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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남 님의 서재입니다.

신세계로부터 : 씨앗전쟁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도리푸
작품등록일 :
2022.01.17 14:35
최근연재일 :
2022.05.13 05:56
연재수 :
104 회
조회수 :
15,852
추천수 :
419
글자수 :
582,282

작성
22.04.22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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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Ep.19 인간의 영역(4)

DUMMY

챙그렁!


검은 아스팔트 바닥에 권도일의 검 적월이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하악.. 하아..”


권도일은 차가운 바닥에 그대로 대자로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한밤중에 갑작스럽게 시작된 전투는, 별빛만 간신히 떠있는 새벽녘에 끝이 났다. 동이 트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 그야말로 새벽의 한가운데.


“괜찮으십니까 권 대장님?”


그런 그에게 제 1 궁수단장 최윤아가 다가와 물었다. 권도일은 괜찮다는 뜻으로 그녀에게 손을 살짝 흔들어 보였다.


호해검을 익힌 서대문 연합의 이볼버들은 반자련의 습격을 맞아, 정말 말도 안 되는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압도적인 무력으로 연합의 사기를 끌어올린 한 사람. 바로 돈의검이라 불리는 무사 권도일.


그의 활약을 두 눈으로 직접 지켜본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직접 목격하지 못한 사람들 역시, 서울 시민들이 곳곳에서 촬영한 영상들을 보고서 칭송해 마지않았다. 이제는 전 국민들이 이 서울 한복판에서 펼쳐지고 있는 세기말스러운 결전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서대문 연합의 수호자라 부르기 시작했다. 끊임없는 전투가 서울 곳곳에서 일어났고, 그럴 때마다 권도일을 지칭하는 수식어가 계속해서 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오늘 새벽. 스스로 또 하나의 벽을 깨며 성장했다.


슈웃 탓.


심각한 부상자들을 먼저 치료한 은혜진이 권도일이 누워있는 옆으로 내려앉았다. 권도일은 은혜진에게 가장 깊은 상처인 허벅지를 내놓으며, 어두운 낯빛으로 물었다.


“사망..자는?”

“네 명.. 광훈이랑 성호.. 그리고 궁수단의 하은이랑 세진이..”

“아..”


오늘 새벽에는 그동안 피해가 없었던 궁수단에서 사망자가 둘이나 나왔다. 고개를 떨군 채, 눈을 감고 어깨를 들썩이고 있는 최윤아를 보고는 권도일도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누워있는 권도일의 두 눈가를 따라 주르륵하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흘간 쉼 없이 이뤄진 전투. 그동안 여덟 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반이 오늘 새벽에 희생된 것이다.


“크흐흡.. 흐으..”


권도일은 결국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다. 그의 허벅지에 마나의 빛을 뿌리고 있던 은혜진도 침울한 얼굴로 눈시울을 붉게 물들였다.


“크흡.. 내가.. 내가 조금 더 빨리 마나웨폰을 깨달았다면.. 으흐흑..”


권도일은 동료들의 죽음이 자신의 부족한 재능 탓인 것만 같아, 눈물을 멈추기가 힘들었다.


물론 예전에는 잔디밭이었던, 잡초 가득한 시청 앞 광장에 널브러진 시체들은, 대부분 반자련의 이볼버들이었다.


이번 전투로 인해, 또 1개 중대의 병력. 약 100여 명의 이볼버들이 사망한 반자련에 비하면, 서대문 연합의 피해는 미미한 수준이었고, 전투의 결과는 서대문 연합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하지만 이 압도적인 승리에 기쁨을 표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상처를 회복하고 장비를 정비하며, 또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다음 전투를 준비하기에 바빴다.


“혜진아. 세트는..? 세종 사람들은 어디쯤 오고 있대?”

“어제 밤중에 윤 소령 무전이 들어와 있었어. 중간에 흑랑단과 맞닥뜨려 전투 중이라고..”

“하아.. 그쪽에는 별일 없어야 할 텐데.”


권도일은 대충 치료가 끝난 삐거덕거리는 몸을 일으켜, 자신의 애검 적월을 챙겨 들었다. 치열한 전투에 사용된 검 치고는, 검의 상태가 아주 깨끗했다. 전투 중에 마나웨폰의 묘리를 깨달은 덕이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아?”

“응? 뭐가?”


권도일이 시체들이 누워있는 광장 방향을 바라보며 눈썹을 구기자, 은혜진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권도일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그러고 보니.. 동물들 시체가 거의 없네..?”


