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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9,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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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2.06 21:30
조회
595
추천
5
글자
12쪽

72화

DUMMY

설진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보이는 것은 둠처럼 나열된 관람석과 관람객들.


‘귀족들인가···.’


하나같이 가면을 쓴 것이 정체를 숨기고 싶은 모양새였다.

당연했다. 지금부터 벌어지는 일은 결코 떳떳한 일이라 할 수 없었으니까.


피가 터질 때까지, 뼈가 부러지다 못해 바스러질 때까지 싸우는 것이 지금 그들이 보게 될 광경이었다.

그 광경을 보고서 광인처럼 열광하며 소리를 지른다. 유혈이 튀고 흉터가 새겨지는 모습을 눈에 새기며 유흥의 일부로 삼을 터였다.


‘···악습.’


그것이 설진이 투기장에 개입하지 않았을 시 일어나는 일이며, 뿌리 뽑을 수 없는 왕국의 치부였다.


설진의 눈이 치켜떠졌다.


가면을 쓰고 있는 이들 사이사이에 치장된 장식품이 보였다.

그냥 장식품이 아니다. 마도구와 아티팩트의 성격을 띤 것도 종종 있었다.

아마 공격을 막아주거나 보호막을 만드는 성능을 지닌 장식품일 터.


현재 플라임이 처한 상황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에 무심코 숨을 삼켰다.


국고가 바닥을 드러내도 귀족들의 재산은 여전해서, 먹고 사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거니와 이렇게 향락을 즐기는 것 또한 가능했다.

플라임이 생각하고 있는 상황 타개의 방안 중 ‘귀족들의 재산’과 관련된 것이 여럿 있을 정도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권력 또한 마찬가지.

왕권이 밑바닥까지 추락하고 있는 지금, 귀족들에게 대항할 수단이 플라임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잡아먹히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무력 자체는 플라임이 더 높지만 사회적인 시선을 생각한다면 나서는 것은 외려 독이 되어 돌아올 터였으니까.


‘이제 슬슬···.’


철컥- 철컥-.


멀리서 쇠 구슬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손발이 묶인 채로 경기장에 끌려나오는 아이들이 보였다.


아이들 중 반절은 두려움에 이성이 잠식된 채 떨고 있었다.

나머지 반절은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허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둘 모두, 정상적인 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표정은 아니었다.


“자, 대망의 첫 출전자를 소개하겠습니다! 왕녀 전하에게 반란을 들어 감옥에 갇히게 된 반역자 소년 데릴! 그리고, 뒷골목에서 타인의 물건을 훔치다 잡혀 들어온 범죄자 소년 아다릭의···!”


사회자의 치레가 이뤄진다.

간단하게 아이들에 대해 설명한 그는 이내 자리를 비켰다.

마련된 계단을 타고 올라간 그곳에는 자그마한 방이 있었다.


유리로 된 벽이 있는 것이 중계를 위한 방 같았다.

설진의 눈이 그쪽으로 향했다.

싸움이 시작되고 난 뒤 3초. 설진이 나설 타이밍은 바로 그때였다.

모든 이들의 관심이 경기장으로 쏠려 생기는 틈을 이용할 것이다.

휘익-. 허리춤에 달린 검집에서 미약한 바람이 일었다. 곧 바람은 피에 젖어 날아가지 못할 정도로 무거워질 터였다.


‘일단 먼저···.’


사회자의 목을 벰으로써 첫 번째 혼란을.

그리고 준비했던 폭탄을 터뜨리면서 두 번째 혼란을 만들 생각이었다.


시연에게는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리면 들어오라고 미리 말한 상황.

계획은 덧없이 완벽했다. 나머진 계획에 들어맞는 행동을 하는 것뿐이었다.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덜컥-!


사회자의 말이 울림과 동시에 아이들이 차고 있던 족쇄가 풀렸다.


싸우지 않으면 죽는다. 그러한 사실을 반복적으로 인식시킨 듯 보였다. 싸움이 시작되는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아이들은 서로를 향해 달려나가고 있었다.


“이야아아아아!!”


고성이 한 번 일었다.

서로가 서로를 죽일 듯이 달려드는 모습은, 과연 이들이 성인조차 되지 못한 아이들이 맞는지 의심을 자아내고 있었다.


보호구는 없었다. 주먹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할 것 같은 거적때기만 입혀 놓은 채 싸움을 붙였다. 심지어는 그 흔한 무기 하나조차 쥐여주지 않았다.

필연적으로 싸움을 오래 끌고 가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고사리 같은 주먹이, 짧고 가느다란 다리가 막무가내식으로 내뻗어졌다. 심신이 지쳐 더는 일어설 수 없을 만큼 지쳐도 싸우게끔 만든 것 같았다.


