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전 (3)
“1월 23일 신성 백화점 샤넬 매장에서 현금으로 813만원.”
“2월 2일 신성 백화점 루이비통 매장에서 1237만원.”
“2월 16일 서울의 모 5성급 호텔에서 숙박 후 법인 카드 결제.”
“3월 2일 다시 동일한 호텔에서 숙박료 및 룸 서비스로······.”
······.
쉴 새 없이 떨어지는 융단 폭격에, 기자 회견장과 채팅창은 눈 깜짝할 사이에 불바다가 되고 말았다.
[ ㅋㅋㅋ 어이없네, 하루에 얼마를 쓴 거? ]
[ 도둑질한 돈으로 플렉스 오지게 했네 ]
[ 나라에 사기꾼이 너무 많다 ]
[ 씨발 ㅋ 저래놓고 물타기를? ]
“1년에 사치품 구매와 호텔 숙박 비용으로만 3억 원 이상을 사용하셨네요. 그 중 대부분이 현금 구매와 법인 카드로 이루어졌고요. 추가로 강남의 유명 일식 오마카세와 고급 레스토랑의 단골이신 것도 확인했습니다. 한 끼에 적게는 40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 이상의 금액을 일 년에도 수십 차례 결제······. 심지어 기분이 좋은 날에는 팁까지 따로 챙겨주셨다고.”
상황이 이쯤되자, 재수없게 지목당해 자의반 타의반 안 대표의 대변인 역할을 하게 됐던 윤 기자의 이마에서는 폭포수 같은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채팅창에는 욕설이 범람했다.
‘아, 진짜 좆 됐네.’
‘괜히 여기 있다가 같이 물려서 엿 되는 거 아니야?’
‘저새끼는 왜 여길 와서 아가리를 열어!’
‘하아······. 어그로 끌릴 것 같아서 우라까이 좀 했다가 이게 무슨······.’
별 생각없이 (늘 그렇듯) 윤 기자의 기사를 복사- 붙여넣기 하거나 대충 비슷한 논조로 기사를 갈겼던 기자들 역시 요단강에 발 한쪽을 담그고 있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몇몇 기자들은 파랗게 질린 채 자신이 올린 기사를 실시간으로 삭제하고 있었다.
[ ㅋㅋㅋ 저 형님 칼 갈고 오신 듯, 아까 찾았던 정선우도 쿠키에서 돈 먹은 것 같은 기사 많이 썼음 ]
[ 그럼 선우 대신 현준이가 공개 처형 당한 거? ]
[ 현준아, 기억할게! by. 정선우 ]
[ ㅇㅇ 정선우도 쿠키랑 엮여있네. 최근 기사 찾아보니 정지후 건강 괜찮다는 둥 뭐 그런 내용임. ]
한편, 채팅창에서는 네티즌 수사대의 대대적인 색출 작업이 시작됐다.
이 역시 정확히 강인이 의도한 바였다.
이렇게 십 만 단위의 사람이 보는 가운데 한두 명만 찍어서 목을 따주면 나머지는 알아서 처리가 될 테니까.
일종의 라이브 - 온라인 댕겅댕겅 쇼인 셈이다.
조금 더 고급스럽게 표현하자면, 현대판 효수형 정도 되겠다.
[ 그런데 시크가 저 정도로 돈이 됨? ]
[ 원래 남돌 2군 정도면 어지간한 여돌 1군 만큼 돈 나옴. ]
[ 시크 은근히 코어팬 단단함 ㅇㅇ 그냥 머글들이 잘 모를 뿐 ]
[ 그래도 저 정도는 안될 거 같은데. ]
[ 다른 연예인들한테도 좀 해 먹으면 쌉가능. ]
[ 그거네. ㅋㅋㅋ ]
[ 줄소송 드가자~ ]
게다가 이 라이브 기자회견의 효과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불꽃이 커지니, 자연스럽게 불씨가 다른 곳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가만히 있다가는 이대로 목이 날아가 저자에 걸린다.
