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싱숭생숭과 여긴 어디?
일년에 딱 한 번 꽃은 핀다.
꿈을 꾸었다-가 아니라, 나는 이미 ‘꿈’속에 있었다.
현실에서 나는 ‘지구’라는 행성에 사는 인간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와 동생 하나까지 그렇게 넷이서 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나는 분명 내가 잘 아는 내가 살던 그 집에서 눈을 막 떴다. 그렇다고 베개를 착실히 베고 있었다거나 이불을 걷어차면서 막 잠에서 깼다는 말이 아니라, 그저 눈을 뜨니 우리 집이었단 거다. 보통 그런 게 꿈이니까.
그런데 어째서일까?
금방 잠에서 깨어난 듯이 현실과 똑같은 집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는 것에 살짝 놀란 난, 역시 이건 현실이 아닐까도 생각해봤지만 역시 내가 아는 현실과는 상당히 다르다고 판단되는 이런저런 점을 들며 애써 꿈이라 정정하고 있었다.
그래. 꿈이니까, 난 아무도 없는 집에 나 홀로 덩그러니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날’은 극히 드물었다.
아무리 곤히 자고 있더라도, 이 집의 누군가가 어딜 나간다고 한다면 날 깨우고야 말았을 거다. 그것도 아니면 내 핸드폰으로 ‘문자’왔다고 외쳐대는 벨이나 전화벨이 울렸을 텐데 역시 그 조차도 없었다.
뭐, 핸드폰이 통째로 없다는 점에서 역시 꿈이 맞는 거다.
벨이 울린다면 바로 반응하던 예민한 나였으니까. 그런 사소한 부분을 놓칠 리가 없다.
혹여나 오늘이 ‘휴일’이라 가족들이 모두 없는 거라면 그것조차도 이상한 점이다.
단체로 어딘가 떠났다면 그런 연락을 해왔을 게 분명하니까.
식탁에 식사는 어떻게 먹을 건지 어떻게 하라든지 간단한 쪽지조차 없다는 것도 이곳이 꿈임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왜 이리도 마음이 싱숭생숭한 것일까?
만약 오늘이 휴일이라면 꼭 인터넷게임을 한다며 집안 한 구석 컴퓨터 앞에서 마우스로 총질을 하고 있을 게 분명할 그런 동생도 있을 테지만, 그 인터넷 게임 상의 총질소리와 게임 속 반복적으로 울려대는 그 멜로디조차도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는다.
휴일엔 특히나 더욱 맛있는 요리를 하시느라 바쁜 엄마가 있는 그 부엌에선 늘 도마 위에서 뭔가 딱딱한 것이 두들겨지고 부드러운 것이 가볍게 썰려나가는 그 싹싹한 소리가 향기롭게 들려오곤 했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게다가 휴일조차도 굵직한 아빠의 음성이 전화기 사이를 넘나들며 무역상 일로 각종 바이어들을 상대하는 그런 잡담과 농담과 사업적 일이 얽힌 말소리가 흩어져 나가고 있었어야 했는데, 없···다. 정말로.
지금 이곳엔 나 홀로, 삭막하게 있는 거였다.
그런 장면이 당연하게 펼쳐지고 있는 ‘꿈’임에도 왠지 가족이 그리워졌다. 입을 열어 그들을 찾았다.
“아빠! 엄마! 어이 동생?! 아무도··· 없어? 정말 없는 거야?”
그간의 꿈속에선 무슨 말을 생각대로 할 수 있었던가? 하고 있었나? 그저 풍경을 본다던가 알아서 흐름에 내맡겨지곤 했던 거 아니었나? 잘은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 꾸고 있는 이 꿈속에서는 당연한 듯이 내 의지대로 내 생각대로 뭔가를 말할 수 있었다. 이런 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이런 사소한 것쯤이야 꿈이겠거니 하고 한껏 방심하고 흘려버리던 나였다.
