 곳은 플라임을 기준으로 뒤쪽.

설진이 있는 곳이었다.


우웅-.


소리뿐만이 아니었다.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샛노라다 못해 접견실을 덮을 정도로 강렬한 빛이 일순간 공간을 잠식했다.

빛이 사라진 건 그로부터 약 삼 초가 지난 후였다.


그리고.


‘···열 시간까지는 좀 남았는데?’


빛이 꺼진 후, 설진의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23층이 클리어되었습니다.]

[10000G를 획득하셨습니다.]


[24층에 진입했습니다.]


단언컨대, 그 어떤 층보다 달갑지 않은 시스템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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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86화 22.02.26 545 6 12쪽
85 85화 22.02.26 538 7 11쪽
84 84화 - end, Spreading yew(3) 22.02.22 552 9 11쪽
83 83화 - end, Spreading yew(2) 22.02.21 532 5 12쪽
82 82화 - end, Spreading yew(1) 22.02.20 552 5 12쪽
81 81화 22.02.19 556 5 12쪽
80 80화 22.02.18 549 6 13쪽
79 79화 22.02.17 546 5 12쪽
78 78화 22.02.14 564 6 12쪽
» 77화 22.02.13 555 5 12쪽
76 76화 22.02.12 569 5 11쪽
75 75화 22.02.11 592 5 12쪽
74 74화 22.02.10 600 6 14쪽
73 73화 22.02.07 583 5 12쪽
72 72화 22.02.06 596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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