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초과몰입러 님의 서재입니다.

세계 최강 대한민국, 한국인만 빼고 다 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초과몰입러
작품등록일 :
2023.08.25 13:31
최근연재일 :
2023.12.29 11:00
연재수 :
76 회
조회수 :
10,789
추천수 :
196
글자수 :
399,038

작성
23.12.15 15:09
조회
27
추천
0
글자
12쪽

68 여왕의 운명

DUMMY

68


여왕의 운명






“저와 결혼해 주실래요?”


“컥.”


물 한 잔 안 마셨는데 사례들리는 줄 알았다.


“뭘 좀 잘 못 드셨나요?”


“네?”


아, 이건 말이 좀 잘못 나왔다.

일국의 공주한테 쓸 말은 아니었다.


유진은 침착을 유지하기 위해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는 20세기와 21세기, 22세기를 살았다.


생각해보면 21세기에는 여자들에게 제법 인기도 있었고, 그를 좋아한다는 여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자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해본 적도 없고.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여자가 자신에게 결혼하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공주라는 사실이, 예쁘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늘 처음 보는 여자였다.


“당황스럽네요.

이것도 예언인가요?”


“안되나요?

실례지만 유진 공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또 생각이 났다.

결혼이 말도 안 되는 이유가.


“저는 백...”


아무리 어차피 거절할 청혼이지만 그래도 차마 나이가 136세라는 이야기는 못하겠다.

이렇게 예쁜 여자 앞에서.


나중에 마음이 변할 지도 모르니 여지를 좀 남기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백 퍼센트 결혼할 준비는 아직 안 되어있습니다.

나이도 서른 여섯 밖에 안 되고요.”


“서른 여섯, 좋군요.

저는 스물 두 살이에요.”


열 네 살 차이.

유진은 갑자기 어린 시절에 읽었던 키다리 아저씨의 주인공들 나이 차이가 ‘14살’이었다는 생각이 났다.


“열 네 살 차이면 좀...”


“연애하기는 확실히 적당한 나이는 아니군요.

하지만 정략 결혼하기는 딱 좋은 나이 같아요.

서로 무관심할 수 있고.

다른 애인이 생겨도 마음의 동요도 별로 없을 것 같고요.”


이 여자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가?

유진은 순간적으로 여자가 열 네 살 연상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혹시 다른 여자가 있으세요?

아니면 이미 결혼을 하셨거나.”


물론 둘 다 유진에게는 해당이 없다.

유진은 필사적으로 자신에게 다른 여자가 있는지 떠올리려 했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레아는 유진이 당황하는 모습을 웃으면서 지켜보았다.


“역시 안 되는군요?”


“그게 저한테도 생각할 시간이 좀.”


눈앞에 있는 여자가 아무리 절세의 미인이고, 왕국의 계승자인 공주라고 해도,

유진도 지구로 돌아가면 재벌 회장이다.

레아가 설사 알스메르의 여왕이 된다 해도 이 나라에서 여왕의 존재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거기에 비해 재벌 회장인 유진은.


‘나도 허수아비인가?’


제기랄.

자신의 이름을 딴 유진 그룹이지만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돌아간다면 제대로 회장 노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돌아갈 수 있기나 한 걸까?


“유진 공이 곤란하다면 저도 어쩔 수 없죠.

대신 다른 부탁은 들어주시겠죠?”


“그것만 아니라면...”


어째 이야기가 묘하게 돌아간다 싶었지만 좀 더 들어봐야겠다.


“제국의 황태자가 곧 옵니다.”




***




“결국 황태자를 상대해 달라는 말씀이군요.”


네오-라테안 제국의 황태자.

정확하게 말하면 아직은 황태자가 아니었지만 곧 황태자로 즉위할 사람이 이곳에 온다.


“그런데 제가 황태자를 상대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유진 공께서는 우리 왕국이 현재 처한 정치적인 상황에 대해서 들으셨죠?”


“약간은 알고 있습니다.”


“원래 지금 재위중인 황제 라테안 38세는 자신의 장남을 후계자로 삼았고 황태자로 책봉했습니다. 그런데 라테안 38세는 무려 60년째 재위하고 있어요.

유진 공은 황제가 오래 그 자리에 있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아시나요?”


“잘 모릅니다.”


60년을 재위한 황제라.

조선에서 가장 오랫동안 왕위에 있었던 영조가 52년 동안 재위하지 않았던가?

유진이 살았던 시대에는 대통령 임기가 5년 남짓이었다.

60년을 한 사람이 집권한다.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나는 몇 년 동안 회장을 할 수 있을까?’


물론 이 순간에도 엉뚱한 생각이 드는 건 유진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몇 년은 고사하고, 몇 달 만에 회장 자리에서 쫓겨날 판이었다.


하지만 이런 유진의 속사정과 상관없이 레아의 표정은 진지했다.


“왕의 마음이 계속 바뀌고 있다는 것이에요.

지금 왕은 60년 전 일은 기억도 못하고 있을 걸요.”