괜히 꿈이다 현실이다 이리저리 따지는 일은 머릿속만 귀찮고 복잡해질 거 같아 그만두기로 한다.
지금은 비록 이렇게나 마치 현실마냥 실감나게 꾸고 있지만, 꿈에서 깬 순간의 그 ‘현실’에선 또 흐릿하게 얼마 기억하지도 못할 게 분명할 일이니까.
어쩌면 나는 이곳이 삭막하다고 느낀 이유가 사람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서 그리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런 광경을 평온함 그 자체라는 믿는 그 누군가의 ‘혼자만의 고요하고도 느긋한 자유’라는 것과는 전혀 관련사항이 없어놔서 그리 느껴버리는 건지도 모른다.
혼자이기에 이런 쓸데없는 망상도 벌이는 것일 터다. 그냥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그냥 그리 쉽사리 생각해버리기엔 꿈치곤 이런 집 풍경이란 것이···. 하지만 그러니까. 이런저런 의심의 씨앗이 맘속을 어지럽히며 싹을 틔운다.
“으- 못 참겠다!”
이런저런 생각 말고 어서 결정을 해야겠다. 홀로 이런 곳에 있으니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우리 집이 분명함에도 이상한 꿈속이라서인지, 조금 이곳에 머무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마이너스로 치닫고 온몸에 당장이라도 기운이 죄다 빨려버릴 듯한 그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스스로 자멸해버릴 것만 같은 절망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엄습해 와서는, 나를 무형의 손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가라 가~ 휙휙 하면서.
“아. 왜지? 왜 우리 집인데 그냥 편히 있을 수 없는 거지? 기분 정말 별로야. 별로라고.”
나는 꿈속에 있음에도 현실과 비교해서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서 괜히 초조한 듯 짧게 잘려진 앞머리를 쓸어 올리듯이 만지작대다가 갑작스레 쿡쿡 쑤셔오기 시작하는 관자놀이 및 이마 등등을 지압해보며,
“내가 왜 이런담?”
···?
그 순간, 갑작스레 내가 바라보고 있던 집 천장이 슬그머니 휘어져 내려오는 듯한 느낌으로 비틀려버리다가 이내 다시금 정상으로 되돌아온다.
잘못 본 것이 아니다. 절대로 착각이 아니다.
그 때문인지 순간적으로 두려움이 확 몰려오고 소름이 확 끼친다. 온몸이 털이 다 곤두서는 기분이 든다. 역시 이 집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불길한 꿈이라면 내 쪽에서 거절해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원래 난 단순해서 어지간해서는 해피 만발 천국이던 꿈속이건만, 오늘은 너무도 최악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나가야지. 어서.’
서둘러 밖으로 나가려고 하다 보니 왠지 밖의 계절감은 가을일 것 같았고, 곧 내 방으로 가서 옷걸이에 걸린 베이지색 가디건을 꺼내와 그대로 양팔을 끼워 넣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미 입고 있었던 이 옷은, 검붉은 계열 자줏빛 티셔츠에 쫙 달라붙는 검은 바지로 꽤 눈에 익은 옷으로, 평소의 현실에서 즐겨 입었던 옷이었다. 참 신기했다.
부랴부랴 내 방을 통과하고 거실을 순식간에 통과해버린다.
곧 왠지 어둑해보이고도 외롭고 조용하고 삭막한 이 공간에서 빠져나오려고 현관문의 안전장치를 해지하고 활짝 열었다.
물론, 그 전에 난 양말까지 신은 발을 보며 이게 뭔가~ 할 여지도 없이 기계적으로 재빨리 운동화를 신은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헌데, 지금 막 현관문을 활짝 열어젖혔을 때, 당연히 보여야할 복도와 엘리베이터 구역과 계단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었다.
“뭐- 뭐냐. 여긴!”
아니다! 왜 또 나는 현실과 꿈을 비교했던 것인지. 이제 슬슬 정신을 차려야 했다. 이곳은 꿈이니까 가능한 이야기란 소리다.
