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어쩌다 이렇게 된 거냐고!*
일년에 딱 한 번 꽃은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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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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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만 해도 그를 동정하고 있었다. 나는. 하지만 내가 그런 것도 잠시였다. 갑작스레 난 그 짓을 멈추고자 결심했다.
지금 왠지 모르게 이 녀석의 눈빛이 불길함으로 빛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버렸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나에겐 ‘절친’이라는 그 단어가 있었고 그것이 날 조금 옭아맨 채로 ‘별일 없을 거라고. 괜찮을 거라고.’ 그런 묘한 메시지를 흘리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습관처럼 안일하게 ‘그렇겠지?’하고 더 믿어보기로 한 거였다.
“그럴 리가 있어? 아로? 전혀 괜찮지··· 않아. 난. 술 먹으면 다 잊혀질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막상 집에 돌아오면 난 또 그 여자얘길 해. 그때마다 어째서인지 넌 내 옆에 떡하니 있었어. 그건 단순한 호의란 거쯤은 알고 있다고. 같이 살다보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
그때 넌 술주정부리는 이런 내가 귀찮아서 호의로 그 손을 내밀어줬다는 것도 알아. 근데 왜 그게 ‘문제’가 되었을까? 나도 이런 나를··· 정말 요만큼도 이해할 수가 없어. 다른 녀석들도 내게 그것쯤은 한다고. 그런 거 해줘도 별 탈 없었어.
다들 이러니저러니 해도 술버릇 비슷하잖아? 먹고 토하고! 또 먹고 토하고! 쳇. 게임도 안 했는데. 단지 그런 거뿐인데. 어째서! 어쩌다! 난! 이렇게 되어버린 거야···? 야. 어디가? 지금?”
마티는 말하다말고 갑자기 내게 이렇게 되묻는다.
그 이유는 내가 맥주를 마시다말고 버터발린 오징어 다리 하나를 입에 문 채 그대로 몸을 일으켜 세웠기 때문인지도.
이런 거 너무 예민한 반응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님 말고.
“냉장고. 물 가져올까 해서. 너도 줄까? 너도 이참에 찬물 마시고 얼른 정신 차리는 게 낫겠지? ···왜? 우리 그냥 거실로 갈까? 난 소파 위에서 먹는 편이 훨 좋은데. 거기가 냉장고도 더 가깝고.”
내 말에 서서히 마티도 자기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자기가 몸소 냉장고에 가려나~ 했는데, 그건 아니었고, 갑자기 아까 자기가 꼭 쥐고 있던 이미 뭉개버린 빈 맥주 캔을 벽을 향해 냅다 거칠게 내던져버렸다.
바로 벽에 부딪히고 조금 바닥을 나뒹굴다 멈춰버린 그 구겨진 맥주 캔을 멀뚱히 보다가, 저 녀석 벌써 술이 취해버린 건 아닐 텐데. 무엇에 열이 받은 건지 잘 모르겠다만,
역시 지금 저 놈에겐 찬물 한 컵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그게 문제야? 아로···. 그딴 냉장고가 문제가 아니라고! 말해봐. 내가 이렇게 되어버린 ‘이유’에 대해서. 너라면 뭘 알고 있을 거 아니야? 너라면 알 거야. 어서 당장 말해달라고! 아로!! 어째서 날 이렇게 만들어버린 거야? 어째서야?
설마 네가··· 그 망할 ‘쥬디’인 거냐고? 쥬디면 쥬디답게 행동해! 얼른 ‘여자’로 변하라고! 변한 다음 나한테 무릎 꿇고 싹싹 빌란 말이야. 나 몰래 바람핀 거 진짜 미안했었다고 말하라고. 그럼 나도 눈 딱 감고 용서해줄게. 그 다음엔 더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마! 절대로다! 부탁해. 이제 나 같은 거 잊고 경쾌하게 극락왕생해달라고! 쥬디!”
난 괜히 여유로운 척 아까 물고 있던 버터발린 오징어 다리를 아직 입에서 놓아주지 않았고 내 다른 손에 들린 맥주 캔도 꼭 쥐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어느 샌가 서서히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던 그 마티 놈이 눈이 홱 돌아가 나를 한쪽 벽으로 급격히 밀어붙이던 것은, 그 탓에 내가 놀라서 맥주 캔을 놓쳐버렸고 그 탓에 그것은 이내 방바닥 위로 엎질러져 방바닥을 적시고 근처의 양말 신은 내 발까지도 축축이 적셔가고 있었다.
