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재건의 기틀을 마련하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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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라면 소호를 향해 혀를 내밀며 약을 올렸을 테지만 이번에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도 방금 저잣거리에서 들은 말인데요, 도사님께서 지금 광망투웅이랑 와호방의 장원으로 쳐들어가셨다고 해요.”
이 말에 적예원과 장노의 두 눈이 동시에 크게 떠졌다.
“도사님께서 광망파의 두목이랑?”
“네, 그렇게 들었어요. 그치?”
소호도 고개를 끄덕이며 지원에 나섰다.
“소소 말이 맞아요. 두 귀로 똑똑히 들었어요. 광망투웅이랑 도사님이랑 광망파의 무사들도 함께 와호방으로 쳐들어갔다고요.”
“어, 어떻게 그런 일이……?”
적예원은 장노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소인도 어찌 된 영문인지 전혀 갈피가 잡히지 않는군요.”
“일단 직접 와호방으로 가서 상황을 알아보는 수밖에 없겠군요.”
“그럼 소인이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아뇨, 같이 가요.”
“좋습니다. 소인이 뫼시지요.”
소소와 소호는 적예원을 향해 애절한 눈빛을 던졌으나 그녀는 얄짤없이 고개를 저었다.
“니들은 여기서 객잔을 지키고 있도록 해. 알겠어?”
“…….”
“어째서 대답이 없는 거지? 설마 지금 반항하는 거니?”
적예원의 채근에 쌍둥이 남매는 마지못해 대꾸했다.
“알았어요.”
“진작 그럴 것이지.”
이 말을 끝으로 적예원은 지체 없이 객잔 밖으로 내달렸다. 특유의 인자한 미소와 함께 시무룩해진 쌍둥이 남매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어준 장노도 곧장 그 뒤를 따랐다.
***
무림분파의 유형은 크게 사제관계 중심의 문파, 혈연관계 중심의 세가, 이해관계 중심의 방파까지 셋으로 구분된다.
강호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무림방파들은 그 출발점이 상방인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다른 무림분파의 보호를 받는 상방으로서 성장해 나가다가 자체적으로 무장하고 독문무공까지 보유하면 무림방파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와호방 역시 여태껏 꾸준히 외부의 무인들을 방도로 영입하여 무림방파로의 변모를 도모하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거둬들이는 수입에 비해 지출이 지나치게 늘어나면서 극심한 재정난을 겪고 있었다. 풍운객잔을 탈취하려는 것도 이를 타개하려는 자구책 가운데 하나였다.
이러한 와호방은 풍운객잔이 있는 화정과 십 마장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고을, 향풍(香酆)에 장원을 두었다.
군소 상방이기는 했으나 장원의 규모만큼은 여느 중견 상방 못지않게 버젓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은 이미 해일처럼 거침없이 난입해온 광망파의 무사들에 의해 완전히 장악당한 상태였다.
방주인 손용환과 소방주인 손수열을 위시한 모든 방도들은 자기 장원의 후원에서 무릎이 꿇려져 있었다. 그 주위를 광망파의 무사들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었다.
“죽을죄를 지었으나 부디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정 안 된다면 소인의 아들놈만이라도 제발 살려주십시오.”
와호방주 손용환의 간청에 위수린은 차갑게 대꾸했다.
“감히 사부님과 내 오라버니를 농락한 주제에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이번에는 손수열이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은 전적으로 제 독단으로 벌어진 것일 뿐, 아버님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그러니 소인만 처벌하시고 아버님과 다른 방도들만큼은 선처해주십시오.”
“닥쳐! 그런 시답잖은 변명이 지금 통할 것 같아? 애당초 사부님만 아니었다면 이미 이곳은 폐허가 되었을 거야. 멸문지화를 면치 못했을 거란 말이야.”
손씨 부자에 대한 위수린의 심문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위광호가 곁에 있는 담혁건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사부님! 저들을 어찌 처결할까요? 모두 죽일까요?”
위광호는 자신의 독문병기인 참마도를 번쩍 들어 보였다.
말과 사람을 단번에 베어버리는 용도로 만들어졌다고 알려진 참마도의 절륜한 자태에 손용환을 위시한 모든 방도들은 벌벌 떨었다.
담혁건의 한마디면 당장에라도 목이 댕강 날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다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이봐, 손 방주!”
이윽고 담혁건이 입을 열었다. 그에 손용환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네?”
“살고 싶으냐?”
“여부가 있겠습니까? 제발 저희를 살려주십시오. 살려만 주신다면 귀공을 위해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뭐든지 다 하겠다고?”
“그렇습니다.”
“하면 이 와호방도 바칠 수 있느냐?”
“그, 그건…….”
“뭐야, 못하겠다는 거냐?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잘못에 대한 책임을 죽음으로 묻는 수밖에.”
“다, 당장 바치겠습니다. 이제부터 이 와호방은 귀공의 것입니다. 원하시는 대로 처분하십시오.”