은혜진의 말대로 동물들의 시체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간밤에 최후 거점을 공격해왔던 병력은 반자련 1개 중대와 동물들 수십 마리. 확실하게 수를 세어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스무 마리는 당연히 넘는 숫자였다. 그러나 바닥에 누워있는 동물들의 시체는 고작해야 세 구뿐이었다.


부아아앙!


꺼림칙한 위화감이 스치던 그때, 광장 방향으로 연합의 차량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들어왔다.


덜컥.


차에서 급하게 내린 것은 순찰 4조장 김정문과 그의 연인 안미연이었다. 김정문은 뒷좌석의 문을 열고 축 늘어진 여인을 안아들고 외쳤다.


“혜진아!!”


권도일의 시선이 의식을 잃은 여인에게로 향했다.


“하 교수님..?”


하지연의 옷은 여기저기 찢겨, 끔찍한 화상으로 자글자글해진 왼쪽 팔을 모두 드러내고 있었다. 옷들은 마치 불길에 타버린 것처럼 보였지만, 전혀 그을린 자국이 없었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곳은 허벅지 뒤쪽을 베인 기다란 검상이었다.


은혜진은 하지연의 상태를 확인하며, 재빨리 치료를 시작했다. 출혈이 적지 않아 보였지만, 약한 심박이라도 붙어있었기 때문에 은혜진의 치료 마법이 닿자마자, 하지연의 혈색은 바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괜찮아. 곧 깨어나실 거야.”


은혜진의 얘기에 하지연을 이송해 온 김정문과 안미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다급한 표정으로 권도일을 붙잡았다.


“권 대장님. 1타격대가..”

“그래! 1타격대원들은 왜 안 보여?”


권도일 역시 그것이 궁금하던 차였다. 하지연은 이현호가 이끄는 제 1타격대와 함께 다니고 있었기에, 보이지 않는 그들의 행방을 물을 수밖에 없었다.


“청상연.. 청계천 상인 연합을 반자련 놈들이 포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저희와 2타격대가 정찰을 나갔다가 고립되었는데..”

“뭐..? 그래서?”

“근처에 있던 1타격대가..”

“그래서 지금.. 1타격대와 2타격대, 그리고 너희 조원 병무까지 그곳에 대신 고립되어 있다는 얘기야?”

“네..”

“아.. 현호가 또..”


춘천에서 고립되었던 1타격대.. 권도일은 자신을 대신해서 검은 불꽃을 막아낸 이현호를 떠올리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이에 권도일이 차량 방향으로 달려가자, 김정문과 안미연 역시 다시 차량에 탑승했다. 권도일은 뒷좌석에 같이 타려고 하는 은혜진을 말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정비를 채 끝내지 못한 몸을 일으키는 다른 연합원들을 향해 돌아섰다.


“다들 곧바로 따라오지 말고, 최대한 몸을 추스른 다음에 청상연으로 와. 특히 아라 너!”


권도일은 가장 아끼는 애제자 조아라를 콕 집어 가리켰다. 그녀는 전투의 치열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피투성이 넝마 같은 옷을 갈아입지도 않은 채 권도일을 따라가려다 제지당했다. 권도일은 뜨거운 눈빛을 빛내는 동료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순찰 1조와 1궁수단에서 다섯 명 정도는 이곳에 남아. 그리고 혹시라도 습격이 시작되면 전원 차량으로 빠르게 북한산 방향으로 달려.”

“대장 그러면...”

“그런 상황이 오면.. 최후 거점도 포기한다.”


말을 마친 권도일까지 탑승한 차량은 청상연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청계천에 고립된 서대문 연합원들의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았다. 연합원들이 지역의 건물들과 지형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하지연이 오래전부터 청계천 상인 연합을 적들이 노릴 주요 장소로 지정했었기 때문에, 이곳 빌딩 숲 곳곳에는 화기와 트랩들을 비롯한 여러 가지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때문에 사도단장 황학두를 필두로 한 사도단은 단의 세력이라는 명성에 비해, 강력한 위용을 뽐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넓은 포위망을 펼쳐 놓은 뒤 서서히 압박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이런.. 무능한.. 너 이 새끼! 네놈 분명 여기 출신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 자꾸 헤매냔 말이야!”


