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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9,828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1.31 21:30
조회
634
추천
8
글자
12쪽

68화

DUMMY

중천에 떠 있던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제일 높이 걸린 시침 하나가 우측으로 시곗바늘을 내렸다.


저벅, 저벅.


휴식을 마친 설진과 시연은 수도 부르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외곽이었기에 걸어서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설진은 걷기로 결정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을 베었고 죽였다. 그동안 사람을 죽여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많이 죽여본 적은 없었다.


그랬기에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했다.

정확히 말하면 시연이 제안한 것이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걸어가면서 마음을 정리하라고.

얼핏 그런 말을 들었던 것 같았다.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여 결정된 걸음이었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오히려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지금 두 사람이 걷고 있는 곳은 울창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산림.

아까의 전쟁과는 다른 광경이었다. 붉은색과는 상반되게 초록이 사방을 채웠다. 완연히 다른 두 색상에 이질감이 스며들었다.


말은 오가지 않았다.

사이가 나빠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끈끈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겪은 상황이 상황이기에.

쉬이 말이 내뱉어지지 않는 것뿐이었다. 햇살이 아스라이 쬐여 초록이 빛에 물들었다. 하얗고도 연한 초록의 빛이 눈을 가려왔다.


설진은 팔을 들어 올려 햇살을 덮었다. 그러나 워낙 줄기차게 뻗은 햇살이었기에 가린다고 전부 가려지지는 않았다.

다만 부셨던 눈이 시야를 확보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서, 아무런 방해 없이 걷는 것이 가능했다. 그 모습을 보던 시연이 입을 열었다.


“사람이 햇볕을 쬐면 건강해진대.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던 것 같아.”

“그래요?”

“응. 비타민 D였나. 그게 몸에 들어온다면서. 여러 가지 병에 걸릴 확률이 낮아지기도 하고. 아, 맞아. 우울증 같은 것도 완화된다던데.”

“아.”

“하여튼, 간간이 시간 나면 햇볕 쬐는 것도 나쁘지 않겠더라고. 솔직히 이런 산림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이것도 우연으로 봐야 하려나.”


픽-.


설핏 선웃음을 지어 보인 시연이 설진을 지나 앞으로 이동했다.

저벅, 저벅. 발을 움직일 때마다 잡초가 걸려들었다.

따라오라는 듯 고개를 돌린 시연의 얼굴이 보였다.


햇살을 맞은 머릿결이 곱게 반짝거렸다.

길게 뿌리내린 긴 생머리가 눈에 선했다.

햇빛을 등지고서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은 마치 천사가 강림한 듯 보였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잡으라는 듯 시연은 손을 내뻗었다.


스윽-.


‘햇살을 쬐면 건강해진다, 라.’


설진은 햇살을 가린 팔을 치웠다.

그 순간 빛이 흘러들어왔다. 태양빛에 눈이 부셨다.

몇 번 눈가를 비비고서 다시 떴다. 아까보다는 나아진 기분이었다. 시연이 말했던 햇빛의 효능에 대해 되뇌던 설진은 점차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다.


길가를 걷는 소리가 아닌, 잡초를 지르밟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락- 사락-. 풀이 내려앉고 잡초가 고개를 숙였다.

초록의 식물들이 내려가는 소리를 들으며 계속해 앞으로 향했다.


‘생각날 때마다 쬐 봐야겠어.’


그런 생각을 품고선 산림을 빠져나갔다.

산림을 떴음에도 햇살은 여전했다.

다만 동쪽보다 서쪽으로 더 기운 것이, 저녁이 되고 있음을 알리는 듯했다.


곧 다가올 땅거미를 암시하듯 사방이 어스레하게 변했다.

어둑하게 변하는 빛에 서서히 그믐이 생겼다. 그림자가 접어들고 빛이 옅어졌다.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을 때, 하늘은 이미 노을이 수놓고 있었다.


색실을 꿰어 그림에 뜨듯, 그리하여 무늬를 이루듯.


하늘이 벌겋게 보였다.

설진이 봐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심히 절경이었다. 지구의 경치 좋은 곳과 견주어도 이상하지 않은 듯싶었다.


설진이 발을 내디뎠다.

한 발자국을, 그리고 또 한 발자국을 내디뎌도 절경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다각도에서 제 모습을 뽐내는 양하는 듯했다.