볼을 슬쩍 긁적대다가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는, 현관문을 열고는 닫을 생각도 없이 바로 보이는 기나긴 오솔길로 발을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천천히 내민다.
그렇게 몇 발자국을···,
대충 다섯 발자국 정도 걸어 나갔을 때였나?
끼이익. 탁.
등 뒤로 현관문이 저절로 닫히는 소리가 심장이 철렁할 정도로 선명히 들려온다.
그것 때문일까? 왠지 고개를 돌리기가 싫지만, 확인을 할 겸 궁금증에 그만 돌아보고야 만다.
아! 이미 거기엔 현관문이 사라지고 없었다!
싸아아-.
갑작스레 투명한 공기마저 차갑게 단숨에 얼어붙어버리는 듯한 요란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온 것만 같은 감각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사라진 현관문을 대신해 엷게 낀 희뿌연 안개가 군데군데 펼쳐져 있어서, 그 거리조차 얼마나 될는지 전혀 알 수 없을 것만 같이 까마득히 깊게 이어져 나간 어느 오솔길이 펼쳐져 있었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처음 보았던 그 오솔길과 뭔가가 닮아 보이긴 해도 전혀 다른 그 분위기를 풍기던 그 모습, 칠흑같이 그 속내를 알 수 없이 펼쳐지는 그 싸늘한 모습에 움찔 떨며 나는 당~연히 현관문을 열고 처음 본 그쪽 일직선에 안개가 안 낀 오솔길로 방향을 틀었다.
반짝.
기나긴 오솔길이 펼쳐진 그 길 위로 ‘달빛’이 총총하게 떠 있었다.
지금은 평소라면 벌써 잠에 빠져도 한참을 쿨쿨대고 있을 그런 새벽에 살그머니 발이 걸쳐져 있는 그런 한밤중의 시간이었다.
홀로 어딘지도 모를 어떤 곳을 향해 모험할 생각을 하니, 막상 무언가 빛을 내는 것이라고 갖고 있었다면 좋았을 걸 하고 바라고 있었다.
아무리 꿈속이라지만, 나는 지금 내 손에 후레쉬(일회용전등)나 종이컵 촛불 등등 라이터 하나 없다는 것이 상당히 불만이었다.
참으로 참담한 심정으로 눈앞의 오솔길과 그 길 주위로 잔뜩 심어진 가시덤불들이 나를 찌를 듯이 매섭게 쳐다보는 것을 애써 ‘난 두렵지 않다.’며 주문을 걸며 걸어 나갔다.
저벅저벅.
왠지 모르겠지만 이따금씩 불안함에 뒤를 돌아보았을 때마다 뒤쪽의 길은 더욱 짙어져 가는 습하고 한기 가득한 안개에 감추어져 조금씩 사라져버리는 것만 같아서 서둘러 발을 놀리며 앞을 향해 전진하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왠지 이런 내가 그런 생각들로 인해 더 두려움에 떨고 마는 게 아닌가 싶어 오히려 조심스레 앞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가기로 했다지만, 시간이 갈수록 또 두 발은 누군가가 쫓아올까 두려운 듯이 저절로 빠른 걸음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와. 불빛이다!”
눈을 번쩍 크게 떠본다.
이런 때 눈이라도 비벼줘야 하는 게 아닌가도 했지만 그렇게까지 흥분하진 않았다.
단지 드디어 빛을 내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말아서 너무 기쁘고 감격했던 거다.
그렇게도 찾아 헤매던 불빛이 저 멀리서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모닥불처럼 어느 아늑한 집의 난로를 켠 풍경처럼 따스한 기분이 드는 불빛이 아니었다.
그건 푸르딩딩한 보랏빛 불빛이라 더욱 마음을 술렁이게 하며 뇌리 깊숙이 공포감을 번쩍번쩍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이것은 신비감이라고 해야 돼~. 지금 보이는 게 저것뿐이잖아?’라며 마음을 애써 굳건히 다잡으며 걸었다.
