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좀비로 뒤집힌 세상에서 (1)
자주 등장하는 세계 멸망 가설인 좀비 아포칼립스.
그 좀비가 각 세계에 등장했다.
특징은 영화에서 보던 것과 너무나 똑같았다.
아직까지는.
전 세계는 이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정말 진짜 피눈물 나는 노력이었다. 그렇게 1년도 되지 않아 변이자와 보균자를 구별했고 치료제도 완성했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
나는 어제와 똑같이 일어나 출근하며 버스에서 휴대폰으로 뉴스를 읽었다.
[국내 좀비 바이러스 치료제 수출]
[감염 확인 후 5분 이내 간이 치료제 사용 의무화]
[연예인 이 모 씨 좀비 바이러스 완치]
같은 기사 내용이 계속 올라왔다.
왜애에엥.
그러던 중 사이렌 소리가 크게 울리자 사람들은 크게 허둥대며 웅성거렸다. 때마침 재난문자 알림도 왔다.
[긴급. 변이 좀비 바이러스 감염자 확인. 창백한 피부와 비정상적인 동공 축소를 보임. 확인 시 신고 후 가급적 그 자리에서 대피하십시오.]
바이러스가 변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꺼버리자마자 또 재난문자가 수신되었다.
[긴급. 변이 바이러스의 경우 현 백신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정부에서 상황을 파악 중이며 비상사태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어 한 남자가 중얼거렸다.
“잠깐만 회사 출근 못하는 거 아니야?”
작게나마 사람들이 희망 섞인 탄식을 뱉었다.
에이, 설마. 라고 생각하지만서도 메일을 뒤적거리고 연락을 기다리듯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않았다.
- 이번 정류장은 000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000 입니다.
발걸음이 가벼워진 채 버스에서 내렸다.
평소와 다를 것은 없지만 회사에 들어간다면 어떨까!
새어나오는 웃음은 참지 않았다.
서두르려 지름길인 좁은 골목길을 걷고 있었는데 길바닥에 새 야구방망이가 어색하게 놓여있었다.
처음에는 누가 버리고 간 쓰레기라고 생각했지만 가까이서보니 확실히 아니었다.
“완전 새 것 같은데 버려져 있는 것도 그렇고······.”
더 황당한 포인트는 따로 있었다.
[야구 방망이]
야구방망이라는 파란 글자가 허공에 적혀있었는데 증강현실이라는 표현이 가장 가까웠다. 저건 왠지 주워야할 것 같아 허리를 숙여 손으로 잡았다가 묘한 위화감에 놓아버렸다.
[신의 게임: 좀비 시티 온라인 배포 시작]
[최신버전 업데이트 완료]
[사용자 동기화 시작]
[사용자 동기화 완료]
[난이도 설정을 위한 튜토리얼이 시작됩니다]
[튜토리얼을 진행하시겠습니까?]
눈앞으로 이상한 잔상이 보였다가 사라지더니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았다. 이어 몸이 기울자 자세를 낮추고 심호흡을 했다. 어제 일찍 잘걸. 피곤해서 헛것이 보이네.
“꺄악!”
몸을 잠시 멈추고 있던 와중에 골목의 끝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한 여자가 바닥에 드러누운 채 무엇에게 위협받고 있었다. 대충 살펴도 위험한 것 같아 다급히 신고하려 휴대폰을 꺼냈다.
“살려주세요!”
비명이 점점 거칠어졌다. 여자는 가방을 어떤 것의 입에 쑤셔 넣으며 버티고 있었다. 잠깐, 온 세상이 멈춘 듯 멀리 보이는 어떤 것에 집중했다.
짐승 같은 소리, 풀린 동공, 사람을 물려는 저 습성.
“좀비다. 저건 좀비야.”
누가 봐도 저건 좀비였다. 하지만 내 반응을 무시하는 듯 좀비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더욱 바둥거렸다. 여자의 팔이 조금씩 꺾여갔다.
좀 전의 알림창과 방망이, 좀비에게 습격 받는 여자.
가상현실게임 소설을 많이 봤던 내가 생각할 수 있었던 건.
“진짜 게임 튜토리얼이냐.”
방금 자연스럽게 스킵한 것 같은데. 중요한 게 있었으면 나중에 찾아보지 뭐. 이미 늦었으니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당연히 새로운 도전은 위험하다.
그러나 이번 도전은 다름 아닌 게임이다.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여야지.”
바닥에 떨어져있던 야구방망이를 순식간에 주웠다.
[야구방망이를 획득하셨습니다.]
[야구방망이가 귀속 상태로 변경됩니다.]
[획득하신 무기를 사용하여 좀비를 물리치세요.]
동시에 자리에서 튀어 나갔다.
재빠르게 좁은 골목길의 끝을 향해 달렸다.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거친 숨을 쉬며 넘어지려는 다리를 계속 움직였다.
“넌 아웃이야.”
아직 난 달리고 있다. 골목의 끝.
아직은 침만 흘린 깨끗한 좀비 녀석.
