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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9,803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1.30 21:30
조회
641
추천
9
글자
12쪽

67화

DUMMY

오십을 베었을 때, 어깨에 자그마한 자상이 하나 생겼다.

물밀 듯이 들어오는 공격을 막지 못하고 허용해버린 상처였다.

신체에 무리가 갈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생체기라고 해도 될 것이다.


[고유 능력 흡혈이 활성화됩니다.]

[입힌 피해의 20%를 회복합니다.]


생체기는 금새 아물었다.

칼에 베인 상처는 흉터조차 남기지 못한 채 자취를 감췄다.

상처가 났음을 증거하는 것은 찢어진 옷가지 하나.

몸을 감싸던 검은 망토의 찢어짐. 단지 그뿐이었다.

베인 어깨는 금방 재생되어 새 살이 돋았다.


“···뭐지? 저놈의 능력은-.”

“상처가 아물었어? 재생 계열인가!?”

“큭! 모두 다시 태세를 갖춰! 놈도 불사신은 아닐 거야!”


마트리아인들은 의구심에 발을 들였다.

자신들이 보고 있는 광경이 진실이고 사실인지. 혹여 허상은 아닌지.

검을 쥔 놈 중 몇 놈은 멀리서 눈을 비볐다. 비비고 난 후 동공을 크게 확장시켜 이쪽을 바라보았다. 달라지는 광경은 없었다.


촤악-!


백을 베었을 때, 망토는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20층에서 몬스터들을 상대할 때와 비슷한 색상이었다. 몬스터가 아닌 사람이었으므로 초록보다 빨강이 더 짙었다.


다리에 길쭉한 검상이 하나 났다. 종아리를 베여 피가 났으며, 피부에서 빠져나간 피는 밑으로 낙하해 다른 피와 섞였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정도로 피는 넘쳐흘렀다.


마치 하나의 강을 보는 것 같았다.

쓰러진 마트리아인, 과다출혈로 죽어버린 마트리아인, 그리고 설진의 검에 베여 상처 입은 마트리아인의 몸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계속, 계속.

설진의 검이 계속해 사람을 갈랐다.

횡으로 휘둘러 몸을 베어버리고, 종으로 휘둘러 머리를 갈라버렸다.

종아리에 났던 기다란 상처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왜! 왜! 재생하는 거야! 그런 인간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는데!”

“아니야! 뭔가 수를 썼을 거야! 레겐느처럼 아공간을 이식했을 수도 있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포션을 먹었을 거라고! 그게 놈의 비밀이야!”

“포션을 먹은 모습이 보이질 않잖아! 아무리 봐도 없어!”

“잠깐! 그보다 레겐느 그 용병 놈은 어디로 간 거야···!”


백오십을 베었을 때, 의구심에 발을 들인 마트리아인의 표정이 새하얘졌다.

발에 물이 찬 것 같았다. 비단 발뿐만이 아니다.

파도가 치고 있는 바다를 걷는 것처럼, 걸으면 걸을수록 몸이 잠기는 것처럼.

종아리에 수심이 들이차더니만, 이윽고 하반신 전체를 덮었다. 설진과 싸울수록 그들의 얼굴은 점차 의문에서 두려움으로 변해갔다.


‘···몇 명 남았지?’


흐트러짐 하나 없이 자세를 잡던 설진은 이내 태세를 가다듬었다.

빠르게 몸 상태를 살폈다. 아직 더 싸울 수 있어 보였다.


사락-.


불현듯 검에 찢긴 천이 밑으로 흩날렸다.

천은 피에 섞여 붉게 물들었다.


‘지금 내 몸에 있는 상처는···.’


하나도 없었다.


물론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설진은 분명하게 상처를 ‘입었었’다.


종아리를 베인 후 딸려온 연쇄 공격을 버티지 못했다.

설진의 몸은 저들의 검에 난도질당했다.

최적의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했지만, 수가 너무나도 많았다. 온몸 전체에 새겨지는 크고 작은 상처가 몇 방울의 피를 불러일으켰다.


다만,

그 상처가 치명상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고유 능력 흡혈이 활성화됩니다.]

[입힌 피해의 20%를 회복합니다.]


회복하고,


[고유 능력 흡혈이 활성화됩니다.]

[입힌 피해의 20%를 회복합니다.]


회복하고,


[고유 능력 흡혈이 활성화됩니다.]

[입힌 피해의 20%를 회복합니다.]


또 회복했다.

싸우면 싸울수록 상처는 되려 아물어갔다.


이백을 베었다.

그제야 흡혈의 회복량보다 적의 공격에 생기는 상처가 더 많아졌다.


“괴, 괴물! 저건 괴물이야! 어떻게 혼자서 이만큼이나!”

“아, 도- 도망가야 해! 도망가야 한다고!”

“비켜! 비키란 말이야! 나는 죽고 싶지 않아!”


그러나 마트라인들은 그것을 몰랐다.

