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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9,790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2.12 21:40
조회
568
추천
5
글자
11쪽

76화

DUMMY

“잠시 기다려 줄 수 있겠나.”


플라임과 시연이 가게를 나가고, 이윽고 설진 또한 자리를 뜨려 할 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말이다.”


돌연 루이 로반델트가 설진을 붙잡았다.

어딘가 간곡함이 담긴 듯한 목소리에 설진의 발이 멈췄다.

전투의 피로가 아직 가신 건 아닌지, 목을 돌리자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흔들며 돌아본 곳에는 진중한 얼굴을 한 루이가 있었다.


의자에 앉지조차 않고서 굳건히 서 있는 그에게 말 못할 위엄이 서렸다. 위엄이라기보단 성정에서 비롯된 냉철함이 밖으로 튀어나온 것 같았다.

시선이 옮겨갔다. 그는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돌을 꺼내고 있었다.


“우선, 고맙다는 말부터 해야겠지. 설진이라고 했나. 어떤 연유로 플레임 왕국을 돕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협력에 감사하지. 정작 그에 따른 보답을 하지 못한 것 같아서 송구하군.”

“플··· 왕녀 전하에게 충분히 보답 받았습니다. 전 만족하고 있어요.”

“그래,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다행이군···. 그대에게 부담을 쥐여주는 건 아닐지 모르나, 나 또한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뭔가요? 루이 로반델트?”


루이는 주머니에서 꺼낸 돌을 내밀었다.

호박과 비슷한 색깔의 돌이었다. 누렇고 반투명한 돌이 설진의 눈에 들어왔다.


이게 뭐냐는 의미를 담아 루이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후, 자그맣게 한숨을 내쉬더니 결연스레 입을 열었다.


“아티팩트다. 그중에서도 신호를 보낼 때 사용되는.”

“이걸로 뭘 하시려고···?”

“그리 복잡한 건 아니다. 내가 부탁하고 싶은 건···.”


우웅-.


미세하게.

불현듯 루이가 쥔 아티팩트의 색이 바뀌었다.

전보다 불투명해졌다. 자세히 봐야 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차이였지만, 이전과는 달라진 몸이 그 변화를 보게 만들었다.


루이의 입이 열렸다.


“이 아티팩트의 색이 완전히 불투명해지기 전에, 왕녀님과 외교관과의 협상을 끝내 다오. 시시각각 색이 변하고 있는지라 구분은 쉬울 거다.”


텁.


설진은 루이가 내민 아티팩트를 받았다.

누렇고 반투명한 색상의 돌.

광물 비스무리하게 생긴 모양새였지만, 안에 들어있는 마력이 평범한 돌이 아님을 증거하듯 탁한 색을 내뿜었다. 우웅. 색이 조금 더 짙어졌다.


의문을 가지고 바라본 그곳에는 눈을 감은 채 말하고 있는 루이가 있었다.


“아티팩트의 색이 완전히 불투명해진다면, 그때는··· 왕국이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을 테니까.”

“···.”

“동시다발적으로 시위가 일어난다는 말이다. 왕국에게, 왕족에게 반기를 들고서 권리를 되찾으려 들 거다. 지금은 나를 비롯한 도적들이 은밀하게 움직여 막곤 있지만, 오래 버티진 못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루이의 말이 이어졌다.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걸 황국에게 들키면 왕국은 끝이다. 투기장 건으로 국고를 충당할 순 있겠지만, 시위가 벌어지는 것 자체는 피할 수 없어.”

“예상 시간은 있어요?”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열 시간 뒤. 그때가 마지노선이다. 그 이후로는 버티려 해도 버틸 수 없어. 지금 우리에게는- 인력이 너무 부족해.”

“···노력하죠. 그럼.”


아티팩트를 품에 넣은 설진이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루이와 설진. 그리고 어디 갔는지 모를 주인장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는 가게. 그곳에서 왠지 모를 고요가 흘렀다.


아직 하늘은 맑았다.

안개는 완연히 개여 청명한 하늘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청명함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기 전까지 남은 시간은 사흘.

시간을 생각하며 발을 내디뎠다.

그러던 도중, 돌연 무언가가 내려앉는 소리가 귓가에 스쳤다. 시선을 옮겨 바라본 그곳에는 루이가 있었다.


“고맙다.”


자세를 아래로.

곧이곧대로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루이가 보였다.


