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난 넘버나인(NO.9)을 만난 적이 있어.*
일년에 딱 한 번 꽃은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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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리는 무의식중에 킨모드 상태로 천사 엘레나를 부른 거였다. 그리고 열성팬X들에게 생명력을 부여하기까지 했다. 그런 셀리를 소녀 천사 엘레나는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셀리. 눈을 떠. 제발.”
아무리 외쳐본들 셀리는 미니 열성팬X를 살리고만 있었다.
15기의 미니 열성팬X가 검은 구슬이 되어 그들 나름의 체력을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었다.
*
오후 5시 무렵, 멘탈테라피 치료원을 온 사하라,
“미니 갤럭시 행성인(=열성팬X)은 몇 개가 완성 됐죠? 셀리?”
“지금까지 15개 완성했어요. 사하라.”
“그럼 또 분발해줘요.”
“네.”
그리고는 15개의 미니 갤럭시 행성인을 자신이 가져온 박스에 얌전히 담아 가져가는 사하라였다.
딱 그 시간에 현실세계의 열성팬X 15기는 죽음에서 부활하고 있었다. 그리고 공작새 인간 사하라의 주변을 한층 더 강력하게 호위하고 있었다.
*
사하라의 전용 사무실 내 그녀가 책상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있었고, 그 양옆을 열성팬X 20명(왼쪽 10, 오른쪽 10)이 주르르 서 있었다. 곧 그녀의 음성이 터져 나온다.
“연습생. 이데. 용서 못해.”
그건 어제 오후 무렵이었다. 모두가 선호하는 자신이 굳이 춤 연습실에 들렀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다들 나를 환호해주느라 난리며 여기 내가 올 것을 미리 알고만 일부 팬심 깊은 연습생은 내게 굳이 꽃다발까지 주는 친절함을 베풀었다.
헌데, 난 결국 거기서 어마무시한 낙제생을 발견하였다. 비공식적이긴 하나 이런저런 내가 맘에 들지 않는 녀석을 돌돌만 신문지 뭉치로 ‘이게 아냐. 아니잖아. 전혀. 다 틀렸어.’라고 외쳐대며 손에 든 걸로 때려댈 수 없었다는 것으로, 사실상 괴롭힘을 받은 기분만이 들었다는 것이다. 민폐란 민폐는 죄다 이데가 주었다.
원래 이 회사 ‘연습생’이라면 죄다 안 매니저 오빠의 동의하에 캐스팅 되었다는 것일 터, 그 오빠가 뭔가 착각을 일으키진 않았을 거라 보는데, 어째서 ‘네 놈이 여기 있는 건데!’라고 외치고 싶어졌다.
춤도 어정쩡하게 추고 노래까지 변변찮았다. 이게 연습생에 뽑힐 정도의 춤인가 노래인가 싶을 정도로 어처구니없이 춤추고 있고 노래하고 있었다. 고급요리에 까나리액젓을 마구 붓는 듯한 부조화 및 음식 파괴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 놈은!
재능도 없는 주제에 가수의 길을 꾸역꾸역 계속 가려고 하다니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후으.
다시금 눈을 반짝이는 사하라가 입을 여는데,
“자아. 집중해. 갤럭시 1호. 이 녀석의 사진은 잘 찍었겠지?”
“우오.(네)”
처음으로 대사를 외친 듯 흥분한 갤럭시 1호였다.
“갤럭시 2호. 이 녀석이 자주 가는 루트는 파악했겠지?”
“우오.(네)”
“갤럭시 3호. 이 녀석은 한손 검과 이상한 장갑을 쓴다. 이 무기에 대한 대처방식은 있겠지?”
“우오.(네)”
“갤럭시 4호. 이 녀석을 불러낼 적당한 이유를 찾아.”
“우오.(네)”
“갤럭시 5호. 모든 오류를 수정해. 타겟을 헷갈리지 마. 닮은 녀석도 안 돼. 그 녀석이어야 해.”
