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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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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564,721

작성
22.02.19 21:35
조회
556
추천
5
글자
12쪽

81화

DUMMY

도망이었다. 그것은.

사태가 책임질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벌어져,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쓰러지고 마는, 그런 엔딩이었다.


그것은, 그런 이야기였다.


“하늘이 맑구나. 그런데 청명하지 않아.”


레임니스는 생각했다.

자신이 벌인 사태가, 자신이 틀어막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졌다고.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고. 한낱 인간에게는 너무나도 무거운 짐이어서 더 이상 마주할 자신이 없다고.


“곧 안개가 드리울 것 같군. 그런 하늘이야.”


하늘은 청명했다.

푸르고 푸르렀다. 그러나 레임니스의 눈에는 안개가 재림을 준비하듯 너른 포석을 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아무리 좋게 말해도 포기였다.


책임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타인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설진과는 달랐다. 설진은 마주했지만 레임니스는 마주하지 않았다.


마주하지 못했다.


이 자리에 있는 둘 모두 알고 있었다.

지금 레임니스에게 남은 건 비관이었으며 포기였고 도망이었다.

내치듯 삼킨 약이 몸속에 스며들었다. 살아남을 자신이 없어서, 살아남고 싶지 않아서 선택한 것은 다만 죽음이었다.


“미안하군. 역시 나는, 자네의 생각에 공감할 수 없어.”

“···.”

“그토록 생각해 봤는데, 참-. 역시 나는 그릇이 작은 인간인가 보군. 방금의 마법은 내 작은 선물이니 너무 마음에 두지 말았으면 좋겠네.”


자신의 그릇은 작았다.

타인과 비교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플라임에게는 미안하다고 전해 주게···.”


곧 죽어가는 상황인데도.

자신이 선택한 죽음임에도 할 수 있는 말이 그것뿐이었다.

못내 병신같다고 생각했다. 선택한 최후는 죽음이었고 사인은 자살이었다.


속되게 말해, 꼴사나운 죽음.

도망자가 직접 선택한 최후. 들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진 책임을 못다 한 채 포기해버린, 죽음으로서 마무리한 최후.


털썩-.


한 줌의 생명이 바스라졌다.

생명이라도 부르기에도 무안해졌다.

재처럼 보이는 시신이 땅으로 낙하한다.


날씨 맑음. 시간 오후.

설진은 플라임의 의뢰를 완수하지 못했다.


* * *


“수고했다. 물러가도록.”


플라임은 병사가 가져온 서류를 받고서 말했다.

왕녀인 자신에게까지 온 서류들은 중대한 사항이었다. 최대 권력자인 플라임이 승인해야 하는 상황이거나, 꼭 봐야 할 정도로 거대한 사건이거나.


대개 둘 중 하나였다.

그리고 지금의 경우,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식량 부족, 시위 재발 우려, 몬스터들의 동태··· 대략 이 정도인가.’


업무용 책상에 서류를 올려놓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설진의 말 덕에 어느 정도 정신은 차렸지만, 여전히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약화되고만 있는 것 같았다. 나타벨에게 넘어간 왕국의 시위 정보를 생각하던 플라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길 빌미로,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를지.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아서 쉬이 예측할 수 없었다. 범위가 너무 넓었다.


‘나타벨에게 넘어간 정보가 너무 크다. 대체 어떻게 해야···.’


속으로 중얼거리던 플라임의 동공이 크게 치켜떠졌다.

다시금 설진의 말이 떠올랐다. 그의 격려가 생각났다.


착!


‘아니-. 이미 지나간 일에 신경 쓰지 마라. 나는 왕녀다. 현재에 충실해.’


애써 뺨을 쳤다. 상황이 나쁜 것은 맞았지만, 아직 망가지지 않았다.

몰락의 길을 걸으리라 단정 짓기엔 일렀다. 플라임은 포기하지 않았다.


‘벌금을 부과함으로써 재정적 여유는 생겼다. 이걸로 당분간은 버틸 수 있어. 시위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 사이에 상황을 연명시킬 방법을 생각한다.’


운에 기대는 방법이라도 사용한다.

할 수 있는 건 전부 할 생각이었다.


‘일단, 왕국 출신 모험가들을 소집해···.’


대책을 마련코자 서류를 뒤지던 플라임의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잊을 수 없는 얼굴이기도 했다.


‘린? 네가 왜 서류에···.’


왕국 출신이자 S급 모험가.

콜로세움이 끝난 이후, 드래곤에게 복수하겠다며 떠난 모험가.


