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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남 님의 서재입니다.

신세계로부터 : 씨앗전쟁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도리푸
작품등록일 :
2022.01.17 14:35
최근연재일 :
2022.05.13 05:56
연재수 :
10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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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글자수 :
582,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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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1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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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Ep.18 태백산의 마녀(3)

DUMMY

“다 구경했으면 내려오시지요 유현 씨?”


짙은 흑발의 여인의 얘기에, 훌쩍거리던 아이들 역시 여인의 시선을 따라서 나무 위를 바라봤다.


“저 여자의 마법이었군. 흑무단장 심윤혜. 유현 너는 언제부터 알고 있었지?”


윤필이 내려갈 생각도 하지 않는 듯한 유현을 향해 물었다.


“조금 전에.”

“하아.. 이 녀석과 헤어질 시간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고.. 인간적으로 마음의 준비 정도는 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윤필이 마치 안타까운 사연으로 이별을 택하는 연인처럼 지팡이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그런데 저 여자 정말 아름답네요.”


케이디의 중얼거리는 소리에 김해리도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미모는 깊은 산의 어둠 속을 환하게 밝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웠다.


“얼른 내려가봐야 할 것 같은데요 리더?”


케이디의 얘기에 유현이 윤필의 어깨를 툭 하고 쳤다.


“간다고. 에이씨..”


그렇게 윤필을 시작으로 네 사람이 전부 아이들과 여인 앞에 섰다. 아파트 삼층 높이는 될 만한 나무에서 사람들이 사뿐히 내려오자 아이들의 눈동자가 왕사탕 만하게 커져서 여인의 뒤로 숨어들어갔다.


“아.. 안녕 얘들아?”


김해리가 자세를 낮추며 밝게 인사를 했지만, 아이들은 여인의 옷자락을 붙잡고 나오지 않았다. 여인은 아이들 쪽으로 몸을 돌려 한 번씩 눈을 맞추며, 아이들을 안심시키고 나서야 다시 일행들을 바라보고 섰다.


“꽤.. 빨리 오셨군요? 일주일은 더 걸릴 것처럼 얘기하시더니.”


그저 목소리가 귀에 들렸을 뿐이었다. 한데 라일락 향기가 코끝을 스치는 듯한 착각이 들자, 그녀를 처음 마주하는 세 사람은 그녀의 신비로운 분위기에 더욱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운 좋게 날아올 수 있어서.”

“날아와요? 저 마법사가 그 정도로 대단해 보이지는 않는데요..?”

“...”

“어이어이! 유현! 왜 대답을 안 해? 그러니까 진짜 내가 그저 그런 마법사 같잖아! 이봐요 아가씨. 물론 이 지팡이가 있어서 가능한 거였지만, 나도 비행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당신이 중력 조작을 할 수 있다고요?”

“중..력은 아니고.. 양력.. 바람을 이용해서..”

“흥. 그런 건 나도 할 수 있어요. 마나 효율이 좋지 않아 사용하지 않는 것뿐이지.”

“윽..”


말문이 막힌 채 당황하는 윤필을 보며, 케이디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윤필 씨. 저는 윤필 씨 비행 마법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마법 덕분에 많은 위기를 헤쳐 나갔잖아요.”

“... 중력이라니.”


케이디의 위로에도 윤필은 약간 넋이 나간 듯한 얼굴을 하고 뒤로 물러났다.


유현은 별다른 얘기 없이, 그저 심윤혜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지고의 존재라는 자에게 데려다주겠다는 약속. 그 약속은 그녀를 살려서 보내준 대가로 받기로 한 것. 상황 자체를 놓고 보면, 적이었던 자에게 받아낸 약속이었기에 그 약속을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유현은 단지 반자련을 도구로써 이용하고 있던 눈앞의 여자를 신뢰한다기보다, 그날 몸을 감쌌던 나무의 따뜻한 빛의 힘을 믿었다. 그날 그 빛은, 이 여자를 통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것처럼 유현을 감쌌고, 그렇게 유현의 마음을 움직였다.


얼마간의 정적이 어두운 산속을 가득 채웠다. 이에 심윤혜가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가장 작은 남자아이를 안아 들었다.


“당신들이 근처로 왔을 때, 존재께서 나를 내려보내셨어요...”


