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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9,785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3.04 21:30
조회
541
추천
5
글자
12쪽

90화

DUMMY

노르담의 아침은 상쾌했다.

닭이 우는 소리가, 새의 짹짹거림이 희미하게 귓가를 파고들었다.


맑은 하늘, 그 사이 물감처럼 번진 구름.

창문 밖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들은 장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어제는 누가 제일 많이 팔았는지, 가장 잘 나가는 물건은 무엇인지 주제를 정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실로 상인이라 할 만한 모양새다.


“아침···.”


창문에서 눈을 뗀 설진은 수건에 물을 묻혀 간단히 세수했다.

밖에서 들려오는 사람의 목소리와 동물들의 기척은 마치 화음이 되어 울리는 듯했다.

안전하고, 치안 좋고. 최소한 힘든 일에 휘말릴 일은 없는 곳. 그곳이 바로 중립국 노르담이었다.


‘노르담에서 사건이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평화. 굳이 말하자면 평화라고 해야 할까.

저 너머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둘기 떼가 보였다. 설진이 생각한 것이 정말 평화라면, 멀리서 하늘을 부유하는 비둘기들이 그냥 보인 것은 아닐 터였다.


휙-.


이내 날아가던 비둘기가 회군하듯 방향을 꺾었다. 뒤로, 더 뒤로. 적당한 수준까지 물러난 뒤 돌연 오른쪽으로 선로를 바꾼다.

설진의 시선이 절로 오른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아까 전에 떠올랐던 시스템 메시지가 눈가를 스쳐갔다.


[정착하시겠습니까?]


질문하듯 떠오른 메시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시스템은 지금 설진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노르담에서 살겠느냐고, 여기서 정착하겠느냐고.


“···.”


탑은 외부인에게 능동적이지 않았다.

반대로 아주 수동적이어서, 한 층에 진입하면 진입할수록 사건 해결이 아닌 관찰과 목격의 형태를 클리어 조건으로 내거는 경우가 일상다반사였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떠오른 메시지가 아예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왜냐면 탑이니, 외부인에게 수동적인 것이 바로 탑이니.

등반을 멈추고 정착하기를 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였다.


설진은 이곳에 정착한다면 일어나게 될 일을 생각했다.

우선 탑을 오르지 않아도 되니, 헤임 제국의 에피소드를 진행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이 느껴야 할 비애를 함께 느끼지 않아도 되며 플레임 왕국에서 겪은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정착하는 것이다. 노르담이라는 중립국에.

싸움 하나 없이 순항 중인 노르담에서 생활한다. 어제 오크를 죽였던 것처럼 의뢰를 수주하며 돈을 벌고 그것으로 삶을 꾸려 나간다.


발단도, 전개도, 위기도, 절정도.

무엇보다 전투도.


겪지 않아도 되었다. 가시밭길을 걸어가지 않아도 되었다.

설진의 손이 서서히 올라갔다. 떠오른 메시지를 향해 손을 쭉 뻗었다.


“정착하시겠습니까···.”


떠오른 메시지를 두어 번 정도 소리 내 읽더니만,


“아니, 안 할 겁니다.”


이윽고 결의를 다진 듯 거세게 거부했다.

의지를 드러내서인지, 시스템 메시지는 얼마 가지 않아 사라졌다.

정착을 원할 때 다시 생각해 달라는 또 다른 문장을 남기고서.


“후···.”


세수를 마친 손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물기를 다른 수건으로 닦고, 망토를 두르고 허리춤에 달린 검집에 검을 집어넣는다.


‘이미 결말을 바꾸겠다고 결심했어.’


플레임과 약속했다.

자신과 맹세했다.

시연과 함께 다짐했다.


배드 엔딩이 아닌, 해피 엔딩을 만들자고.

암울하다 못해 처참하기까지 한 결말을 바꾸자고.


자신의 모습을 보지도, 자신의 말을 듣지도 못한 플라임 앞에서 약속했다.

구하러 가겠다고. 결말을 바꿔 구원해주겠다고.

자신이 구원받았으니 이번에는 당신 차례라고.


그러므로 정착하지 않는다.

결말을 바꾸기 위해서. 행복한 결말을 맞기 위해서.


끼익-.


일으킨 몸을 이끌고서 방문을 열었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검집이 흔들렸다. 그런 상태 그대로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상쾌한 아침에 걸맞게 몸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자 모험가 길드의 아침 풍경이 설진을 맞이했다.

분주히 움직이며 조식을 차리고 있는 길드의 직원, 테이블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험가들, 그리고-.


“설진아, 여기야! 여기!”


자신의, 파티.


“제가 좀 늦게 일어났나 봐요.”

“히히, 맞아요. 오빠 완전 잠꾸러기 같았어요오!”

