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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펭귄의 서재

어쩌다 보니 공간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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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펭귄
작품등록일 :
2020.12.13 14:41
최근연재일 :
2021.03.05 18:15
연재수 :
106 회
조회수 :
19,936
추천수 :
184
글자수 :
390,460

작성
21.01.09 09:15
조회
181
추천
1
글자
7쪽

5장 죽 쒀서 개줬어. (8)

DUMMY

진욱은 고개를 다시 돌리며 말을 이었다.


“아니면 사라져요. 계산이 잘못되었던지, 출발지점이랑 도착 지점이 잘못되었는지 몰라도 사라져서는 다시 나타나지 않아요.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제대로 거기에 도착한 지도 몰라요.”


진욱은 잠시 뜸을 들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부모님은 유통업을 했어요. 화성이랑 지구 사이로 식료품을 나르고 다녔어요. 부자는 아니라도 근근이 먹고살 만했었죠. 그러다가, 공간도약이 개발되고 점차 상용화되면서 부모님은 불안해지기 시작했죠. 경쟁업체에 뒤처지면 어떡하나 싶으셨겠죠. 그땐 아직 저도 어렸어요.”


진욱은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어쨌든, 두 분은 빚을 내서 공간도약 엔진을 샀어요. 사용법을 익히신다고 종일 화물선 안에서 안경을 만지작거리시던 모습이 아직 기억나요······ 아마 여덟 번째였을 거예요. 삼 일이면 오셔야 하는 부모님이 일주일이나 연락이 없었어요.”


희진은 조용히 진욱의 말에 집중하였다.


“그때부터 경찰에 실종 신고도 하고, 돈 되는 건 모조리 팔아서 원래 목적지였던 화성에도 혼자 가보고 스페이스넷에 도움도 요청하고 다 해보았죠······ 결국은 아무 흔적도 못 찾았어요. 그렇게 갑자기 두 분은 사라지셨어요.”

“몰랐어요······.”


진욱은 느릿하지만, 진정성이 느껴지는 회상을 하였다.


희진은 고해성사를 듣는 신부의 마음처럼 경건해지며 동시에 진욱이 가엾게 느껴졌다.

진욱은 희진의 시선을 눈치채고, 애써 표정을 풀었다.


“미안해요. 한 번에 너무 많이······.”

“아뇨,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아무튼, 이젠 괜찮아요. 다 지난 일이에요.”


진욱은 괜히 손사래를 치는 척하며 희진을 안심시켰다.

희진은 천천히 자신의 고개를 진욱의 옆에 있던 벽에 기대었다.


“혹시 그러면, 조종사를 한 것도······.”

“부분적으론 맞아요. 이걸 하면 뭔가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어요. 악착같이 공부했어요. 장학금이 필요했던 상황도 한몫했지만요. 뭐······ 현실은 이제 테러리스트 취급받고 쫓기고 있는 신세네요.”


진욱은 자조적인 농담을 살짝 얹으며 말을 마쳤다.

그러고 고개를 돌려 희진을 바라보았다.


어두웠던 낯빛이 조금 가신 모양인지, 희진은 천장을 보며 피식 혼자 웃었다.


“그러네요······ 참, 공간도약을 그렇게 싫어하면서 어떻게 우리가 도망칠 땐 한 거예요?”

“뭐, 그땐······ 목숨이 걸려 있었으니까 눈 딱 감고 한 거죠.”


진욱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희진이 진욱의 어깨를 툭 치며 입을 열었다.


“에이, 뭐예요. 아무튼, 그래서 결론은······ 우리도 언젠가 사라진다?”

“그런 뜻은 아니에요.”

“아이, 알아요. 농담이에요.”


희진이 특유의 장난을 치는 걸 보니, 진욱의 독백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고마워요, 얘기해줘서.”


그렇게 농담이 끝나고 진욱이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 희진이 조용히 속삭였다.


진욱이 그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희진의 말은 고요한 감호실에 따뜻한 기운을 만들었다.


진욱은 별말 없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진욱과 희진의 표정은 아까 전보다 편안해 보였다.



------------------------------



“국장님, 다시 한번 생각해주십시오.”


목소리 저 밑에 분노가 서린 듯, 부장은 단호하게 말하였다.

부장의 외침은 책상 위에서 은은히 빛나는 홀로그램을 향해 꽂혔다.


그러나 시시각각 변화하는 홀로그램 저 너머의 현실의 벽을 뚫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안 되네. 크리스토퍼 부장. 자네의 공적은 내가 잘 알지만, 이번 건은 말했다시피 이미 연합군과 상임위원회에서 일괄적으로 처리할 사안이 된 걸 알잖나. 더군다나 내 명령도 어기고 말일세.”


딱딱한 기계음으로 무정하게 들려오는 거절의 대답은 부장의 모세혈관 구석구석을 더욱 조여 왔다.


그렇지만, 부장은 다시 침착하게 대응하였다.


“이번 사안은 객관적으로 보아도 명확합니다. 그 셋을 잡는데 제가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국장님. 툴론이 저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국장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들은 어떻게 해도 괜찮으니, 툴론에 대한 정보 조사는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부장은 문장 하나하나를 차분히 생각하며 말을 이어갔다.

