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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몰입러
작품등록일 :
2023.08.25 13:31
최근연재일 :
2023.12.29 11:00
연재수 :
7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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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99,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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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5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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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50 여왕의 나라 (2)

DUMMY

50


여왕의 나라 (2)






비서의 안내도 없이 접견실에 불쑥 들어온 것은 중년의 남자였다.

굉장히 잘 생긴 얼굴과 무척이나 재수없는 표정을 한 남자는 유진을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여왕님께 볼 일이 있어 실례를 찾아왔는데, 손님이 있었군요.”


온화한 말투와 달리 유진을 바라보는 표정은 쌀쌀맞기 그지 없었고 그 표정은 명백히 나가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남자의 축객령을 받은 유진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뭐하는 새끼지?’


유진은 여왕의 손님이다.

그런데 여왕이 아닌 갑자기 어디서 들어온 인간이 그에게 나가라고 하고 있다.


유진은 왕궁을 방문하기 전에 릴로에게 들은 이야기를 다시 떠올렸다.




“알스메르는 인간의 왕국입니다.

대부분의 귀족들은 인간이지만, 일부 엘프들이 섞여 있죠.”


“엘프?

귀 크고 키 크고 무지 오래 산다는 종족말인가?”


“엘프가 귀가 큰가요?

폐하 고향의 엘프들은 귀가 큰가 보군요.

여기 엘프는 인간과 외형상 큰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인간보다 유연하고 육체적으로 강인한 종족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수명도 인간보다 긴 편이죠.”


“우리 엘프랑은 좀 다른 모양이군.

그러면 이 도시는 인간과 엘프가 섞여 사는 곳인가?”


“원래 인간의 도시입니다만 제국 초창기 공신들 중에 엘프가 있고,

그 후손들이 지금도 도시의 귀족으로 살고 있습니다.

특히 알데브란 후작이 세력이 막강합니다.

폐하도 그 자와 마주치면 조심하셔야 합니다.”


“나랑 알지도 못하는 자인데, 왜 조심해야 하지?”


“현재 그 자가 이 왕국 최고의 권신(權臣)이라 합니다.

여왕도 무시하는 오만한 성품이고 현재 왕국 내에서 대표적인 친제국파이죠.

의심도 많고 여왕을 항상 감시하고 있다고 하니까 일단 조심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 놈인가?’


이런 유진의 의문에 답하듯이 여왕이 입을 열었다.


“알데브란 후작, 어쩐 일이죠?”


“하하, 폐하.

제가 왕궁을 드나드는 데에 별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자주 제 얼굴을 보면 여왕님도 좋은 일이 생기시겠죠.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레아 공주님의 제국 방문도 좀 논의하고 싶군요.”


공주의 제국 방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여왕이 눈살을 찌푸렸다.


“결국 그 이야기를 하러 왔군요!”


지금까지 계속 온화한 표정만 짓던 여왕의 입에서 처음으로 격렬한 분노가 쏟아졌다.


“현재 우리 왕국의 가장 큰 현안 아닙니까? 여왕님.

안탈레스 백작님의 안부도 좀 전해야 하고요.

일단 저 자를 내보내고 이야기하시죠.”


후작의 눈이 유진을 향했다.


“이봐라, 이방인.

네 볼 일은 끝났다. 나가봐라.”


유진의 눈도 후작을 향했다.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후작의 눈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재수없게 나오나 보자, 이 놈아.’


저 엘프가 후작이면 유진은 왕이다.

게다가 엘프의 나이가 많다해도 유진 또한 백 서른 여삿 살이었다.

물론 백 살은 억울하게 먹은 나이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저 놈은 재수없었다.

지하의 폭군이었던 아르지스보다 훨씬 재수없는 놈이다.


유진이 미동도 하지 않자 후작이 소리를 질렀다.


“이런 무례한 놈이!”


“후작!”


어떻게 나오는지 보려는 생각으로 팔짱을 끼고 있던 유진 대신 여왕이 끼어들었다.


“진짜 무례한 자가 누군지 모르겠군요.

이 나라의 여왕은 나고, 당신은 내 신하예요.”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음성이 터져나왔다.


“그러니 나가세요.

아직 이 분의 볼 일은 안 끝났으니까.

당신은 내가 다시 부르죠.

부르고 싶어질 때.”


후작이 여왕과 유진을 번갈아 노려보았고, 이를 지켜보고 있던 시종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




“아까는 좀 놀랐죠?

미안합니다.

손님에게 우리 왕국의 치부를 보였네요.”


분노한 알데브란 후작은 여왕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접견실을 나갔다.

그리고 여왕은 펄쩍 뛰는 시종장까지 내보낸 뒤에 유진과 대화를 시작했다.


