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일 좀 해보려고요.
* * *
‘황금 고블린’이라는 게 있다.
모 온라인 게임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로, 때리면 반격도 안하고 열심히 도망만 가는 주제에 죽이면 돈과 아이템을 후드득 떨구는 반가운 존재다.
이런 특징을 반영해 흔히 ‘좋은 물건을 가지고 다니는 별 거 아닌 놈’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하는데······.
“어?”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샤인 엔터의 직원들에게 있어서는 대표님이 살짝 그런 존재였다.
딱 어제까지는.
* * *
원래 이세계로 넘어가면 신기한 능력이나 상태창이 생기는 게 국룰 아닌가?
이 지엄하고도 신성한 법도에 따라, 천조국 연예계라는 마굴에 들어가 생존에 성공하면 몇 가지 소소한 초능력이나 스킬을 얻을 수 있다.
어쩌면 그 능력을 못 얻은 놈들은 죄다 죽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이걸 게임식으로 표현하면······.
[ Lv 7. (어깨 너머로 배운) 메소드 연기 ]
[ Lv 20. 어르고 달래기 ]
[ Lv 20. 무언의 압박 ]
[ Lv 14. 독심술 ]
[ Lv 22. 상황 파악 ]
······.
대충 이런 느낌이다.
그리고 나 역시 마굴에서 꽤 상위권에 속하는 능력자였으니, 이런 특수한 스킬 몇 개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표정 읽기’와 ‘눈빛 읽기’ 역시 그 중 하나였다.
게다가 내 스킬에는 작은 특수 효과가 하나 붙어있었는데, 바로 경멸, 혐오, 무시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더 정확하고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었다.
왜 그런지는 미국에서 아시안으로 살아보면 알게 된다.
각설하고.
- 어쩐 일로 회사를 다 나왔대?
- 잘생겼어······.
- 에휴, 인생 참 편하게 산다.
- 뭐 또 시간이나 떼우다 가겠지.
마굴에서 얻은 스킬을 통해 읽어낸 사원들의 감정은 대충 이런 식이었다.
이 중 긍정적인 반응은 ‘잘 생겼어’뿐.
하지만 외모에 대한 칭찬은 일을 추진하는데는 코딱지만큼도 도움이 안 되니, 이 안에 내 편은 한 명도 없다고 보면 되겠다.
뭐 사장을 진심으로 반기는 직원이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제정신은 아니지만.
솔직히 말해서 월급쟁이가 사장님을 보고 도파민이 나온다면 그게 더 무섭지.
“네, 반갑습니다.”
빠르게 그들의 감정을 스캔한 나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지나치게 친절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거만하지도 않은, 딱 예의를 차린다는 느낌 정도면 충분하겠지.
이어서 나는 앞뒤를 자르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예솔 씨 활동 방향성에 대해서 논의 중이라고 하던데, 문서로 정리된 거 있습니까?”
“네?”
어찌나 놀랐는지, 직원들 중 하나가 미묘하게 부적절한 반응을 보였다.
하긴, 회사 최고의 월급 루팡이 아침 댓바람부터 일 얘기를 꺼내니 이게 뭔 일인가 싶기도 하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갈 길 간다.
분위기로 보나 지금까지 파악한 이 놈팽이의 행적으로 보나 사원들과 살가운 사이일 리는 없으니까.
게다가 괜히 대화가 길어지면 뭔가 이상하다는 인상을 줄 가능성만 높아진다.
그보다는 차라리 깔끔하게 일 얘기만 하는 편이 낫다.
어차피 이미지를 바꾸려면 일은 해야 하고.
“없습니까?”
“있습니다.”
이어지는 나의 질문에, 한 눈에 보기에도 제법 직급이 있어보이는 직원 하나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사내의 눈에도 ‘오늘따라 왜 이래?’하고 묻는 듯 희미한 의문이 어려있었다.
그래도 표정 관리 능력이 꽤 우수한 걸 보니, 과연 직장생활 좀 해 본 티가 난다.
하지만 대표가 서류를 달라면 줘야지 뭐 별 수 있겠는가.
“좋습니다, 검토해보고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한 시간이면 충분할 거 같으니 한 시간 후에 뵙죠. 다른 일정이 있거나 바쁘신 분들은 참석 안하셔도 됩니다.”
말을 마친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대표실로 걸음을 옮겼다.
* * *
“저······. 대표님.”
대표실로 들어가 서류를 펼치자, 김 비서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조신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아직 첫 장을 넘기기도 전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나는 시선을 서류에 고정한 채 대화를 이어나갔다.
