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내 손을 놓지 말아줘. 부탁이야!
일년에 딱 한 번 꽃은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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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고 말해줘. 줄리앙.”
사랑? 그게 다 뭐야. 싫어해. 너 따위.
“사랑해. 사하라.”
생기를 잃어버린 줄리앙의 눈동자, 그리고 그 마음과 달리 입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이러니 더욱 마음이 부서져 내릴 것만 같은 줄리앙이었다.
쪽.
사하라는 그에게 평소처럼 가볍게 입을 맞추고 포옹을 했다.
줄리앙의 두 눈은 평소와 달리 최면에 걸린 듯 비틀대고 있었다.
“너는 내 것이야. 줄리앙.”
이때, 겉으론 미소 짓고 있는 줄리앙은 속으론 악몽 속을 누비고 있는 것처럼 끔찍이 여겨졌다.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는데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시작된 모든 일이라 줄리앙은 몹시 껄끄러웠다.
*
“여긴 대체 어디야.”
혼자만 이곳에 굉장히 위화감을 느끼고 있는 이, 애플티였다. 싸늘한 표정을 지은채로 주변을 다시금 둘러봤다. 그리고 자신의 기억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이곳을 더욱 자세히 바라봐주었다.
‘석양의 인간, 그 여자네 동네로군. 적지에 왔단 거군.’
원래 이렇게 가짜 기억을 진짜 기억인 채 간직한 채 이곳에 떨어지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인은 죄다 이상했다.
듀콜로이한 할배는 기획사 사장님을, 이데와 화화와 마린은 연습생을, 안형석 형은 팀장 매니저를 페이는 보조 매니저를, 후지야마 형은 스타일리스트를, 셀리 누나는 치료사 멘탈테라피 닥터를, 줄리앙은 자신과 같이 소속사 가수를 하고 있었다.
이 세계의 티비 속엔 사하라라는 가수가 늘 나오고 있었다. 어딜 틀어 봐도 그 모양이었다. 라디오를 틀어봐도 사하라가 부른 노랫소리만이 반복되어 흘러나오고 있었다. 건물밖에 내걸린 커다란 티비에도 사하라의 얼굴이 비쳐졌다.
*
“애플티. 여기 있었구나. 찾았는데.”
긴 머리를 휘날리며 가볍게 달려오고 있던 한 여자가 있었다.
“아, 존경하는 사하라님이 아니십니까. 왜 절 찾았을까요?”
자신의 머릿속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그것이라 이래 지껄이고 마는 애플티였다. 본심은 그것과 전혀 달랐지만 말이다. 이곳은 그녀의 세계였으니까.
“님이라고 붙이지마. 애플티. 어색하잖아. 그런 거. 우리 사이에.”
그러며 애플티의 어깨를 툭툭 건드린다. 이걸 애교어택이라고 해야 하나.
건들지 마. 불쾌해. 대체 우리가 어떤 사인데? 이 여자야?? 지금은 적당히 숨기는 게 낫겠어. 흠흠.
“사하라씨. 근데 저 분들은 누구죠?”
도무지 기억에 없는 건, 저 녀석들이었다. 총 5인으로 이곳을 주시하는 듯 주시하지 않는 듯 방어선을 그어놓는 녀석들, 괴물로봇이었다. 그건 일찍이 알고 있는 열성팬X긴 했다.
2.5미터나 되는 큰 키에 둥근 몸체와 둥근 머리에 붉게 번쩍대는 두 안구를 가진 웃고 있는 스마일맨, 머리와 몸통은 온통 철제로 되어 있었고 야광봉이 30여개 박혀 있으며 몸통중앙에 검은 구슬이 박혀 있었다. 양손은 방패와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왜 저것이 이곳에 있나 난감하던 참이었다. 그리고 무슨 이름으로 존재하는지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등등 알고 싶었다. 이 세상에서는!
“누구긴 이번에 새로 고용된 경호원 분들이지. 몰랐어? 티비에 나온 적도 있는데, 그 유명한 갤럭시 행성인들이시지.”
언제 지구가 인류가 다른 행성인과 접촉했을까나. 먼 미래의 일 아닐까나 그런 건.
“아아. 갤럭시 행성이라-. 깜박 잊고 있었어요. 그랬지요.”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정보로는 그런 것이리라, ‘정의의 편’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었다. 정말이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왜 저런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인간들 속을 걸어 다니고 있는가 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거 아니냐고 외치고 싶었다. 그리고 다른 인간들도 전혀 문제없다는 듯이 그들을 대하고 있었다.
“어이 자네 키가 크군 그래.”
“역시 정의의 편, 방패와 칼이 멋지구리하군. 아하하하.”
“이거 정말 로봇 같군. 온몸이 철처럼 강인해.”