조리 있는 말투에 무게를 실어 담는 부장의 스타일은 이번에도 빛을 발했다.

그러나 그것이 매번 통하는 것은 아니었다.


“부장, 보고들은 전부 다 읽어 보았네. 부장이 지금 이러는 게, 죽은 요원들 때문인지 아니면 현장에서 뛰던 시절의 툴론과의 일 때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네. 하지만, 둘 다 이번 문제에 영향을 줄 순 없어. 이건 부장의 일이 아닌, 연합군과 정보부 상임위원회에서 조사하고 처리할 일이네. 여긴 전장이 아니야. 자네 앞에 놓인 명패와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손 떼게.”


부장의 감정 어린 말은 모자이크로 시시각각 변하는 홀로그램 앞에서 무너졌다.

부장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양보한 만큼 대단한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을 줄은 몰랐다.


홀로그램을 바라보는 부장의 머릿속에 죽은 요원의 모습들과 파샤와 함장의 말들이 스쳐 갔다.


“말했다시피 돌아오면 휴가라도 갔다 오게. 갔다 오면 어울리는 자리 하나 정도는 마련해 놓겠네. 그럼.”


부장이 뭐라고 하기 전, 홀로그램은 마지막 비수를 꽂았다.

그리고 원래 그랬던 것처럼, 홀로그램은 책상의 한 점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홀로그램이 사라진 방 안에는 부장밖에 남지 않았다.

부장은 꺼져간 책상 한구석을 바라본 채,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부장의 모습은 은은한 백열등에 비추어진 평범한 중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속은 타오르는 불길을 품은 사자였다.


부장은 옆에 걸쳐진 정장 외투를 걸치며 자신의 단말기를 꺼내었다.


“이리 오도록.”


부장은 짧게 명령을 내린 후, 단말기를 몇 번 눌러대었다.

단말기 위로 홀로그램이 펼쳐지며 선체 ITC가 떠올랐다. 부장은 찬찬히 그것들을 읽었다.


이윽고, 노크 소리가 이어지고 파샤가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부장은 인사를 하며 들어오는 파샤에게 손짓하였다.

파샤는 들어온 문의 옆 인식창에 손목을 대어 문을 잠시 밀봉했다.

부장은 담배를 하나 꺼내어 깊게 들이마셨다.


“자네 말처럼 되었군.”

“네? 그게 무슨······.”

“죽 쒀서 개 줬어. 국장님이 모든 걸 관리하겠다는군. 저 셋과 툴론 전부.”


작가의말

읽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온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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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7장 더 좋은 함선을 구하러 가야지. (3) 21.01.17 147 2 7쪽
45 7장 더 좋은 함선을 구하러 가야지. (2) 21.01.16 145 2 7쪽
44 7장 더 좋은 함선을 구하러 가야지. (1) 21.01.16 160 1 7쪽
43 6장 하나 더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8) 21.01.15 136 1 7쪽
42 6장 하나 더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7) 21.01.14 137 3 7쪽
41 6장 하나 더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6) 21.01.13 141 2 7쪽
40 6장 하나 더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5) 21.01.12 147 2 7쪽
39 6장 하나 더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4) 21.01.11 156 2 7쪽
38 6장 하나 더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3) 21.01.10 158 2 7쪽
37 6장 하나 더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2) 21.01.10 165 1 7쪽
36 6장 하나 더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1) 21.01.09 171 1 7쪽
» 5장 죽 쒀서 개줬어. (8) 21.01.09 182 1 7쪽
34 5장 죽 쒀서 개줬어. (7) 21.01.08 175 1 7쪽
33 5장 죽 쒀서 개줬어. (6) 21.01.07 180 1 7쪽
32 5장 죽 쒀서 개줬어. (5) 21.01.06 183 3 8쪽
31 5장 죽 쒀서 개줬어. (4) 21.01.05 188 1 7쪽
30 5장 죽 쒀서 개줬어. (3) 21.01.04 194 1 7쪽
29 5장 죽 쒀서 개줬어. (2) 21.01.03 195 1 7쪽
28 5장 죽 쒀서 개줬어. (1) 21.01.03 208 1 7쪽
27 4장 분석했다던 좌표 빨리 불러요! (12) 21.01.02 194 1 7쪽
26 4장 분석했다던 좌표 빨리 불러요! (11) 21.01.02 191 1 7쪽
25 4장 분석했다던 좌표 빨리 불러요! (10) +2 21.01.01 196 2 8쪽
24 4장 분석했다던 좌표 빨리 불러요! (9) 20.12.31 204 3 8쪽
23 4장 분석했다던 좌표 빨리 불러요! (8) 20.12.30 196 2 8쪽
22 4장 분석했다던 좌표 빨리 불러요! (7) 20.12.29 212 2 7쪽
21 4장 분석했다던 좌표 빨리 불러요! (6) 20.12.28 220 2 8쪽
20 4장 분석했다던 좌표 빨리 불러요! (5) +2 20.12.27 238 3 7쪽
19 4장 분석했다던 좌표 빨리 불러요! (4) 20.12.27 262 3 7쪽
18 4장 분석했다던 좌표 빨리 불러요! (3) +2 20.12.26 271 2 8쪽
17 4장 분석했다던 좌표 빨리 불러요! (2) +3 20.12.26 294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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