“아닙니다.

후작이 너무 무례하게 굴어서 좀 놀랐을 뿐입니다.

저보다 여왕님이 곤란하셨을 것 같습니다.”


“익숙한 일이에요.

우리 왕국은 처음이더라도 나를 찾아오기 전에 조사는 해보셨겠죠?

현재 우리 왕국에서 여왕은 장식일 뿐입니다.

실제로 나라를 지배하는 건 저런 대귀족들이고, 그 뒤에는 제국이 있어요.

아시죠?”


여왕의 물음에 유진은 가볍게 고개만 숙였다.

애초에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이 여왕이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알데브란 후작은 제국을 등에 업고 설치는 대귀족 중에 가장 세력이 큰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 아들까지 양자로 데리고 있죠.”


여왕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왕국은 오로지 여왕으로만 승계됩니다.

하지만 여왕도 인간인지라 딸만 낳을 수는 없어요.

그래서 아들이 태어나는 경우, 바깥에 양자로 내보냅니다.”


역시 릴로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여왕의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귀족의 양자로 갔다고 했는데, 그 귀족이 알데브란 후작이었구나.


“처음에 아들을 낳은 이후, 딸 둘이 잇달아 태어났어요.

큰 딸은 왕국을 이어야합니다.

하지만 둘째 딸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요.

어차피 이 나라는 여왕부터 별다른 관심의 대상이 아니지만요.”


여왕은 쓸쓸한 미소를 보였다.


“그럴리가요.

온화하고 아름다우신 여왕님의 존재 만으로도 백성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겁니다.”


“오, 아부는 못할 줄 알았는데 수준급이네요.”


“저도 바라는 게 있기 때문에 여왕님께 잘 보여야죠.”


“그 바라는 게 뭔지는 조금 있다 듣기로 하죠.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면 왠만하면 해드릴게요.

하지만 난 힘없는 여왕인거 아시죠?”


알다마다.

하지만 당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기에 찾아온거지.


“원래 용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더 궁금한 게 생겼습니다.”


“더 궁금한 것이라고요? 그게 뭐죠?”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시종장까지 내보내시고요.”


백 년 만에 깨어나서 재벌 회장이 된 지 아직 한 달이 안 되었고, 드워프 도시의 왕이 된 지는 닷새째였다.

그래서 왕가의 예법 같은 건 잘 몰랐지만, 여왕이 유진과 독대하기 위해서 시종장을 내보냈다는 것이 큰 파격이라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왜 그러는 걸까?


“음... 그건요.”


여왕은 천천히 옥좌에서 일어나서 접견실의 창문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가느다란 팔을 뻗어서 커튼을 치기 시작했다.

접견실 모든 방의 창문이 커튼으로 드리워지면서 컴컴해졌다.

커다란 접견실에 남은 조명 기구는 천정에 매달린 상들리에뿐.


그리고 여왕은 천천히 그에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이런 묘한 분위기 속에서 뜬금없이 유진의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 있었다.


‘여왕은 몇 살이나 되었을까?’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처음 여왕을 만났을 때에는 30대 후반 정도로 보였는데, 아이를 셋이나 낳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좀 더 많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여왕이 유진에게 다가와서 말을 건넸다.


“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죠?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요?”


“아닙니다. 여왕님.

제가 틱이 좀 있어서.”


여왕은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거냐는 표정을 지으면서 두 팔을 유진을 향해 뻗었다.


부드럽게 다가오던 그녀의 두 팔은 유진의 뺨 부근에서 멈추었고 그 순간 여왕의 머리 뒤에서 후광이 비쳤다.


“눈부십니다. 여왕님.

나이는 좀 있으시지만 아름다우시네요.”


백 살이 넘은 유진의 이런 낮간지러운 소리를 무시하고 여왕이 입을 열었다.


“잘 안 들리나요?

조금 더 다가와 봐요.”


“그냥 여기서 하면 안 될까요?

더 가까워지는 건 좀 부담스러워서.”


여왕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괜찮을까요?

내가 마력이 좀 약해서 너무 거리가 벌어지면 효과가 없거든요.”


“네?

마력이 약하다는 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러면 방금 제게.”


“네, 마법을 걸었어요.”


여왕이 웃었다.


“도청을 막는 마법을요.

짐작하시겠지만 이 궁궐에서 내가 가는 모든 장소에는 도청 장치가 있거나 숨어서 보고 듣는 눈과 귀가 곳곳에 있답니다.

시종장도 그 중에 한 사람이죠.”


“시종장도요?

그 사람은 폐하에게 충성스러운 사람같이 보였는데.”


“충성스럽죠.