그들 갤럭시 행성인들의 튼튼하기 짝이 없는 몸통을 양팔을 양손을 양다리 등등을 태평스럽게도 만지작대면서 말이다. 여차하면 인간이란 존재는 그들에 의해 한 순간에 박살나 죽어버릴 것을 일반인들은 알지 못했으니까.
사하라와 애플티의 관계를 주시하고 있던 갤럭시 행성 경호원들 즉 로봇괴물 열성팬X들은 그녀에게 종속되어 있는 듯 했다. 마치 그녀의 의지만으로 움직여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 정도였다.
“···것보다 애플티, 우리 차 한 잔 어때?”
“그러죠. 사하라씨.”
장소는 카페로 이동하고, 몸집 큰 열성팬X 다섯 중 둘이 함께 움직였다.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면서 애플티는 생각했다. 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하고 말이다.
“애플티, 있지. 요즘 녹음하고 있는 곡이 있는데 나랑 같이 부를래?”
“그거라면 곡에 따라 다릅니다만, 생각 좀 해볼게요. 사하라씨.”
“···그냥 누나라고 해주면 어때?”
“아니요. 우상에게 함부로 대할 순 없죠. 사하라씨.”
“애플티는 그런 거 너무 딱딱하게 군다니까. 친근하게 불러주면 좋을 텐데. 우리 이렇게 둘이서 만나고 있는 거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데이트(?) 하고 있다고 하지 않을까.”
“···글쎄요.”
안타까웠다. 너무나.
‘킨모드’는 어찌어찌 생각나는데 그 다음 ‘이름’이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무기인 그 ‘무엇’도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어떻게 싸웠는지도. 자신은 아무래도 이 세계에 다른 라스들과 마찬가지로 너무 동화가 된 것이 아닐까 여겨본다.
아쉽지만 그 덕에 눈앞의 열성팬X도 해치우지 못할 것 같았다. 이래선 자신은 일반인이나 마찬가지로 무용지물이었다.
후우.
고개를 숙인 채 한숨만 쉴 뿐이던 애플티, 그 모습에 왠지 모르겠으나 사하라는 욕심이 생겼다. 아마도 자신을 위해 고민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니 애플티가 너무 귀여워져 버렸으니 말이다.
실은 자신을 좋아하고 있으나 그걸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타입이란 게 세상엔 있으니까. 그게 애플티라고 가정해보니 점점 더 좋아졌던 거다.
그러고 보니 굳이 자신이 ‘누나’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해버렸다. 이렇게 ‘~씨’라 불리는 것이 한층 더 연인 같고 기분 좋을 수도 있겠다 싶었으니까. 그리고 줄리앙도 자신과 대등해지고 싶어 했었으니까.
“애플티. 천천히 라도 괜찮으니까 우리 둘만 있는 시간 있었으면 좋겠어.”
겉으론 미소뿐이라 사람을 오해하게 만들고 있는 애플티였으나, 이 기회에 사하라의 약점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니 그것도 나름 좋은 일인 듯했다.
“물론이죠. 사하라씨.”
“애플티는 잘 웃는 게 매력인거 같아. 다른 여자애들한테도 그러는 거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사람은 행복할 때 웃는 거잖아요? 그렇죠? 사하라씨?”
한층 더 살갑게 웃는 애플티를 보면서도 겉으론 꾸며진 듯한 미소를 단 사하라였으나 어려웠다. 실은. 애플티라는 녀석이. 그 녀석의 말이. 진심이.
“으응. 그렇지.”
속마음을 모른다는 건 어려웠다. 말은 번드르르해도 애플티는 어딘가 차갑게 비쳐지는 터라 또 다시 의심이 들고 만다.
제대로 사랑에 빠지고 있는 것임에도 서툴러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반론도 조금 들긴 했지만, 그래서인지 더욱 사랑으로 지배를 이끌어내고 싶은 사하라였다.
원래 사하라는 마음 따윈 없는 괴물이니까. 석양의 인간이니까. 그저 생각을 이리저리 하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싶은 쪽에 승부를 거는 것뿐이니까.
행복하다는 것도 잘 모르겠다. 나는 타인을 지배했을 때나 그저 좋았으니까.
그래서인지 애플티의 말도 잘 모르겠다. 마음은 늘 그렇듯 텅 비어 있었다.
*
약 10년 전 사하라는,
부모님과 여동생과 함께 떠났던 여름날의 여행에서 차 사고를 당했다.
모두 죽었다.
자신만이 살아남았다.
시신을 접했을 때 절망하긴 했다.
이젠 내가 집안일을 해야 했다. 이젠 내가 가장이 되어야했다. 보험금을 타면 그걸 어떻게 써야할지도 전부 내가 해야 했다.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저 원래 텅 비어있던 맘속이 여전히 텅 비어있다는 것을 인식하기는 했다.