올린 고개가 내려간 것은 노을이 질 때가 되어 달이 떠오를 무렵이었고, 벌겋게 변한 하늘마저 묵빛에 물들어 진한 남색이 모습을 드러낼 즈음이었다.


그리고 둘은,


“얼마 안 남았어. 이제 이십 분 정도면 도착할 거야.”


머지않아 수도 부르크의 성문에 도착하려 하고 있었다.


* * *


“플라임과 같이 투기장을 치겠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되도록 플라임에게 들키지 않고 치는 게 베스트인 것 같긴 해요.”

“어, 왜?”

“이번 투기장이 아마 첫 번째로 열리는 투기장일 테니까요. 그동안 마트리아인의 마을 납치 사건이랑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았으니··· 아마 투기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들은 이번을 초석으로 삼으려는 것 같아요.”

“하지만 부르크 지하잖아. 너무 위험한 일을 하려는 거 아니야?”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비슷한 거죠. 만약 성공한다면 왕국 수도에서 성공적으로 투기장을 진행시켰다는 명성을 얻고, 판을 크게 벌일 수 있으니까요.”


아, 무언가 놓친 것이 있는 듯 설진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도 아닐 거에요. 지금이라면, 아직 투기장의 재건이라는 화두가 제대로 올라오지도 않았을 테니 리스크는 거의 없는 거죠.”


아예 그럴듯한 세력을 만들어두지 않은 것이 되려 도움이 된 경우다.

세력을 불려두지 않았으니 왕국에 들킬 일이 없었다. 설진이나 시연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아마 높은 확률로 투기장 운영이 성공했을 것이다.


“일단 투기장 운영이 성공하는 건 막아야 해요.”


설진이 말을 이었다.


만일 실패한다고 해서 손해볼 것이 많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왕국은 망가지는 중이다. 시간은 왕국의 편이 아닌 투기장의 편이었다.

왕국이 더 휘청거려 무너지려고 할 때 한 번 더 투기장을 열면 되는 일이었다.


다만, 이왕 막는 감에 아예 뿌리를 뽑아버린다면.

재개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뜨려 버린다면.


“-그렇게 하면, 이번 에피소드에서 불법 투기장을 지워버릴 수 있어요.”


불법 투기장의 존재 자체를 없앨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설진은 짐짓 걸음을 내디뎠다.

예상컨대 투기장이 시작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약 사흘.

그 시간 안에 모든 준비를 갖춰야 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닌 건물 자체를 붕괴시키는 게 목적이니만큼 챙길 것이 좀 있었다.


‘페이드가 있었더라면.’


게임할 당시, 설진 파티의 마법사였던 페이드를 떠올렸다.

마법사의 강력한 화력이라면 굳이 준비할 필요는 없을 텐데.


‘아니, 아니야. 없는 사람 생각하지 말자.’


생각을 멈춘 설진이 앞을 가리켰다.

상점가. 지금은 마법사가 없으니 없는 대로 진행해야 했다.


“폭발 관련 마도구를 구비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물론 플레임 왕국의 규제가 빡세져서 폭발물에 대한 조항이 엄격해졌지만, 아예 못 구하는 건 아닐 거에요.”

“그럼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그런 류의 마도구를 구하는 거야?”

“네.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시장에서 구해지지 않으면 뒷골목에서 구할 생각이에요. 가격이야 비싸겠지만 돈이 없진 않으니까요.”


플라임이 수주한 의뢰, 모험가 길드에서 받은 의뢰로 지갑 사정은 널널했다.

가격을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 해야 하는 건 폭발 마도구를 구하는 것.

오직 그것에만 집중할 차례였다.


설진과 시연은 나누어서 마도구를 구하기로 결정했다.

싸우는 것도 아니고 물건을 구하는 것인데, 같이 다니는 것보다 따로 다니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설진의 생각이었다.


어딘가 걱정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한 시연과 헤어지며 설진은 길을 나섰다.


‘괜찮아. 말하지 않고서도 살 방법은 있으니까···.’


스스로를 다독이듯 되뇌며 이동했다.

타인과의 대화를 싫어하는 것이지, 아예 못 하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사람이 거북하고 불편해도 최소한의 커뮤니케이션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저벅, 저벅.