1/3쯤 남았을 아까운 내 맥주가 서서히 바닥을 물들여간다. 그것이 안타까워 쳐다보려 그쪽으로 눈을 돌리려다가 이내 난 포기한다.
그것보다 우선적으로 처리할 게 남아있음을 난 깨닫고 말았으니까.
“여자로 변하라니 뭐야. 그게? 난 나지. 쥬디가 아니라고. 그거 그냥 네 죄책감 아니야? 갑자기 바람난 거 들켜서 너희들 헤어진 거라면··· 순전히 네 미련이라고. 이제 그만 그녀를 보내줘. 그리고 나한테서 그녀를 보려고도 하지 마. 아~ 됐지?
그거···라면 그 전화도 메시지도 이해할 수 있어. 어서 떨쳐버리고 술이나 먹자고. 근데 아까 약 먹는다고 하지 않았어? 술은 이제 안 먹는 게 좋겠어. 나 혼자 먹을 테니까. 넌 찬물이나 한 잔 하고 와.”
지금도 한 템포씩 슬슬 이상해져가고 있는 이놈이 대체 어떤 짓을 하려는지, 약간은 그게 불안하고 불쾌해서는 순간 당황되기도 했고 이놈과 시선도 굳이 마주치는 걸 피하려 애쓰고 있는데다 진땀도 조금 나서는 어쩔 줄 몰랐던 아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마티가 비웃듯 웃어대며, 자신의 양손으로 아로의 사방을 막아오는 그런 ‘벽치기’를 벌이며 시선을 마주쳐갔다.
꽤나 사나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마티는,
“떨지 마. 나도 너랑 뭘 하려는 건 아니니까. 너도 알잖아. 나는 너와 동류. 남잔 질색이야. 그러니까 더 더욱 이상한 생각은 지워. 그거 아니니까. 오히려 너란 놈이 밤늦게 절대로 술 안 먹으니까 대리 운전시키려고 일부러 친해졌던 거지. 알겠어?
물론 그게 다는 아니지만···. 지금은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내 쪽이 곤란해. 어쨌든 웃기는 개소리지만. 그냥 넌 나와 같이 있어야 돼. 내 병이 전부 나을 때까지! 이렇게 된 데엔 순전히 네 책임인데다. 전부 네 책임으로 이뤄졌거든.
하여간 난 요즘 불안해서 견딜 수 없어! 네가 없으면 안 돼! 그렇다고 네가 좋다는 건 요만큼도 아니야! 넌 철저히 내 친구레벨이야. 근데 어째서 네가 없다고 생각하면 미쳐버릴 것만 같은지··· 그걸 나조차도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고!”
“그래. 참 이상한 병이네. 그거. 하지만 난 내 사생활이···. 어떻게 구한 알바인데. 내가 이사한 이유 몰라? 내 직장. 여기서 지하철로 한 시간 거리라고. 아- 물론 친구로서 널 돕지 않겠다는 게 아냐. 시간 널널한 다른 녀석 있잖아. 요즘 한가하다던 ‘동식’이 불러서···”
이미 벽치기 했던 자신의 오른손을 주먹으로 쥔 채 다시 한 번 더 벽을 쾅쾅 쳐대며 ‘주목’을 이끌던 마티는, 내 말이 듣고 싶지 않는 모양으로,
“내 말 잠자코 들으라고! 난 말이지. 예쁜 내 여자 친구 마가렛한테 쓸 시간을 너한테 쏟아 붓고 있다니! 이렇게나 비참할 수가 없다고. 그런데도 널 포기할 수가 없어. 이건 이미 내 ‘생존’과 직결되어 버렸다고! 난 그걸 알아버리고 말았지!
네가 옆에 없으면 난 너무 힘들단 소리야. 알아들어? 모르겠지. 당해본 자들만 아는 거라고! 그냥 넌 잠자코 이렇게 내 옆에 곱게만 있으라고. 그럼 난 안심할 수 있다고. 미래에 난 마가렛이랑 다시 만나고 금방 행복해지겠지. 얼른 이 병도 고쳐버릴 거니까. 너도 동참해 줘야한다고.”
“마티. 이제 그만해. 알았다고. 이제 알았어.”
일단 마티를 적당히 진정시킨 다음, 의사를 찾아볼 예정이었다.
지금 자신이 다니는 있는 그 W연예기획사 연줄이라면 이 방면에 빠삭한 정신과 의사 하나쯤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이런 일은 우선은 의사를 찾고, 치료가 안 된다면 그 다음은 용한 점쟁이라도 찾아가야하나? 잘 모르겠다.