그렇게 직감한 윤 기자는 이판사판으로 입을 열었다.
“이, 일개 피디가 감당하기에는 청류의 수임료가 마, 만만치 않을 텐데요! 정지후 씨의 수입이나 소송가액 기준으로 따져봐도······!”
그 순간, 잠시 관객 모드로 들어가 상황을 관망하고 있던 재벌 3세가 기다렸다는 듯 다시 시동을 걸었다.
“정지후 씨 수입이나 소송가액은 아직 보도가 안됐는데, 잘 알고 계시네요? 안 대표님이랑 많이 친하신가 봐요?”
“······!”
“에휴······.”
그리고, 단 한 마디로 윤 기자를 침몰시켰다.
[ 격- 침 ]
[ 와 ㅋㅋ 기다렸다는 듯이 물어버리네 ]
[ 한숨 쉴 때 표정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마이크 내려놓을 때 입모양 ‘지랄한다’임 ㅋㅋㅋ]
하지만 어차피 여기서 후퇴하면 죽음 뿐.
이제는 정말 필생즉사 필사즉생의 각오로 맞서야 한다.
결단을 내린 윤 기자는 셔츠가 다 젖을 정도로 땀에 흠뻑 젖은 채로 다시 입을 뗐다.
“그, 그게 문제의 본질이 아니지 않습니까? 질문에 답하세요!”
“네, 청류에 이번 사건의 변호를 의뢰한 건 제가 맞습니다.”
이어지는 강인의 한마디에, 채팅창이 또 한 번 뒤집혔다.
[ 엥? ]
[ 여기서? ]
[ 저걸 인정한다고? ]
[ 본인이 기자한테 제보한 거 아니라며? ]
[ ????? ]
“아까는 분명 황봉성 피디가 이 사건을 제보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네, 맞습니다.”
“그럼 말이 앞뒤가 안 맞는데요. 신 대표님은 분명 이 건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시체처럼 텅 비어가던 윤 기자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왔다.
드디어 걸렸다.
이걸 잘 물고 늘어지면 어떻게든 활로가 열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날카로운 비수가 날아들었다.
“기사도 그렇고 말도 그렇고, 교묘하게 안한 말을 한 것처럼 지어내는 재주가 있으시네. 제가 언제 이 사건에 대해 몰랐다고 했습니까?”
“에?”
“최초 제보자는 황 피디고, 저는 내용 증명을 발송하기에 앞서 이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사건에 대해 아예 몰랐다고 말한 적은 없는데요.”
“그, 그러니까 정말 탬퍼링과 관련이 없다면 왜 그 정보를 공유하셨냐는 겁니다!”
간만에 채팅창이 잠잠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하아 씨······. 그럼 내가 공동 제작자로 이름 올리고 투자도 하고, 캐스팅 도와주고 홍보 전략까지 짰는데 드라마 촬영 중에 이런 사건이 생긴 걸 피디가 나한테 말도 안하고 기사부터 내겠냐?”
[ 반말 나왔다 ㅋㅋㅋ]
[ ㅋㅋㅋㅋ ]
[ 아 나 이 형 너무 좋아 ㅠㅠㅠㅠ]
[ 맞네 ㅋㅋㅋ]
[ 개시원함 ]
[ 이 형 도파민 폭탄이네 ㅋㅋㅋ ]
[ 멀리 안 간다, 잘 가고. ]
“······요?”
[ 뒤늦게 ‘요’ ㅋㅋㅋ]
[ 표정이 뻔뻔해서 더 웃겨 ㅠㅠㅠㅠ ]
[ 이형 ㅈㄴ 재밌는 사람이네 ㅋㅋㅋㅋ]
[ 여러모로 역사에 남을 기자회견 ]
“흠흠, 어쨌든. 지금 제작진 아무한테나 물어보십시오. 이거 다른 분들도 다 공유하고 있고, 동의한 다음 소송 들어간 거니까.”