주변을 둘러보며 걷던 도중, 커다란 건물이 하나 눈에 띄었다.

층이 나뉘어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큰 건물이었다.

간판을 보아하니 여러 물품을 취급하는 가게인 듯했다. 건물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그는, ‘잡화점’이라 쓰인 글씨를 보고서 안으로 들어갔다.


[1층, 생활용품 관련]

[2층, 마도구 용품 관련]


들어서자마자 비치된 판을 보고서 2층으로 향했다. 뚜벅-. 계단을 올라가는 제자신의 소리가 귓가를 윙윙 울렸다.


‘···후, 지금은 나 혼자지.’


다시금 그 사실을 자각하고서는 위로 올랐다.

나무로 이루어진 선반에는 다양한 마도구 용품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반란이 진압된 후 봤던 화염 결정부터 시작해, 다량의 물을 보관할 수 있는 푸른 색깔의 수정.


전투에 사용할 수 있는 물품도 꽤 있었다.

방어력을 올려주는 마도구와 정신력을 증가시켜주는 마도구.

대부분이 공격이 아닌 방어에 치중된 물건이었다.


공격적인 성향을 띤 마도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방어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기에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내부를 훑은 설진은 이곳에 온 목적인 폭발 관련 마도구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방어 관련이 아닌 공격 관련 마도구 위주로 찾기 시작했다.


‘이건 그냥 공격력을 올려 주는 마도구인데··· 저건 근력을 올려서 강격을 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고··· 폭발 관련 마도구는 없나?’


예상했던 일이긴 했지만, 원하는 것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얼마나 규제를 빡빡하게 받았으면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조금 과장해 방어 관련 마도구가 9할, 공격 관련 마도구가 1할을 차지하는 것 같았다. 그만큼 공격적인 성향을 띄는 마도구를 구하기란 어려웠다.


“야, 그거 들었어?”


한참을 둘러보던 설진의 귓가에 대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을 그때였다.

복장을 보니 마도구를 구비해두기 위해 온 모험가처럼 보였다.

남자 모험가 둘은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설진에게 모험가 개개인의 사정은 궁금하지 않았다.

지금 해야 할 것은 하나. 폭발 마도구를 찾는 것뿐이었다.


‘어?’


심혈을 기울여 살피던 설진은 이윽고 조건에 부합하는 것을 찾았는지 그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폭발 기능이 있는 마도구. 둥근 공처럼 생긴 물건을 집어들었다. 제품 앞에 놓인 종이에는 소규모 폭발이 일어난다는 설명이 있었다.


‘이거라면···.’


이곳에 마력을 더 불어넣으면 위협적으로 쓸 수 있는 건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거짓말하지 마. 설마, 그 사람이 죽을 리가 없잖아.”

“나도 알아! 그 사람이 얼마나 강한지! 그런데 내 친구가 들은 소식이라니까! 틀린 말 아니야! 이건, 정말로 큰 대사건이라고!”


대화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쿵쿵. 돌연 가슴이 뛰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알 수 있는 거라곤 하나.


“아무리 드래곤이라지만, S급 모험가인 그녀를 쉽게 죽일 수는 없어!”


지금 저들이 하고 있는 이야기는.


“린이라고! 무려 린! S급 모험가! 적어도 목숨은 부지했겠지!”


설진이 알고 있는 모험가의 이야기였다.


“아니, 아니라고. 린은, 이미 죽었어.”

“시체 있어? 시체는 발견했냐고!”

“아니, 그건 아닌데··· 드래곤의 둥지로 떠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잖아. 이것 자체가- 린이 죽었다는 증거 아니야?”


툭-.


선고하듯 이어지는 모험가의 말에 설진의 손이 멎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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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86화 22.02.26 545 6 12쪽
85 85화 22.02.26 538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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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83화 - end, Spreading yew(2) 22.02.21 532 5 12쪽
82 82화 - end, Spreading yew(1) 22.02.20 552 5 12쪽
81 81화 22.02.19 557 5 12쪽
80 80화 22.02.18 549 6 13쪽
79 79화 22.02.17 546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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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75화 22.02.11 592 5 12쪽
74 74화 22.02.10 600 6 14쪽
73 73화 22.02.07 583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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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71화 22.02.05 600 5 12쪽
70 70화 22.02.04 637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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