‘후.’


설진은 초를 재듯 상황을 바라보았다.

여기까지가 2초. 곧 2초의 절반까지 다다르려 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한 아이의 주먹이 내질러진다. 이윽고 뻗은 주먹이 다른 아이의 턱을 노리고선 수평선을 그었다.

이어 턱의 지척까지 주먹이 뻗어나갔을 즈음-.


‘···어.’


설진이,


‘···3초, 끝났어.’


모습을 드러냈다.


타다다다!!


기민한 발걸음을 해제했다.

그 순간 설진을 숨기고 있던 모든 요소가 튀어나왔다.

발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숨기고 있던 숨소리는 더는 감추지 못한 채 밖으로 삐져나왔다. 무엇보다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아이들에게 집중된 이목이 정체불명의 습격자에게 향한 찰나-.


“어, 다- 당신 뭐···.”


설진의 몸은 이미 사회자의 지척까지 접근해 있었다.


촤악-.


불길한 소리.

혹은 사람의 피가 터져 나오는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쏠린 시선이 상황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방금까지 큰 소리를 내며 아이들의 프로필을 소개했던 사화자는, 더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남긴 것이라곤 줄기차게 피를 뿜어내고 있는 시체 한 구. 단지 그뿐이었다.


“왜.”


모두의 시선이 조명된 지금, 크게 목소리를 내었다.

거부감은 없었다. 옭아매는 것 또한 존재치 않았다.


더는, 설진을 속박하는 무언가가 없었다.


“쓸데없는 짓을 해요.”


경기장. 혹 경기장을 넘어 관람석에 있는 이들에게도 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

낙인을 찍듯 힐난하는 음성이 사방을 잠식했다. 원한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낸 진혼곡과도 같은 목소리에, 모든 이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뭐하고 있어! 놈을 잡아!”

“쓸데없는 짓이라니까요.”


뒤늦게라도 상황을 파악한 경비대장이 경비병들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설진의 반응은 밍밍했다. 투기장에 존재하는 모든 경비병들의 표적이 되었음에도 낮빛에는 걱정 하나 묻어나지 않았다.


그저,


스윽-.


손가락 하나를 들어올렸다.

들어 올린 손가락에서 푸른 기운이 줄기차게 뻗어나왔다.

마력. 지구와는 다른 개념의 힘이자 있을 수 없는 현상을 구현하는 능력.


미리 심어놓은 폭탄과 연계해 마력이 힘을 발했다.

뿜어나온 마력이 사방을 향해 흩어지는가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연쇄적인 폭발을 일으켰다.


일어난 폭발이 하나 정도라면 단순 헤프닝으로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현재 투기장에 설치된 폭탄은 모두 쉰여섯.

모로 봐도 투기장 측에서 준비한 서프라이즈는 아니었다.


퍼어어엉!!


일어난 폭발이 파괴를 불러들였다.

건물이 조각난다. 시작은 단지 일부분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조각난 부분은 늘어갔다. 강도 높은 지진이 일어난 건 아닌가 싶어 경비병이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투기장은 혼비백산(魂飛魄散)이 되어 있었다.


“모두 도망쳐!”

“이쪽으로! 이쪽으로 나가!”


경비병 다음으로 움직인 것은 귀족들이었다.

마도구와 아티팩트를 사용해 충격을 상쇄한 그들은 빠르게 출구를 탐색했다.

영지의 사병을 데리고 왔으면 모를까, 현재로선 정체 모를 침입자를 상대하기란 불가능하다고 판단. 곧바로 도주를 택했다.


썩어도 귀족이라고. 그들이 내린 판단이 합리적인 판단인 것은 맞았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을 벌인 사람이 한 명일 때의 이야기.


“못 본 사이에 기백이 달라졌군.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어.”

“···저도 몰랐어요. 당신의 개입도, 설진의 변화도. 둘 다 모르고 있었네요.”

“그래서 어떤가. 현 심정을 말로 수놓자면.”

“좋은 변화 하나. 좋지 않은 변수 하나.”


어느덧 대검을 꺼내 든 시연이 답했다.


“-그렇게 있네요.”


진심이 들어간 듯한 목소리에 플라임에 겸연쩍게 웃었다.


“나도 여기서 그대들을 만날 줄 꿈에도 몰랐군. 솔직히 말해서 의심스러울 정도야. 누가 의뢰를 넣은 것도 아닐 텐데.”

“나이를 먹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네요.”

“그래, 시연 경 그대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거겠지. 하지만···.”


돌연 플라임의 얼굴이 진중해졌다.