그 충성심 때문에 늘 나를 감시하죠.

좀 불편해도 참아주세요.

내가 대단한 마법사가 아니라서 마력으로 커버할 수 있는 범위가 이 정도 밖에 안 된답니다.”


바로 코 앞에서 여왕이 속삭였다.


유진이 오른 손을 들었다.


“질문 있습니다. 여왕 폐하.”


“질문? 하세요.”


“시종장을 내보내고 도청 방지 마법까지 펼쳤다는 건 뭔가 저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저를 어떻게 믿고 이러는 거죠?”


‘우리는 오늘 처음 보는 사이라고!’


이렇게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렇게까지 말하기는 힘들었다.


여왕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오늘 처음 보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래요.”


“네?”


“똑똑한 분 같은데, 왜 모르는 척 하세요.

나는 아는 사람은 믿을 수 없어요.

처음 보는 사람일수록 더 믿을 수 있는 게 이 나라 여왕의 운명이랍니다.”




***




“그럼 가보겠습니다. 시종장님.”


유진은 그를 건물의 입구에서 배웅한 시종장 트레랑 백작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음... 유진 공.

실례가 안 된다면 내가 한 마디 당부드려도 되겠소?”


“얼마든지요. 백작님.”


유진은 시종장의 눈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 여왕님과 있었던 일들은 평생 비밀로 간직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알스메르 여왕님의 남자들의 숙명이지요.

이방인이시지만 그 정도는 이해하시리라 믿소.”


뭔가 시종장이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눈치였지만 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가 오해하고 있는 것이 더 나았다.


“물론입니다. 그럼.”


궁 앞에 대기시켜 놓은 마차에 올라탄 유진은 좀 전에 여왕과 나눈 이야기를 다시 되새겼다.




“둘째 공주님을 도와달라는 건가요?

여왕의 명령이신가요?”


“아니요.

당신은 내 신하가 아닙니다.

이건 알스메르 여왕의 명령이 아니라,

불쌍한 어미의 부탁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제가 그럴 힘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요.

무엇보다 왜 저에게 그런 부탁을 하시는지.”


“그냥...

내 느낌이라고 해두죠.”


그 순간 유진은 잠시 잊고 있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알스메르의 여왕에게는 대대로 내려오는 ‘예언의 권능’이 있다는 걸.


“아까 청원하신 건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나가면서 시종장에게 서류를 받아가세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하나만 더 부탁드리고 싶군요.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지하 도시에서 뜬금없이 드래곤을 때려잡은 이유는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왕국에는 ‘예언의 권능’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걸 활용할 생각을 했어야 한다.


“묻고 싶은 게 있다고요?”


“네, 제가 찾고 있는 게 있습니다.”


지구로 돌아가는 길을.


여왕이 미소를 다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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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73 황태자의 야심 23.12.21 25 0 12쪽
72 72 분열하는 귀족들 23.12.20 25 0 11쪽
71 71 여왕의 예언 23.12.19 25 0 12쪽
70 70 황태자, 방문하다. 23.12.18 25 0 11쪽
69 69 커다란 거래 23.12.16 28 0 11쪽
68 68 여왕의 운명 23.12.15 27 0 12쪽
67 67 왕과 공주 (2) 23.12.14 30 0 12쪽
66 66 왕과 공주 (1) 23.12.13 27 0 11쪽
65 65 왕의 판결 (2) 23.12.12 34 0 11쪽
64 64 왕의 판결 (1) 23.12.11 35 0 12쪽
63 63 공중섬의 비밀 (2) 23.12.09 33 0 12쪽
62 62 공중섬의 비밀 (1) 23.12.08 33 0 12쪽
61 61 출동! 강하보병 23.12.07 36 0 11쪽
60 60 하늘의 진짜 주인 23.12.06 38 0 12쪽
59 59 애꾸눈 선장 (2) 23.12.05 33 0 12쪽
58 58 애꾸눈 선장 (1) 23.12.04 34 0 11쪽
57 57 지켜야 할 보물 (2) 23.12.02 40 0 12쪽
56 56 지켜야 할 보물 (1) 23.12.01 40 1 11쪽
55 55 공주와 공주 (3) 23.11.29 43 1 12쪽
54 54 공주와 공주 (2) 23.11.28 46 2 12쪽
53 53 공주와 공주 (1) 23.11.27 49 2 12쪽
52 52 하늘로 이어지는 신세계 23.11.24 53 2 12쪽
51 51 여왕의 나라 (3) 23.11.21 60 2 12쪽
» 50 여왕의 나라 (2) 23.11.15 68 2 11쪽
49 49 여왕의 나라 (1) 23.11.13 64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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