[ ㅇㅈ 이런 걸 말도 안하고 터뜨리기는 그렇지. ]
[ ㅋㅋㅋ 입 열 때 마다 개털리네 ]
[ 그냥 찌그러져 있지 그랬냐 ㅋㅋㅋ ]
[ 와, 제작진도 대단하다. 방송쪽 사람들 논란 개 싫어하는데 이걸 도와줬다고? ]
[ 황 피디도 멋있네. ]
[ 그래도 강인이 형이 최고야. ]
[ 사이코 X 드라마 제작진에게도 1칭찬 드립니다. ]
[ 크, 아직 강호의 도리가 땅에 떨어지지는 않았구나. ]
그렇게 강인이 마이크를 잡을 때마다, 채팅창의 여론이 완벽히 한쪽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천조국 탑- 매니저를 자처하는 모 씨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애드립 하나를 던졌다.
“그런데 기사 터뜨리려고 하니까, 정지후 씨가 자기 때문에 작품이 욕 먹을까 봐 걱정된다고 종영하고 나서 개인적으로 해결하겠다고 하더군요.”
모처럼 상대가 좋은 무대를 만들어줬는데, 홍보를 안하고 가면 어찌 탑- 엔터맨이라고 할 수 있겠나.
[ ㄹㅇ? ]
[ ······. 진짜 인성갑이네. ]
[ 그 와중에? ]
[ 와······. ]
아니나 다를까, 선혈이 난무하는 단두대 매치에 잔뜩 흥분해 있던 관중들마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기자분들도 지금 감탄하고 계시죠? 제 기분이 딱 그랬습니다.”
회견장을 스윽 둘러본 강인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어차피 돈은 많고, 그래서 도와드린 겁니다. 소송할 거면 무조건 이기라고. 솔직히 안 대표인지 뭔지 하는 아줌마가 하는 짓이 짜증도 좀 났고.”
그리고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농담조로 한마디를 덧붙엿다.
“아, 이건 정지후 씨 홍보 맞고요. 저 나이에 6년 동안 사기 당해놓고 저렇게 대처하는 사람이면 이 정도 홍보는 해도 되잖아요?”
[ ㅋㅋㅋ 그 와중에 홍보도 해주네. ]
[ 정지후는 안 대표 감옥가면 그냥 신 대표랑 계약해라 ]
[ 아아, 이 사람은 ‘진짜’다 ]
[ 재미와 사이다와 유머와 홍보를 모두 잡은 역사적인 기자회견이네 ㅋㅋㅋ ]
······.
* * *
한편, 희대의 ‘불맛 기자회견’을 시청 중인 안 대표의 얼굴에서는 실시간으로 핏기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저, 저새끼들이 어떻게 저걸······.’
이건 아주 오래 전부터 자신을 보내버리려고 기획한 것 아닐까?
그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심지어 라이브 기자 회견의 시청자수는 40만을 넘어선 상태.
이 정도로 화제가 된 사건이라면 경찰이고 국세청이고 할 것 없이 모조리 달려들어 자신을 물어뜯을 게 분명했다.
머리가 하얘진 안 대표는 씩씩거리며 자신의 세컨폰을 꺼내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업무용 핸드폰은 진작에 꺼뒀다)
“이 새끼야! 애들 안 잡아오고 뭐해!”
지금은 일단 지후를 제외한 나머지를 끌고 와 어떻게든 구워삶아야 했다.
정지후와 나머지 넷의 말이 엇갈리면, 여론과 무관하게 법정 싸움에서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돌파구가 생길 테니까.
하지만······.
- 어, 없습니다! -
“뭐?”
- 애, 애들이 없어요! -
“뭐가 어째?”
그 구워 삶아야 할 넷이······. 사라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 새끼들이 갈 데가 어디있어!”