그녀의 얼굴이 서류에 박혀 있었다. 혹여 다른 사람인가 싶었지만, 아무리 바라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플라임의 눈에 들어온 것은 명백한 린이었다.


돌연,


‘···.’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나쁜 일이 일어난 건 아닌가 생각했다. 플라임은 다급해진 손으로 서류를 집어들었다. 눈가를 비비며 고개를 돌린 그곳에는-.


[S급 모험가 린. 드래곤의 둥지에서 시신 발견.]


누군가의 죽음이 기록되어 있었다.

불현듯 머리가 어지러웠다.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


죽음. 되살릴 수 없고 복구할 수도 없는 생의 종점.

다신 돌아오지 못할 생명이 서류 속 그림에 남았다.


‘···안, 된다.’


그것은 마치 잔향 같아서,

끊임없이 이지러졌다. 죽음은 끈적하게 머릿속을 괴롭혔다.

눈동자가 움직이질 않았다. 다음 글자를 볼 수 없었다. 보고 싶지 않았다.


설진이 린에 대해 생각했던 그때가 단순 예측이었다면,

이건 공식적인 정보였다. 옆에 첨부된 사진이 눈을 사로잡았다.


“안, 된다···.”


시신. 시신이되 흐릿했다. 잘 보이지 않았다.

피부가 썩어 문드러졌다. 얼굴은 녹아내렸다.

온몸 구석구석에 발톱 상처가 있었다. 날개에 가격당했는지 등뼈가 부러져 있었으며, 그것마저 잘 보이지 않았다. 몇 개가 땅에 묻힌 탓이었다.


살색의 무언가. 피부 조각 몇 개.

으깨어져 가루가 된 뼈 여럿.


뇌가 깨진 듯 두개골에 금이 가 있었다.

그럼에도 린이라 구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의 아티팩트 떄문이었다.


마안(魔眼).

콜로세움의 우승 상품이자 어두운 공간을 밝히는 능력을 지닌 아티팩트.

그런 아티팩트가 희미하게 빛을 내뿜으며 시신 옆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


아티팩트는 계승되되 예속되지 않는다.

아티팩트는 부서지지 않는다.

무슨 짓을 해도 파괴할 수 없다.


시신과는 달리, 부서지지 않는다.


‘결국, 죽었느냐···.’


예상은 하고 있었다.

비참한 결말을 맞으리라는 것을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한 것과 본 것은 하늘과 땅 차이여서.

느껴지는 감정의 기복은 컸다. 청명한 하늘이 뿌옇게 보일 정도로.

안개가 잔뜩 껴 앞마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아.’


불현듯 머리가 아팠다.

사고 회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듯했다.


겪은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또한 너무나도 부정적이었다.

감정은 부정이 되어 플라임을 옥좼고 힘겹게 만들었다.


결국,


‘지긋지긋하구나. 지긋지긋해. 이런 왕국···.’


자책을 넘어 자학까지 그 범위가 확대됐다.

타 나라 외교관과의 대화, 발발한 시위, 그리고 얼굴 아는 모험가의 죽음.


힘들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놓거나 실수한다면 왕국은 그대로 무너질 것 같았다.


꽈악-!


플라임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둠을 걷어내듯 고개를 저었다.


아직 자신은 부서지지 않았다.

무너질 것 같은 것이지, 아직 무너진 건 아니다.

그러니까 무너지지 않게 할 수 있다.

무너지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자신이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던 머리가,


“왕녀 전하! 급보입니다! 레임니스 폰 라벤부르크 님께서···!”


깊고 어두운 바다에 잠기기까지는.


“레임니스 폰 라벤부르크 님께서 독약을 삼키셨습니다!”


너무나도 컴컴한 심연에 묻혀 숨쉬지 못할 정도로 잠기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처음에는 단순 당황이었다.

지금 들은 정보가 한낱 장난이라고 여겼다.

장난이었어야 했고 잘못된 정보였어야 했다.


“···뭐?”


그러나 시간이 지나갈수록 머릿속은 정보를 받아들였다.

지금같이 급박한 시기에 거짓 보고가 있다는 건 말조차 되지 않는 일이다.


입이 저절로 열렸다. 이상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지금 상황을 부정하듯 미친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플라임은 병사를 바라보았다.


“이봐-.”

“와, 왕녀 전하!”


그러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병사가 플라임의 말을 끊었다.

대신 외쳤다. 다급한 외침이었다.


그제야 플라임은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전하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아.

울고 있구나.

나는 울고 있구나.


잡고 있었던 긴장감이 전부 내동댕이쳐진다.