“근데 넌! 일주일간 아무렇지도 않게 내 전화 까고 내 문자도 홀랑 씹어 먹었다고! 넌 날 절대 배반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아님 이거 튕기는 거야? 밀당해? 정말 닮았어. 네가 쥬디였어. 역시! 넌 살아서도 죽어서도 늘 날 배반해. 내 진심을 항상 몰라준다고.
비록 지금은 그 모습이라고 해도. 아~. 그럼. 사랑해주면 돌아올 거야? 나의 사랑스런 쥬디로? 그렇겠지? 응? 어디 노력해봐? 너도 이미 알다시피 난 노력형이래. 이 근육 만들 때 선생도 그랬지. 난 하면 다 해버리는 그런 인간이라고.
그 지긋지긋한 계란 흰자도 퍽퍽한 닭 가슴살도 모두 견뎠다고. 쥬디! 자아. 여자로 변신해! 근데 너 언제 변신해? 언제 변신할지도 모르는데. 지금 그 옷차림으론 조금 불편하겠지? 내 기억으로 그때 넌 D컵이었으니까. 불편할 거야. 당장 벗겨줘? 아님 네가··· 할래?”
친구에게 할 말이 절대로 아닌 쓰레기 같은 말들을 내게 조금씩 털어 넣고 있는 마티, 그런 추악한 그의 말들에 아로는 충격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한사코 그런 멘탈이었던 적이 없었으니까. 이런 상황이 굉장히 낯설었으니까.
헌데 그의 등 뒤쪽이 바로 벽이라 도망치지도 못한 채 그저 충격에 휩싸인 채 고개만을 가로젓던 아로, 그러다 다시금 정신을 차려 양손을 들어 마티의 양팔을 붙잡고는 밀어보려고 떨쳐내려고 애를 써보는 중이었다만 역시 좀처럼 꿈쩍도 하지 않으려 하는 마티였다.
그럼 소릴 칠 수밖에 없겠다 싶은 아로, 여기서 벗어나게 되면 나중엔 꼭 헬스장으로 달려가서 몸짱이 되기로 굳게 결심해보던 그였다.
그간 운동은 정말 싫다며 칭얼대던 자신을 남몰래 혐오해본다. 뮤직비디오를 보는 체력은 늘 만땅이어도 운동 체력은 젬병이었던 자신이었으니까.
“아니랬잖아! 마티! 난 쥬디가 아냐! 아냐! 똑바로 봐! 정신 차려! 드럽게 힘만 키워가지고는! 꺼져! 죽어버려! 이 신발끈아!”
울끈불끈 움직이는 구릿빛 근육을 한 마티의 팔에서 이젠 그의 손으로 그 굵은 실핏줄이 옮겨가며 힘을 전하고 있었고, 그것은 곧 마티의 양손가락으로 뻗어가 이내 과격한 힘으로 아로의 멱살을 꽉 부여잡았다.
흡! 읍!!
처음엔 가득 힘을 실었던 그것이 아로가 숨이 막혀 짐짓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자 다시금 힘을 죽여가고 있었고, 금세 돌변해버린 그리움 가득한 마티의 눈빛은 아로를 뚫어질 듯이 쳐다보며 맹렬히 안타까움을 덧그리고 있었다.
“정신 차릴 건 바로 너잖아! 쥬디! 그러고 보면 전부 너 때문이야. 내가 그렇게도 미웠어? 원래는 네가 더 나쁜 년인데. 내가 바빠도 비싼 백(bag) 많이 사줬잖아? 근데 넌 먹고 튀었지. 이 나쁜 년!
알아···. 그런 눈 하지 마. 마가렛도 그랬어. 날 이상하게 봤지. 딱 그런 눈을 하고 날 더는 이해해줄 수 없대. 그렇게 사랑하네 뭐네 난리부르스 떨 때는 언제고···. 이젠 사랑할 수가 없다니. 그 개소리. 너 때문에 들어야했다고! 쥬디! 그때 내 기분이 어땠을 거 같아?
아. 그거 굉장히 더러웠어. 전부 네 탓이잖아. 전부! 그러니까 네가 위로해줘야 해. 아로. 알면 어서 날 쓰다듬어! 당장! 그 손으로! 왜··· 그런 표정 짓는 거야? 무슨 상상 하지? 그런 너야말로 더 변태라고. 아무리 내가 잘 나가는 가수래도. 이 몸에 이 얼굴이라도. 망상 꺼.
이봐. 너. 어딜 어떻게 해야 하는 지는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잖아? 내가 술 취했을 때 네가 한없이 도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쓰다듬고 말았던 바로 거기라고! 거기! 너도 하고 싶어 미칠 것 같지? 응?”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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