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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 인간, 인간, 사람,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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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작품등록일 :
2022.08.0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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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3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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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짐승-



전부 죽여버리겠어.


내 눈앞에 보이는 사람 새끼는 전부 죽여버리겠어.


나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자귀추적자를 노려보며 끊임없이 되뇌었다.


“깨어났네?”


자귀추적자가 비웃음과 함께 나를 내려다본다.


넌 내가 죽여버릴 거야.


반드시 죽여버릴 거야.


“이 새끼가 어딜 노려보고, 지랄이야!?”


자귀추적자의 손찌검과 함께 내 뺨이 휙 돌아간다.


침을 뱉으니, 입안이 터져 생긴 피가 섞여 나온다.


“하, 씨발. 살려뒀더니 하는 꼬락서니 봐라. 야, 이 새끼 정말 도움 되는 거 맞아?”


자귀추적자가 어린 곰을 보며 말했다.


“네. 확실해요.”


“짜증 나네, 씨발. 나, 갈 거니까 네가 알아서 잘 좀 해. 천한테 네가 잘 얘기하고.”


“네. 알겠어요.”


자귀추적자가 지나치다 날 쳐다본다.


“천한테 헛짓거리 하지 마!. 그렇지 않으면 사지를 전부 잘라내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처럼 굴려줄 테니까.”


나는 대답 없이 자귀추적자를 노려보기만 했다.


“하긴, 팔도 못 쓰는 병신인데 뭘 할까 싶지만. 하하하!”


파, 팔!?


아무리 팔에 힘을 줘도 움직이지 않는다.


“깔깔! 야, 그걸 이제 알았냐!? 얼마나 멍청하면 네 팔인데 못쓰는걸 내가 알려줘야 하냐? 킥킥킥!”


“무, 무슨 짓을 한 거야!? 내 팔에 무슨 짓을 한 거냐고!”


자귀추적자는 내 물음에 답하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제가 치료했어요.”


어린 곰이 작은 미소를 지으며 날 쳐다봤다.


“네가? 네가 내 팔을 이렇게 만든 거야!?”


“아뇨. 자귀추적자가 당신의 팔을 새까맣게 태웠고, 제가 그걸 치료했어요. 겉으론 아무 이상 없게.”


“너희들은! 너희들은 왜! 도대체 왜! 우리를 못살게 구는 거야!?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하하.”


어린 곰이 다가와 내 앞에 선다.


내가 바닥에 엎어진 상태라 어린 곰과 눈높이가 맞아 서로의 눈을 쳐다봤다.


“네 존재가 잘못이야.”


“뭐, 뭐···!”


“입 닥치고 가만히 있어, 이 새끼야. 건방진 새끼가 내가 누군지 알고.”


어린 곰의 눈에서 초록빛이 발산한다.


“네가 누구··· 사도!”


마지막 사도!


“이제 상황 파악이 되나되시나? 자귀추적자가 널 죽이려고 했지만 내가 살려둔 거야. 네가 쓸모가 있다고 했으니까. 근데, 어디 감히 살려준 은혜도 모르고 개새끼처럼 천지 분간도 못하고 이리저리 날뛰어?”


주비가 내 머리채를 우악스럽게 잡고 흔들어댄다.


“야 이 개새끼야. 한 번만 더 그 지랄하면 네 남편한테 보내줄 테니까 생각 잘하고 행동해.”


덩치를 들먹이는 주비의 말에 나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를 죽이겠다는 협박이 너무 무서워서.


덩치의 죽음에 대한 분노는 내 목숨의 위협 따위에 사그라질 정도의 것밖에 안 되었다.


분함과 억울함과 서러움이 섞인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흘러내린다.


“그래, 그렇지. 이게 짐승이지. 고분고분하게 말 잘 듣는 짐승. 얼마나 좋아?”


주비가 조그마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앞으로 말 잘 들을 거지?”


“···네.”


병신새끼.


제 친구가 눈앞에서 죽었는데 자기 살겠다고 꼬리 흔들어대는 개만도 못한 새끼.


“좋아. 잘 들어.”


“네.”


“지금 곰무덤에 이무기가 있어. 알고 있지?”


“네.”


“내가 노예기사 하나를 보내놨어. 이무기를 해결하라고.”


“네. 알고 있어요.”


“네가 가서 도와.”


“네.”


“그 노예기사의 아쥔타가 누군지 알아?”


“네.”


“좋아. 대화가 금방 끝나겠네.”


“저보고 그 노예기사를 죽이라는 말씀이세요?”


“아니. 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얘가 큰일 날 소리를 하네.”