심윤혜는 꺼내기 힘든 얘기를 힘겹게 뱉으려는 것처럼 입술을 오물거렸다.


“당신들도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당신들.. 덕분에 아이들이 무사할 수 있었네요.”


그렇게 얘기하며 심윤혜가 뒤로 돌자, 아이들은 익숙한 듯 앞으로 달려나가 마치 길을 안내해 주듯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따라오세요. 존재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


“아.. 저기.. 이 지팡이는..?”


심윤혜의 뒤를 따라 산길을 걷던 윤필이 큰 결심을 한 얼굴로 목소리를 냈다.


이에 흘끗 뒤를 바라본 심윤혜는 다시 앞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것은 원래 제 소유가 아닌 물건. 존재께 돌려드리면 됩니다.”

“아.. 알겠어요.”


얼마쯤 산을 올랐을까,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받은 유현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고, 곧이어 나머지 세 사람 역시 이상한 느낌에, 자꾸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기 시작했다.


“네 사람 모두. 감들이 좋으시군요.”

“풍경이 부자연스럽게 이어져 있군. 마법인가?”


그런 네 사람의 낌새를 알아차린 심윤혜의 얘기에, 유현이 물었다.


“네 맞아요. 존재께서 만들어 놓으신 일종의 지름길 같은 거죠.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인상을 찡그리며 지도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김해리는, 심윤혜의 말에 결국 지도를 고이 접어 품에 넣었다.


일행들이 도착한 곳은 산속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초등학교 건물이었다.


김해리는 운동장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코끝을 간질이며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한밤중의 가을 산속에서, 초여름의 바람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는 따뜻한 바람이라니?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른 세상으로 조금씩 걸어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유현. 느껴지지?”


그때, 지팡이를 잡은 손에 미세한 떨림을 감지한 윤필이 유현에게 물었다. 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정면을 응시했다. 유현의 시선은 학교 건물의 가장 큰 입구에서부터 천천히 걸어 나오는 한 여인에게 향해 있었다. 수수한 색들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한복. 자연스럽게 한 갈래로 묶은 머리. 심윤혜 못지않게 아름다운 하얀 얼굴.


여인이 걸음을 걸을 때마다 따뜻한 바람이 더 가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큰 선생님!”


세 명의 아이들이 여인을 향해 달려가, 여인의 품에 뛰어들었다. 여인은 인자한 미소로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아이들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네!”


아이들이 부석사에서부터 가지고 온 바구니를 소중하게 품에 안고서 꺄르륵 거리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여인의 시선이 그제서야 네 사람에게 똑바로 향했다.


쿠웅.


전신을 덮쳐오는 무형의 기운. 그것은 숨 쉬는 것조차 망각하게 만드는 거대한 위압감. 네 사람은 온몸을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유현은 이 감각을 알고 있었다. 청계천 상인 연합에서 예언가 나유미와 처음 눈이 마주쳤을 때와 비슷한 느낌. 하지만 그때 느꼈던 가벼운 기운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강대한 기운이었다.


“흐읍..”


그때, 유현이 짧은 숨을 들이켰다.


이에 심윤혜의 눈이 동그랗게 되어 아주 놀란 표정으로 유현을 바라봤다.


“후우..”


마나의 속박에서 벗어난 유현이 여인을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러자 여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커헙!!”

“푸하..”


그러자 나머지 세 사람도 마나의 속박에서 벗어나 참았던 숨을 급하게 내쉬기 시작했다.


“뭐야 방금..?”

“하아.. 하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유현과 여인을 번갈아 보는 세 사람. 그리고 가장 놀란 표정을 짓고 유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심윤혜. 일행들이 천천히 정신을 차리자, 여인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들었던 것보다 더 대단하군요 유현.”

“...”


방금 전 엄청난 위압감으로 인해 온몸의 세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던 일행들은 순간, 그 모든 두려움이 한꺼번에 씻겨 내주는 듯한 자애로운 목소리에 마음이 치유됨을 느꼈다.


“와..”


특히 힐러 케이디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나를 만나고 싶어 했다고요?”

“그렇습니다.”

“왜죠?”