좀비를 물리치는 공식.
머리 공격.
야구선수처럼 한쪽 발을 땅에 고정한 채 온몸을 비틀었다. 바닥에 깔려있던 작은 돌들이 긁히며 소리를 내었다.
퍽.
방망이로 좀비의 머리를 힘 있게 치자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 때문인지 두 팔이 떨렸다.
“괜찮아요? 얼른 도망가요.”
누가 누구한테 도망가라고 할 처지인가.
바닥에 널브러진 좀비가 몸을 들썩거렸다.
여자는 고개를 가볍게 숙이고는 도망쳤다.
제대로 들어갔는지 잠시 주춤거렸다.
한대 더 쳐야하나.
크와아아앙.
고민할 틈도 없이 다시 달려들었다.
망설이다 손을 물릴뻔 하자 정신이 들며 식은땀이 났다. 때린 오른쪽 머리가 조금 움푹 파인 것 같은데.
한 번 더.
또 내리쳤다.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쳤다.
확인 사살은 필수다.
“영화에서 많이 봤어. 뒤통수 맞는 거.”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었다. 왜 매번 적에게 여지를 주는 건지 주인공이 이해되지 않았다. 오랜만에 격한 움직임에 숨이 차올랐다. 뭉개진 시체는 헛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한숨 돌리며 주변을 살피던 중 몸이 굳어버렸다. 한 번도 못 봤던 차가운 검은 철문이 눈에 띄었다. 그 안에서는 좀비의 괴성이 들렸다.
“이게 게이트인가?”
무척 차분한 나에게 한 번 더 놀랐다.
작가들은 언젠가 이런 세상이 올 줄 알았을까.
가까이가 보려던 찰나 핸드폰이 울렸다. 같은 팀 과장님이었다.
“네, 서이민입니다.”
“왜 아직 출근 안했어? 미팅 준비는 언제할 건데?”
“지금 회사 앞이에요. 과장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빨리 출근해.”
뚜두둑.
통화가 끊겼다.
그랬지, 여긴 한국이다.
*
출근 5분 전이라 서둘러 회사로 달렸다.
회사로 들어서자 몇몇 사람들의 손에 무언가 들려있었다. 다들 나와 똑같은 아침을 보냈구나.
인사팀 유 대리는 삽을, 구매팀 박 과장님은 기다란 망치를, 그 중 압권은 전산팀 진 사원이었다.
“와우. 전기톱.”
그나저나 아무도 제지당하지 않고 들어갔다.
나와 유 대리, 박 과장님, 그리고 진 사원이 엘리베이터에 타자 피 냄새가 올라왔다. 침묵을 깨고 유 대리님이 말을 꺼냈다.
“저 혹시 이 무기 같은 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사팀의 청순가련한 유영지의 얼굴과 옷에 핏방울이 가득했다. 마치 공포영화의 주인공 같았다.
인벤토리창이 안 열린다고 하면 이상한 취급을 받을 것 같아 모른다고 대답했다.
“가상현실게임이라면 인벤토리창이 있을 텐데 안 뜨네요.”
구매팀 박의형, 그는 용감했다.
이어 인벤토리, 가방, 창고 등 별의별 단어를 허공에 외쳤다. 그런 그를 보다 다리에 닿는 서늘한 기분에 유 대리님 쪽으로 붙었다.
“아 죄송해요······. 이 상황 아니었으면 아마 경찰서에 가있겠죠? 하하하······.”
전기톱은 보기만 해도 서늘했다.
엘리베이터가 멈출 때마다 한명씩 내렸다.
마지막으로 내가 10층에서 내렸다. 내 자리로 걸어가는 길도 피범벅 이였다.
“과장님, 안녕하세요.”
“평소에 늦지도 않던 사람이. 그건 또 뭐야. 오늘 아침에는 뭘 들고오는거야.”
과장님의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튜토리얼을 받지 못한 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익숙하게 메일을 읽었다.
- 굿모닝.
내 맞은편에 앉아있는 동기의 메신저였다.
- 오빠 굿모닝이고 뭐고 뭐 알아낸 거 있어?
- 아직. 그나저나 난 소방도끼. 너는?
- 야구방망이. 그 다음 튜토리얼 하지도 못했어.
- 별거 없어. 그냥 아이템 소비하는 거임.
“퀘스트창.”
[진행 중인 퀘스트 1]
[튜토리얼: 음식을 먹어 HP 를 회복하세요.]
상태 창은 안 뜨는데 퀘스트창은 뜨네. 난 자리에서 일어나 탕비실로 갔다.
[믹스커피]
[초코맛 과자]
탕비실이 파란 글씨로 가득했다. 아이템 이름 표시 온오프가 절실했다. 과자 하나를 집어 들고 씹어 삼켰다.
[방어구를 획득한 뒤 장착하세요.]
다음 퀘스트를 하려 자리로 돌아와 방어구를 찾았지만 딱히 아이템으로 보이는 건 없었다.
