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공간도약

4장 분석했다던 좌표 빨리 불러요! (11)

“부장님! 무리입니다!”

나탈리 함장의 급한 외침은 맹렬히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묻힐 뻔했다.

난간을 잡은 채 힘겹게 서 있던 부장은 나탈리 함장의 고함을 외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보아도 함선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화력 면에서는 앞서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과연 기함은 기함이었다.

헤르메스가 중력 분열기까지 갖추고 있을 줄은 부장도 예상치 못하였다.

누군가 좀을 파먹은 듯, 깨끗하게 날아간 미사일 발사대가 함교의 전면 유리를 통해 보였다.

부장은 발사대가 사라진 너머로 보이는 헤르메스 호를 노려보았다.

루나 에모스로 오자마자 부장을 반긴 것은 부장이 찾던 과학자 무리의 그 세 명이 아니었다.

이미 자신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총구를 들이민 채 대기하고 있던 헤르메스가 대신 부장을 반겼다.

“그 세 명은 찾아냈나?”

부장의 호랑이 같은 외침에, 통신 담당으로 보이는 제복 차림의 관제관이 어깨를 움찔하며 대답하였다.

“먼저 루나 에모스에 파견된 FSF에 의하면, 루나 에모스 제2공항 활주로에 세 명이 탔던 것으로 추정되는 함선이 있다고 합니다.”

“좋아, 헤르메스 호 처리는 나중에 도착할 연합군에게 맡기고, 우린 그들을 먼저 추적······.”

부장이 함장을 향해 검지를 올리며 명령하려는 찰나였다.

선체가 왼쪽으로 기울며 선회 기동을 펼쳤다.

방금까지 부장의 함선이 있던 곳으로, 5인치 포탄이 물 조리개에서 부어지는 물처럼 방사형으로 쏟아졌다.

구식 화약 무기까지 동원하며 싸워대는 걸 보면, 헤르메스가 단단히 부장을 혼내 줄 모양이었다.

간신히 균형을 잡은 부장은 휘청거리는 나탈리 함장의 팔을 잡아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어서 루나 에모스 공항으로!”

“넵!”

나탈리 함장은 빠르게 단말기로 새 명령을 내렸다.

선체가 180도 돌아 루나 에모스 공항을 향해 방향을 돌렸다.

꽁무니로는 전자교란탄과 연막탄을 있는 대로 퍼트렸다.

불꽃놀이처럼 터지는 연막이 넓게 퍼지자, 맹렬히 내뿜는 추진부의 불꽃만이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헤르메스 호는 참호에 머리를 처박고 손만 내놓은 채 총을 쏘듯, 마구잡이로 부장이 있을 법한 연막 속을 향해 난사하였다.

곧이어 헤르메스는 그 육중한 몸을 이끌고 부장을 쫓아왔으나, 이미 역부족이었다.

도망칠 때는 작고 날렵한 것이 유리하단 사실은 진리였다.

특히, 나탈리 함장이 직접 임명했다는 조종사는 뒤에서 지켜보는 나탈리 함장의 압박까지 느낀 모양이었다.

적의 시야에 걸리지 않도록, 조종사는 연막을 기가 막히게 이용하며 달의 표면을 향해 부장의 함선을 이끌었다.

부장의 함선 앞과 옆으로 스치는 공격들이 서서히 줄어갔다.

“얼마 남았나?”

“네, 루나 에모스 공항 활주로까지 2분 3초 정도 남았습니다. 지금 그들이 이륙한다면, 대략 상공 250km쯤에서 만날 것입니다.”

“어차피 저들도 도망치기 위해서는 일단 루나 에모스의 인공대기권부터 벗어나야 하네. 곧 시야에 보일 것이니 바로 전투 준비하도록.”

부장의 명령은 선내 전체에 전달되었다.

구석구석까지 들어간 명령에 따라 제복을 입은 관제관들과 정장 차림의 요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부장은 정장 외투를 손으로 털어낸 뒤, 두 손을 뻗어 난간에 올렸다.