“아, 아니에요. 그렇게 늦은 건 아니에요 형. 채린이도 일어난 지 삼 분 정도밖에 안 됐어요.”

“어? 야! 여기서 배신을 때려버리는 건 아니지!”


플레임 왕국 때와는 달랐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많은 성장을 일구었고 무엇보다 사람이 늘었다.

후위 두 명이, 그것도 뛰어난 실력의 두 명이 파티에 합류했다.


그러니까 할 수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설진아, 너 기다리고 있었어. 주문은 뭐로 할래?”

“저는 간단하게 오트밀 빵이랑 크림수프로···.”

“접수했어요! 제가 주문 넣고 올게요!”


채린이 쪼르르 달려나가 음식을 주문하고서 돌아왔다.

눈을 덮을 정도로 자란 머리카락을 몇 번 문지르던 찬우는 테이블에 촉매제 몇 개를 나열한 뒤 글을 적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시연은 웃으며 다가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범위는 항상 스토리와 상태창에 관한 것이었지만, 오늘따라 다른 주제가 튀어나왔다.


“설진아-.”


게임이 아닌 설진 본인에 관해서.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보면 편안하다고 느끼는 색깔은 있는지, 무슨 음식을 제일 선호하는지, 육식인지, 채식인지.

여름이 좋은지 겨울이 좋은지. 여름이 좋으면 왜 좋고 겨울이 싫으면 왜 싫은지.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은 있었는지.

그런, 개인에 관한 질문이되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것들.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어제 봤던 길드 직원이 웃으며 음식을 가져왔다.

테이블 위해 음식이 놓이면 놓일수록 맛있는 냄새가 퍼졌다.


“자, 잘 먹겠습니다.”

“으아! 엄청 맛있겠다!”


찬우와 채린의 짧은 감탄사가 이어졌다.

창문 너머 구름은 이제 번지다 못해 하늘을 뒤덮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27층에 진입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행복한 결말을 맞기 위한 전투의 시간이, 바야흐로 종을 울렸다.


* * *


[목표 : 와이번 3 마리를 처치하십시오.]

[남은 몬스터 수 : 3]


“와이번 세 마리라···.”

“응? 왜 그래 설진아?”


시연은 어색하게 중얼거리던 설진에게 입을 열었다.

별건 아니었다. 설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화답했다.


“아뇨. 그냥, 비행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처음인 것 같아서요.”


엄밀히 말하면 처음은 아니었다.

5층. 스토리 모드에서 란으로 빙의한 후 와이번과 전투를 치른 전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이 아닌 타인의 몸.

탑에 들어오고 난 뒤로 비행 몬스터, 그중에서도 꽤 강한 축에 드는 몬스터인 와이번을 상대한다는 건 생각보다 긴장되는 일이었다.


제대로 된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것은 마법사인 채린 하나일 뿐더러 사제인 찬우가 할 수 있는 것은 디버프 스킬인 슬로우, 시연이 할 수 있는 건 와이번의 강하 지점을 예측해 공격을 막는 것 정도였다.


“그래서, 어때? 이길 수 없을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하던 설진에게 시연이 물었다.

머금은 듯 퍼진 웃음이 입가에 새겨들었다.


“아뇨. 우리가 이겨요.”


일체의 고민도 없이, 설진은 즉답했다.

파티에게 있어 와이번은 확실히 까다로운 상대가 맞지만, 그렇다고 아예 이길 수 없는 적이라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채린의 마법은, 아니. 마법보다는 저주에 가까운 그녀의 힘은 처음부터 강한 화력을 뽐내는 형식이 아닌 어느 정도 예열이 필요한 후반형이었다.

그러므로 채린이 에너지 볼트를 날려 스택을 쌓을 때까지 보조하다가, 충분하다는 콜이 나오는 순간 위로 뛰어올라 같이 협공을 가한다.


시연이 할 수 있는 건 와이번의 강하 지점을 예측해 공격을 막는 것뿐이지만, 사실 그것 자체가 엄청난 힘이 된다.

마법사가 온전히 공격에 집중할 수 있다면 그만큼 스택을 쌓는 속도로 빨라질 테니까.


찬우는 시연이 더욱 수월하게 공격을 막아낼 수 있도록 돕는 보조역이었다. 와이번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어 시연의 동체 시력 활성화를 돕는다.

그러다 간간히 피해를 입은 파티원이 생기면 힐을 사용해 치료한다.


이것이 설진이 생각한 정석 파훼법이었다.

설진의 말을 듣고 있던 시연은 웃으며 앞을 가리켰다.


“좋아. 그럼 슬슬 가볼까?”


장소는 커다란 동굴.

목표는 와이번 세 마리.