“우오오.(네)”
“이번 건은 갤럭시 1호가 처리한다. 다들 정보를 교환하고 정리해서 갤럭시 1호에게 주도록. 그럼 해산.”
*
“줄리앙. 아니 ‘니켈라우스’라고 해야 할까.”
사하라는 왠지 모를 짜증나는 소릴 해댔다. 그 덕에 정신이 차려질락말락 애를 쓰게 된 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온 힘을 짜내어 발악했다. 이것으로 내가 ‘라스’란 것도 알아버렸다. 정신이 완전히 돌아왔다. 두 눈빛에도 생생함이 내비쳤다.
“아니야. 나는 줄리앙이야. 사하라.”
여긴 사하라의 사무실로, 갤럭시 행성인이 다섯 있었다. 그 녀석들을 눈여겨보면서 어떻게 하면 이곳에서 탈출할지를 생각하고 있던 그였다.
“알고 있어. 줄리앙. 모두 네 탓이라는 거.”
“무슨 소릴 하는 거지?”
왠지 모를 식은땀이 나는 것 같은 기분이던 줄리앙이었다. 왠지 모르게 자신은 긴장하고 있었다. 왜인지는 알지도 못한 체 기분이 썩 좋질 않았다.
“난 다 알고 있어. 오늘의 나도 모두 네 덕이었지. 난 말야. 평화롭게 살고 있었어. 너만 아니었다면 이런 황홀한 기분은 알 수 없었겠지만. 뭐 하여간 ‘감사’하고 있어. 네가 보낸 그 그림은 잠금장치를 한 휴대폰 그림 폴더에 고이 모셔져 있어.”
“아아 네가 ‘나쁘지 않다’고 했던 그 그림말이야? 그래서 우리는 헤어졌지. 난 앞에 나쁘다-란 게 달리는 말투를 제일 싫어했거든.”
“너 어째서··· 나의 세계 말고도 다른 세계의 기억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거지? 난 허락한 적 없는데.”
“모르겠는데. ‘킨모드’와 내가 한 세트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네. 원래대로라면 난 지금 감기환자 니켈라우스여야 하거든. 그렇지만 네가 나를 ‘줄리앙’이라고 인식하는 바람에 지금도 ‘줄리앙’인지도 모르겠어.”
“호오. 단순히 다중인격이 아니었나? 니켈라우스와의 관계가.”
“잘 알고 있지 않아? 이곳은 네 세계라고. 모든 게 보일 텐데 아니야?”
“물론 보이고말고.”
아니었다. 라스들이 사하라의 세계에 들어온 이후로 자신의 세계는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듯 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버그를 해결하기 위해 갤럭시 행성인들도 불러야했었다.
“···다른 그림도 보여줘. 줄리앙.”
“왜 하필 ‘그림’이 필요하지? 이해할 수 없는데. 사람들을 라스들을 죽이고 싶은 게 아니고 그림이 보고 싶어? 갖고 싶어?”
그랬다. 사하라는 줄리앙에게서 메일로 받은 그 그림을 본 순간 크나큰 해방감을 느꼈었다. 그럼에도 그 그림은 처음 봤을 때 구역질과 두통이 나고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이었으나 보면 볼수록 어느 세계의 파괴의 한 조각을 모자이크 풍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였고, 깊이 공감했고, 그렇다고 그것을 섣불리 굉장히 좋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도 선입견을 가진 타인에게 ‘전 살인이 좋아요. 아주 최고예요.’라고 할 수 없듯이 그 그림을 본 감상으로 ‘전 파괴가 더할 나위 없이 좋아요.’라고 할 수 없는 것과도 같았다.
그때 그것으로 줄리앙과 헤어진 건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그에게서 또 다른 그림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이유는 상관없잖아. 내놓으라면 내 놔.”