여인이 웃는 듯 아닌 듯 미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에 유현은 자신의 검 광휘를 들어 여인에게 보여주었다.


“저는 나무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 나무의 씨앗을 품고 있던, 검은 돌로 만든 검이죠.”


여인의 미묘한 표정은 여전했지만, 이번에는 웃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표정으로 변했다.


“그래요.. 당신들은 비밀에 더 가까이 다가간 자들.. 서대문 연합이라는 조직이 세상의 비밀을 가장 앞장서서 캐고 있군요. 하지만 저는 당신이 저를 찾는 다른 이유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여인의 얘기에 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윤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윤필은 유현의 얘기를 알아듣고는 유현에게 지팡이를 건넸다.


지이익.


목까지 올려놓았던 트레이닝복 재킷의 지퍼를 내린 유현. 유현의 목 언저리에는 쇄골을 타고 올라온 검은색 반점들이 마치 문신처럼 뻗어 올라와 있었다.


유현은 지팡이를 잡은 손에 마나를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팡이를 통해 주변의 마나를 통해 유현의 감각이 뻗어 나가기 시작했고, 곧 주변의 마나는 지팡이 끝에 달린 호박색의 보석을 조금씩 밝히기 시작했다.


“아..”


김해리를 제외한 윤필과 케이디는 그 처음 보는 광경에 놀라 입을 벌렸다. 빛을 내기 시작하는 유현의 검은 반점들. 반점들은 점차 호박색의 보석이 내는 빛과 같은 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허엇?”


일행들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유현의 코앞에 서 있는 여인을 보고 놀랐다. 여인은 예의 그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두 손으로 유현의 목을 살포시 얹듯이 감싸 안았다.


그러자 여인의 한복 안에서도 호박색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빛은 여인의 피부에서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여인의 몸에서 빛나는 그 빛은 점점 더 그 밝기가 커지더니 급기야, 눈이 부셔 도저히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들 정도로 밝아졌다.


그 밝은 빛은 눈동자를 뒤덮은 눈꺼풀로도 부족해, 다시 손으로 가려야 할 정도로 밝았다. 그리고 빛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빛은 사라지고, 다시 깊은 어둠으로 뒤덮어야 할 일행들의 시야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 들어왔다.


유백색의 거대한 형체. 운동장의 사분의 일을 차지할 정도로 커다란. 똬리를 틀어야 할 정도로 긴 몸을 가진, 거대한 뱀. 아니, 신화 속에 나오던 용에 가까운 생김새. 여인의 모습은 간 데 없고, 그 자리에 그 자리에 그 거대한 존재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일행들과 유현. 네 사람 모두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 거대한 형체의 의지가 귓가로 전해졌다.


[나의 이름은 은혜로운 대지. 태고부터 이 땅에 살아온 지고의 존재. 당신들보다 이 땅을 먼저 빌려 사용한 존재들입니다. 유현. 당신은 마음이 죽은 자. 하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세상에 빛을 뿌리는 자.]

“...”


자신을 은혜로운 대지라 칭한 존재의 검은 눈동자가 천천히 감기자, 다시 한번 온 세상이 환한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일행들이 눈을 떴을 때, 거대한 형체는 다시 수수한 한복을 입은 여인으로 변해 있었다.


“당신의 빛을 통해 당신의 기억들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이제 우리가 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군요.”


여인의 미소가 얼굴 가득히 환하게 빛났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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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Ep.19 인간의 영역(3) 22.04.21 53 3 13쪽
89 Ep.19 인간의 영역(2) 22.04.20 49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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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Ep.18 태백산의 마녀(4) 22.04.16 53 2 13쪽
» Ep.18 태백산의 마녀(3) 22.04.15 59 2 12쪽
84 Ep.18 태백산의 마녀(2) 22.04.14 73 3 13쪽
83 Ep.18 태백산의 마녀(1) 22.04.13 65 3 11쪽
82 Ep.17 무안혈맹(4) 22.04.12 64 3 11쪽
81 Ep.17 무안혈맹(3) 22.04.11 62 3 12쪽
80 Ep.17 무안혈맹(2) 22.04.09 64 2 11쪽
79 Ep.17 무안혈맹(1) 22.04.08 75 3 12쪽
78 Ep.16 전운(7) 22.04.07 67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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