서류에는 예솔과 뮤즈온에 대한 온갖 정보가 빼곡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음원, 음반, 광고 매출, 브랜드 평판 변화 추이, 개인 광고 요청 건수, 각종 컨텐츠 조회수를 시작으로 예솔의 개인팬은 얼마나 되는지,
SNS나 온라인 상에서 어떤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는지,
팬들은 예솔에게 어떤 활동을 기대하고 있는지,
신규 걸그룹을 런칭한다면 어떤 컨셉으로 갈 건지,
래퍼런스로 삼을만한 팀이나 음악 스타일은 등등······.
‘그래도 시장 조사는 철저하게 했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솔로는 요즘 시장에서 잘 안 먹히니까 걸그룹으로 갑시다!
메인 보컬은 확실하니 비주얼 멤버 하나 넣고, 댄스 멤버 하나 넣고, 예능 멤버도 하나 넣읍시다!
그리고 메인 보컬인 예솔을 중심으로 어쩌고 저쩌고······.
이런 걸 기획안이라고 내놓다니.
왜 샤인 엔터가 셔터 내리고 합병됐는지 절절하게 이해가 간다.
‘아······.’
그때, 한 가지 끔찍한 깨달음이 전두엽을 스쳤다.
진짜 문제는 이딴 거에 도장을 찍어주던 대표지.
뭔가 내가 잘못한 건 아닌데 내 잘못 같군.
“혹시······. 무슨일 있으십니까?”
그렇게 내 잘못인 듯 아닌 듯 내 잘못 같은 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사이, 김 비서가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왜요?”
“아니 갑자기 옷도 너무 정석으로 갖춰 입으시고, 평소에는 회사에 나와도······.”
“회사에 나와도?”
나는 의도적으로 상대의 뒷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했다.
이러면 저 떡대가 알아서 신강인의 행동패턴을 줄줄 읊어줄 테니까.
“괜찮으니까 말씀해 보세요.”
“으음······.”
이에 김 비서는 우물쭈물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절대로 먼저 일 달라고 하시는 일도 없고, 서류를 받아도 슥 훑어보고 대충 결제만 하거나 알아서 진행하라고만 하시던 분이 갑자기 이러시니까······.”
오케이, 그랬단 말이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까지처럼 할까요?”
나는 이 대목에서 서류를 탁,하고 덮으며 김 비서를 바라봤다.
“아뇨, 그건 아닙니다.”
이게 진짜······. 가만보면 은근히 할 말 다하는 스타일이란 말이지.
게다가 대답은 왜 그렇게 빠른데.
“그럼 좋은 거 아닙니까?”
“으음······. 그래도 너무 갑자기 이러시니까 혹시 무슨 큰일이 있으신 건 아닌가 싶어서요.”
“그런 거 없습니다.”
나는 그 말에 대충 대꾸한 뒤 서류를 펼쳐 주요한 정보들을 쭉쭉 읽어내려갔다.
‘오케이.’
더 읽을 것도 없다.
이 기획안은 쓰레기다.
이놈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기획을 했는지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드리블을 할 수 있을지도.
* * *
“자, 자, 다들 사원증 착용하시고.”
한 부장은 회의에 들어가기 전 주의사항을 일러줬다.
“대표님은 여러분 직급이나 이름 잘 모릅니다. 그러니까 뭐 물어보시거나 발표할 때는 이름이랑 직급 알아서 잘 대고.”
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저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킬 건 지켜야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한심해도 대표는 대표고, 재벌은 재벌이다.
“혹시 뭐 지적받으면 괜히 솔직하게 말하지 말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가요. 어차피 지적도 잘 안하시지만.”
사실 짬 좀 찬 직장인 입장에서, 신 대표는 그리 나쁜 사장은 아니었다.
‘나는 개같이 구르는데 저건 회사도 안 나오고 월급 받아가네?’하는 아니꼬운 감정이 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뭐?
괜히 깐깐하게 따지고 들며 갈구고 이것저것 물어보며 지적하면 그게 더 스트레스다.
여기에 실적 타령까지 시작하면 바로 눈앞에 사직서가 아른거리게 되는거다.
그런 사장보다야 가끔 나와서 도장이나 찍고 가는 인간 결제기가 낫다.
자신같은 월급쟁이는 적당히 일해도 월급 꼬박꼬박 나오고 회사가 망하지만 않으면 장땡이다.
게다가 어차피 이 회사의 본체는 따로 있지 않은가.
기획과 프로듀싱처럼 중요한 부분은 케이시스에서 해결해주고, 애들을 띄우는 건 본사 차원에서 해결해준다.
그럼 매출이 나오고, 월급도 나온다.
참신하고 새로운 시도?
모험적이고 실험적인 태도?
팀을 띄우기 위한 분골쇄신의 노력?
- 제가요? 그걸요? 왜요?
이게 한 부장의 포지션이었다.
