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냄새 (1)
“무서운 전공이요? 무슨 전공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나의 질문에, 김 비서는 정말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그렇게 반문했다.
······.
이봐요 김 비서님, 결정적인 타이밍에 왜 이래.
당신이 나한테 이러면 안되지!
전에 내가 뒷조사가 전공이냐고 물었을 때는 분명히 ‘에이, 아시면서······.’ 그랬잖아!
“대표님, 설마······. 그 말 믿으신 거 아니죠?”
이어서 그는 나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린 듯 실소를 흘렸다.
······.
하아, 엿 됐네.
설마 그거 농담이었냐.
‘스읍, 이러면 일이 복잡해지는데.’
지금 시점에서 그 등골이 서늘해지는 멘트가 농담이었다는 사실은, 그저 장난으로 웃어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이렇게 수상한 냄새가 상황에서 ‘재벌가의 비밀병기’는 문제를 풀어나갈 히든 카드가 될 수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이제와서 왜 그런 농담으로 사람 헷갈리게 했냐고 따질 수도 없고.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 건가······?’
이러면 한참을 돌아가야 하는데······.
‘아까 반응으로 봐서는 찌른다고 뭐가 나올 인간은 아닌 거 같고.’
그렇게 내가 다른 카드를 찾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있을 때, 김 비서가 돌연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확실히 이상하긴 하죠?”
표정으로 보나 말투로 보나, 그 역시 안 대표의 옷차림을 보고 뭔가 느낀 바가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자기가 모시는 대표님도 플렉스에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으니, 못 알아보면 그게 더 이상한 거겠지.
“회사 규모가 그렇게 큰 것도 아니고, 매출 규모 보니까 영업이익 아무리 잘 뽑아도 저런 데 돈을 펑펑 쓸 만큼 돈을 잘 벌지는 않는 것 같은데 말이죠.”
김 비서의 말마따나, 안 대표는 수상할 정도로 씀씀이가 헤펐다.
우선 쿠키엔터의 매출 180억 언더, 일반적인 연예기획사의 영업이익률은 15 퍼센트 언저리.
그럼 잘 쳐줘야 영업이익은 20억 전후라는 소리다.
여기에서 법인세도 떼야하고, 연봉에서 다시 세금 제외하고 어쩌고 하면······.
아무리 후하게 쳐줘도, 저렇게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천만 원이 넘는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둘둘 두르고 다닐 수입은 아니다.
“······. 성급하게 결론 내리지는 말죠. 혹시 압니까, 원래 집이 좀 사는 사람일지.”
이 대목에서, 나는 최대한 냉정하고 조심스럽게 처신 하기 위해 노력했다.
수상한 냄새가 진동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민감한 문제에 함부로 확신을 가지고 달려들었다가는 정말로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까.
그럼 나 뿐만 아니라 힐링- 요정과 정지후한테까지 피해가 간다. 이건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당장 나만 해도 다이아 수저를 물고 태어난 덕에 슬로우- 라이프를 지향하며 저런 물건을 턱턱 구매하는 고급스러운 취미를 가지고 있던 누군가를 알고 있지 않은가.
이 대목에서, 김 비서는 꽤나 의미심장한 답을 내놓았다.
“글쎄요······. 저 정도 씀씀이가 감당이 되는 집안이면 제가 모르는 게 더 이상한 일일 텐데요. 그것도 대표님이랑 동종 업계인데.”
그리고는, 진지한 목소리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좀 캐볼까요?”
“······. 아까는 농담이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농담이었는데요?”
아놔······. 이런 반가운 조크를 봤나.
“김 비서님, 혹시 요즘 제가 많이 편해졌습니까?”
“죄송함다······.”
“아닙니다, 농담이고요.”
“감삼다······.”
됐다, 그래도 재벌가의 비밀병기를 쓸 수 있다는 게 어딘가.
일단은 거기에 감사하자고.
“그럼 최대한 상세하게 부탁드립니다. 특히 재산과 횡령 쪽으로.”
이어지는 나의 요청에, 김 비서는 생각지도 못한 무시무시한 답을 내놓았다.
“합법적인 선에서 할까요, 아니면 정말 최대한으로?”
······.
나, 진짜로 이 사람이 조금 무서워질 것 같다.
저 ‘최대한’ 이라는 게 대체 무슨 뜻일까.
몹시도 궁금해지네.
“합법적인 선에서 하죠.”
“넵.”
“기간은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최대한 빨리 끝마치겠습니다. 그런데 조사 기간 동안에는 출근을 못할지도 모르는데······.”