“이게 내가 표할 수 있는 예(禮)다.”

“···노력으로 끝낼 문제가 아니었네요.”


끼이익-.


낡은 문이 열리는 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나무와 나무가 맞물리는 소리가 오늘따라 슬피 울렸다.


설진은 문을 나가여 조용시리 입을 열었다.

그리하여 약속했다. 약조했다.


“성공시킬게요. 꼭.”


지킬 수 있을지 모르는 약속을.

짧게나마 자신의 몸이었던 그와의 약조를.


* * *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지.

체감상 네 시간 정도는 된 것 같았다. 플라임은 헤임 제국에서 온 외교관을 바로 만나주지 않았다. 어느 정도 뜸을 두고서 기다렸다.


최대한 여유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외교관이 오자마자 맞아주는 것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좋을 것 하나 없었다. 그만큼 자신의 나라 상황이 급하다고 알려주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적어도 플레임 왕국의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헤임 제국에게는 그랬다.


그래서 뜸을 들였다.

왕녀와 외교관이 만난 건 그로부터 다섯 시간이 흐른 후였다.


“플라임 왕녀 전하를 뵙습니다. 나타벨이라고 합니다.”


외교관은 헤임 제국의 성기사 둘을 데리고 왕실에 들어섰다.

십자가 모양이 그려진 방패와 샛노랗게 칠한 검집은 그들이 제국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는 듯했다. 가슴팍에 박힌 문양이 존재감을 뽐냈다.


설진은 외교관 뒤에 서 있는 성기사에게서 강렬한 기운을 느꼈다.

일반적인 병사가 아니었다. 인고의 시간을 거처 탄생된 기사였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압박감이 몸을 옥좼다. 싸워서 이길 수 있느냐 하면 이길 순 있겠지만, 팔 하나쯤은 각오해야 할 것 같았다.


“제 뒤에 있으신 분들은 팔라딘의 직을 맡고 계신 아넬과 아메르입니다. 헤임 제국의 자랑스러운···.”

“인사치레는 그만하도록 하지.”


팔라딘은 성기사의 상위 직급이었다.

헤임 제국에서도 몇 없는 인재이며 수준급의 힘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 팔라딘에 대해 소개하는 찰나, 플라임이 말을 끊었다.

대신 은은한 분노를 띄우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다마는, 사람의 속을 읽으며 말을 이어나가야 하는 외교관에게는 충분히 느껴질 분노였다.


“아직 그대들에게는 여유가 많은 것 같으니, 소개는 일이 전부 끝난 후에 하도록 하지. 아직 제대로 된 협상안도 나오지 않았는데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건 쓸데없는 짓일 뿐이야.”

“···왕녀님께서 그걸 원하신다면 그리하도록 하지요. 다만, 타국에서 온 외교관을 이리 대하는 건 무슨 경우인지 묻고 싶군요.”

“미안하군. 그대들이 너무 빨리 온 바람에 제대로 된 준비를 하지 못했어.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환영해 머지않아 맞아줄 수 있었을 텐데.”


서신을 보낸 뒤 이르게 도착한 외교관을 문책함과 동시에,


“···.”

“···.”


플라임에 뒤에서 협상 진행을 지켜보고 있는 둘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서였다.


일찍 도착했음을 문책했다고, 그런 이야기가 퍼져 나갈 테지만 앞으로 있을 협상안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문제였다.

플라임은 접견실 속 준비된 차를 한 모금 넘기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당최 그대들이 들은 소문이 무엇이길래 서신을 보냈는가.”

“최근 왕국에 기근이 돌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외곽 마을은 몬스터나 유목 민족들에게 공격당해 힘들게 연명해나가고 있다는, 그런 풍문이지요.”

“호오. 만약 그런 풍문이 사실이라면 그대들은 어떻게 할 테지.”

“도움을 드리고자 찾아올 겁니다.”

“도움을 준다는 것치곤 들이는 지휘관의 수가 꽤 많더구나.”

“보다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함입니다. 사람은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사람이 많아야 왕국의 상황을 파악하니 쉬우니까요.

마지막 외교관의 말을, 플라임은 그렇게 들었다. 그만큼 서신에 쓰여 있었던 내용은 적나라하다 못해 왕국의 침입을 예고하고 있는 듯했었다.