어떤 실마리라도 보여야 나는 이 선명하고도 음모 가득한(?) 꿈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거였으니까 말이다.
이런 광경이 계속 이어진다고 한다면 좀 더 꿈에서 즐기고 싶다는 기분은 도저히 들지 않을 거 같았으니까, 그 언젠가는 좀 더 좋은 풍경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설렘도 분명 있었으니 말이다.
용기를 조금만 더 내어보자고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발걸음을 열심히 놀렸다.
*
“어···. 우와.”
살짝 놀랐다.
내 눈앞에 펼쳐진 오래되어 보이는 한옥 집은 마치 사극 드라마의 세트장처럼 고즈넉해 보이기까지 했다.
옆으로 나 있는 길을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내 가슴팍 부근까지 솟아오른 황토빛 담장에 검은 기와가 켜켜이 쌓여있는 게 꽤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왠지 근사하고 평온하고 멋지기만 했다.
이럴 때 돌연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닌가 하고 그런 상상을 해보면 말이다.
의외로 나는 사람이 북적대는 곳을 좋아한단 말씀이야.
훗.
잠시 아주 한참 만에 긴장을 풀고 입 꼬리를 올려 미소 지었다.
어느 지체 높으신 영감님의 저택 같은 모양새로 담장 너머로 하늘을 떠받치는 우아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 넓은 지붕과 휘어져 올라가는 아리따운 처마자락 그리고 튼실하게 그 위풍당당한 지붕을 떠받드는 기둥이 얼핏 보인다.
곧 바로 눈앞에 거대한 나뭇결이 드러나는 문에 육중한 쇠고리가 달린 쇠 장식은 손잡이인 모양으로, 호랑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입을 쩍~하고 벌린 그 난폭한 표정이 왠지 귀엽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손을 올리며 쓰담쓰담~ 쓰다듬어 해주었다.
아주 잠시 이러고 놀고 있는 것도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인지 자꾸 헛것이 보이며 호랑이가 웃고 있는 듯한 잔상에 역시 꿈이란~ 하며 가볍게 웃어넘긴다.
덥석.
이내 손 안에 들어오는 쇠의 감촉이 실제와 비슷하다며 놀라며 그 차갑고 단단함을 느끼며 둥근 고리를 잡고 그 아래 둥근 쇠 장식까지 움직여 탁탁탁 소리를 내어본다.
허나 집 내부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또 다시 우리 집에서 느꼈던 그 지독한 삭막함에 부대끼며 손이 움찔 떨려왔다.
아무도 없는 건가?
그런 바보 같은 의문을 또 다시 터뜨려본다. 당장이라도 얼굴이 또 울상이 되어버릴 것만 같이 일그러진다.
더할 나위 없는 적막과 고요였다.
만약 이런 넓고 굉장한 기세의 집이 빈 집이라면 조금 섭섭할 거 같은 기분이지만, 또 사람이 없으려나? 하고 생각하니 문득 드는 호기심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순간 급격히 마음이 허전해진다. 그래서 왠지 뱃속마저 허전한 것이 뭐라도 입 안에 넣고 질겅질겅 씹고 싶은 기분이 든다.
안에 들어가면 뭐라도 있겠지. 이 넓은 집안에 밥 한 톨 없겠는가. 뭐라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외롭고 허기져 비참한 꼴이 되어버렸다.
아 공허해 미쳐버릴 것만 같다.
이리 오너라~ 라고 이방들의 트레이드마크인 염소수염 사내가 나올 것만 같았지만, 역시 들리지 않는다.
나는 그 큼지막한 나뭇결이 느껴지는 대문을 온몸으로 밀어 안으로 슬금 들어가 본다.
그냥 들어가 버리면 도둑놈 같아 보일까봐 입을 열어 소릴 낸다.
“저기- 안에 누구 안 계신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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