현 황제가 즉위한 초창기에는 자신의 권력을 다지기 위해 노력했고, 큰 아들을 황태자로 책봉한 것도 이를 위한 조치였다.


“황제의 권력 강화는 성공적이었어요.”


너무 성공적이어서 문제였다.

큰 아들을 황태자로 책봉한 것은 후계 구도를 확실하게 함으로써 황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런데 문제는 황제의 권력이 충분히 강화되자 오히려 일찍 책봉되어 오랫동안 황태자의 자리에 있던 바로 그 아들과의 관계가 문제가 되었다.


“황제가 나이 들어감에 따라 황태자도 같이 나이 들어갔죠.

하지만 황제가 나이 들면 원숙해지지만, 황태자가 나이 들면 초조해지죠.”


게다가 황태자 이후에도 아들들은 줄줄이 태어났다.

각기 다른 어머니를 둔 아들들이.


“제국은 일부 다처제인가요?”


“일부 다처?

강한 자가 여러 배우자를 차지하는 것은 어디서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유진 공의 고향에서는 그렇지 않은가 보죠?”


유진은 잠시 생각했다.

내 고향 지구에는 그런 야만적인 제도는 거의 사라진지 오래다.

종교적인 이유로 일부다처제를 고수하는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제 고향에서는 일부일처가 원칙입니다.

굳이 파트너를 추가하고 싶은 사람들은 몰래 두지요.”


“아! 공식적으로 하지 않고 비공식적으로 하는 군요.

어쩌면 그게 더 현명할 수 있겠네요.”


유진의 세계에서는 제도적으로 일부 다처가 보장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유럽처럼 법적으로는 일부일처지만 따로 정부를 두는 지역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사라진 풍습.

그런데 여기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흥미롭네요.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유진 공과 함께 공의 고향에 대해 듣고 싶어요.”


잠시 잊고 있었다.

여기는 이세계(異世界).

힘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세상이다.


“여기서는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죠.

강한 남자는 여러 여자를 거느리고, 반대로 강한 여자도 여러 남자를 거느려요.”


레아의 설명에 갑자기 유진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럼 공주님도 공주니까, 여러 남자를 거느릴 수 있겠군요.

결혼도 여러 명과 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그중 1인 분을 저한테 할당하려 한 겁니까?”


어쩌면 여왕의 남편은 쿼터가 있는지도 모른다.

1인은 귀족, 1인은 평민, 1인은 이방인 이런 식으로.

혹시 이미 남편이 있나?

과거 지구도 그렇고, 여기 세상도 여자 나이 22세면 결혼을 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레아의 답변은 유진의 상식을 뛰어넘었다.


“남편이요?

어떤 여왕들은 그런 사람도 있다더군요.

여러 남자를 거느린.

하지만 알스메르의 여왕은...

단 한 명의 남편도 가질 수 없답니다.”


알스메르의 여왕은 여러 명의 남편이 허용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정식 결혼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면 아이는 어떻게?

공주를 두 분이나 낳았잖아요.

그리고 아들도...

아, 실례했습니다.”


알스메르 왕실에서 공식적으로 아들을 출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 말은 꺼내지 않는 게 좋겠지.


“실례랄 건 없고요. 사실이니까.

저에게 한 명의 손위 형제가 있었죠.

보통의 가정이라면 오빠라고 불릴.”


레아는 아무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여왕은 특별한 감정을 가지는 남자를 둘 수 없다는 것이 왕국의 법입니다.

하지만 후계자는 있어야하죠.”


“아니, 여왕의 개인적인 감정까지 규제할 정도라면 여왕 자리를 두는 이유가 뭡니까?

여왕이라는 지위를 없애거나 아니면 여왕의 출생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들이 새로운 여왕을 뽑으면 되잖아요.”


유진은 화가 난다는 듯이 소리쳤다.

처음에는 솔직히 레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공감해주는 척 하는 의도도 있었다.

그런데 듣다 보니 진짜 화가 났다.


“이 왕국을 지배하는 대귀족들의 정치적인 필요 때문에 존재하는 거죠.

여왕 자리를 두는 것은 권력을 가진 진짜 왕 자리를 두고 귀족들끼리 싸우는 것을 막기 위한 안정 장치고요.

그리고 만일 여왕의 후계자를 귀족들이 뽑는다면 그래도 자기 세력에서 선출하려고 귀족들이 서로 싸우지 않겠어요?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왕국은 2,000년 동안 여왕이 존재했고, 그 여왕들은 그냥 숨만 쉬면서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주어진 최고의 사명이었어요.

그리고 딸 한 둘 정도 낳아서 귀족들의 평화를 유지시켜 줘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어요.”


“그러면 결혼도 못하는 데 아이는 어떻게 만듭니까?”


“결혼 안 하면 애를 못 만드나요?”


“그런 건 아니겠죠.

우리 나라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집에서 쫓겨난 젊은 여자가 들판에서 왕을 따라 궁궐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그 궁궐에 있다가 햇빛이 그녀의 배를 비추자 임신을 하게 되었답니다.”


