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곤륜의 정통성을 인정받다!(4)
복마진인은 자존심이 상하기보다는 안도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고맙소. 빈도가 담 문주를 얕보았음을 인정하오. 담 문주가 아량을 베풀어 재차 기회를 주었으니, 더 이상 체면 차리지 않겠소.”
“원하던 바요.”
일단 마음을 비우자 복마진인은 일말의 호승심과 초조함도 사라졌다.
그가 혼원복마신공(混元伏魔神功)을 십 성 이상 끌어올리는 순간이었다.
전신으로는 두툼한 호신강기가 발출되었고, 복마검 역시 검강에 휩싸였다.
그 광경에 관중석의 곳곳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절정의 경지를 넘어 절등경으로 올라서야만 실전에서 저런 식으로 강기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복마진인이 자신의 마지막 밑천까지 꺼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담혁건에게서는 별다른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
호신강기를 찾아볼 수 없음은 물론이고, 벽력도의 도신으로도 도강이 발출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형편이었다.
이에 복마진인은 다시 입을 열었다.
“선공을 취함에 앞서서 한 가지 확인을 해두겠소. 정녕 그 상태로 빈도의 공격을 받아내려는 것이오?”
“물론이오.”
“강기가 덧씌워진 병기는 금강석과도 같아서 강기가 아닌 거의 모든 것을 벨 수 있음은 강호의 당연한 상리요. 하니 강기를 쓸 수 있다면 지금 발출시키는 것이 좋을 거요.”
“본인은 강호의 상리 따위에 전혀 속박되지 않으니 심려치 말고 마음껏 공격해 보시오.”
처음이었다면 담혁건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제대로 호된 맛을 본 터라 복마진인도 그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아까 담 문주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겠소. 이제부터는 빈도 또한 온전한 힘 조절이 불가능하니 스스로의 안위는 알아서 챙겨야 할 것이오.”
“걱정할 것 없소.”
“이제 진심으로 가겠소.”
복마진인은 실추된 위신을 만회하고자 일말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은 채로 빈틈없는 선공을 감행했다.
담혁건의 목숨을 취할 생각은 없었으나 그렇다고 손속에 사정을 두지도 않았다.
무인으로서 어떤 길을 선택한 이상, 그 책임은 전적으로 스스로가 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기 때문이다.
채애∼∼앵!
처음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불꽃이 튀면서 매서운 금속성이 주변으로 울려 퍼졌다.
단, 그 소리는 더욱 크고 섬뜩해졌다.
이는 한편으로는 담혁건의 벽력도가 복마진인의 복마검에 의해 잘려 나가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내심 놀랐으나 어차피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이었다.
담혁건이 정말 아무런 대책도 없이 맨몸으로 강기에 맞설 인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복마진인은 자신의 검강과 호신강기가 벽력도로부터 전해지는 발경력을 상쇄하고 격공력의 침투를 막아주는 것에 일단 만족해야 했다.
적어도 당장 내상을 입거나 과부하로 인해 체력이 급감하는 상황은 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거의 전력을 다하고서도 간신히 동수를 이루는 상황이 어이없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알량한 자존심은 모두 비워버린 마당이었다.
이에 복마진인은 일말의 동요나 잡념도 없이 논무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벽력도는 복마검과 백여 초식을 교환했으나 전혀 이상이 없었다.
부러지기는커녕 검강이 덧씌워진 복마도를 도리어 박살 내버릴 기세로 연신 맞부딪쳐 왔다.
연무대의 주변은 온통 맹렬한 도세(刀勢)와 현란한 검영(劍影)으로 뒤덮여 갔고, 팽팽한 공방전이 이어졌다.
***
복마진인은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이를 지켜보는 관중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특히 삼등석에서 줄곧 두 사람의 논무를 지켜보던 임동윤의 놀라움은 실로 컸다.
그 자신 또한 이미 절정의 문턱으로 들어섰을 뿐 아니라 그간 무학의 연구에 열정적으로 매진해 왔다.