손용환의 대답에 담혁건과 위수린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미소했다. 애당초 이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와호방도 재건될 곤륜파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
장노와 함께 향풍의 어귀로 들어서던 적예원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애타게 기다리던 담혁건의 모습이 드디어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는 위광호와 위수린을 대동한 채 마침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오는 중이었다.
“사부님!”
이렇게 부르며 쪼르르 달려가서는 담혁건의 품에 와락 안기려던 적예원은 허공에다가 헛손질만 해야 했다.
멀뚱멀뚱 보고만 있던 담혁건이 포옹 직전에 표홀한 몸놀림을 선보이며 옆으로 피해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무안해진 적예원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잔뜩 골이 난 그녀는 담혁건을 향해 뾰로통하게 쏘아붙였다.
“먼저 따뜻하게 안아주셔도 모자랄 판에 이런 식으로 창피를 주시는 법이 어디 있어요? 정말 너무해요.”
“갑자기 징그럽게 왜 이러는 것이냐? 그리고 예까진 또 어쩐 일이냐? 장사는 어쩌고?”
담혁건의 천연덕스러운 반응에 적예원은 황당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걸 지금 말씀이라고 하시는 건가요? 정말 몰라서 그러시는 거예요?”
“뭐, 아무튼 잘 왔다. 안 그래도 예원이 너한테 긴히 이를 말이 있었으니까.”
“이를 말이라니요?”
“일단 인사부터 하여라. 이쪽은 이번에 내가 제자로 거둔 위광호와 위수린이다.
“위, 위광호라면 혹시 광망투웅 말인가요?”
토끼처럼 동그란 눈을 하고 있는 적예원을 향한 위광호의 첫마디가 이어졌다.
“반갑소. 위광호요.”
“위수린이에요.”
너무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적예원은 담혁건에 대한 섭섭한 마음조차도 잊어버렸다. 그녀의 뒤쪽에 서 있던 장노 역시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표정이었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영문이죠?”
“사람이 인사를 건넸으면 먼저 받아주는 게 예의가 아니냐?”
담혁건의 힐난에 적예원도 우선 위 씨 남매를 향해 정중하게 화답했다.
“처음 뵙겠어요. 적예원이라고 해요.”
적예원이 ‘이제 됐죠?’라고 따져 묻는 것 같은 시선으로 다시 자신을 바라보자 담혁건이 말을 이었다.
“말하자면 사정이 길지만, 한마디로 요약해주지. 광망파에서 먼저 나한테 도전해왔으나 나한테 패배했다. 그 때문에 광망파의 무인들은 이제 모두 나의 제자가 되기로 결정했다. 하니 그들은 이제 모두 너와 동문이 된 셈이다.”
“어, 어떻게 그런 일이!”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제 와호방도 곤륜파의 재건에 동참하기로 했다.”
퍼뜩 정신이 든 적예원이 다급히 말했다.
“잠깐만요! 하면 와호방의 일원들도 제자로 거두셨단 말씀이세요?”
“아니.”
“그럼요?”
“그들은 제자가 아니라 부하다. 부하로 거두었지.”
“그러니까 광망파는 제자로, 와호방은 부하로 거두었단 말씀이시죠?”
“그렇지.”
“하면 소녀는요? 소녀는 뭔데요?”
“안 그래도 그 부분이 애매해서 이번에 제대로 짚어두려고 풍운객잔으로 향하던 참이었다.”
일순간 적예원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아직까지 도대체 뭐가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지금이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야. 여기서의 협상 결과에 따라서 앞으로의 내 신분과 가치가 결정될 테니까.’
어안이 벙벙해하던 것도 잠시, 어느새 적예원의 얼굴에는 결연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녀는 일전에 담혁건이 무심코 한 약속을 빌미로 자신을 대제자로 삼아야 할 당위성에 대해 강력하게 역설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담혁건은 졸지에 일구이언하는 졸장부가 될 판이었다.
“허허. 이거야, 원.”
담혁건이 난감한 표정으로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자 위수린이 대신 나섰다.
“이봐요! 일단 나보다 나이가 어린 것 같으니 동생이라고 여기고 언니로서 한마디 할게요.”
“사저한테 동생이라니, 대체 지금 그게 무슨 말버릇이에요? 그리고 기본적인 서열 구분조차 못하면서 지금 누가 누구한테 훈계를 하겠다는 거죠?”
주도권 싸움을 걸어오는 적예린을 향해 위수린도 전혀 지지 않고 차분하게 대꾸했다.
“아직 결정도 안 된 사안에 대해서 그렇게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건 가인숙녀로서 할 짓이 아니죠.”
“뭐라고요?”
“혹시 초면에 동생이라고 부른 게 기분 나빴다면 그 대목은 사과할게요. 하지만 한 가지 짚어둘 점은, 세상일이 무조건 그렇게 떼만 쓴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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