- 나도 방어구에서 막혔어. 퇴근하고 찾아봐야할듯.
- 같이 찾자.
일단 퇴근부터 하기로 했다.
머리는 진정하라 외치는데 몸은 근질거려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같은 마음인지 계속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무기를 구경하는 건가.
나도 한 번.
“다들 자리에 앉아서 일하세요. 무슨 일 있어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무기를 가지고 온 건 안 이상한가요, 팀장님?
그리고 1분 뒤 단체 메신저방이 생겼다.
- 박해명: 기술팀 여러분. 정보 공유 좀 합시다.
팀장님이었다.
*
팀장님이 이렇게 깨어있는 사람일 줄이야.
메신저 방에서 알아낸 건 딱히 없었다. 퀘스트를 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것 뿐.
그나저나 팀장님 무기는 골프채였다. 잠깐 이거 평소에 생각하던 무기 같은데.
- 강처용: 다들 튜토 어디쯤이세요? 전 능력 선택이에요.
- 서이민: 엥? 그게 뭐에요?
- 민현우: 저 아직 방어구인데.
- 김유은: 저도 방어구요!
- 박해명: 강 대리 제 자리로 와보세요.
우리 팀 강 대리가 던진 돌멩이는 격한 폭풍을 불러왔다.
- 강처용: 게임을 좀 해서 패턴이 익숙해요.
누가 작업 안전화를 방어구라고 생각할까.
[방어구 강화석을 이용하여 방어구를 강화하세요.]
최악의 레파토리였다. 모든 게임은 끝은 확률게임인걸까.
다행이도 강화석이 주어졌다. 조각난 수정이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방어구에 가까이대자 빛이 나며 강화수치는 ‘+1’ 이 되었다.
- 강처용: 다음이 능력 선택인데, 무척 고민되네요.
오랫동안 고민할 정도의 능력이 뭘까.
[능력을 1가지 선택합니다.]
[능력 획득에 제한은 없습니다. 신체 강화, 전투 속성은 세 가지, 초능력은 한 가지를 장착할 수 있습니다.]
이제 좀 튜토리얼 같네.
[신속(신체 강화), 길거리주먹(전투), 투시(초능력) 중 한 가지를 선택하세요.]
망설임 없이 신속이지.
다른 두 개의 능력은 당장 별 도움이 안 된다. 신속하게 좀비를 피하고 그 틈에 야구방망이로 무찌른다.
내 전투 방식이 정해졌군. 나름 괜찮을 것 같아 무척 기대되었다.
[신속(신체 강화) 능력을 획득하셨습니다. 초기 획득에 따라 10급으로 조정됩니다. 몸의 움직임이 조금 빨라집니다.]
[비어있는 신체 강화 슬롯에 자동으로 장착됩니다. 현재 능력은 ‘능력창’ 을 외치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능력창.”
[능력]
신체 강화 : 신속(10급) / 빈 슬롯 / 빈 슬롯
전투 : 빈 슬롯 / 빈 슬롯 / 빈 슬롯
초능력 : 빈 슬롯
- 서이민: 다들 선택하셨나요?
- 민현우: 당연히 초능력이죠. 전 ‘괴력’ 이요.
- 김유은: 그러게요. 전 초능력 ‘짐승의 귀’ 나와서 이거 선택했어요.
- 강처용: 능력에 등급이라도 매겨져 있으면 좋을 텐데.
[능력 강화목을 사용하여 5분간 능력을 강화하세요.]
신속한 움직임을 느껴보고 쓰기로 했다.
능력 선택은 대부분 빠르게 진행했는데 강처용은 여전히 고민 중이었다.
“대리님. 도대체 뭐가 떴길래 고민이에요?”
내 옆자리의 그를 불렀다.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가까이 오더니 안경을 살짝 올리고는 귓속말을 했다.
“신체 강화는 절대갑옷, 전투는 제 1검의 검술, 초능력은 염력이요.”
뭐지.
이 엄청나 보이는 능력은?
절대갑옷 들었을 때 오! 갖고 싶다, 였고 제 1검의 검술은 고민되겠네, 였는데 염력까지 듣자 한숨이 나왔다.
“선택받은 사람 뭐 그런 거에요?”
잠시나마 신속을 얻어 행복 회로를 무한히 돌렸던 내가 초라해졌다.
이건 안 봐도 최고 등급이다. 하나만 있어도 안 죽을 것 같거든.
“느낌에 스킬 얻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 말은 초기 성장 속도가 지금 스킬에 좌우된다는 거죠.”
말을 흐리면서 책상 위에 올려둔 장검을 쥐었다.
기다란 칼자루와 칼집이 단단해 보였다.
저게 무기구나.
내 야구방망이를 보면 눈물 날 것 같다.
“결정했어요.”
“뭐하시려고요?”
“잠시 대기입니다. 검도 있으니 지켜보려고요.”
귀를 의심했다.
진지한 표정으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괴상한 신중함과 독특함을 떠나 왠지 이 사람.
왠지 주인공의 기운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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