알 겨를이 없었다. 그동안 계속 회복되는 몸을 보아왔었는데,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게 더 이상할 지경이었다.

일신의 무력으로 이백을 죽였다는 사실에 혼란이 발생했다. 이미 마트리아인에게 있어서 설진은, 죽여도 죽지 않는 불사(不死)이자 괴이(怪異)였다.


같은 인간이 아니다. 괴물이다.

이미 대다수의 마트리아인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으, 으아아아!!!”

“도망쳐! 도망가야 해!”


처음은 열 명이었다.

설진과 싸우다 말고 몸을 돌려 도망친 이들은 열 명이었다.


설진이 조금 더 검을 휘둘렀다.

추가로 오십을 더 베었다.

열 명이었던 도망자가 오십으로 그 수를 불려 나갔다.


“커허어억!!!”


시작은 삼백이었다.

가세한 숫자는 이백이었다.

설진은 총 오백의 병사를 상대해야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일신의 무력으로 베어낸 수는 이백오십이며, 도망친 자는 육십이다.

싸울 수 있는 병사보다 싸울 수 없는 병사가 더 많았다. 공포는 전염되듯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베어도 베어지지 않는 괴물 앞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존재치 않았다.


‘···몇 명 남았더라. 아, 맞다-.’


한참 적을 베어 넘기던 설진이 생각했다.

몇 명이 남았는지.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이제, 없지.’


추가적인 공격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설진이 몸을 뒤로 돌렸다.

시간은 충분히 벌 대로 번 것 같았다. 삼십 분은 훌쩍 지나 있었으며, 시침은 한 바퀴를 완주하기까지 몇 초 정도가 남아 있었다.


저벅, 저벅.


걸음을 옮겼다.

머지않아 메시지가 떠올랐다.


[21층이 클리어되었습니다.]

[10000G를 획득하셨습니다.]


시스템이 판단하길, 이제 안전하다고 생각한 듯했다.

21층의 클리어 조건은 생존.

마트리아인에게서 벗어나도 클리어가 가능한 층이었다.


굳이 사람들을 구하지 않아도 클리어할 수 있는 층이었으며.

굳이 이백오십의 사람들을 죽이지 않고도 클리어할 수 있는 층이었다.


‘···.’


설진은 피칠갑이 된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흘린 피는 아니었다. 섞이고 섞여 더 이상 혼탁해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뒤엉킨 마트리아인의 피였다.


줄줄줄.


전장을 벗어나니 사람의 소리 말고 다른 것이 들렸다.

목을 움직여 소리의 근원지로 시선을 옮겼다.


“강?”


그건, 강이었다.

마을에서 물을 퍼 나를 때 쓰는 강인 듯싶었다. 흐르고 있는 물줄기 너머, 물을 옮길 때 쓰는 듯 보이는 바구니 몇 개가 놓여 있었다.


텁.


바구니를 잡아들었다.

원래는 몸에 피가 묻은 말든 신경 쓰지 않았지만, 자신은 변하기로 결정한 몸.


‘몸을 깨끗하게-.’


아주 옛날,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옛날에 본 책이 한 권 생각났다.

유아용 책이었던 것 같았다. 몸을 깨끗하게 하라고, 씻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어린아이들에게 알려주는 생활 상식 계열의 책이었던가.


왜 이런 책이 갑자기 생각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변하기로 한 탓에 불현듯 떠올랐을 수도 있고, 단순히 피가 너무 많이 묻은 탓에 생각난 것일 수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설진은 지금, 피를 닦아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피가 묻은 망토를 벗어 내려놓았다. 망토의 재질이 워낙 질겼는지라 바지를 제외한 다른 옷에는 피가 거의 묻지 않았다.


스윽-.


바구니를 손에 쥔 채 물을 떴다.

망토를 바구니에 담군 후 피를 빼기 시작했다.


‘이제 22층인가.’


바구니 속 깊숙이 잠긴 망토는 내버려두고.

그보다 위, 물의 표면을 보고 있자니 피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방울처럼 떠오르지는 않았다.

다만 백지에 물감을 칠하듯 피는 번져나갔다.

떠오른 피가 표면을 물들였다. 속이 보일 정도로 투명했던 강의 물은, 단지 사람의 피에 의해 불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원래는 보고만 있어도 그 속이 보였는데.

피가 올라올수록 집중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반투명해지더니,

이내 온전히 가려버렸다. 뻘겋게 변한 핏물 너머 보이는 것은 점차 검해지는 망토의 형상 하나. 멀리서 보면 그것이 망토인지도 구분하지 못할 것 같았다.


첨벙-!


어느 정도 되었다 생각한 설진이 망토를 빼버렸다.

피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어느 정도 제거되기는 했지만, 그것이 완전한 제거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붉음은 잔향처럼 남았다.


바구니의 물을 뺐다.


[22층에 진입했습니다.]


그 순간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건, 마치 앞으로 닥칠 일을 경고하는 듯했다.

22층. 조금 더 올라 23층이, 조금 더더 올라 24층이.