유진이 어릴 때부터 알고 있던 어느 고대 국가의 건국 신화였다.


“거기 왕도 우리처럼 별 볼 일 없었나요?

그 젊은 여자는 왕이랑 손만 잡고 잔 거겠죠?”


“거기까지는...”


“다음에 좀 더 자세히 알아서 저에게 이야기해주세요.

재미있네요.

아무튼 우리 왕국에서는 결혼은 못하지만 그래도 여왕이 남자의 손은 잡게 해주는 행사가 있답니다. 물론 ‘왕국의 평화를 위한’ 여왕의 의무 중에 하나죠.”


레아 입장에서는 분노할만한 일이겠지만, 유진의 입장에서는 흥미로운 이야기이기도 했다.

행사라는 말이 좀 걸리긴 했지만.


“그러면 공주님도 그런 행사를 치렀나요?”


“아뇨. 그 행사는 여왕에게만 허용됩니다.”


그러면 이 나라에는 왕녀는 있어도 왕손은 존재할 수 없다는 이야기.

그런데 그러면?


“좀 조심스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여왕이 아주 오래 사셔서 후계자인 공주님이 아주 늦은 나이에 왕위에 오르면 어떻게 됩니까?”


유진이 살던 21세기에도 그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공주는 아니고 왕자였는데, 70년간 왕세자였던 사람.

그런데 남자야 몇 살에 왕이 되건 아이를 낳을 수 있겠지만 여자는 다를 텐데.


“그런 일은 없답니다.”


이때 유진은 보았다.

레아가 진정으로 분노하는 모습을.


그리고 그녀의 진짜 속마음을 알 것 같았다.


“알스메르의 여왕은 그렇게 오래 살지 않아요.

항상 적절한 시기에 세상을 떠난답니다.”


“...”


“...”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감쌌다.

레아는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유진은 할 말이 없었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리디아 공주는 어떻게 됩니까?

역시 마찬가지의 인생을 살아야 하나요?”


“여왕의 운명은 여왕 본인과 계승자에게만 적용되요.

둘째 이하의 공주는 해당이 없답니다.

다만 첫째 공주가 여왕이 될 때까지는 궁에서 나가거나 결혼을 할 수가 없어요.

혹시라도 여왕이나 맏 공주에게 변수가 생기면 그걸 대비해야 하니까요.”


리디아도 그런 운명이었구나.


그런데 이런 비통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질문이었지만 유진은 떠오르는 의문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런데 왜 저한테 결혼하자고 하셨습니까?

결혼하면 안 된다면서요.”


레아는 쓸쓸히 웃었다.


“도망가고 싶었어요.

유진 공은 이방인이잖아요.

어디로든 저를 데려갈 수 있잖아요.

땅 밑이든, 아니면 다른 차원의 세계이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세계 최강 대한민국, 한국인만 빼고 다 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글을 시작하면서 23.08.29 199 0 -
76 76 엘프녀 23.12.29 56 0 11쪽
75 75 망국의 비즈니스 23.12.28 19 0 12쪽
74 74 망국의 준비 23.12.23 27 0 11쪽
73 73 황태자의 야심 23.12.21 25 0 12쪽
72 72 분열하는 귀족들 23.12.20 25 0 11쪽
71 71 여왕의 예언 23.12.19 26 0 12쪽
70 70 황태자, 방문하다. 23.12.18 26 0 11쪽
69 69 커다란 거래 23.12.16 29 0 11쪽
» 68 여왕의 운명 23.12.15 28 0 12쪽
67 67 왕과 공주 (2) 23.12.14 30 0 12쪽
66 66 왕과 공주 (1) 23.12.13 27 0 11쪽
65 65 왕의 판결 (2) 23.12.12 35 0 11쪽
64 64 왕의 판결 (1) 23.12.11 35 0 12쪽
63 63 공중섬의 비밀 (2) 23.12.09 33 0 12쪽
62 62 공중섬의 비밀 (1) 23.12.08 33 0 12쪽
61 61 출동! 강하보병 23.12.07 37 0 11쪽
60 60 하늘의 진짜 주인 23.12.06 38 0 12쪽
59 59 애꾸눈 선장 (2) 23.12.05 33 0 12쪽
58 58 애꾸눈 선장 (1) 23.12.04 34 0 11쪽
57 57 지켜야 할 보물 (2) 23.12.02 41 0 12쪽
56 56 지켜야 할 보물 (1) 23.12.01 40 1 11쪽
55 55 공주와 공주 (3) 23.11.29 43 1 12쪽
54 54 공주와 공주 (2) 23.11.28 46 2 12쪽
53 53 공주와 공주 (1) 23.11.27 49 2 12쪽
52 52 하늘로 이어지는 신세계 23.11.24 54 2 12쪽
51 51 여왕의 나라 (3) 23.11.21 60 2 12쪽
50 50 여왕의 나라 (2) 23.11.15 68 2 11쪽
49 49 여왕의 나라 (1) 23.11.13 65 3 12쪽
48 48 람부르스의 기둥 (2) +2 23.11.12 63 3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