괜히 까불다가 매출 떨어지면 독박 쓰기 딱 좋다.
혹시라도 잘 안된다?
그럼 잘난 외주 프로듀서 잘못이지.
데뷔 전부터 화제성 높은 프로그램 만들어서 홍보 빵빵 때려줘, 각 기획사에서 에이스들 뽑아서 올스타급으로 쫙 깔아줘, 그랬는데도 망하면 그건 기획이 개 같은 거 아닐까?
그 정도 밀어줬는데도 안되는 걸 나더러 어쩌라고?
애초에 그 정도로 투자했는데도 안 되는 게 나 하나 발바닥에 땀나게 뛰어다닌다고 달라져?
이상, 꿈도 희망도 없는 한 직장인의 변이었다.
“기획안 잘 봤습니다.”
그렇게 대표님의 뻔한 멘트로 회의가 시작됐다.
꿈도 희망도 야망도 없는 직장인에게는 아무런 감흥도 못 주는 시작이다.
하지만······.
“보고서 보니 연습생 풀이 상당히 부족하네요. 이거야 뭐 기획력 없는 회사 탓이지 여러분 잘못은 아니니까 넘어가고.”
뭔가 시작이 쎄하다.
“기획과 프로듀싱은 죄다 외주, 신인 개발팀은 인력 충원도 투자도 없고······. 다음에 또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팀 만들면 되는데 뭐하러 그런데 투자를 해. 정 연습생이 모자라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떨어진 애들 데려다 써. 본사 방침이 이런 식이면 어쩔 수 없는 거겠죠?”
맨날 반쯤 죽은 눈으로 하품이나 쩍쩍하던 대표님이, 꼭 물어뜯기 직전의 맹견처럼 눈알을 번득이고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이러면 여러분은 걸그룹이 아니라 솔로를 강하게 밀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설마 다른 팀 다 데뷔하고 새 프로젝트 그룹 나올 때까지 소속 아티스트 놀게 할 생각입니까?”
심지어 지적이 자못 날카롭기까지 하다.
“어, 그, 그건······. 우선 협력적인 관계에 있는 회사에 연습생 교환이나 이적을 요청할 수도 있고······.”
샤인 엔터에 들어온 이후 처음 겪는 맹렬한 갈굼에, 한 부장의 두피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협력적인 관계요?”
주섬주섬 꺼낸 변명에, 대표님의 눈이 흉흉하게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뮤즈온 활동 종료하면 각 회사가 다 새 그룹 런칭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우리 회사에 보내줄 연습생이 남아있습니까? 아니면 괜찮은 애들은 다 데뷔하고 사실상 방출 대기하고 있는 애들만 하나씩 모아서 팀 만들 겁니까?”
무사안일주의로 점철된 나태의 천국에 칼바람이 몰아치고, 어디선가 귀곡성이 들려왔다.
‘뭐, 뭐야, 오늘 분위기 왜 이래.’
‘대표님이 원래 이런 분이었나?’
‘화내는 것도 잘 생겼어······.’
눈 깜짝할 새에 회의실이 마굴로 변한 것을 느낀 직원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한 부장을 바라봤다.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여기서 입 잘못 놀리면 진짜 골로 가는 수가 있다.
그리고 부장은 원래 이럴 때 부하 직원 대신 장렬하게 전사하라고 있는 직책이 아니던가.
본디 높은 직급(과 연봉)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그러니까 여기서는 입을 다무는 게 좋겠다.
그것이 그들의 결론이었다.
“하하, 그래서 솔로 기획안도······.”
그리고, 그 무언의 압박에 등을 떠밀린 한 부장은 반사적으로 2안을 들이밀었다.
그가 알던 신 대표라면 이쯤에서 대충 넘어갈 거라는 안일하기 짝이 없는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애초에 그가 알던 신 대표라면 이렇게 따지고 들지도 않았겠지만.)
“솔로로 나가면 없던 기획력이 생깁니까?”
하지만 대표님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냉랭한 태도로 그렇게 되물었다.
‘아······.’
어떻게 하지?
갑자기 왜 이러지?
나더러 어쩌라는 거지?
아니, 그보다, 어떻게 대답해야 되는 거지?
회사 창립 이후 처음 겪는 위기에, 한 부장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그때, 대표님이 책상 위에 놓여있던 서류철을 덮으며 입을 열었다.
“어차피 뮤즈온 활동 종료까지 시간이 꽤 남았으니, 면밀하게 검토해서 다시 한 번 얘기해봅시다.”
이어서 청천벽력같은 한마디가 그의 귓등을 때렸다.
“내일부터는 매일 출근할 겁니다. 이제 놀만큼 놀았으니 제대로 일을 좀 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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