그리고 마지막 25층이 된다면···.


‘···.’


설진은 말을 아꼈다. 쏟아부은 바구니의 물이 첨벙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땅에 부딪혀 와해되었다.

아직 색이 다 빠지지 않았건만.

그 이상 색을 빼지는 않았다. 대신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놓아두었다.


암살자의 망토는 평범한 옷이 아닌 아이템이었다.

그것이 스테이지 클리어를 통해 받은 보너스 장비.

장비 속에 스며든 마력이 천을 제외한 다른 요소를 거부하듯 진동을 내뱉었다. 햇빛이 하나하나 들고 스며들 즈음, 피가 밖으로 내뱉어지기 시작했다.


“설진아?”


이윽고 핏기가 완전히 빠져 원래의 검은색으로 돌아왔을 때,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고?”

“괜찮아요. 적당히 하다가 도망갔어요.”


뒤편에서 시연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채 설진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사람들은요.”

“일단 안전한 곳에 대피시켰어. 그 이상은, 못해주겠지만.”

“그거면 된 거 아니에요? 적어도 전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 그런가.”


시연은 어색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보다. 너, 괜찮은 거 맞지?”

“···별 거 아니에요. 실제로 다친 데도 별로 없고요.”

“···.”


시연의 얼굴이 설진을 향했다.

본인의 입으로는 적당히라 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 보였다.

피를 뺀 망토 옆에 핏물이 흘렀다. 적색의 피가 초록의 잡초들과 합쳐졌다.


망토 속 윗옷은 피가 많이 묻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꽤 묻어 있었다.

아마 저 윗옷에 묻은 피들이 진짜 설진이 흘린 피일 터.


‘···.’


바지는 칼에 베이고 창에 찔렸는지 찢겨져 있었다.

군데군데 찢겼는데 정작 상처 하나 없다는 것이 이상할 따름이었다.


“···수고했어.”


설진의 성정을 고려했을 때, 여기서는 무슨 말을 해도 그의 기분을 낫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저 말했다. 수고했다고. 단지 그 짧은 한 마디를 말이다.


“그보다 22층은 어떻게 할 거에요? 아직 시간은 좀 남아 있는데, 그 사이 부르크로 이동해서···.”

“···습격할 거야. 아마 플라임도 오겠지. 일단 플라임이랑 같이 투기장을 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

“저도 그럴 참이었어요. 여기서 사건이 늘었다가는 괜히 시간만 오래 끌리고, 플라임에게 좋을 것 하나 없으니까요. 해결할 수 있는 일이면 해결할 거에요. 투기장이 재건되고는 있지만, 현재로써 영향력은 거의 제로기도 하고.”


뿌리를 뽑을 수 있을 데 뽑는 편이 나아요, 설진이 말했다.


콜로세움이 중단되기는 했을 테지만, 그렇다고 지금 투기장이 활개치고 다니느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오히려 이제 막 시작에 나섰을 뿐이다. 반란과 동시에 폐지되다시피 한 투기장은 지금 세력 불리기에 집중하고 있을 터였다.


왕녀 플라임의 여론이 서서히 기울고 있으니.

투기장 쪽에서도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마 한몫 챙길 수 있으리라고, 그렇게 여기고 있을지도 몰랐다.


“누나. 조금만 쉬었다가 이동해요. 아직 밤도 아니고, 움직일 수 있죠?”

“어. 괜찮아. 대피시키느라 고생하기는 했는데- 아니.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안 되겠지. 어쨌든 움직일 수는 있어. 너도 쉬어둬, 설진아.”


사람이 죽었다.

피가 흘렀다. 난자하고,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못해도 백 단위의 사람이 죽었음에도.

해는 여전히 중천에 떠 있었다.


밤이 되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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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87화(주시연) 22.02.27 543 6 12쪽
86 86화 22.02.26 545 6 12쪽
85 85화 22.02.26 538 7 11쪽
84 84화 - end, Spreading yew(3) 22.02.22 552 9 11쪽
83 83화 - end, Spreading yew(2) 22.02.21 532 5 12쪽
82 82화 - end, Spreading yew(1) 22.02.20 552 5 12쪽
81 81화 22.02.19 556 5 12쪽
80 80화 22.02.18 549 6 13쪽
79 79화 22.02.17 546 5 12쪽
78 78화 22.02.14 564 6 12쪽
77 77화 22.02.13 554 5 12쪽
76 76화 22.02.12 569 5 11쪽
75 75화 22.02.11 592 5 12쪽
74 74화 22.02.10 600 6 14쪽
73 73화 22.02.07 583 5 12쪽
72 72화 22.02.06 596 5 12쪽
71 71화 22.02.05 600 5 12쪽
70 70화 22.02.04 636 6 14쪽
69 69화 22.02.03 622 7 12쪽
68 68화 22.01.31 634 8 12쪽
» 67화 22.01.30 642 9 12쪽
66 66화 22.01.29 635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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