이마에 손을 잠시 집던 줄리앙은, 이걸 말해야할까 말아야할까 고민하던 그는 지금 결정했고 그걸 내뱉기로 했다.
“난 넘버나인(NO.9)을 만난 적이 있어. 그가 그랬지. 그림은 사람 한 명당 한 점이라고.”
“넘버나인? 누군데 그 사람은?”
“나랑 그림 취향이 같은 사람이지.”
그러며 의미모를 미소를 짓고 있던 줄리앙이었고, 그것이 몹시 수상쩍었던 사하라였다.
“좀 더 자세히 말해줄래? 줄리앙?”
“내가 순수하게 그 그림들을 좋아했기 때문에 내게 자신의 그림들을 맡겼을 뿐이야. 한때는 행성을 파괴했다나 그런 뻥을 치던 사람이기도 했지. 셀 수 없는 괴물들을 죽였다고도 했지. 푸른 소나무가 둘러싸인 팔각정에서 만난 사람이야. 새하얀 백발에 흰 수염을 길게 드리우고 있던 할배? 그에 대한 정보는 이 정도야.”
“너 이렇게 상세하게 말해줘도 돼? 넌 라스라며?”
“네가 물었으니까.”
“그래. 하긴 나의 세계니까. 너도 어쩔 수 없는 거군.”
사하라의 그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려던 줄리앙이었고,
“후우. 그런 거 아냐. 나도 누군가에겐 이야기해보고 싶었거든. 지금까지 말해도 될 사람이 없었어. 지금껏 전부 ‘그림’에 대해 좋은 소린 못 들었어. 그래서 그게 좀 외로웠거든.”
“···그랬구나.”
사하라의 깊은 수긍의 눈빛을 보고 있는 바로 그 순간, 줄리앙의 양손은 흰빛을 내며 무지갯빛 은빛 나는 잉어비늘 같은 표면의 특수 장갑으로 순식간에 바뀌고 눈앞의 사하라 목을 가볍게 손날로 베었다.
피슛.
허나 그것에선 불투명한 갈색 피가 솟아나왔다. 그리고 쓰러진 사하라는 아니 사하라 옷을 입은 누군가는 희고 검은 뭉게구름에 휩싸이더니 갤럭시 행성인(=열성팬X)으로 변했다.
어느 샌가 포위당하고 있었던 거다. 갤럭시 행성인 다섯, 아니 이젠 넷에게.
“언제 바꿨을까? 줄리앙?”
그의 뒤통수에서 들리는 사하라의 목소리였다. 민첩한 동작으로 이번엔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줄리앙은 움직였고 그의 한 손은 사하라의 심장을 꿰뚫었다.
피슉.
“그것도 나 아닌데.”
또다. 앞이랑 똑같다. 이번에도 갤럭시 행성인이었던 것으로, 이제 셋에 사하라 1명인가.
‘근데 어째서 다 함께 나를 노리지 않는 걸까? 그렇군 이렇게 바꿔치기를 할 땐 그게 불가능하구나. 그렇게 되면 이젠 아무거나 하나 찍어서 죽이면 되겠구나.’
“왜 그래? 긴장을 다 하고? 니켈라우스.”
사하라의 목소리에 대답은 없이 줄리앙은 ‘사하라’를 치지 않고 등 뒤 벽 근처에 있던 갤럭시 행성인을 냅다 잡아다가 칼을 빼앗고 그 칼을 죽음으로 되돌려주며 벽을 향해 내던졌다. 그와 동시에 커다랗게 벽 콘크리트가 부서져내려 구멍이 커다랗게 뚫려버렸다.
“칫. 또 틀렸나.”
이제 사하라 1명에 갤럭시 행성인 둘 남았다.
둥둥둥.