음영이 드리운 것 같기도 했다. 그림자가 얼굴에 달라붙어 플라임의 표정이 내려앉았다. 솔직히 말해 미래를 짐작한 듯 보였다.


바꿀 수 없는 미래를.

절망적이다 못해 처참하기까지 한 미래를.


그런 플라임의 모습을 본 시연이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네요.”


플라임이 생각한 미래가 모두 짐작에서 나온 것이라면, 시연은 반대였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왕국의 미래도, 운명도, 그리고 어떻게 멸망하는지조차도.


“···.”


시연의 말에 플라임이 말이 멎었다.

안다니. 대체 무엇을 안단 말인가.

왕국의 사정을 어림짐작하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지만, 알 것 같은 것과 알겠네요 확연히 다른 말이었다.


플라임의 시선이 시연을 향했다.

플라임과는 달랐다. 그녀는 지금, 짐작이 아닌 확정을 내리고 있었다.


왕국의 미래를.

혹은, 결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종막을.


“알고도 이러는 거에요.”

“···무엇을 알고 있다는 말이냐?”


의문이 생긴 플라임이 되묻듯 말했다.


“알고 있잖아요.”


시연이 화답했다. 외려 질문자에게 답을 요구하듯이 연 입이 수평선을 그었다.


“미래.”


둘의 대화는 이상했다.

다만, 서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았다.

그래서 둘의 대화는 마치 심연에 잠긴 것 같았고, 영원토록 올라갈 수 없는 심해 속에 빠져버린 것 같았다. 어둡다 못해 온 광경이 새까만 듯했다.


사람 둘 늘어난다고 해서 희망이 생기지는 않는다.

상황이 너무 절망적이었다. 그건 무슨 저항을 해도 막을 수 없는 불가항력과도 같은 것이었고, 그리하였기에 지금의 시연은 결말을 바꿀 수 없었다.


“이 왕국에 있지도 않은 희망을 줄 생각은 없어요.”

“···.”

“다만 있거든요. ** ***.”

“시연 경. 방금 뭐라?”

“···.”


플라임의 표정이 의문으로 물들었다.

분명 무슨 말을 한 것 같긴 했는데, 들리지 않았다.

입이, 목이 발성한 것이 보이는데. 정작 소리가 없었다. 경험해본 적 없는 현상에 플라임의 눈이 치켜떠졌다.


“쯧. 막아놨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시연 경. 설명해줄 수 있나?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막힌 거에요. 정보 전달이.”

“그게 무슨···.”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플라임이 말을 흐렸다.

시연은 그 이상으로 말하지 않았다. 정보 전달이 되지 않는 것을 확인했으니 더 이상 입을 여는 것은 의미 없는 행위에 가까웠다.


“어쨌든.”


대신 다른 말을 했다.


“‘다’짐 정도는 미리 해두는 편이 좋을 거에요. ‘음’영 몇 개 드리우는 걸로 끝날 일이 아니니까.”

“···그거라면 이미 해두고 있다. 경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같은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류의 각오라면 이미-.”

“‘기’회 따윈 없어요. ‘회’귀 같은 기적은 일어나지 않아요. ‘가’슴이 미어터질 정도로 아픈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에요.”

“···.”


시연의 말을 곱씹던 플라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런가.”


짐작하고 있던 것이 확실시된 순간이었다.

헤임 제국에서 온 서신을 생각하던 플라임은 무심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시연 경.”

“말씀하세요.”

“지금 내가 발버둥치는 것에 의미가 있는가.”


눈앞에 보이는 것은 귀족 여럿.

그리고 귀족을 지키듯 서 있는 경비병들.


저들을 바라보며 플라임이 입을 열었고,


“적어도 저와 설진이의 기억에는 남아요.”

“그 정도면 만족스럽군.”

“일국의 왕녀치고는 바라는 게 적네요.”


시연이 화답했다.

바라는 게 적다는 말을 들은 플라임이 다시금 웃었다.

이번에는 예의 허탈한 웃음이 아닌, 진심으로 재밌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바라는 게 적다니. 지금 짐은 너무나도 큰 것을 바라고 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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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86화 22.02.26 545 6 12쪽
85 85화 22.02.26 538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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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83화 - end, Spreading yew(2) 22.02.21 532 5 12쪽
82 82화 - end, Spreading yew(1) 22.02.20 551 5 12쪽
81 81화 22.02.19 556 5 12쪽
80 80화 22.02.18 549 6 13쪽
79 79화 22.02.17 545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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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75화 22.02.11 591 5 12쪽
74 74화 22.02.10 600 6 14쪽
73 73화 22.02.07 583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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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71화 22.02.05 600 5 12쪽
70 70화 22.02.04 636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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