대체 무슨 조사를 얼마나 상세하게 하길래 출근까지 못한다는 걸까.
심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멘트지만, 일단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넘어가자.
“그건 괜찮습니다. 당분간은 저 혼자 다니면 됩니다.”
“넵. 뭐 캐낼 때마다 바로바로 보고 올리겠습니다.”
하지만 우선은 이 정도로 하는 게 좋겠지.
법 어겨서 좋을 거 하나 없으니까.
* * *
“지후 너, 저 신 대표라는 사람이랑 친해?”
한편, 안 대표는 대기 중인 지후를 차 안으로 끌고 들어가 1대1 면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냥 얼굴 몇 번 본 게 다예요.”
“몇 번? 왜?”
“제작이랑 캐스팅 참여하시는데 당연히 봤죠. 오디션 장에서도 봤고, 대본 리딩 때도 참석 하셨고, 가끔 현장에도 오시니까.”
“······.”
안 대표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무뚝뚝했다.
어쩌면 이쪽이 진짜 성격이고, 사람들을 대할 때 보여주던 그 친절하고 겸손한 태도가 가식은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로.
“그런데 너한테 이런 걸 가져다 준다고?”
안 대표는 그렇게 말하며 제멋대로 쇼핑백을 뒤적여 영양제와 공진단 등을 꺼내 그것을 지후 앞에 내밀었다.
“하아······. 그냥 촬영에 지장 가는 게 싫으신가 보죠.”
당사자의 기분은 생각하지도 않고 선물을 마구 헤집어놓는 그녀의 모습에, 지후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자기 회사 배우, 그것도 꼴랑 한 명이 출연하는 작품에 그렇게까지 공을 들이냐고.”
“아, 꼴랑 한 명이니까 공을 들이겠죠.”
대화가 이어질수록 지후의 목소리에서는 참을 수 없는 짜증과 분노가 묻어났다.
심지어 캐스팅 논란이 났을 때보다도 더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반응이었다.
물론 그의 이런 태도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스탭들에게 들은 바로는, 신 대표는 이번 작품을 시작하기 전부터 예솔에게 엄청나게 공을 들였다고 했다.
화제가 된 ‘로맨스는 그린’의 혜서 역할도 직접 미팅을 진행하고 황 피디와 상의해 캐릭터를 변경하고, 그 후로 홍보는 물론이고 병풍 역할까지 자처하며 예솔을 띄우기 위해 모든 걸 다 했다고.
어디 그 뿐인가, 연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선생님부터 구해주고, 지금도 작품에 집중할 수 있게 광고니 뭐니 하는 것들은 모조리 뒤로 미뤘다고 들었다.
그런데 안 대표는?
여태까지 아무 것도 해준 게 없다.
‘아 하나, 있긴 하네.’
백성현의 폭행 논란이 터졌을 때, 자신을 이용해 노이즈 마케팅을 하자고 했던 것.
‘그것도 해준 거라면 해준 거지.’
반대로 신 대표는 자신을 보호해 주려고 했고.
이번 일도 마찬가지다.
신 대표는 자기 회사 사람도 아닌데 배우가 쓰러졌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몸에 좋은 걸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그런데 안 대표는?
지금 자신을 붙들어놓고 이런 말도 안되는 추궁을 하고 있다.
“대표님, 저 아직 몸 안 좋다고요. 좀 쉬게 놔두면 안돼요?”
참다 못한 지후는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너······. 지금 나한테 대드니?”
안 대표의 얼굴이 곧바로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이게 어쩌다 잘 풀려서 주목 좀 받았다고 벌써부터 싸가지가 없어지네? 내가 지금 나 잘되자고 이래? 너 앨범 안 낼 거야?”
* * *
한편, 강인은 쓸데없이 현장에 오래 머무르는 대신 스탭과 예솔, 희은 등을 만나 간단하게 응원의 말을 건넨 뒤 신속하게 회사로 돌아왔다.
마음 같아서는 안 대표와의 관계에 대해 조금 더 정보를 얻고 싶었지만······.
‘괜히 현장 어슬렁거리다가 안 대표가 가자마자 가서 말 걸면 의심만 사기 딱 좋지.’
모르기는 몰라도, 아까 자신을 바라보는 안 대표의 눈빛에는 경계심이 가득 묻어났다.
그리고 성급함은 언제나 일을 망치는 가장 큰 원인이다.
지금처럼 심증만 잔뜩이고 물증이 없을 때는 더더욱.
그러니 지금은, 다른 쪽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게 훨씬 더 전략적인 선택이다.
그것이 강인의 결론이었다.
“한 부장님.”
“네.”