갑자기 땅의 울림이 점점 크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건 뭔가 육중한 것들이 이쪽으로 움직이려 하고 있다는 의미였고, 내가 만약 사하라였다면 이라고 생각하자 바로 정답이 나왔던 줄리앙,
‘복도에도 쫙 깔렸겠군. 몇 명인진 모르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줄리앙은 갤럭시 행성인 둘의 움직임을 피해내고 가짜 사하라에게서도 벗어나기로 했다. 서둘러 사무실 오른쪽 옆 벽면을 주먹으로 크게 때렸다. 그러자 곧 한 사람 지나갈만한 크기의 구멍이 났고 그 안으로 피신했다.
퍽.
이런 식으로 다시 또 다른 사무실로 또 다른 옆 벽면을 때려 부수면서 그들에게서 벗어나 탈출하고 있던 줄리앙이었다.
퍽. 퍽. 퍽.
지금 막 복도와 연결된 뚫린 ‘벽면’을 통해 갤럭시 행성인들 15명이 쫘라라 들어와 사하라와 갤럭시 행성인 2명과 합류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무실 안에 있었던 사하라는 갑작스레 희고 검은 뭉게구름에 휩싸이더니 갤럭시 행성인으로 변해버렸다.
진짜 사하라는 어디로 갔을까? 그건 바로 복도 쪽에서 벽면으로 들어오는 갤럭시 행성인들 15명 중 하나가 희고 검은 뭉게구름에 휩싸이더니 진짜 사하라로 변신해버렸다.
*
외국산 술병과 술안주와 노래방기기와 푹신한 VIP 소파들. 그리고 예쁘장하고 착한 아가씨들. 술잔에 술을 기울이는 사람들. 술잔을 마주치는 사람들. 여자에게 반해 눈이 헤롱헤롱하는 아저씨들 셋과 눈빛이 말짱하기 그지없는 아저씨(?) 1인이 있었고, 그 1인은,
“자아. 한 잔씩 더 걸치시죠. 아가씨 술 좀 따라봐.”
명령하는 이가 바로 70대 듀콜로이한 W기획사 사장이었다. 고로 주변 아저씨 셋은 죄다 스폰서란 말이었다.
주로 관심사는 요즘 인기가수 사하라양에 대한 일이었는데, 아저씨 셋은 누가 먼저 사하라양의 재능을 알아봤는지 서로 따지고 있었다. 스폰서 셋은 aa전자, vv그룹, pp보험으로 대한민국에서 손으로 꼽을 정도로 알려진 회사의 주요 인사들이었다.
그 중 vv그룹이 첫 CF를 사하라양에게 찍게 했다는 것으로 승리자가 되었다.
듀콜로이한은 어쩔 때는 아부와 칭찬을 번갈아가며 해대느라 피곤할 지경이 되었다. 아이돌 여성 그룹 노래도 부르며 아양을 떨어댔다. 벌써 몇 번이나 화를 벌컥 낼 뻔했던가. 그럼에도 잘 구겨 넣은 화를 술로 꿀꺽 삼켜냈기에 지금에 이르게 된 거였다.
그렇게 거의 술자리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돈 이야기가 오고 가게 되었다.
“듀콜로이한 사장님. 돈은 늘 그렇듯 전에 말했던 그 계좌로 넘겨드릴까요?”
“아. 장 이사님. 네. 계좌라면 그··· 계좌. 아니라. 제가 직접 찍어드리겠습니다.”
지금껏 봐왔던 어떤 모습보다도 활기를 띄우고 있는 듀콜로이한의 빠른 손놀림의 번호 찍기였다.
그랬다. 그는 갑작스레 시야가 넓어지더니 머릿속으로 ‘라스전용계좌’가 단박에 떠오른 것이었다. 이번에 보낼 돈 10억(1인당)은 다 그쪽으로 가는 거였다. 이걸로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라스임을. 이 세계는 사하라의 세계였음을 말이다.
“박 회장님. 최 부장님도 어서 핸드폰을 주세요. 자아. 찍어드리겠습니다.”
띡띠리 띡띠. 띠리띠리.
백발할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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