주비가 미소를 지으며 능청 떤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죽이라는 말이잖아.


“뭐라는 거야? 하여튼 그렇다고. 자, 이제 가 봐. 어디로 가든 뭘 하든 신경 쓰지 않을 거니까.”



///



곰무덤.


매장지를 땅이 아니라 호수로 쓰는 기이한 풍습을 보여주는 곳.


내 눈앞엔, 거대하고도 아름답다는 단순한 말이 아쉬울 정도의 호수가 펼쳐져 있다.


나는 홀린 듯이 호숫가로 걸어갔다.


“잠깐!”


누군가가 내 어깨를 덥석 잡았다.


말없이 뒤를 돌아보니 건장한 체격의 사람이 서 있다.


판금 갑옷과 목소리로 보아 기사인 남자 사람인듯하다.


사람···.


“아가씨, 호숫가로 가시면 위험합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죠?”


“아직 소문을 듣지 못한 모양이군요. 지금은 평온하지만, 호숫가로 가는 순간 이무기가 나타나 알아듣지 못한 말을 한 다음 잡아 먹어버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무도 호숫가에 가지 않죠.”


“그렇군요.”


주변을 둘러보니 과연 곰을 포함한 모두가 호숫가에 멀리 떨어진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실례했습니다. 저는 석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이름을 말할까 했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석의 눈길이 내 팔에 머문다.


기사라 그런지 눈썰미가 상당하다.


“네. 양팔을 못 쓰게 되었어요.”


“이런, 실례했습니다.”


“아니에요. 어느 정도 적응이 됐거든요.”


“어느 정도라는 말씀은···.”


“네.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어요.”


석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당황한다.


가식.


팔을 못 쓰는 줄 뻔히 알았으면서 질문하고 당황하는 행동.


“그럼, 이만.”


“아가씨.”


자리를 벗어나려는데 석이 날 붙잡았다.


“왜 그러시죠?”


“만회할 기회를 주십시오. 제가 곰무덤에서 당신을 보호해 드리겠습니다.”


살짝 차가운 말투로 답했는데 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제안했다.


네가 나를?


노예기사에게서, 사도에게서 나를?


“필요 없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실례했습니다.”


팔을 뿌리치며 말하자 그제서야 석이 수긍하고 고개를 숙인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자리를 벗어나 아무도 없는 곳으로 걸어갔다.


적당한 자리를 찾아 호수를 바라봤다.


어떡하지?


주비의 말투는 분명히 노예기사를 어떻게 하라는 거였어.


주비가 이걸 원하고 나를 가만히 둔 건가?


그걸 원하고 내 정체를 알았음에도 모른척한 건가?


주비는 처음부터 모든 걸··· 아니.


단순히 나 한 마리만 노예기사를 죽이기 위해서 보냈다고?


말도 안··· 그래, 맞는다고 쳐.


그런데 왜?


노예기사를 왜 죽이려고 하는 거야?


씨발!


팔이라도 제대로 해놓던가!


이 병신같은··· 씨발, 씨발, 씨발!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 없이 흐느꼈다.


친구의 죽음 따위는 상관없이, 제 목숨에 위협을 받자, 꼬리를 마는 병신새끼!


비루한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신념 따윈 개나 줘버리는 한심한 새끼!


털썩.


누군가가 내 옆에 앉았다.


하지만 나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쳐다보지 않았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관심 끄고 있으면 알아서 가겠지.


누군가의 눈길이 느껴진다.


석인가?


아직도 미련을 못 버렸나?


“그 팔. 어떻게 된 거야?”


석은 아니야.


하지만 익숙한 목소리.


“팔은 병신이 됐는데 탈은 용케도 썼네. 아니지. 탈을 쓰고나서 팔이 병신이 됐나.”


짐승이다.


노예기사 옆에서 개처럼 따라다니는 짐승.


고개를 들어 짐승을 쳐다봤다.


“덩치가 안 보이는 걸 보니 죽었나 보네.”


“조롱하려고 왔으면 실컷 해. 날 죽이려고 왔으면 빨리 죽이고.”


“왜 온 거야?”


“둘 다 아니면 꺼져.”


“덩치는 왜 죽었는데?”


“개처럼 있으니까 행복하냐?”


“팔은 누가 그랬고?”


“배신자 새끼.”


접점 없는 두 짐승의 말이 계속해서 평행선을 달렸다.


“이곳에서 내가 유일하게 네가 짐승인 걸 알아.”


“그래서? 네 주인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꼬리 흔들며 칭찬을 바랄 거야, 짐승을 발견했다고?”


