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넌 지금 라스야?
일년에 딱 한 번 꽃은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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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빵! 빵!
두 번째 진짜 총알은 미라의 왼쪽 귀 옆 짧은 단발과 그 여백 사이를 훑고 지나갔고 세 번째 진짜 총알은 미라의 목과 어깨 주변을 쓸고 지나갔고 네 번째 진짜 총알은 미라의 오른쪽 다리를 스쳐지나갔다. 일부러 다 그런 거였다. 무서워하라고.
빵!
그리고 다섯 번째 총알은 미라의 이마 정중앙에 팍 하고 페인트탄을 터뜨렸다. 그것에 미라는 숨이 턱 막혀왔고 덜덜 몸이 떨려오는 통에 그 즉시 무릎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더는 아무 말도 못하고 후지야마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고개마저 푹 숙였다. 그리고 눈물을 마구 흘렸다.
주룩. 주룩.
“미, 미안해요. 자, 잘못했어요. 제가 다, 다 잘못했어요.”
드디어 사과를 받게 된 후지야마였으나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가죠. 듀콜로이한님.”
총을 쏘면서 자존감을 자신감을 죄다 회복한 후지야마, 자신이 라스라는 사실이 즐겁기까지 했다.
이젠 사하라도 죽일 수 있을 테니까.
얼마나 어리석게도 사하라 눈치를 봤던가. 더는 자신의 신성한 직업 스타일리스트로서 살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얼마나 무서웠던가.
뭐 지금은 그런 생각 눈곱만치도 안 해도 되지만 말이다.
따르르르릉.
전화가 와서 그걸 받은 후지야마,
“아. 형석이형”
“지금 누구랑 같이 있어?”
“듀콜로이한님과 같이 있습니다만. 왜요?”
“넌 지금 라스야?”
“물론이죠.”
“다행이다. 그럼 내가 갈 테니까 거기 장소 사진 찍어서 보내줘.”
“알았어요. 형석이형.”
*
하아. 하아. 하아.
숨이 너무 찼다. 둘 사이의 거리는 달려도 달려도 좁혀지고만 있지 멀어지지 않는다.
‘정의의 편 아니었냐고. 당신들. 대체 이게 뭐냐고.’
2.5미터 키의 갤럭스 행성인들은 정의의 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랬는데 지금은 배신당한 기분이 들었다. 두 명의 갤럭시 행성인들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앞 다투어 자신을 쫓아오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칼을 방패를 들고 오고 있는 거였다.
조금 전 어느 대형 백화점 건물에 들어갔다. 5층 옷 가게에서 츄리링 복을 새로 사고 있었다. 탈의실에서 그 옷을 갈아입어보니 딱 맞아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거기서 갑자기 비명이 들리는 게 아닌가.
“살려주··· 갤럭···!”
꺄아아악!
그게 목소리톤은 그다지 좋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조금은 친절했던 점원의 목소리가 비명으로 돌아왔다. 나는 츄리링 차림으로 나갈 기회를 살폈다. 주변에 걸려있던 옷들이 걸이대 통째로 옆으로 무너져 내리는 소리도 들린다. 옷들이 공중을 높이 날았다가 하늘하늘 추락하고 있었다.
‘에잇. 모르겠다. 나가보자.’
나가다가 피의 웅덩이를 밟아버렸고 아까 그 점원이 허리가 잘린 채로 죽어버린 것도 봐버렸다. 너무도 잔혹한 장면이었다. 내가 그리 될까봐 몸이 덜덜 떨려왔다.
우우욱.
구토감이 밀려왔지만 그러고 있을 틈이 없었다. 지금은 옷 무더기 나무박스 옆에 숨어서 숨죽인 채 있었지만 이것도 언제 들킬지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곧 둥둥둥 하는 진동음이 이곳에서 멀어져가고 있었다.
그 틈에 조금씩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향해 슬금슬금 몸을 반쯤 웅크린 채 움직이고 있던 화화였다.
*
“형석이형. 화화는 지금 어디 있어요?”
이데는 다급히 물었다. 근처에 있지 않았던 화화라 셀리의 ‘천사의 카나리아’도 아직 보내지 못했다.
“GPS에 따르면 잘살아백화점에 있는데. 여기서 10분 거리야.”
“날아갈게요. ‘비행’스크롤 한 장 만들어주세요.”
“그 백화점 사진이 웹상에 있으니까 ‘공간이동’ 스크롤을 만들게.”
형석은 이도령에게 백화점 사진을 검색해 보여주더니 그 후엔 작은 수첩을 꺼내 붓펜으로 ‘공간이동 잘살아백화점 2층 우동 시식코너.’라고 적었다. 그걸 보고 있던 이도령도 한지와 붓을 꺼내 똑같은 것을 빠르게 휘갈기고 있었다.