27층. 사실상 모험가 등급을 C등급으로 올릴 수 있는 승급전이나 다름없는 의뢰가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 * *


동굴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을 때, 기척이 느껴졌다.

명백한 날갯짓. 그리고 삐쭉 튀어나온 입.

갈색으로 펄럭이는 날개와 날카로운 발톱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와이번임을 각인시키는 듯했다. 설진은 자세를 잡고서 검을 뽑아들었다.


[마력 단검이 활성화됩니다.]


오른손에는 한손검을, 왼손에는 마력 단검을.


“시작할게요.”

“저도 준비됐어요.”


에너지 볼트를 차징하고 있는 채린과 함께, 둘은 공습을 가했다.


슈슉-!

지지직!!


“키에에에엑!!”


날개, 그리고 귀를 스친 푸른색의 단검이 와이번의 괴성을 불러일으켰다.

그 짧은 시간에 몸을 비틀어 단검은 피했지만, 완전히 반대쪽에서 치고 들어오는 채린의 에너지 볼트는 피할 겨를이 없었는지 와이번의 몸이 파직거렸다.


“누나!”


동시에 이쪽을 완벽하게 인식한 와이번이 곧바로 반격을 가했다.

설진은 빠르게 시연을 불렀다. 아까 말한 강하의 타이밍이 바로 지금이었다.


“알고 있어!”


시연의 행동은 빨랐다. 그녀는 와이번의 강하 지점을 완벽하게 예측, 동시에 방패를 올려 공격을 맞받아쳤다.


콰앙!


커다란 소리가 사방을 잠식했다. 마치 폭탄이 터지는 것과 같은 소음에 귓가가 아른거릴 지경이다.


[마력 단검이 활성화됩니다.]


설진은 다시금 마력 단검을 만들었다.

푸른색의 단도가 손을 타고 밖으로 뻗어 나갔다. 목표로 한 곳은 뒤이어 강하하려는 다른 와이번들.


두 마리의 와이번에게 단검을 던졌다. 정확하게 급소를 노리고서 던진 공격이었기에 놈들은 온전히 회피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걸로 추가적인 강하 공격은 차단했고.’


스윽-.


얼핏 옆을 바라보았다. 채린은 강하한 와이번에게 에너지 볼트를 쏘아대고 있었고, 찬우는 설진이 견제한 와이번들을 향해 손을 내뻗고 있었다.


“슬로우(slow)!”


슬로우.

촉매제 중 ‘고블린의 이빨’과 ‘피가 섞인 뼛가루’를 매개체로 사용할 수 있는 주문이었다.

효과는 말 그대로 대상 감속. 눈에 띄게 느려진 와이번들에게 설진은 다시금 단검을 던졌다. 급소가 아닌 날개 쪽을 향해서.


파밧!!


급소와 달리 날개는 맞출 곳이 많았다. 거기에 둔화된 움직임이 설진의 투척 적중률을 상승시켰다.


“날개에 하나 박았어요!”


날개 중앙에 박힌 마력 단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물론 이걸로 와이번의 비행을 막을 순 없지만, 적어도 움직임에 제한을 걸 수는 있었다.

설진은 기민한 발걸음을 사용했다. 찬우가 슬로우를 걸고 와이번에게 단검을 박았으니 놈들은 쉽사리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시연이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있었다. 그녀가 버티고 있는 한 와이번은 찬우에게 쉽사리 강하하지 못할 것이다.


“채린아!”

“설진 오빠!”


스킬을 사용해가며 도착한 곳은 채린이 있는 곳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택을 상당수 쌓은 와이번이 있는 곳.


“같이 공격하자! 일단 숫자부터 줄여야 해!”


채린의 저주가 튀어나옴과 함께, 설진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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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87화(주시연) 22.02.27 543 6 12쪽
86 86화 22.02.26 545 6 12쪽
85 85화 22.02.26 538 7 11쪽
84 84화 - end, Spreading yew(3) 22.02.22 552 9 11쪽
83 83화 - end, Spreading yew(2) 22.02.21 532 5 12쪽
82 82화 - end, Spreading yew(1) 22.02.20 551 5 12쪽
81 81화 22.02.19 556 5 12쪽
80 80화 22.02.18 549 6 13쪽
79 79화 22.02.17 546 5 12쪽
78 78화 22.02.14 564 6 12쪽
77 77화 22.02.13 554 5 12쪽
76 76화 22.02.12 568 5 11쪽
75 75화 22.02.11 591 5 12쪽
74 74화 22.02.10 600 6 14쪽
73 73화 22.02.07 583 5 12쪽
72 72화 22.02.06 596 5 12쪽
71 71화 22.02.05 600 5 12쪽
70 70화 22.02.04 636 6 14쪽
69 69화 22.02.03 621 7 12쪽
68 68화 22.01.31 634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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