그런 만큼, 지금의 상황은 도저히 납득되지 않았다.
‘담 문주가 사용하는 무기가 제아무리 보도라고는 해도 검강이 발출된 검과 저렇게 맞부딪치고도 멀쩡하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한데 그 불가능한 일이 지금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이를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단 말인가?’
일등석이나 이등석에 비해 비록 연무대와의 거리는 멀었지만 임동윤의 시력이 매우 좋았던 덕분에 두 사람이 펼쳐내는 논무의 양상을 정확하게 짚어볼 수 있었다.
임동윤은 두 눈을 부릅뜬 채로 유심히 지켜보았으나 벽력도에서는 도강이 전혀 발출되지 않았다.
도강은커녕 도기조차도 그다지 많이 깃들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역시 도강으로 버티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뭔가 다른 비결이 있다는 의미인데, 지금의 나로선 도저히 가늠조차 할 수 없구나. 담 문주는 실로 강호의 상리를 초월했음이 분명하다.’
그는 존경과 동경이 가득한 두 눈으로 담혁건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예의 주시했다.
***
복마진인은 끊임없이 복마검을 들이밀면서 맹렬한 공세를 퍼부었다.
그는 이제 담혁건이 강호무림의 일반적인 상리를 벗어난 예측불허의 인물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무슨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 번 잡은 기선을 놓치지 않고자 계속해서 몰아쳤다.
담혁건이 잘 버틸수록 복마진인은 더욱 안도하며 마음껏 공세를 퍼부을 수 있었다.
무림십존의 반열에 오른 이후, 그는 전력을 다해 싸워본 적이 없었다.
모처럼 무인으로서의 본능이 제대로 살아나자, 점잖은 모습 속에 감춰두었던 열정을 마음껏 분출시켰다.
그리고 어느새 혼원복마신공은 십이 성에 도달했다.
복마진인은 이미 모든 밑천을 다 꺼내 보였음에도 담혁건은 조금도 힘들어하는 기색 없이 그의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이쯤 되자, 복마진인은 내심 당혹감을 금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도 담혁건이 자신만의 간격을 확보하여 반격에 나서지 못하도록 공격의 고삐만큼은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십오 년 내공이라는 건 필시 기도를 철저히 갈무리하여 오판을 유도한 모양이군.
하나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해 봐도 일 갑자에는 미치지 못할 테니, 나의 내공이 세 배는 더 심후한 셈이다.
하니 설령 강기를 사용하더라도 이대로 집요하게 몰아붙이면 내공이 먼저 고갈되는 쪽은 내가 아니라 담 문주일 것이다.
비결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검강이 사용된 공격을 막아내는 저쪽의 내공 소모 또한 만만치 않을 테니까.’
이렇게 판단한 복마진인은 여전히 강기를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공세를 이어 갔다.
그의 의도는 간단했다.
반격을 허용할 경우 자신의 상황 장악력은 약화된다. 그러다 보면 의도와는 상관없이 쌍방이 크게 다치게 될 수도 있다.
반면, 공격의 주도권을 계속 틀어쥐고 있다면 공세를 멈추는 것 역시 적시에 적절하게 시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되면 당초의 목표대로 지구력이 약할 것이 분명한 담혁건을 지치게 하여 결국 스스로 무릎을 꿇게 만듦으로써 두 번째 논무를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식경가량 맹공을 퍼부었음에도 담혁건은 여전히 여유로운 방어 태세를 견지하고 있었다.
‘저건 필시 허장성세일 것이다. 조금만 더 몰아치면 필시 담 문주도 한계를 드러낼 것이야.’
그러나 그 이후로 일식경이 더 지났음에도 담혁건은 지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강기의 지원을 받는다고는 해도 환갑의 육신을 가진 복마진인의 체력은 담혁건이 휘두르는 강맹한 벽력도와 끊임없이 접촉하는 가운데 상당히 소진된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복마진인의 속도는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결투의 양상도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는 담혁건이 공세를 펼치고 복마진인이 수세에 몰리는 형국이 되었다.