“나도 같이 가. 이데. 둘이 가는 게 나아.”
라고 줄리앙이 외쳤다. 그러자 형석은 앞서 적은 수첩의 종이에 ‘2인’을 덧붙인다. 그러자 이도령도 그것을 따라 한지에 ‘2인’이라고 덧붙여 적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름을 서명(2인 이상일 때부터 서명함.)하였다.
화아아.
이도령의 손에서 은은한 흰빛을 뿜던 그 한지를 형석이 받아서 이데와 줄리앙에게 건네줬다. 그걸 그 둘이 함께 찢어내면서 둘은 함께 똑같이 외쳤다.
“공간이동!”× 2
그 후 새하얀 빛이 되더니 둘은 사라졌고 다시 나타난 곳은 잘살아백화점 2층 우동 시식코너 앞이었다. 그 덕에 거기서 우동 시식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적잖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먹던 것을 관두고는 서로 작게 중얼거렸다.
“사람이. 세, 세상에. 갑, 갑자기 나타나다니.”
“장, 장난 아냐. 진짜로 갑자기 이동했어. 공간이동이다. 마법이다.”
“심지어 젊어. 마법사다. 믿을 수 없어.”
*
점원 1명이 사망했다는 그 소문이 벌써 퍼진 것인지 사람들도 갤럭시 행성인을 피하느라 바쁜 모습이었는데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사람들은 핸드폰에 온 멀티메시지를 똑같은 모습으로 다 같이 주시하더니 그때부터 ‘화화’를 꼭 집어서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 멀티메시지엔 ‘화화의 얼굴’사진과 문자메시지는 ‘정의의 편에게 천벌을 받을 사람’이라고 적혀 있었다.
“여기 있어요! 갤럭시 행성인. 당신이 찾는 사람.”
이라고 외치고 있는 사람도 등장해버렸다.
그러다 어찌어찌 지금은 갤럭시 행성인 2명에게 마구 쫓기고 있는 와중이었다. 이제 둘 사이의 거리는 15미터다. 이젠 그 많던 사람들도 어디 도망가고 없어서 텅 빈 구두 매장(3층)이었다.
화화는 지금 3층에서 1층을 향해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아니 그곳에서도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있는 힘껏 달리고 달렸던 거다.
헉. 헉. 헉.
*
“저기 있네. 네가 찾던 ‘화화’.”
줄리앙이 눈썰미 좋게 화화가 어디 있는지 먼저 알아채고는 이데를 뒤로 하고 달려 나간다.
“어디? 앗! 화화!”
조금 늦게 알아차린 이데도 자신이 있는 곳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면서 진열대도 훌쩍 몇 번이나 점프하는 동시에 계속 “화화!”를 쩌렁쩌렁하게 몇 번이고 외쳐댔다. 아무런 얼굴표정의 변화 없이 그저 진지하게 외쳐대는 그런 모습을 줄리앙은 이해할 수 없었기에 이리 말해본다.
“안 쪽팔려? 이데?”
돌아온 이데의 대답은 간결했지만 강렬했다.
“응!”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줄리앙은 양손에 흰빛을 품고 은빛 무지갯빛 특수 장갑을 덧씌웠다. 그건 달려 나가던 이데도 마찬가지였다. 검은색으로 빛나는 특수 장갑에 거기에 단검 다섯 개도 소환해낸다. 서둘러 단검을 갤럭시 행성인 둘을 향해 내던진다.
휘릭. 휙. 휙. 휙. 휙.
갤럭시 행성인 둘의 몸통에 각각 단검 두 개와 단검 세 개씩 맞추었으나 그건 잠시 시선을 끄는 것에 불과했고 여전히 무기 하나 없는 화화를 향해 묵묵히 다가서는 그들이었다.
파사삭.
귀금속 코너 쪽에 있던 화화 앞에서 칼을 휘두르는 통에 그 칼을 피하자 자동차 유리가 깨진 듯한 작은 네모 알갱이 유리파편이 이리저리 튀던 중이었다. 그와 동시에 진열대에 있는 귀걸이와 목걸이가 반지가 공중을 날았다가 중력의 법칙에 따라 떨어지고 다시 튕겨나가고 있었다.
그 모습에 놀란 이데가 한손 검을 소환해내고 그걸 들고 푸른 오라를 일으킨 뒤 그걸 녀석들에게 냅다 던졌다. 거리는 10여 미터. 그것으로 갤럭시 행성인 1명의 팔이 절단되어버렸다. 그것에 화가 난 것인지 화화를 쫓던 두 녀석 중 하나를 이데 자신 쪽으로 유인해낼 수가 있었다.
“이 녀석 죽어라!!”