“내 손을 놓지 말아줘. 부탁이야!”
하지만 절규해보긴 했다.
무서웠으니까. 주변엔 이런 나를 이상하게 볼지도 모르는 시선들이 아직 남아있었으니까.
이제야 눈물이 나왔다. 나만을 위한 눈물이 말이다.
흑흑.
주룩주룩.
이미 죽어버린 부모의 손을. 여동생의 손을 몇 번이고 힘 있게 부여잡으면서 더는 놓지 말아달라고 얼마나 빌었던가. 하지만 모두들 힘없이 그녀의 손을 힘없이 털썩 놓아버리고 말았다.
어차피 죽은 사람이기에 그것이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사하라는 이런 게 싫었다.
나는 나쁜 사람임이 틀림없다. 원래도 텅 비어있을 마음이 더욱 커다랗게 구멍이 나버리는 듯 했다.
왜 나만 이런 일을 당해야했을까.
그래. 뭔가 나쁜 짓을 하고 싶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날 우러러 보듯이 그들을 지배하고 싶었다.
지배하고 또 지배하고 더는 내 손을 놓지 못하도록 하고 싶었던 거였다.
-내 손을 놓지 마!-
*
잠시 후, 사하라는 셀리에게 줄 박스 두 개를 가져왔는데, 첫 번째 박스를 열자 그 안엔 미니 열성팬X의 부속품(프로모델?)과 접착제가 있었고 두 번째 박스를 열자 그건 마치 ‘라스’가 열심히 해치운 열성팬X의 여기저기 부서진 잔해들로 보이는 게 대다수 들어있었다.
사하라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두 번째 박스에 있던 ‘목’이 부서져나간 미니 열성팬X를 하나 집어서는 앞에 두고, 그 다음으로 첫 번째 박스에 있던 알맞은 부속품인 ‘머리’와 ‘목’을 챙겨 먼저 앞에 둔 목이 잘린 열성팬X에 목을 완전히 뜯어내고 새로운 머리와 목을 붙여 접착제를 발라 완전한 상태로 만들고는,
“이 모습이 원래 모습이에요. 모두 다 새것처럼 만들 수 있죠? 셀리라면.”
“네. 물론이죠.”
허나 사하라가 막 접착제를 발라 완성시킨 미니 열성팬X는 몸통 중앙에 있는 구슬이 흰색으로 그냥 멈춰진 프로모델에 불과했다.
“그럼. 맡길게요. 셀리.”
끄덕.
그러고는 셀리는 두 박스 안에서 새 부품과 망가진 미니 열성팬X를 하나씩 집어 들어 완성형을 만들어나갔다. 하나씩 만들 때마다 왠지 모르게 몸에 기운이 빠져나가는 듯 피곤해졌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할 수밖에 없었다.
근데 셀리는 사하라처럼 접착제가 필요하지 않았다.
다리가 잘려나간 열성팬X의 부서진 다리를 뽑아내고 새 다리를 끼워 넣자 그것은 당연스레 접착제가 발린 듯 저절로 잘 붙어버렸다. 그렇게 하나를 만들어내자 그 하나는 사하라 때와는 달리 마치 새로 되살아난 듯 움직여댔다.
그 미니 열성팬X는 몸통 중앙에 있는 구슬도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해버렸고 스스로 로봇 손가락을 꿈지럭대고 양발로 사뿐히 점프를 해보며 방패를 칼을 휘둘러보는 듯 생생함을 보여줬다. 그리고 붉은 빛을 번쩍이고 있는 두 눈도 나는 살아있다는 것을 외치고 있는 듯 보였다. 그 후론 그대로 멈춰서 있었다.
그 다음은 반복이었다. 새 부속품과 어울릴 망가진 미니 열성팬X을 찾아서 부품을 잘 연결해주는 것, 몸통 중앙의 구슬색이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제대로 움직여주는 것, 그리고 멈추는 것까지 보고 나면 또 새로운 완성인 것이다.
이것은 사람을 살리는 일처럼 그것이 비슷해보여서 계속 새로운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5개를 완성했을 때 너무 피로해져서 잠을 청하는 셀리였다.
“왜 이렇게까지 피곤하지?”
그 후로도 잠을 청하고 음식을 먹고 또 다시 틈이 나면 미니 열성팬X를 만드는 일을 해냈다.
하늘하늘.
헌데 셀리가 보지 못하고 있는 광경이 하나 있었다.
거기엔 셀리 외에 한 소녀가 있었던 거였다. 그 소녀가 새하얀 날개를 펄럭이자 하늘하늘 흰 깃털들이 공중을 나부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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