황학두에게 멱살을 붙들린 사도단원은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아무리 이 빌딩 숲에서 직장 생활을 했던 직장인이라도, 제대로 아는 골목은 그가 다녔던 건물이 있는 몇 개의 골목뿐이라는 것은 뻔한 사실. 이 지역을 전략적으로 분석한 서대문 연합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에이! 쓸모없는 새끼!”


황확두는 자신의 단원을 내팽개치고서 서대문 연합원들이 사라진 빌딩 숲 반대 방향을 향해 몸을 돌렸다.


“흥! 정의의 수호자들께서 상인들이 죽어 나자빠져도 계속 그렇게 숨어 있을지 두고 보자고.”

“어.. 이승민 단장님께서 상인들은 되도록 건들지 말라고..”

“이런 씨팔!”


후웅!


황학두의 손에서 눈부신 하얀 빛과 함께 불꽃이 뿜어져 나와, 방금 간언을 한 자신의 부하의 가슴에 작렬했다.


부하는 오 미터 가량 뒤로 날아가 청계천 난간에 몸을 부딪힌 뒤 몸을 축 늘어트렸다. 그의 깨끗하게 관리된 사도단의 무복은 그을린 자국도 없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내 말에 토 달면 진짜 죽일 거야. 너희들이 이승민 똘마니야? 처신 똑바로 해!”


잔뜩 흥분한 황학두는 커다란 코를 벌름거리며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그 녀석들 데려와!”

“예.. 예!”


그의 분노에 찬 목소리에 사도단원들은 신속하게, 반자련이 숨겨놓았던 비장의 수를 꺼내기 위해 움직였다.


쿵! 쿵! 쿵!


얼마 있지 않아, 물이 거의 흐르지 않아 마른 풀들이 무성해진 청계천을 따라서, 육중한 발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발소리의 주인공들은 바로 아프리카코끼리 네 마리.


“뿌우우우우!!”


보통의 코끼리가 내는 소리라고 할 수 없는, 귀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포효 소리가 청계천을 따라 울려 퍼졌다.


“으윽..”


재빠르게 귀를 막아 고막을 보호한 사도단원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코끼리들의 까만 눈빛은 어딘지 모르게 비웃음을 띠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 녀석들은 동물원으로 끌려와 인간에 대한 적개심을 품은, 야생의 기억을 간직한 녀석들 중 마나를 사용하는 개체들이었다.


반자련은 몇 년 전부터 전국의 동물원을 뒤져, 이런 동물들을 확보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었다.


“그래그래! 착하지 이 녀석들! 자 이제 저기 숨은 놈들이 잘 들을 수 있게, 아주 화려하게 이 상인 골목을 부숴버려라!”


그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코끼리들은 청계천의 무너져 내린 둑을 타고 올라와, 황학두가 가리킨 골목으로 거대한 발소리를 울리며 느릿느릿 걸어갔다.


“뿌우우와!!!”


콰쾅!!


마치 채찍처럼 휘두른 코에 의해, 상인 연합의 입구에 놓여 있던 경비실 건물을 비롯해, 2층짜리 건물이 폭삭하고 주저앉았다. 마나의 힘이 실린 강력한 일격임이 분명했다.


그때, 시청 방향에서 차량이 시끄러운 바퀴 마찰음을 내며 골목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뭐야 저건? 아까 도망친 놈들 아냐?”


끼이이익.


급하게 멈춘 차의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내리자마자 그의 검을 뽑아 들었다.


은빛으로 빛나는 검날, 핏빛을 닮은 코등이. 최근 엄청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돈의검 권도일의 애검 적월이었다.


권도일은 차에서 내려, 무너져 내린 청상연의 입구와 검은 코끼리 네 마리를 번갈아 보며, 뭔가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바로 예언가 나유미의 예언.


‘폐허가 된 청계천.. 거대한 적.. 그런데 펄럭이는 날개는.. 아!’


코끼리들은 커다란 귀를 펄럭이며, 마치 불도저같이 건물들을 무너뜨려 나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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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Ep.18 태백산의 마녀(2) 22.04.14 73 3 13쪽
83 Ep.18 태백산의 마녀(1) 22.04.13 65 3 11쪽
82 Ep.17 무안혈맹(4) 22.04.12 64 3 11쪽
81 Ep.17 무안혈맹(3) 22.04.11 62 3 12쪽
80 Ep.17 무안혈맹(2) 22.04.09 64 2 11쪽
79 Ep.17 무안혈맹(1) 22.04.08 7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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