- 그, 그래서 찾아보고 있는데······. -
차도 없고 돈도 없고.
얼굴 다 팔려서 몰래 밖을 나다니기도 어려운 놈들이 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이, 이 씨발······.’
그 순간, 안 대표는 직감했다.
이건 내용 증명을 보내기 전부터 설계된 판이라는 걸.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기다렸다는 듯 증거를 쏟아내고, 애들까지 빼돌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기, 기자, 기자.’
이에 그녀는 잽싸게 자신과 연줄이 있는 기자들의 연락처를 찾았다.
그러나 번호를 누르려던 찰나, 깨달았다.
‘개새끼······.’
저렇게 라이브로 공개 처형식을 진행했는데, 어떤 정신 나간 기자놈이 자기 편을 들어준단 말인가.
나도 라이브 기자회견으로 맞대응을 해?
아니, 처음부터 설계 당했다고 읍소해 볼까?
아니면, 아니면······.
“아아아아악!”
당혹감과 분노로 반쯤 정신이 나간 안 대표는 발작을 하듯 발을 구르며 괴성을 내질렀다.
그때, 화면 속의 시건방진 재벌놈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 그럼 다른 질문하실 기자분 있습니까? -
자리에 있던 기자들 중 누구도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여론전은 사실상 저쪽의 완승이라는 의미다.
‘자, 잠깐.’
실성 직전이던 그녀는 빠르게 냉정을 되찾았다.
‘차명 재산은?’
그렇게 뒷조사를 해놓고, 정작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언급을 안한다고?
‘못 찾았구나!’
최후의 보루가 무너지지 않았음을 확신한 순간,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녀의 머리는 신속하게 살아남을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정산금 문제야 법정 싸움으로 끌고 가서 최대한 질질 끌고 이것저것 작업을 치면 어느 정도 손실을 줄일 수 있다.
배임 횡령 건도 액수를 잘 줄이면 어떻게든 실형은 피할 수 있고.
시크의 상표권과 앨범에 대한 저작 인접권 등은 물론이고 SNS 계정, 뉴튜브 계정 등은 모두 쿠키 엔터의 소유이니 그걸 가지고도 충분히 괴롭혀 줄 수도 있다.
그렇게 사태가 잠잠해지면 그 새끼들을 완전히 묻어버리면 그만이다.
정지후야 이미 몸값이 오를 대로 오른데다가 이미지까지 좋아져서 그럭저럭 살아남겠지만, 나머지 넷은 얼마든지 밟아 버릴 수 있으니까.
‘정지후 그 새끼는 멤버들을 아주 각별하게 생각하니까.’
멤버들이 자기 때문에 인생을 망친다면 그 배은망덕한 새끼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상상만 해도 엿 같았던 기분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차명 재산은, 이 모든 계획의 근간이 되는 자신의 생명줄이었다.
차명으로 구입해 둔 알토란 같은 재산만 지킨다면 어떻게든 재기할 수 있다.
회사야 바지 사장 하나 세우고 새로 차리면 그만이고.
그런데 그 차명 재산이······. 남아있다.
“이 새끼들, 두고 봐. 아주 내가 죽여버릴 테니까.”
복수할 희망을 찾은 그녀의 눈이 싸늘하게 빛났다.
바로 그때였다.
- 띠링.
그녀의 세컨 폰으로, 문자가 한 통 날아왔다.
- 신강인입니다. 전화 한 통 주시죠. -
뭐? 이 새끼가 어떻게 이 번호을 알아?
정지후가 알려줬나?
아니, 그런데 왜?
- 1분 드립니다. 그 안에 전화 거세요. 아니면 기자들 앞에서 차명 재산 목록도 읊어드리겠습니다. -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손가락이 화면을 눌렀다.
- 작가의말
전 회차 반응이 좋아서 기분이 좋네요 ㅎㅎ
오늘은 조금 일찍 찾아와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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