“다만 저희는 도움을 드린 대가로 아주 자그마한 보상을 바라고 있습니다. 단지 그뿐이지요.”

“음? 그 말은 마치 소문을 사실시 여긴 채 찾아온 것으로 들린다만.”

“그럴 리가요. 혹여 그런 일이 발생했을 시 저희 헤임 제국은 이렇게 대처하겠다, 이렇게 나오겠다 같은 향후 계획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나타벨은 플라임의 공격적인 말투를 부드럽게 흘렸다.

어디까지나 가정을 두고 진행되는 허상 속 대화. 플라임은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대화의 장이 하나의 체스판 같다고 생각했다.


“혹여 그런 일이 발생했을 시라··· 구체적인 계획은 있나? 설마 구체적인 지침조차 정하지 않고 왕국을 방문한 것은 아니리라 믿지.”


플라임 측 폰이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격 테세를 갖추듯, 상대의 체스말을 하나씩 잡아먹기 위해 앞으로 전진한다.


“왕국의 중대사를 어찌 저희끼리 결정할 수 있겠습니까. 저희가 온 이유는 위대하신 왕녀 전하와 같이 방침을 의논하기 위함입니다.”


나타벨 측 체스판 또한 행동을 개시했다.

불규칙적으로 이어지는 변주. 마치 나이트가 움직여 폰을 먹은 듯했다.


“호?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닐 터인데. 지금까지 생각한 것들을 알려줄 수 있겠나? 도움이 될 지도 모를 일이지.”

“전해드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왕국에서 돌고 있는 소문이 참일 때의 이야기. 혹여 거짓이라면 제가 이곳에 방문한 이유는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니, 우선 소문의 진위부터 가리는 건 어떠하진지요.”

“그렇군.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야.”


서로의 폰이 먹히기 시작했다.

아직 장군급에 다다르는 다섯의 체스말은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여도 아주 미약한 태세만을 취할 뿐.


플라임은 나타벨의 말에 순순히 긍정했다.

소문의 진위를 가리는 것. 그것을 부정했다가는, 왕국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단숨에 알려지는 꼴이 될 터였으니까.


“자, 그럼 왕녀 전하. 저희에게 알려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

“지금 플레임 왕국에서 돌고 있는 소문은 참입니까, 거짓입니까.”


나타벨의 체스말이 서서히 앞으로 향한다.

퇴로를 없앤다. 도망갈 곳을 좁히고 한정하여 몰아넣는다.

플라임 측 룩과 비숍은 하나씩 잡아먹혀 죽은 지 오래.


그리하여 체크가 만들어졌고.


“애석하게도, 참이다.”


플라임을 사지까지 끌어들였다.


“이런.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이군요. 왕녀 전하. 통탄을 금지 못 할 따름입니다.”

“경의 위로는 참으로 위로가 되는군. 어떠한가. 이야기를 계속할 텐가?”

“물론이지요. 저희는 왕녀 전하를 돕기 위해 찾아온 몸입니다. 도울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돕도록 하겠습니다.”

“···.”


도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돕도록 하겠습니다.

나타벨은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인즉,


“···.”

“···.”


체스 상태의 플라임이 가지고 있었던 하나의 변수.

노르담의 모험가 설진, 시연이라는 나이트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대에게 진심으로 감사하지.”


체크 상태의 플라임이 웃었다.

작금의 나타벨의 말은 공식적으로 한 말임과 동시에, 설진과 시연이 전달할 수 있는 협상의 내용 중 플라임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이야기를 계속해 볼까?”


그러나 아직 전황은 불리했다.

여전히 체스판은 나타벨에게 기울고 있었다.


다만,

만들어진 기회는 넝쿨처럼 번져나갈 준비를 끝마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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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85화 22.02.26 538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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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83화 - end, Spreading yew(2) 22.02.21 532 5 12쪽
82 82화 - end, Spreading yew(1) 22.02.20 551 5 12쪽
81 81화 22.02.19 556 5 12쪽
80 80화 22.02.18 549 6 13쪽
79 79화 22.02.17 546 5 12쪽
78 78화 22.02.14 564 6 12쪽
77 77화 22.02.13 554 5 12쪽
» 76화 22.02.12 569 5 11쪽
75 75화 22.02.11 592 5 12쪽
74 74화 22.02.10 600 6 14쪽
73 73화 22.02.07 583 5 12쪽
72 72화 22.02.06 596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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