함교 중앙의 전면 모니터를 노려보던 부장의 눈썹이 순간 치켜 올랐다.

부장은 옆에서 명령을 내리고 있던 나탈리 함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혹시 부상자나 사망자는 있나?”

“아직 파악 중입니다.”

“최대한 빠르게 파악하고, 보충병들을 투입하도록.”

중력 레이더를 지켜보던 날카로운 인상의 관제관이 의자를 돌렸다.

“헤르메스가 레이더에서 멀어집니다!”

부장은 새롭게 펼쳐진 창을 옆에 있는 모니터로 확인하였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옆에서 선체 점검에 열중이던 나탈리 함장이 다소 흥분된 톤으로 부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다행입니다, 부장님.”

“예상대로군.”

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연합정보부의 자그마한 함선 하나 파괴하자고 기함을 희생하는 건 자유우주연맹 입장에서도 손해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헤르메스의 화력은 분명 예상보다 강했다.

하지만, 연합이 알음알음 관리하고 있는 루나 에모스 코앞까지 쫓아오진 않을 것이라 어느 정도 예상했다.

이제 방해꾼도 없어진 터라, 부장은 속으로 기합을 다졌다.

“어쩌면, 진짜일지도 모르겠군.”

“네? 무슨 말씀······.”

“처음 붙잡았을 때, 툴론이 어디서 온 건지 알 수 있다던 그 여자 과학자의 말 기억하나? 헤르메스까지 나서서 우릴 방해하는 걸 보면, 뭔가 있긴 있는 모양인 것 같군.”

“그럴 리······ 부장님, 보입니다!”

수많은 폭격을 맞고 생명의 흔적이 남지 않은 전쟁터처럼 하얗고 울퉁불퉁한 달 표면만 보였던 전면 유리에, 알록달록한 불빛과 인공적인 선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나탈리 함장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나탈리 함장은 함선의 출력을 높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옆에 있던 부장은 시끄러웠던 여자 과학자의 말을 다시 생각하며,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았다.

“위상 중력 레이더 가동!”

“목표 포착! 거리 2,370km!”

레이더 화면이 전면 모니터에 뜨면서, 함교는 다시 바쁘게 돌아갔다.

부장은 입을 열었다.

“준비.”

짧게 말을 끝낸 부장은 전면 모니터를 뚫어질 듯 쳐다보았다.

자신의 부하를 죽이고, 이 난리를 피웠던 놈들이었다.

끝을 보아야겠다는 의지가 부장의 열의를 더욱 키웠다.

부장은 복수심 반, 궁금증 반의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할까요?”

함교 왼편에 앉은 무기 관제관의 물음에 나탈리 함장은 부장을 쳐다보았다.

모니터에 포착된 자그마한 함선의 모습은 한 손가락에도 부서질 과자로 만든 총알 같은 모습이었다.

부장은 손가락을 단말기에 올렸다.

여자가 말한 툴론에 대한 궁금증이 남아있었지만, 부장으로서 짊어질 책임과 복수심보다는 가벼웠다.

부장은 거리낌 없이 화면을 눌렀다.

“공격.”

짧은 명령과 함께, 함선의 양 측면에 달린 리디늄 이온포가 활성화됐다.

컨테이너 크기의 짧고 굵은 연두색 광선 네 줄기가 순서대로 발사됐다.

“고생하셨습니다.”

나탈리 함장은 여전히 전면 유리를 보고 있는 부장을 향해 몸을 돌려 마무리 지었다.

“하······ 함장님······?”

광선이 나아갈수록 긴장의 끈을 내려놓을 즈음, ITC를 보고 있던 관제관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나탈리 함장은 관제관의 당혹한 부름에 위화감을 느꼈다.

나탈리 함장은 재빨리 관제관을 향해 돌아보았다.

“뭐야?”

“사라졌습니다······.”

나탈리 함장은 자신의 목소리에 의문을 새겨넣어 반문했다.

“사라지다니?”

작가의말

읽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온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