왠일로 현장에 갔다가 금방 돌아온 대표님의 호출에, 한 부장은 곧바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저랑 잠시 얘기 좀 하시죠.”
“네, 알겠습니다.”
한 부장과 함께 대표실로 들어선 강인은 곧바로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JW 쪽에 계실 때 보이 그룹 기획에 참여하신 경험이 있던데, 수익 구조에 대해서도 조금 아시는 바가 있을까요?”
김 비서가 가져다 준 인사 서류에 따르면, 한 부장은 JW 계열사에 있을 때 남자 아이돌 그룹의 기획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거기에 샤인 엔터 자체가 뮤즈온의 매니지먼트를 맡았으니, 당연히 수익 구조에 대해서도 빠삭할 테고.
반면 자신은 아이돌의 수익 구조를 전문가 수준으로 알고 있지는 못했다.
빌보드에 이름을 올린 가수를 키워낸 적은 있지만, 그쪽과 이쪽 바닥의 수익 구조가 다르니, 한 부장만큼 정확하게 매출과 영업이익을 추산할 수는 없었다.
“······. 남돌 수익 구조요?”
대표님의 질문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차린 한 부장은 뭔가 꺼림칙하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반문했다.
그리고는······. 아주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대표님, 지금 하고 계신 생각이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조금 신중하게 생각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대표님이 정지후에게 관심이 있다는 건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안 대표나 쿠키 엔터에 대해 보고서까지 올리라고 하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영입을 위한 절차라고 생각했다. 정상적인 계약 해지 후 영입이라면, 전혀 문제될 게 없기도 하고.
그러나 아직 계약 기간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남의 그룹에 손을 대는 건, 완전히 이야기가 다르다.
그때, 대표님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안 대표가 횡령을 하고 있다고 해도요?”
“대표님, 무슨 근거로 그런 위험한 말씀을 하십니까.”
이에 한 부장의 얼굴은 점점 더 납덩이처럼 굳어졌다.
“오늘 현장에서 안 대표를 마주쳤는데, 김 비서님과 제가 똑같은 생각을 했더라고요.”
뒤이어 강인은 차분하게 자신이 본 것을 설명했고,
“······.”
한 부장은 말없이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들었다.
대표님의 말이 사실이라면, 확실히 뭔가가 이상하다.
이상해도 그냥 이상한 게 아니다.
쿠키 엔터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한 사람이 한 부장 본인이니, 더더욱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최소 상당한 액수의 매출 누락과 탈세, 아주 높은 확률로 횡령, 배임.
그러나······.
“대표님, 그렇다고 해도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는 기다리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강인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생겨났다.
한 회사의 부장으로서, 굳이 위험한 다리를 건너지 않으려는 마음은 이해가 간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오히려 그 편이 자신의 책무를 다하는 것일지도 모르고.
다만, 그간 한 부장이 보여온 태도가 문제였다.
그는 언제나 시키는 일만 하고, 조금이라도 책임을 져야할 것 같으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으려고 했으니까.
그러나 한 부장의 대답은, 정말이지 강인의 예상을 벗어나도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다.
“저희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지후 씨랑 그 멤버들 생각도 해야죠.”
“······?”
뭔가 그간의 패턴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그 대사에, 강인은 저도 모르게 한 부장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냥 책임 안 지려고 하는 말이 아닌 거 같은데?’
한 부장의 얼굴에서는 여태 한 번도 본 적 없는 결연함과 진지함이 묻어났다.
“말해보세요.”
“아이돌이 계약 문제로 회사랑 틀어지면, 정말 수습이 안 됩니다. 이미지는 물론이고 상표권 문제에······. 잘못하면 저희가 정지후 씨나 시크 멤버들 앞날을 망칠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순간 강인은 이 사람이 내가 알던 그 한 부장이 맞나, 하고 의심했다.
지금 그의 눈빛이나 표정은 아무리 봐도······. 진심으로 젊은 애들의 앞날을 걱정해주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그건 강인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저도 똑같습니다.”
“그럼 이 문제는 1년만 모른 척······.”
“아뇨, 그래서 지금 확인해둬야 한다는 겁니다.”
“네?”
“그러니까, 일단 믿고 따라주시죠. 이건 정지후 씨나 다른 멤버들에게 위기가 아니라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 작가의말
마무리가 마음에 안들어 수정을 하다보니 조금 늦었습니다.
오늘도 생각보다 사건이 빨리 굴러갔네요.
P.S. 좋은 제목이 떠올라 조만간 변경을 해볼 예정입니다.
응원과 걱정의 댓글은 모두 챙겨보고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더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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