“이제야 대화가 되네.”


“뭘 원하는 거야?”


“그냥 가라고.”


“뭐?”


“그냥 가라고. 그대로 숨어서 살아.”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모르지?”


“몰라. 알 수도 없고 알 생각도 없어. 그런데 이거 하나는 알아.”


짐승이 날 빤히 쳐다본다.


“나처럼 다시 사지에 몰린 거.”


“지랄하지 마! 내가 자원해서 온 거니까.”


“그래? 그럼, 덩치의 죽음은 네 책임이네.”


“개소리하지 마!”


벌떡 일어나 짐승을 노려봤다.


“네가 자원해서 곰무덤에 왔으니 네 책임이지. 뻔히 죽으라고 내모는데 도망치지 않는게 이상한 거 아니야? 작전계획은 오롯이 네 몫이잖아.”


“더, 덩치는···.”


나 때문이 아니야!


아니라고!


“덩치는 너 때문에 죽었어. 부정하지 말고 직시해. 그래. 덩치를 죽인, 그리고 네 팔을 그렇게 만든 범인은 따로 있겠지.”


나도 모르게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원초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나라고?


나 때문에···?


“네가 애초에 덩치를 이곳으로 이끌지 않았다면. 아니, 네가 애초에 그 작전을 거부했다면.”


짐승이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어째선지 정신이 몽롱해진다.


“내, 내가 거부했으면 죽었을 거라고!”


“그래서. 내가 죽었어?”


“다, 당장은 죽지 않겠지만···!”


“내가 죽었냐고.”


“우리가 찾으러 갔잖아!”


“큭큭. 그래. 과거엔 그랬지. 걔들이 그럴 여력이 있을까? 이제부턴 사람과의 전쟁이 본격화될 건데. 생사도 모르는 너희를 잡겠다고 고급 자원을 뺀다?”


짐승이 입매를 비틀며 내 눈을 빤히 쳐다본다.


“걔들이 그럴 수 있을까?”


“아, 아니.”


“뭐라고?”


“마, 맞아. 내 잘못이야.”


“정확히 말해봐.”


“덩치가 죽은 건 내 잘못이야. 내 팔이 이렇게 된 건 내 잘못이야.”


내가 왜 이런 생각을···.


“그래. 네 잘못이야. 네가 잘못된 판단을 해서 덩치를 죽음으로 이끈 거야.”


그, 그런가?


나 때문인가?


“그,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짐승이 내 손을 잡는다.


왠지 모르게 손에서 따뜻한 기운이 느껴진다.


“잘 생각해 봐. 어떻게 해야 할까?”


“모, 모르겠어.”


“덩치가 보고 싶지 않아?”


“보고 싶어.”


“덩치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덩치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해.”


“맞아. 덩치가 있는 곳으로 가야지. 네가 죽으면 덩치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어.”


그렇구나.


“응, 내가 죽어야 해.”


“하지만 네가 죽기 전에 할 일이 있어.”


“무슨 일?”


“네가 모함했던 사람에게 사과해야지. 덩치는 너로 인해 죽었는데 너는 엄한 사람을 원인 제공자로 몰았잖아.”


“그, 그렇지! 내가 사과드려야 해.”


덩치는 나 때문에 죽었는데 엉뚱한 사람을 원망했어.


그분에게 사과드려야 해.


“그, 그런데 어떻게 하지? 그분은 내가 감히 만날 수 없는 분인데.”


“한 가지 있어.”


“한가지?”


“그분의 노예기사가 누군지 알고 있지?”


“응.”


“지금 천님 곤경에 처했어. 천님을 도우면 결과적으로 넌 그분을 돕는 거야.”


“그렇지, 천님은 그분의 노예기사니까!”


“옳지.”


짐승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할 수 있겠어?”


“응, 뭐든지 할 수 있··· 하지만 나는 팔이 병신인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병신이야.”


“병신인 너 같은 짐승도 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일이야.”


“정말!?”


“그럼. 너 일석이조라는 말 알지? 네가 그 일을 하면 사죄를 드리는 건 물론 덩치까지 만날 수 있어.”


“나 할래, 하고 싶어! 그 일을 해서 사과드리고 덩치도 만날게!”


“좋아. 간단해. 네가 할 일은 호숫가까지 걸어가는 거야.”


“그렇게 간단하게? 그런 간단한 일로 가능한 거야?”


“그럼!”


나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호숫가로 향했다.


정말, 정말 내가 호숫가로 가기만 한다면 사죄도 드리고 덩치도 만날 수 있는 거야?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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