느껴지는 거라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격한 감정 하나.

뚝뚝. 땅으로 낙하하는 액체가 보였다. 열기를 머금은 눈물은 수없이 넓은 바닥에 자신의 영역을 수놓기 시작했다.


‘그래서, 인가. 그래서 설진은 내가 부탁했을 때···.’


흐릿한 시야가 망막을 딛고 명료해지듯.

순간 머릿속이 밝아졌다. 그러자 들렸다.


-“사, 흘. ···알겠습니다. 보호하지요.”


망설임이 가득했던 설진의 대답을.


왜 눈치채지 못했는지,

왜 지금에서야 생각났는지.


못내 미웠다. 자신도, 세상도.

모든 것이 미웠다. 힘들었다. 버틸 수 없었다.


‘차라리···.’


이대로 부서지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무심코 나온 생각이 가지처럼 뻗어나갔다. 이젠 상처만 남게 된 감정과, 애처롭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한 현실은 한없이 무거웠다.


뚝뚝.


눈물은 여전했다. 보는 눈이 있는데도 영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쌓인 울분을 토해내듯 미친 듯이 나오는 중이다.

그렇게 플라임은 울었다. 소리 내지 않고서 울었다.


울면서 손을 움직였다. 서류를 들고 쳐다봤다.

스륵. 그러던 중 어느 순간 손에서 힘이 빠지더니,


툭.


잡고 있던 깃펜이 떨어져버렸다.


“···.”


24층. 에피소드 결말의 전 단계.

날씨 흐림. 창문 너머 보이는 풍경은 아주 깜깜한 흑야(黑夜).

그리고 안개 조금.


플라임은 무너지고야 말았다.


* * *


“음. 이제 슬슬 시간도 꽤 지난 것 같군요.”

“···.”

“지금쯤이면 잊혔겠죠.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요.”

“···이제 뭘 할 생각입니까?”

“음? 시연 님?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나타벨의 손가락이 입술을 향했다.

고혹적인 미소였다. 그녀는 지금 상황이 너무나도 재밌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왕국이 완전히 몰락하기 전에, 취할 걸 챙겨야죠.”

“···.”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시연 님. 이게 타 나라 간의 외교입니다. 약점을 내보이면 바로 물어뜯기고, 징조가 보이면 바로 잡아먹는. 그게 외교랍니다.”


뒤이어 데려온 팔라딘과 성기사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나타벨은 시연을 지나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혼자 남게 된 시연은 벽에 걸터앉았다.

후. 돌연 내쉬어진 한숨은 김을 내뿜었다. 밤이 된 하늘 위로 안개 비스무리한 김이 새어나갔다.


‘이제 슬슬 알았겠지.’


공식적으로 전해졌을 린의 죽음. 그것을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사이로 바람이 타고 들었다. 스며든 바람이 유독 차가웠다.


‘레임니스를 설득하기 위해 떠난 설진이는···.’


잘 하고 있으려나.


‘이제 제국의 견제도 빡빡하게 들어올 텐데. 설진의 설득이 레임니스를 살리고, 플라임이 린의 죽음을 접하고도 무너지지 않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나···.’


짧게 혀를 찼다.

시위의 재발은 어찌어찌 억눌렀지만 오래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다시 눈을 뜨고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았다.

사르륵-. 바라본 고개가 내려간다. 밑으로, 밑으로.

바닥까지 향한 얼굴이 무릎에 묻었다.


아직 자세한 정보는 듣지 못했지만.

아직 자세한 경위는 보지 못했지만,


[24층이 클리어되었습니다.]

[10000G를 획득하셨습니다.]


적어도 지금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가, 긍정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목표조차 알려주지 않고서 클리어된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어두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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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86화 22.02.26 545 6 12쪽
85 85화 22.02.26 538 7 11쪽
84 84화 - end, Spreading yew(3) 22.02.22 552 9 11쪽
83 83화 - end, Spreading yew(2) 22.02.21 532 5 12쪽
82 82화 - end, Spreading yew(1) 22.02.20 552 5 12쪽
» 81화 22.02.19 557 5 12쪽
80 80화 22.02.18 549 6 13쪽
79 79화 22.02.17 546 5 12쪽
78 78화 22.02.14 564 6 12쪽
77 77화 22.02.13 555 5 12쪽
76 76화 22.02.12 569 5 11쪽
75 75화 22.02.11 592 5 12쪽
74 74화 22.02.10 600 6 14쪽
73 73화 22.02.07 583 5 12쪽
72 72화 22.02.06 596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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