그 와중에 내공의 양이 원래의 일 할 이하로 떨어지자 복마진인도 더 이상 침착함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이대로라면 채 일식경도 지나지 않아 내공이 완전히 바닥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반면, 담혁건은 전혀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허장성세인 줄로만 알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위력은 오히려 점점 강해지는 중이었다.
내공이 완전히 고갈될 정도로 써버리면 운공을 통해서도 원래의 양을 회복하지 못하고 일 할 이상 소실되는 게 보통이었다.
자칫 치명적인 내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이 때문에 마지막 일 할의 내공은 선천진기를 보존하듯 사용하지 않고 남겨두는 것이 강호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만일 지금 내공의 사용을 멈춰 강기가 사라지면 그 뒤의 일은 불을 보듯 뻔했다.
상대방의 맹렬한 발경력으로 인해 체력이 끝장나고, 끔찍한 격공력으로 인해 치명적인 내상을 입게 될 것이다.
이런 현실을 자각하자 복마진인은 침이 마르고 입술이 바짝 타들어 갔다.
여태껏 무인으로 육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낭패감에 휩싸였다.
결국 더 이상 버티다 못한 그가 패배를 인정하려고 할 때였다.
담혁건은 갑자기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러섰다. 그러고는 벽력도를 회수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본인이 졌소.”
전혀 예상치 못한 담혁건의 패배 선언에 복마진인을 위시한 관중들은 각자의 귀를 의심해야만 했다.
누가 보더라도 담혁건이 압도적인 우세를 점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소리요?”
“진인의 위력적인 검강을 막아내느라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오. 하니 본인의 패배요.”
이렇게 말하는 담혁건의 호흡은 조금도 거칠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더욱이 이마에는 땀 한 방울 맺혀 있지 않았다.
이에 복마진인은 금세 깨달았다. 담혁건이 자신을 배려하여 일부러 패배를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태까지 보여주던 광오한 모습과는 상반되는 사려 깊은 면모에 왠지 모를 감흥이 가슴속으로 밀려들었다.
복마진인도 다소 격앙된 어조로 말을 받았다.
“그리 말해주니 정말 고맙소. 하나 이번 논무의 승자는…….”
담혁건은 재빨리 그의 말을 끊었다.
“당연히 복마진인이오.”
담혁건이 던지는 시선에 담긴 진정성을 읽은 복마진인은 미소 지으며 다시 말했다.
“참으로 담 문주는 독특한 분이구려.”
“괴짜라는 소리를 많이 듣기는 했소이다.”
두 사람이 마주보며 유쾌하게 너털웃음을 터뜨리자 덩달아 관중들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게 두 번째 논무는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관중들 속에서 전혀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기던 한 사나이는 금세 만상관 밖으로 종적을 감추었다.
그가 작성한 밀서는 최고의 전서 매체인 흑작(黑雀)의 몸에 부착된 채로 어디론가 급히 배달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서(序)-표적 팔호(八號)는 최악의 위험 분자로 판명됨.
일항(一項)-복마진인과의 논무에서 동수를 이루었으나, 실제로는 표적 팔호의 일방적인 승리로 요약됨.
이항(二項)-곤륜의 절학무공들을 탁월하게 구사하는 것으로 보아, 곤륜괴협의 직전제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음.
삼항(三項)-도와 검을 함께 지녔던 점으로 미루어볼 때, 진짜 실력은 도검합격술에서나 드러날 것으로 예상됨.
사항(四項)-복마진인이 무림십존 가운데 말석임을 감안하더라도 표적 팔호의 실력은 무림오좌급으로 추정됨.
결(結)-특급 경계령을 발동하고 작전 갑(甲) 대신 작전 을(乙)로 대응할 것을 강력히 요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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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말
곤륜재건기 전권이 문피아 플래티넘 이북란을 통해 발행되었으며 오프라인 대여점과 동일하게 권당(세 편 당) 900원에 빌려보실 수 있습니다. 그동안 곤륜재건기를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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