또 한손 검을 소환해낸 이데는 거칠게 냅다 달려서 갤럭시 행성인 1명의 나머지 팔도 다리도 잘라주었다. 평소보다 더 신속한 동작이 되어버렸다고나 할지. 화화가 그 목표가 되어서인지 앞뒤 가리지 않고 싸워버릴 수 있었던 거다. 마지막으로 몸통이 썰린 갤럭시 행성인 1인은 갈색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한편 화화는 댄스를 배우길 잘했다며 여러 회피동작을 유연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겁이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도 한편으론 ‘다행’이란 기분이었다.
자신과 같은 연습생 이데가 도와주자 무척 고마웠다. 줄리앙이란 가수도 이곳에 와서 네모나고 각진 진열대 일부를 뜯어내서(인간이 그게 가능한가 싶은~ 초능력?) 자신을 쫓아왔던 갤럭시 행성인 둘 중 1명을 향해 내던져 주어서 정말로 감사했다.
그렇게 시간을 벌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차, 왠 흰 새가 카나리아가 어깨에 동화처럼 내려앉아서 이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예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짹짹. 째재잭.
그러자 정신이 더욱 또렷해지고 뭔가를 알게 되었을 땐 카나리아가 완전히 사라지고 난 뒤였다. 그렇다. 뭔가를, 자신이 라스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거다.
“다들 고마워요! 이데씨. 줄리앙씨.”
그러며 화화는 손안에서 2미터 크기의 대검을 흰빛을 일렁거리며 만들어내고는 줄리앙에 의해 진열대 박스를 맞고서 휘청대던 눈앞의 갤럭시 행성인을 향해 힘차게 나아갔다. 그리고 힘껏 휘둘렀다.
서걱.
단숨에 절반의 몸뚱이가 떨어져 나가고 불투명한 갈색 액체가 쏟아져 내렸다.
“화화. 이제 돌아왔구나!”
이데가 제멋대로 크게 감명 받은 듯한 표정을 화화를 향해 짓고 있었고, 화화는 수줍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네.”
헌데 주변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심해진 것을 느낀 것은 줄리앙뿐만이 아니었다. 이데도 화화도 주변 사람들을 쳐다보았고 쉬쉬하면서도 그들의 눈빛이 그리 곱지 않다는 것은 확실히 깨닫고 있었다.
“맙소사! 저, 저 사람들. 살인범이야.”
이 ‘사하라의 세상’에서 이미 공개수배가 된 이데와 줄리앙이었고 그걸 알아챈 듯 사람들은 웅성거린 거였다. 그리고 서둘러 경찰에게 전화를 거는 사람도 있었다.
“저기 경찰서죠? 여기 살인범들이 있어요! 빨리 와주세요!”
그때 2층에서 1층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층에 내려온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마린, 형석, 셀리, 페이, 애플티, 듀콜로이한, 후지야마였다.
후지야마에게서 얻은 장소사진으로 공간이동스크롤을 써서 듀콜로이한님쪽으로 간 형석은 그 둘과 함께 햇살까페로 돌아왔고 다 같이 모여서 다시 공간이동스크롤을 써서 잘살아백화점으로 오게 된 거였다.
공개수배가 된 이데와 줄리앙 말고도 형석과 셀리와 마린을 발견한 사람들이 또 수군대기 시작했다.
“저쪽에도 살인범들이 있어! 위험해. 다들 피해야해!”
여기서 빠져나가려고 도망을 치는 사람도 사진을 찍는 사람도 어딘가에 전화를 거는 사람도 있었다.
“경찰은 언제 오는 거야. 대체.”
라며 진정으로 살인범들이 무서워서 어쩔 줄 모르는 한 아저씨가 있었다.
이때, 백화점 전광판 거대 티비 화면에는 또 공개수배 명단이 추가되어 다시 사람들이 열거되어 있었다. 줄리앙, 이데, 형석, 셀리, 마린, 화화, 애플티, 페이, 듀콜로이한, 후지야마 까지 10명 전원이 살인범이란 명목으로 티비 화면을 뜨겁게 만들었다.
“살인범인데 왜 저렇게 이쁜데? 이쁘면 어떡하냐고!”
라며 화화와 셀리 등을 보며 자기 취향임을 어필하고 있는 남자도 있었으며,
“내가 할 소리야. 살인범이라며! 근데 저기 저 남자들 진짜 잘생겼다!”
라며 줄리앙과 애플티와 후지야마 등등을 보며 쑥덕거리고 있는 여자도 있었다.
이하, 맞장구를 치며 동의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음흉한 눈길을 보내는 남자들 및 여자들이 있었던 거다.
그 사이 순찰차 한 대와 경찰버스 두 대가 왔다. 순찰차에선 방탄조끼를 착용하고 권총을 든 4인의 경찰이 내렸고 경찰버스 두 대에선 한 손에는 총을 다른 한 손에는 검은 방패를 든 무장경찰 60명이 내렸다.
“두 손을 들고 항복하라. 그렇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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